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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1/26 19:26:10
Name azurespace
Subject [스타2] 고수가 됩시다 - 멀티태스킹의 허상과 실제

초보와 고수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멀티 태스킹이라고 말할 것입니다.이 말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렸습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멀티태스킹이란, '여러 가지 행동을 동시에 번갈아가면서 하는 것' 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돌이이므로, 제가 익숙한 분야인 컴퓨터에 빗대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여기 CPU가 하나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간단한 이해를 위해서 이 CPU는 하나의 코어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 번에 하나의 일만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과 몇년 전 펜티엄 4를 사용하던 시절까지도 우리는 하나의 코어만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컴퓨터를 가지고도 실제로 음악을 들으면서 웹 브라우징을 하고, 워드 작업을 하는 등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걸까요? 사실 컴퓨터는 한 번에 하나의 작업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매우 빠른 속도로 작업과 작업 사이를 넘나들었던 것이죠. A라는 작업을 잠시 진행하다가 메모리에 기억해놓고, 작업 B로 넘어가서 작업하다가, 다시 저장하고 다음 작업을 잠깐 처리하고... 이런 과정이 사람이 느끼지 못할만큼 짧은 시간 간격 단위로 진행되다 보니, 이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이죠. 때문에 만일 어떤 응용 프로그램이 CPU를 붙잡은 상태에서 운영체계에 자원을 반납하는 것을 거부하면, 전체 시스템이 불안정해지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멀티태스킹을 구현하는 과정에는, 본래라면 필요하지 않았을 비용이 필요하게 됩니다. 현재 작업의 진행상황을 저장하고 다음 작업의 진행 상황을 불러와야 하기 때문에 기억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때문에, 멀티태스킹을 하게 되면 작업을 차근차근 하나씩 끝내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순차 실행을 했을 때에 비해서 전체적으로는 시간이 더 걸리게 됩니다. 이런 추가 비용을 문맥 전환 비용, 또는 컨텍스트 스위칭이라고 부릅니다.

왜 지금까지 이런 얘기를 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뇌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동작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인간의 뇌는 여러 작업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진행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전전두엽이라는 영역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뇌의 각 영역으로 정보를 분배하고 다시 돌아오는 정보들을 종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역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작업량이 상당히 적습니다. 이 영역에 대한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다섯살 아이들과 성인으로 그룹을 나누어서 계산 문제를 풀도록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성인 그룹이 훨씬 뛰어난 성과를 보입니다. 그러나 두 그룹에게 간단한 손동작을 반복하면서 계산 문제를 풀도록 했더니, 성인 집단과 아이들 집단의 격차는 미미했습니다. 단순한 손동작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전전두엽의 문제 해결 능력은 엄청난 간섭을 받은 것입니다. 즉, 사람의 뇌는 문맥 전환 비용이 매우 큰 싱글코어 컴퓨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음악을 틀어 두고, 특히 가사가 있는 노래를 틀어 두고 게임을 하는 것은 엄청난 실력 하락으로 돌아옵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찬찬히 나눠 보면 수많은 작업들이 있습니다. 일꾼을 생산하고, 건물을 짓고, 유닛을 생산하고, 정찰을 보내고, 전투를 하고, 미니맵을 확인하고, ... 이러한 수많은 작업들을 하나씩 돌아가면서 끝내는 것이 스타크래프트입니다. 스타 인터페이스 위에서 동시에 두가지 이상의 명령을 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요. 그런데,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의 뇌는 문맥 전환 비용이 상당히 큽니다. 두 가지만 하려고 했을 때도 다섯살 수준이 되는데, 이 모든 것을 잘 하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모든 것을 망치게 될 겁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기실 겁니다. "프로게이머나 아마 고수들은 잘만 하지 않나? 그 사람들의 뇌는 뭔가 다른가?" 아뇨. 최상위권 프로게이머와 여러분의 뇌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소개할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작업 기억인데요. 컴퓨터로 치면 메모리, 또는 RAM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뇌에서 뭔가를 하면서 잠깐 필요한 것을 임시로 기억해두는 공간입니다. 일반적인 성인의 경우 작업 메모리는 7개 정도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잘 훈련된 사람도 열 개 정도를 기억하는 것이 고작이고요.

그런데 이 작업 메모리는 컴퓨터의 메모리와 달리 절대적인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신비한 공간입니다. 여기에서 일반인과 초보의 차이가 생기게 되는데요. 프로게이머와 초보를 가르는 비밀은 바로 청킹(chunking)에 있습니다. 청크(chunk)란 의미를 나누는 단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를 드는 것이 편하겠죠.

"프뻔뻔의 멸뽕은 말도 안 되는 사기 빌드오더다. 너프 패치가 시급하다"

스타크래프트를 전혀 접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 위 문장을 주고 5초만에 외우라고 한다면 아마 외우지 못할 겁니다. 스타 1이나 다른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너프 혹은 빌드오더 정도는 외울 수 있겠죠. 그러나 스타 2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자신이 프로토스가 아니라면 아마 1초만에 정확한 철자를 써내려갈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청킹의 힘입니다. 일반인에게는 저 문장은 도저히 7개의 작업기억만으로 담을 수 없는 크기입니다만, 스2 유저에게는 저 전체가 하나의 청크이기 때문에 하나의 작업기억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이죠.

다른 예를 볼까요?

200411122242
이 숫자를 그냥 암기하려면 12개의 작업 기억이 필요하겠네요. 7개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두 자리씩 끊어 볼까요?

20 04 11 12 22 42
이번에는 6개의 작업 기억이 필요하겠네요. 약간만 시간을 들이면 암기가 가능할 겁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팬이라면 이렇게 나누면 됩니다

20041112 2242
홍진호가 3연벙을 당한 날짜(2004-11-12)와 총 경기시간(22분 42초)

작업 기억력은 두개만 필요하게 되죠. 즉, 같은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그룹화하는가에 따라서 두뇌가 사용해야 하는 작업 기억의 수는 크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일꾼을 생산하고 생산건물을 짓고 미니맵을 보고 병력을 컨트롤하는 각각의 작업이 하나의 작업기억을 통째로 차지하기 때문에, 문맥 전환 비용이 발생하고 실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반면 프로게이머들은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커다란 하나의 청크를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프로게이머들은 여러 작업을 번갈아가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크래프트라는 하나의 문맥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죠. 이 때문에 위에서 멀티태스킹이 초보와 고수를 나누는 기준이라는 말이 반만 맞다고 한 것입니다. 초보는 멀티태스킹을 하지만, 고수는 싱글태스킹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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컹컹으르렁
14/01/26 19:30
수정 아이콘
와.. 추천누르고 갑니다. 자유게시판에도 어울릴만한 글이네요.
치탄다 에루
14/01/26 19:34
수정 아이콘
제가 고수가 될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군요...
14/01/26 19:3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제가 스타하면서 느낀게 스타는 생각하면서 하면 안된다. 애초에 모든 상황 자체가 메뉴얼화 되어 있는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생각하는 순간 밀린거다. 라고 생각하는데...비슷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멀티테스킹도 결국 이미 메뉴화되어있고 습득화 되어 있는 동작을 순차적으로 하는 일종의 스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14/01/26 19:51
수정 아이콘
다른 스포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개념인 것같습니다. 결국엔 반복-숙달이 키네요. 만시간의 법칙이란 것도 결국엔 비슷한 것같고요.
애미야물좀다오
14/01/26 19:53
수정 아이콘
스2는 프로들이 쓰는 빌드만 종족별로 2개정도씩 반복숙달하면 마스터는 그냥 갑니다 그 타이머도 있으니 시간대별로 건물 일꾼 다 맞추다보면 이기게 되있어요 또 친절하게 그마들 초반빌드도 초단위로 볼수있으니 ;;이보다 더 빌드복사하기가 쉬운 게임이 없음
14/01/26 19:56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이 있어서 피지알이 좋습니다 ^^
14/01/26 20:05
수정 아이콘
모든 스포츠를 관통하는 진리죠
반복연습
거기에 번뜩이는 센스와 창의력이 더해지면 슈퍼스타가 되는거구요
몸을 사용하는 일반스포츠에선 피지컬능력도 더 해져야하는거구요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4/01/26 20:05
수정 아이콘
"프뻔뻔의 멸뽕은 말도 안 되는 사기 빌드오더다. 너프 패치가 시급하다." 예전에 제가 친구들에게 핏대를 올리고 주장하던 크크.. 잘 읽었습니다
14/01/26 20:09
수정 아이콘
대박...
민트홀릭
14/01/26 20:1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추천 꾹 누르고 갑니다
로쏘네리
14/01/26 20:29
수정 아이콘
추천! 잘 읽었습니다.
해피새우
14/01/26 20:58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14/01/26 21:22
수정 아이콘
영어단어 외우는 것도 그 많은 뜻들을 무작정 외우는 게 아니라 뜻들 간에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하나로 외우는 게 좋죠
진실은밝혀진다
14/01/26 21:39
수정 아이콘
프뻔뻔의..........그 다음이 뭐였죠?
역시 전 토스인가 봅니다.
이성은
14/01/26 21:47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예전에 배넷어택류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선수들도 그러했죠.
말을 하면서 게임에 대한 연산을 따로 하는것이 아니었고 흔히 몸이 기억하고 있다고 하죠. 손은 그냥 게임을 하고 입은 대화를 했던 것 같아요.
14/01/26 21:59
수정 아이콘
애쥬어스페이스님은 진짜 옛날부터 스타2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시네요 흐흐

제가 한참 게임하던 시절 스타1보다 스타2에서 실력이 더 나올 수 있었던건 편한 인터페이스 덕분입니다.
스타 1은 유닛이동-> 1m2m3m4m5c6c 이런식이지만

스타2는 유닛이동하면서 2aaaaaaa3tt5dd 이런식으로 하니까 훨씬 편하죠.. 스타2 정말 해보시면 재밌는 게임입니다.

다만 저에겐 롤이 더 재밌어서 롤을 할뿐.. ㅠㅠ

스타2좀 많이 사랑해주세요 헤헤
14/01/26 22:01
수정 아이콘
멸뽕을 보니 1/1/1이 생각나네요..

테란의 1/1/1은 사기라고 타종족들이 징징대던 시기에 정말 꿀 잘빨았는데..
콩먹는군락
14/01/26 22:15
수정 아이콘
테란 땅거미지뢰 방사피해는 너무 세서 너프할수밖에 없었다

이건 확실히 기억나네요
개념은?
14/01/26 22:15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이건 정말 자유게시판이 더 어울리는 글 같습니다.
모든 공부도 마찬가지죠. 특히 암기과목할때 전체적인 틀을 가지고 이어서 그림그리듯이 외우는게 그냥 외우는것보다 효과가 훨씬 좋습니다.
그림 그리듯이 외운다는거 자체가 어느정도 관계에 대한 묶음을 가지고 있는것이거든요.
하늘이어두워
14/01/26 23:19
수정 아이콘
와 대박이네요.
greatest-one
14/01/27 01:08
수정 아이콘
와...이런 내용을 보면...공부좀 꾸준히 열심히 할걸...그래서 어떤 분야를 잘 파둘걸...생각이 정말 너무 많이 듭니다.
멀티 태스킹이라는 표현을 들을때마다...엄밀히 말하면 아닌거 같은데 라는...생각이 들었는데...
뭔가 체계적인 형태로 정확한 표현으로 풀수가 없어서 답답함이 느껴졌는데...확 뚤리는 기분이네요..
프로게이머들이 아무리 손이 빠르고 환상적인 멀티태스킹 능력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팀밀리로 2명이 하는게 아니면 절대로 한번에 2개를 동시에 하는건 아니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유닛컨트롤 하면서 생산은 못하죠...유닛을 움직여 놓고...생산을 하든지...아니면 반대던지...
'멀티태스킹이 좋다' 이 표현은 연습을 통해 게임내에서 효율을 극대화 시키는 순서대로 명령을 내리는 능력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청킹'이란 표현이 있네요...예문이 너무 주옥같습니다. 기가막힐 정도네요...
그럼요..폭룡이 최고다...멸자가 최고다...친구가 한말이 생각나네요..흐흐
해울림
14/01/27 01:16
수정 아이콘
오 이런 인지심리학적 지식들 무척이나 유용하지요
14/01/28 00:22
수정 아이콘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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