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게임 속 대결 양상은 쉴새 없이 바뀌어왔다. 1998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초창기엔 시스템이 부여한 개별 종족의 속성과 시스템성을 제대로 파악해서 이를 기반으로 어떤 전략을 내놓느냐가 관건이었다. 유닛간 상성이며 기능 등 시스템 속성에 대한 이해 수준이 누가 더 높은가가 핵심이었다.
소수 효율을 중시하는 프로토스, 확장의 종족 저그, 우주방어에 특화된 테란이라는 각 종족의 컨셉과 특성에 맞춘 전략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리버 둠드랍이나 히드라웨이브, 삼각벙커 등이 그런 개념 속에서 등장한 전략이었다.
게임을 고안한 자의 뜻을 더듬고, 설계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지향점인 시대였다. 즉, 이때의 스타크래프트는 해석의 게임이다. 빌드를 고안한다는 것이 특히 중요하게 여겨졌던 시대다. 그리고 절대 게임수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게임의 성격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찾아낸다는 것은 전적으로 게이머의 직관에 달린 과제였다. 저마다의 직관과 해석에 기반한 빌드가 무수하게 만들어졌다.
초기 수비 빌드업의 개념을 쌓은 신주영, 메카닉을 갈고닦은 김창선, 살아있는 히드라 국기봉, 뮤탈에서 해법을 찾은 봉준구, 종족 이해도가 강점이었던 이기석, 샤우론의 뒤를 이어 무한 확장류를 갈고 닦은 최진우와 강도경 등이 1999년부터 2001년 초반 강자로 회자된 이름이다. 이런 유명 선수들 사이서도 우뚝하고 섰던 이가 바로 기욤 패트리다.
그의 플레이는 남다른 점이 있었다. 다른 프로게이머들이 직관에 따라 빌드를 구상한 뒤엔 그것을 갈고닦으며, 정형화된 패턴에 집착했다면, 기욤은 어느 하나에 고착되지 않고 자유로운 발상과 철저한 직관에 의존해서 게임을 풀어나갔다.
게임 설계에 대한 높은 이해가 바탕이 돼 있어서 가능한 플레이였다. 게임 설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 시대였고, 그는 여럿 중에서도 가장 빛났다. 그의 플레이는 시대성을 극명하게 반영하는 당대의 패러다임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단아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가 매뉴얼이면서 동시에 고착화된 매뉴얼을 찢어버리는 한없이 독창적인 게이머였다.
● 1999~2001년 초반 필살 러쉬의 경합 속 눈부셨던 천재
그는 오리지널 땐 저그 유저로 확장형 플레이와 히드라 운영이 얼마나 강한지를 납득시켰다. 이후 프로토스 중심 랜덤유저로 옮겨가며 리버 드라군 체제를 기본으로 소수유닛을 활용한 응용력 등 종족 이해 측면에서 앞서 있었다.
기욤은 한국선 랜덤유저(오리지널 땐 저그, 이후 프로토스 중심 랜덤유저를 거쳐 프로토스로 안착)라는 점 때문에 스타일이 상대적으로 동시대 선수들이 비해 흐릿하다는 인상이 있지만, 그의 스타일이라면 역시 상황 대처와 러쉬 대응에 특화돼 있다는 점이 꼽힌다.
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당대의 주도적 게임 경향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주요 게이머들은 빌드업 구성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는 본질적으로 러쉬(Rush)라는 최종적인 결론을 향해 도달하는 일종의 논리적 구성을 의미한다. 이게 오늘날에서의 최적화 개념과는 크게 다르다. 최적화라는 개념은 시간, 자원, 견제, 정찰 등 다양한 요소들의 총합으로서 차근차근 점수를 쌓아나가며 상대방을 차츰 옥죄고 질식시키는 조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임에서의 승부란 그렇게 수없이 조건을 맞춰가는 과정이며, 러쉬 또한 게임을 유리하게 만드는 일종의 조건으로 다뤄진다.
반면 1999~2001년 당시 초창기에 있어서 절명기이자 필살 일격으로서 러쉬의 의미는 달랐다. 러쉬란 하나하나 조건들의 퍼즐을 맞추다가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 바로 절정에 밀어붙이는 일종의 클라이막스로서 여겨졌다. 그러므로 당시의 명승부란 러쉬의 절정감이 얼마나 극대화돼 있느냐가 관건이다. 예컨대 테란 최진우가 프로토스 김창선을 시즈탱크로만 밀어붙인 PKO99 8강 경기가 이 대회 최고 명경기로 꼽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러쉬란 상대방의 목을 치러 벼르고 벼른 한칼이어야 했다. 당시의 전략이란 차근차근 운영의 결을 따르며, 이에 따라 완벽하고도 합당한 귀결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외의 변칙이란 게임을 이해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눈 어두운 승부욕으로만 치부됐다. 특히 동네 승부에서 5~10분 러쉬는 이러한 논리를 모르는 자의 비열한 꼼수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게임의 시스템성을 올곧게 이해한 뒤 충분한 승리의 논리를 쌓는 자가 강자라는 인식이 담겨져 있다.
논리와 해석의 시대. 기욤 패트리는 그점에서 가장 완성된 선수였다. 상대방의 필살 러쉬에 담긴 논리와 구조를 파헤쳐서 그것에 대한 해법을 담담하게 내놓았다. 새로운 퍼즐을 받아들어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했다. 당시의 승부란 상대방을 일합에 쓰러트리는 각자의 절명기를 겨루는 형태에 가까웠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때의 기욤의 수는 절권도처럼 보였다.
상대방을 수를 척척 막아낸 뒤에 반격을 통해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상대가 내놓는 무적수에 대해 그에 꼭 맞는 해법으로 맞서는 백과사전류였달까. 그는 해석의 꼭대기에 있었다. 게임의 속성을 파악하는 자가 승자로 인식되는 시대에, 그는 이 게임의 설계도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닛 속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에서 그런 면모가 두드러졌다. 그가 우승한 2000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리그 조별리그선 메딕의 옵티컬플레어를 이용해 국기봉의 럴커를 무력화했고, 결승전 5경기에서 강도경을 상대로 드랍십을 통한 언덕 탱크로 교두보를 옥죄는 전략으로 승리를 따낸 장면들이 그러했다.
2000온게임넷 스타리그 왕중왕전 최종 진출전 섬맵으로 저그가 절대 유리한 아이스로스트템플서 저그의 압박에 앞마당도 가져가지 못하다가 필살의 4다크 드랍으로 경기를 따낸 게임도 있다. 그의 번뜩이는 게임 이해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렇게 그는 유닛을 끊임없이 재발견하고 종족별 전략을 발굴해냈다. 당시 그는 일종의 해답지나 다름없었다. 개별 유닛 성격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알고, 이를 활용하는 데 선구자였다.
그는 즉흥성과 번뜩이는 기지에 따라 움직이고 임기응변으로 승부수를 던졌으며, 스스로는 한가지 전략이나 이론 혹은 개념에 집착하지 않았다. 히드라웨이브를 창시한 러쉬의 교본이었으면서도 자신은 러쉬의 논리에 한없이 무심했다. 기욤의 상대들이 자신있게 내놓은 전술들은 고단수의 이해 앞에서 힘을 잃었다. 러쉬의 시대에 러쉬의 논리를 격파해나갔고 게임의 설계에 철저하면서도, 동시에 러쉬의 논리에 포착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시대적이면서 동시에 반시대적이었다.
정작 그 자신은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데, 그가 매경기마다 제시한 해법은 훗날 정석으로 자리잡힌다. 프로토스전에서의 드라군 리버 운용이나 히드라웨이브를 통한 압박 등이 그러하다. 대저그전 드랍십 활용도 방송 경기서 자주 들고 나온 것도 기욤이었다. 즉흥성과 천재성에 의존해온 그가 당대의 최강자 자리를 그토록 오랫동안 지켰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다.
기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18년 3월 스타크래프트 20주년을 맞아 서울 강남구 블리자드코리아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를 초청하는 자리였다. 나는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내가 직접 보지 못했던 승부가 늘 궁금했다.
몇가지 물었던 것 중 하나가 스타크래프트 초창기 라이벌리를 형성했던 슈팅리버의 황제 질리아스(톰 캐드웰. 링크드인에 따르면 2020년 9월 현재 라이엇게임즈 소속으로 리그오브레전드 디자인 디렉터로 있다)와의 대결이었다. 누가 더 많이 이겼느냐는 질문에, 그는 “맵에 따라 달랐어요”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셔틀과 리버를 활용해 섬맵 최강자로 거듭났던 질리아스와 지상맵에서의 승률이 더 높았던 히드라 운용의 최강자 그르르(기욤)의 대결은 결국 저그 우세로 기울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기욤은 저그의 확장력을 기반으로 한 지구전에서 강점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종족 이해에 있어선 동시대 실력자들 보다도 훨씬 앞서 있던 그는 프로토스를 상대로 한 저그의 확장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히드라웨이브라는 필살 러쉬를 앞세워 해법을 찾았다.
건곤일척 대결에서 승리한 이래 오랫동안 그의 시대였다. 1999년 블리자드가 직접 스타크래프트 최강자를 가리겠다는 이유로 개최한 이른바 월드챔피언십에서 또 다른 최강 실력자 김창선을 3:0으로 꺾으면서 명실상부 글로벌 챔피언 칭호를 얻게 된다. 고의 져주기 의혹 등으로 인해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배틀넷 래더와 달리 해당 대회는 시작부터 최강자를 가리겠다는 의도로 블리자드가 직접 기획해서 만든 토너먼트인지라 권위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기욤은 이 대회 우승을 통해 최강자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그는 한국으로 진출해 투니버스 스타리그(하나로통신배)서도 우승했다. 당시 그의 아이디 그르르는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그는 3년 가까이 스타크래프트를 지구상에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틀림없이 그랬다. 스타크래프트가 해석과 직관의 게임일 때 기욤은 최강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와 경향은 게임이 부여한 명백한 시스템성을 부정하는 혁명가들이 등장하면서 뒤집힌다.
나주임 : “그때의 당신은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죠. 독창적이고 즉흥적이었죠.”
기욤 패트리 : “그때그때 느낌에 맞춰서 게임했죠. 그때 저는 연습을 하지 않고도 이렇게 갑자기 떠올린 생각으로도 이길 수 있어, 라는 느낌이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연습을 잘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자랑이기도 했어요. 그게 진짜 실력이라고 생각했을 때였죠.
나주임 : “천재성에 의존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욤 패트리 : “그때 저는 새로운 트렌드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다들 마이크로(컨트롤을 의미*), 마이크로했는데 그런 거 안하고도 이기는 게 진짜 실력이라고.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때 연습을 많이 했더라면 저도 더 오래갈 수 있었겠죠. 요환이 형이 그런 선수죠. 어느 순간 제가 절대 이길 수 없었습니다.”
● 2001년 뒤바뀐 패러다임, 혁명가들의 등장
2001년은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승부의 패러다임이 뒤바뀐다. 새 시대 대표 기수는 임요환이었다. 유닛 상성과 달리 마린으로 럴커를 때려잡는 화려한 그의 미세 컨트롤은 충격적이었다. 상성을 거부하는 컨트롤은 게임을 고안한 자의 지침을 찢어버리는 파격이었다.
기욤이 옵티컬플레어로 국기봉의 럴커를 무력화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성이 부여한 속성을 극대화한 것이었다. 반면 임요환의 플레이는 그러한 속성과 시스템 논리 자체를 뛰어넘어 버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제 게이머들은 설계자가 정해준 방식과 논리대로 싸우지 않는다. 즉 임요환은 게이머의 판단과 전술, 컨트롤이 게임이 부여한 설정 보다 때론 우위에 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게임이 창조자의 손에서 벗어나 게이머에 의해 진화하는 길을 열어젖혔다. 앞서 이전의 게임은 누가 더 설계자의 뜻을 잘 이해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시대부터 게이머는 순수하게 그 자신인 동시에, 자신의 성향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진화한다. 그에 이르러 테란은 방어의 종족이라는 정해진 지침에서 벗어나 견제와 날카로운 찌르기가 두드러지는 종족으로 도약한다.
같은 맥락에서 동시대의 혁명가로 홍진호를 빼놓을 수 없다. 시스템이 부여한 매뉴얼에 따르면 저그란 확장력과 자원의 풍족함을 통해 상대를 압도하는 종족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투해처리 상태에서 공격 호흡을 한 박자 빠르게 당겨 처절하고도 무지막지한 폭풍을 말아 일으키는 것으로 저그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이듬해 박정석도 센세이셔널했다. 소수 유닛의 효율을 중시해왔던 프로토스라는 종족을 오히려 물량과 빠른 회전의 종족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윤열 역시 테란을 새롭게 해석한 천재다. 확장력과 물량을 바탕으로 저그의 DNA를 심었다. 이처럼 종족 속성을 새롭게 해석한 이들에 의해 전쟁은 새로운 양상을 맞이한다. 2001~2002년에 벌어진 변화다.
이로써 게임에 있어서 스타일이 의미하는 바도 달라진다. 이전에는 게임이 지정한 속성을 얼마나 제대로 해석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예전에는 정형화된 빌드업과 그것을 얼마나 숙달했느냐에 따라서 개성이 갈렸으며, 특히 시스템 속성 그중에서도 특히 유닛 속성을 강하게 의식하는 가운데 빌드를 구성해나갔으므로, 특정 유닛 중심의 전략이 부각됐다. 반면 새로운 세대는 자신의 선호에 맞춘 조합을 보다 중시하게 된다.
시스템이 정해준 속성을 넘어서기 위해 컨트롤이라는 역량도 부각되기 시작한다. 승부의 호흡도 빨라진다. 더 이상 장고할 시간 자체를 주지 않는다. 해석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긴 호흡에서의 승부가 강점인 기욤은 속도의 벽에 부딪힌다. 일합 승부가 아니라, 무수한 교전에서 실리를 따내야 하는 컨트롤의 시대에 기욤의 반격은 한 두 번 실리를 따낼지언정, 게임을 장악하진 못한다. 교전에서의 작은 이득 보다는 큰 흐름을 잡겠다는 기욤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즉, 으르렁(Grrr....) 기싸움 끝에 한방 목덜미를 잡아채는 투견의 싸움에서 무수한 잽으로 상대를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복서(boxer)로 승부의 방식이 바뀌었다. 이와 같은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게임이 바로 당대 최강자들의 만남이라는 컨셉으로 실현된 기욤 패트리와 임요환의 ‘최후의 결전 Last 1.07’ 특별전이었다.
2001년 6월 8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온게임넷 주최로 열린 이벤트전은 지금도 회자된다. 당시로선 생소하게도 유료 입장 방식(온게임넷이 수익화 방안으로 기획했으나 블리자드가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전달하면서 결국 인당 4000원 입장료를 전액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 기부)으로 개최된 경기였는데, 이벤트전이라는 성격에도 결승전 못지않은 의미가 덧입혀졌다.
기욤 패트리는 하나로통신배 이후 치러진 프리챌배에서 8강에서 좌절했지만, 99PKO배부터 프리챌배에 이르기까지 우승자와 준우승자를 불러 모아 최강자를 가린다는 컨셉으로 치러진 왕중왕전에서 우승하면서 여전히 최강 실력자로 불리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듬해 2월부터 5월에 걸쳐 펼쳐진 한빛소프트배에서 최강 선수로 부상중이던 임요환과의 기욤 패트리와의 결승전 대결을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4강전에 진출해 임요환은 박용욱을, 기욤 패트리는 장진남과 맞붙었을 때 기욤과 임요환의 신구 대결이 결승서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들어맞는 듯했다. 4강전에서 임요환은 박용욱의 기습 리버 드랍에 의해 패배했지만, 저력을 발휘해 역전에 성공하면서 선착한다.
당시 이 경기를 현장에서 취재했던 동아일보 서정보 기자는 화장실에서 진한 눈물을 흘리는 박용욱 선수를 봤다고 한다. 반면 승자의 기쁨을 누리는 임요환 선수는 팬 70~80명에게 둘러싸여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고. 임요환은 우승 이전부터 이미 스타로 거듭나있었다.
반면 기욤 패트리는 장진남에게 무기력하게 패배하며 3~4위전으로 밀려난다. 엄재경 해설위원은 한빛소프트배 4강 장진남과 기욤 패트리 대결 해설서 “기욤은 힘이 센 선수는 아니다. 초반의 김동수, 중후반의 임성춘과 달리 상황 대처와 전술적으로 허를 찌르는 선수”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엄 위원은 저그들의 대응이 더 좋아지고 있어서 기욤의 전술과 심리전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때 이미 무게추가 장진남에게 기울어지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김동수와 임성춘 수준의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저그에게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으리라는 분석이었다. 시대가 달라졌음을 모두가 깨달아가고 있었다.
장진남과의 결승은 임요환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그렇게 기욤의 시대가 저물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3~4위전에서 박용욱을 상대로 보여준 1경기 리버 플레이는 여전히 화려했고, 2경기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50분 장기전 끝에 역전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기욤은 여전히 많은 것을 기대하게 하는 이름이었다. 저그에겐 점차 약세로 밀리고 있었지만 프로토스나 테란에게는 여전히 강하다는 인식도 있었다. 여기에 당시까지만 해도 2000년 한해 동안 하나로통신배와 왕중왕전을 우승했던 만큼 공식상금 기준으론 기욤이 여전히 최고라는 객관적 지표도 보유중이었다.
2000년의 왕중왕과 2001년 새롭게 부상한 우승자가 만약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팬들의 바람이 성사된 승부가 바로 LAST 1.07이었다. 경기 시작전부터 임요환의 우세를 점치는 예상이 더 많았다. 예상은 했더라도, 이 정도로 임요환이 완승을 거둘 것이라는 상상을 한 이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반섬맵 홀오브발할라에서 펼쳐진 첫 경기부터 임요환은 기욤 패트리의 승부수였던 리버 드랍을 투스타 레이스로 효율적으로 봉쇄하면서 압도한다. 기욤 패트리가 자신이 만든 전략이라고 할 정도로 애착을 보였던 대테란전 리버 활용은 이날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한방 러쉬를 준비해온 전시대의 에이스에게 임요환은 가르침을 던진다. 일격필살의 시대는 갔고, 이 게임은 이제 무수한 교전으로 점수를 따내야만 하는 피지컬의 승부라고 말이다. 각자가 하고 싶은 걸 다 한 다음에 러쉬로 맞붙었던 시대엔 기욤이 최강자였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시대엔 하고 싶은 걸 하게끔 놔두지 않는 게 관건이다. 임요환에게서 특히 두드러졌던 역량이다.
2경기 레거시오브차 역시 시대가 달라졌다는 점을 보여준 경기였다. 여기서 임요환은 빠르게 벌쳐를 생산해서 견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테란에게 있어 벌쳐의 발견은 이전 시대와는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였다.
그동안 게임 설계에 의존하면 벌쳐는 방어에선 강점을 보이지만 기동성이 떨어지는 테란이라는 종족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주어진 유닛이었다. 기동성이 약한 테란의 밸런스를 맞추고 정찰용 유닛이 필요하다는 노니렝서 게임 내 전 유닛 중에서 가장 빠르다는 특성을 부여받은 게 벌쳐다. 테란은 이제 정찰병에게 공격적인 전환을 주문하기 시작한다. 앞서 게이머가 게임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 시대로 전환했다고 했는데, 바로 그러한 변화상을 극명하게 보여준 유닛이 바로 벌쳐다. 임요환은 벌쳐의 마인과 견제, 탱크 보호 등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공격적인 운영을 통해 내리 2세트를 따낸다.
네오정글스토리서 펼쳐진 3경기도 임요환이 투팩 벌쳐를 통한 일꾼 털기를 통해서 쏠쏠한 재미를 보는 시점에 경기는 이미 기울어졌다. 입구를 막은 뒤 보통 탱크를 뽑으면서 방어적 운영을 하던 이전과 달리, 벌쳐를 선제적으로 뽑고 공격적으로 풀어가는 운영으로 변화해나가고 있었다. 마인 조이기와 일꾼을 노리는 견제가 프로토스를 요리하는 주요 방식이 된다. 이러한 전략은 같은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김동수나 박정석과과 경합하는 빌드였다. 손이 느리고 장고하는 스타일의 기욤은 이런 운영에 속수무책이었다.
11시 테란 본진서 대각선으로 넓을 길을 타고 5시 프로토스 본진을 향해 중앙으로 유유히 진출하는 병력을 프로토스 드라군이 막아서지만, 하나하나 터져나갈 뿐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의 병력을 감당할 수도 없거니와, 이미 본진도 견제에 시달린 탓에 미래를 도모할 수도 없다. 테란의 본대가 중앙을 가로지르기도 전에 중간 교전에서 막아서지 못한 프로토스는 패배를 빠르게 선언한다.
이 경기를 통해 임요환은 자신의 시대를 선언한다. 2001년은 명실상부 임요환의 것이었다. 2001년에 열린 온게임넷 스타리그(한빛소프트배와 코카콜라배, 스카이배) 모두 결승전에 올라 2번 우승과 1번 준우승을 따냈다. 임요환은 스타일리스트의 시대를 알렸다. 빌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는 다들 높아진 뒤였고, 새로운 빌드 착안 보다는 주된 공격 및 운영 패턴이 더 중요시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특정한 전술이나 전략 보다는 게임을 풀어나가는 경향성이 초점이 맞춰진다.
게임이 부여한 속성을 벗어나서 게임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나선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스타일리스트들이 등장하는 시기가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부여된다. 마이크로 컨트롤로 극초반 격차를 벌리는 박용욱과 물량 저그의 운영을 열어젖히는 조용호, 갈래드랍의 명수 박경락의 플레이는 그것이 절대수이자 무적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만의 플레이라서 빛났다는 의미다. 시스템에서 해법을 찾는 시대에서, 개별성의 시대로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각자의 방식과 스타일의 유효성을 웅변하는 시대는 에버2004배까지 이어진다. 이 시대를 열어젖힌 것은 임요환이었고, 그것을 닫은 것 역시 임요환이다.
결정적 순간들... 3연벙/가장 훌륭했던 스타리그 에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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