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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2/12 16:39:02
Name 계층방정
Subject [일반]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1) 시흥의 첫째 딸, 영등포 (수정됨)
시흥의 열두 딸들

서울시 서남권의 가장 큰 시가지 영등포를 필두로 하여, 관악, 구로, 금천, 동작, 그리고 강남에 뻗은 서초까지.

그리고 이 지역과 맞닿은 경기도의 도시들, 과천, 광명.

또 과천, 광명과 맞닿은 시흥, 안양, 더 멀리 안산, 군포까지.

이 열두 구와 시들에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그 옛날 일제시대 “시흥군”으로 묶인 한 고을이란 것이다. 궁금하다면 각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역사를 찾아보시라. 아래 스크린샷은 오늘(2024년 2월 10일) 서초동, 영등포구, 군포시 역사 홈페이지에서 잘라온 것이다.

image.png

그러므로 구로, 관악, 금천, 동작, 서초, 영등포, 과천, 광명, 군포, 시흥, 안산, 안양 열두 자치단체들은 모두 “시흥군의 열두 딸들”인 것이다. 지금의 시흥과 옛날 시흥이 헷갈리긴 하지만 귀찮으니 앞으로는 “시흥의 열두 딸들”이라 부르겠다. 이 시흥의 열두 딸들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시흥은 부천과 의왕의 역사에도 그 흔적을 남겼으니 넓게 보자면 시흥의 열네 딸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번 시리즈는 이 시흥군에서 열두 딸들이 태어나는 역사를 다루는 시리즈다.



서문. 작은 세 고을에서 시흥이 시작되다



시작은 미약했다.

한강 너머 높으신 분들이 사시는 한성, 한양, 또는 이른바 서울.

동남쪽으로는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남한산성이 있는 큰 고을 광주.

서쪽으로는 역시 전통의 큰 고을 부평.

그 사이에 시흥, 과천, 안산이라고 하는 작은 고을들이 있었다. 이들이 작은 고을임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조선 시대에 시흥은 한때 금주, 과천은 과주라 했는데, 조선시대 큰 고을에만 설치하던 도호부가 없는 지역 이름의 '주'는 모두 '천'으로 고치도록 하면서 금주는 금천, 과주는 과천이 되었다. 그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와서 금천구와 과천시가 되었다. '주'는 본디 중국에서 지방을 크게 나누어 9주니 13주니 하던 것인지라, 지금도 미국이나 독일 같은 연방국에서 나라에 준하는 큰 권한을 가지는 큰 지역을 '주'라고 한다. 당시 조선도 마찬가지로 주는 큰 고을에만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주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지역들의 이름을 그에 걸맞게(?) 격하한 셈이다.

한편 시흥, 과천, 안산을 둘러싼 광주와 부평은 그 크기에 걸맞게 도호부였고, 지금까지도 광주는 '주'다.

그렇게 광주와 부평 사이에 낀 작은 세 고을들의 역사가 격변하는 것은 근대의 시작에 들어와서였다.

조선의 행정구역의 분포를 보면 군현 간의 불균형이 꽤나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면적이 비슷한 경주시와 포항시를 예로 들어보자. 포항시는 조선 시대의 연일, 장기, 청하, 흥해 4군에 경주의 외곽 일부까지 묶어서 만든 영일군의 후신이고, 경주시는 오히려 조선 시대의 경주군보다도 조금 작아졌다. 네 군이 하나로 묶인 포항시와 한 군이었던 경주시가 서로 비슷비슷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조선 시대에는 사람이 많이 사는 큰 고을을 더욱 크게 밀어주는 경향이 있던 것도 있다. 지금이야 경주가 작은 도시지만 그건 신라 유적들 때문에 개발을 못 해서 그런 거고, 신라의 서울(서울의 유래 자체가 경주의 옛 이름인 서라벌이라는 설이 유력하다)이니만큼 경주는 전통적으로 경상도를 대표하는 큰 고을이었다. 경상도란 이름의 '경'도 경주의 '경'이다.

서울의 동남부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알 수도 있지만, 지금의 성남, 하남, 괌주 세 도시가 원래는 광주군이라는 하나의 군이었다. 그런데 조선 시대의 광주군은 더욱 커서 지금의 의왕에 수원을 지나 화성 북부의 바다까지 그 관할 구역이 미쳤다. 그래서 지금과는 달리 시흥, 안산, 과천의 동쪽과 남쪽이 통으로 광주와 맞닿아 있었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근대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정신없는 행정구역에 조금씩 손을 보기 시작했고, 이는 대한제국을 병탄한 일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물이 1914년 전국의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부군면 통폐합이었다. 위에서 예를 든 포항과 경주가 서로 균형을 맞추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부군면 통폐합의 결과 시흥, 안산, 과천 3군은 시흥 하나로 합체되었으나, 삐쭉삐쭉하게 튀어나온 광주군의 서남부 땅거스러미를 편입해 왔던 안산군 땅은 수원군에 넘겨주었다. 이것이 현대 열두 딸들을 낳은 시흥군의 시작이다. 시흥(始興)이란 이름의 뜻 자체를 한자로 풀어보면 '일어나기 시작하다'인데, 이제 시흥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65eda87ada98e.png?imgSeq=16662

1914년 당시의 시흥군. 점선으로 된 것은 현재의 서울특별시다.

2.

1914년, 시흥, 과천, 안산이 통합되기 전, 시흥의 북부에 치우쳐 있던 영등포는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의 개통과 함께 가장 먼저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1899년 개통 당시에는 시흥을 그저 지나가기만 할 뿐이었지만, 1900년 서울-인천 전구간 개통과 함께 영등포역이 신설되면서 드디어 시흥에도 근대 문명의 총아, 철도역이 들어서게 되었다. 1905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의 시발역이 영등포역이 되면서 영등포역은 근대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65c6ebc083431.png?imgSeq=13557경부선 개통식, 가토 마사노스케, 《한국경영》 (1905)에서

비록 1908년에는 경부선에도 시흥군청 근처에 시흥역(지금의 금천구청역)이 들어서게 되지만, 본디 지금의 금천구 시흥동에 있던 시흥군청은 영등포의 발전에 발맞추어 1910년 영등포로 옮겨지게 된다. 이렇게 시흥의 중심이 시흥동에서 영등포로 옮겨진 이후에야 시흥·과천·안산이 합쳐졌기에, 이 시흥군의 중심지 역시 영등포였다. 이렇게 커진 영등포는 1917년 시흥군 북면에서 독립돼 영등포면이 되었다.

65c6f8eb12a48.gif?imgSeq=13561경성방직주식회사. 서울역사아카이브(H-TRNS-98060-889)에서.

시흥에서 가장 발전하고 있던 영등포지만, 한때 영등포 하면 생각나는 산업의 중심지가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최초로 영등포에 들어선 큰 공장은 1911년 당산리의 조선피혁이었고, 이조차도 사주가 아닌 조선 총독의 강한 의지가 들어간 결과였다. 1919년에는 철도 차량을 제작하는 용산공작소 영등포공작창이 세워졌고, 1923년에는 영등포역 근처에 경성방직주식공사가 들어섰다. 이와 같이 큰 공장 셋이 들어섰으나 아직 공업단지라고 하기에는 미약했다.

65c6f899eea63.JPG?imgSeq=13560소화기린맥주 영등포공장의 전경. 서울역사아카이브(H-TRNS-103104-800)에서.

영등포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공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31년에 영등포면이 읍으로 승격한 것이고, 둘째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서도 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눈을 돌리면서 영등포가 새 공업단지로 지목된 것이었다. 영등포는 경부선과 경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고, 한강이 가까워 물이 풍부하고, 땅값이 싸 일본의 독점자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선두를 다투는 두 맥주회사, 대일본맥주(1949년 삿포로맥주와 아사히맥주로 분할)와 기린맥주가 앞다투어 1934년에 영등포역 뒤편에 공장들을 세웠다.

이렇게 영등포의 발전과 함께 근대 대도시로 탈바꿈해가는 시흥 앞에, 새로운 시대의 변화가 다가온다.

1920년대부터 경성부, 그러니까 일제 치하의 서울이 발전해 나가면서, 일제는 경성부를 더욱 키울 구상을 착착 해나가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을 발표했는데, 이는 경성 외곽을 신시가지로 개발하는 것을 전제로 한 계획으로, 경성부 주변 지역에 대한 편입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고양, 그리고 시흥은 군의 중심 지역을 경성에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 시흥의 중심지는 바로 영등포였다.

영등포는 당시 조선 제일의 공업지대로, 굳이 서울에 편입되지 않아도 자족적인 대도시로 성장할 여력이 있었다. 더구나 시흥에서 경성으로 영등포가 옮겨가면 정치적 발언권이 축소될 것이란 우려도 영등포의 일본인 유지들이 경성 편입에 반대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조선인 유지들은 경성 편입에 영등포의 정치적 입지 보장 등을 내세운 조건부 찬성이었던 반면, 일본인 유지들은 아예 경성부에 대항해 영등포를 부로 승격시키자는 더 강경한 반대였던 것이다.

이런 영등포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이미 발전하고 있는 영등포의 공업단지를 경성부로 편입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영등포의 경성 편입을 단행했다. 이리하여 영등포는 원치 않게, 시흥의 큰딸로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시흥군청은 영등포에 남아 있었고, 1947년 독립 이후에야 안양으로 이사가게 된다. 


664fbfb496355.png?imgSeq=24384

1936년, 시흥에서 분리되어 경성으로 편입된 영등포.


※ 이 글은 밀리로드의 “시흥의 열두 딸들” 연재글을 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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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방정
24/02/12 16:42
수정 아이콘
참고 자료
https://www.mk.co.kr/news/premium/10880679 “서울에 합쳐지기 싫다”…편입 거부한 지역들, 무슨 이유길래 [사-연]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4543 경인 공업지대의 시작점 - 서울 영등포 일대 근대산업유산
https://ko.wikipedia.org/wiki/%EC%8B%9C%ED%9D%A5%EA%B5%B0 위키백과 시흥군
https://ko.wikipedia.org/wiki/%EC%98%81%EB%93%B1%ED%8F%AC%EA%B5%AC 위키백과 영등포군
https://museum.seoul.go.kr/archive/NR_index.do 서울역사 아카이브
https://namu.wiki/w/%EC%8B%9C%ED%9D%A5%EA%B5%B0 나무위키 시흥군
https://namu.wiki/w/%EC%98%81%EB%93%B1%ED%8F%AC%EA%B5%AC/%EC%97%AD%EC%82%AC 나무위키 영등포군/역사
DownTeamisDown
24/02/1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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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군과 광주의 땅거스러미 로 시작한 지역중에 결국 시흥의딸이 아니게 된곳은 수원 서쪽에 붙어있는 입북동,당수동 정도만 결과적으로 수원시로 들어갔습니다.
계층방정
24/02/12 17:35
수정 아이콘
수원시 서부 중에 그 동네만 광주군이죠? 반면에 그 근처에 있는 율전동(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인근)은 언제나 수원 땅이었고요. 그것 때문에 좀 많이 헷갈렸던 기억이 나네요.
DownTeamisDown
24/02/12 17:51
수정 아이콘
그남쪽에 있는 금곡동 호매실동도 수원군-화성군-수원시 라는 전형적인 언제나 수원땅이었고요
라울리스타
24/02/1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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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시흥 시민입니다. 시흥 참 재미있는 동네죠. 흐흐

이름의 본래 기원이 되는 근본은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게 떼어주고, 차례차례 발전된 지역들을 독립 시킨 뒤에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뎠던 곳들만 남아버렸죠. 대야동, 신천동에서는 차 타고 10분 거리에 서울, 인천, 부천이라는 경인권 대도시들과 맞닿아 있음에도 복잡한 이 동네들과는 다르게 이질적이고 독립적인 한산한 동네 느낌이 강하게 납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먼저 발전한 곳들을 독립 시키고 남은 마을들을 긁어 모아서 '시흥'이라는 이름만 보존하게 된 지라 뚜렷한 중심지가 없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남쪽 배곧-정왕동쪽과 북쪽 대야-신천동 쪽은 그야말로 연관성이 1도 없는 동네...이처럼 고만고만한 마을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점도 시흥시의 발전이 더딘 큰 이유이지요.

경인선이 지나가는 인천-부천, 4호선이 지나가는 과천, 안양, 안산, 경부선, 분당선, 신분당선이 지나가는 성남, 수원에 비해 대중교통에서도 철저히 외면받아 그 어떤 메가권역에(경인권, 동남권)도 속하지 못한 채 외딴 섬처럼 방치되어 있던 곳인데요...그나마 최근 서해선이 개통되면서 차츰 단절되었던 남북간의 교류 및 타 도시들과의 연계가 조금씩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신분당선, 월판선 등이 공사 중에 있는데 이들이 개통되면 과연 옛 가족들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씻고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을지...흥미롭네요.
계층방정
24/02/12 18:31
수정 아이콘
원래 서해선보다 신안산선이 먼저 개통되어서 시흥과 서울 사이를 연결해주는 게 당초 계획이었을 텐데 신안산선이 질질 늘어지면서 꼬였죠.
나중에 글 쓰면서도 차차 설명할 텐데 관악산과 수리산으로 분리되어 있는 시흥, 과천, 안산을 하나로 묶었을 때부터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무위키에서는 기존 시흥군의 중심지인 시흥군 동면의 편입으로 시흥군의 정체성이 무너져버렸다고 서술하는데, 제 의견은 그것도 그렇지만 안양시 독립도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안양시가 독립하면서 시흥군은 동서남북으로 쪼개지고 각 방면마다 제각기 개발되었죠. 차라리 개발이라도 안 되었으면 남양주시처럼 나중에 안양을 중심으로 하는 도농복합시라도 되었을 텐데 찔끔찔끔 개발되는 지역마다 시로 독립하고 마지막 남은 지역이 지금의 시흥시죠. 시 전체를 아우르는 개발계획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용인시마냥 소도시가 갑자기 대도시로 되어서 행정 경험 부족으로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4/02/1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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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보고 위성지도 켰는데 시흥시 구획을 누가 아렇게 짠건지 싶을정도네요;;
24/02/13 09:17
수정 아이콘
누가 짠게 아닙니다 진짜 남은 땅(...) 모아놓은거라서요...
안군시대
24/02/1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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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방직, 방림방적, 크라운맥주가 당시 영등포역 근처의 유명한 적산기업이죠. 지금 신도림역에는 대성연탄, 한국타이어, 노루표페인트 공장이 있었고요. 제가 어렸을때 그 근방에서 놀던 기억이 나네요.
경성방직이 얼마나 큰 기업이었냐면, 그때 가지고 있던 땅으로 개발한게 지금의 타임스퀘어고, 이병철회장이 삼성을 세울때 창업자금을 대준게 경성방직 회장이었고, 지금도 영등포역 일대에 어마어마한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층방정
24/02/12 22:17
수정 아이콘
크라운맥주가 이 글에서 나온 대일본맥주를 바탕으로 세워진 회사였군요. 경성방직은 지금의 경방이고요. 글 쓸 때에는 이 기업이 지금까지 남긴 흔적들을 미처 찾아볼 생각을 못 했는데 감사합니다. 경방은 이제는 방직공장을 전부 베트남으로 옮겼군요.
번아웃증후군
24/02/1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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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곳이었네요.
계층방정
24/02/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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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부군면통폐합 당시 군들이 정리되었기 때문에 경기도에서도 시흥군만하거나 더 큰 군들도 많았습니다. 시흥군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경부선이 통과하는지라 다른 군들에 비해 먼저 개발되면서 무려 열두 조각으로 잘게 쪼개졌기 때문일 것 같아요. 광주군이 시흥군보다 더 컸지만 고작(?) 여섯 조각이 났죠. 서울시 강동구, 송파구, 강남구와 경기도 하남시, 성남시, 광주시 이렇게요. 일부분은 시흥군 동부와 합쳐져 서초구가 됐지만 서초구청이 구 시흥군에 있어서 조각 수에서는 뺐습니다.
24/02/12 22:05
수정 아이콘
시흥 하니까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시흥 출신이죠.
근데 아이러니한 것은 본인이 유년기를 보낸 시흥이 지금은 서울 금천구 일대인데 본인은 서울 사람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시흥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편이죠. 손 전 지사가 유년기를 보낼 때면 경기도이던 시절이니까요.
LowTemplar
24/02/1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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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시흥의 한 조각과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서 관심있는 이야기네요.
서울 시흥동과 시흥시가 왜 둘 다 있을까?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궁금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계층방정
24/02/1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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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흥역(현 금천구청역)과 시흥시가 따로 있는 건 진작에 알았는데 여기에 대해 딱히 의문이 없었습니다(엥?)
고향이 광명이고 광명의 역사를 찾아보다 보니 우연히 광명이 시흥군의 격변의 역사 속에서 태어난 도시라는 걸 알게 됐고 위의 질문에도 답을 얻게 되었네요.
DownTeamisDown
24/02/1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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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시흥의 딸들중에 가장 이상한 도시가 된곳이 결과적으로는 시흥하고 의왕이죠. 다른데는 나름 대로 뭔가 되는데 말이죠.
제가 다시 선을 그을수 있다면 시흥은 지금 있는 상황에서 정왕 군자 배곶 같은지역은 안산시에 넣고 나머지는 시흥시 독자분리할것같고 의왕은 모락산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눠서 남쪽은 군포하고 하나로 만들고 북쪽은 안양하고 합쳐서 도시를 만들었어야 했을것 같아요.
계층방정
24/02/13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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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은 원래 시흥의 딸이 아니고 광주에서 넘어온 군식구(아니 거기도 광주라고?)라서 그런지 처지가 기구하네요.
Cointreau
24/02/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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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시흥군의 근본은 하나하나 떨어져나가다 마지막으로 광명시가 떨어져나갈때 다 사라지고 굴러온 돌들이 시흥시가 되었으니...
차라리 광명시가 시흥시 이름 가지고 떨어져나가고 나머지는 다른 이름으로 남았어야 할 듯 합니다.
계층방정
24/02/13 06:50
수정 아이콘
그래도 시흥 없는 시흥이 되긴 했겠지만 시흥동과 지금의 광명시는 꽤나 가까우니 시흥동 대신 시흥시에 도착하는 사고가 발생해도 피해는 덜하겠네요. 아니 그래서 더 헷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No.99 AaronJudge
24/02/1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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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기하네요

강서 양천은 (전)김포시려나요
계층방정
24/02/13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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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양천이 한때 김포군이니 맞는 말씀이네요.
거기는 그래도 구 양천군 일대만 서울에 넘겨주고 김포군의 중심지가 그대로 김포시가 된 반면 시흥은 중심지를 자꾸 상실해서 시흥 없는 시흥이 만들어졌죠.
계층방정
24/02/13 06:44
수정 아이콘
(수정됨) 글이 정치 탭으로 갔네요. 손학규 언급된 댓글 때문에 그런가요? 또는 현대사가 주제다 보니 정치 얘기로 가기 쉬운 글이라서 그런가요? (정치 탭으로 간 거 보고 아뿔싸 해서 정치언급한 제 답댓글은 지웠습니다.)
24/02/13 08:28
수정 아이콘
저도 정치탭에 있어서 클릭안하려고 했습니다. 정치얘기가 전혀 없는데 정치탭으로 이동한 것은 의아하네요. 역사지리문화도 정치인가 봅니다.
계층방정
24/02/13 08:38
수정 아이콘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가 답댓글 달다가 일반탭 글이었던 거 깜빡하고 정치인 언급한 대댓글을 달았었습니다... 그게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지금은 삭제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
24/02/13 07:40
수정 아이콘
인구모인 읍을 마구잡이로 승격시키다보니 지금와서보면 비효율적이 되어버렸네요. 직할시랑 더불어 손봐야할거 같은데 현상황에 불만은 있어도 딱히 건드리려는 사람도 없어보임. 민주주의가 정착한 이상 엄청난 사건이나 정치인의 비전 아니면 바뀔 일이 없어보이네요…
계층방정
24/02/13 12:38
수정 아이콘
그래서 남양주-구리, 성남-하남-광주, 의정부-양주 등 분할된 지자체 간에 통합 운동이 있지만 다들 지지부진하죠.
일반상대성이론
24/02/13 12:59
수정 아이콘
안양통합도 그렇고
서울과 경기인천 관계처럼 인구가 딸리거나 면적 넓은 곳이 혐오시설 짬처리당할 확률이 높아서 그런지 안하려하죠
파란아게하
24/02/13 09:36
수정 아이콘
오 재밌게 읽었습니다
계층방정
24/02/13 12:3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DownTeamisDown
24/02/13 09:39
수정 아이콘
지도상 괴랄한것은 시흥군 이상인게 구 부천군이었죠. 지금 부천시야 많이 줄어서 적절해보이지만 과거 부평도호부 인천도호부가 바뀌는 과정을 보면 스팩타클 그자체죠.
그중 끝판왕이 지금 옹진군 도서지역중 서북5도를 제외한 지역이 한때 부천군이었다는 사실이었죠. 그래서 그섬에서 지금의 부천시내까지 관공서를 봐야했던시절도 있다고합니다.
시흥하고 연관이 있는게 지금 시흥시중 소래지역은 70년대까지 부천이었습니다.
계층방정
24/02/13 12:44
수정 아이콘
나무위키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더군요. 옛날 부천군민의 다짐에는 계양산, 소래산, 여섯 섬이 부천 지형의 대표로 나오는데, 이들 중 지금 부천 땅은 하나도 없습니다. 계양산은 인천 계양으로, 여섯 섬은 인천 옹진과 안산으로, 소래산은 시흥으로 갔습니다.
캐러거
24/02/13 09:47
수정 아이콘
잔존한 현 시흥시는 북쪽의 신천은행은계랑 남쪽의 정왕배곧이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고 생활권 이질적이라 손좀 봤어야했는데 뭔가 체급이 커져서 그 시기를 놓친 느낌입니다
장현능곡에 시청옮기고 개발하고 많이 진행했지만 여전히 어중간한 느낌이 나죠
계층방정
24/02/13 12:50
수정 아이콘
시흥시가 조금 설치가 늦었다면 아마 안산과 많이 연담화된 정왕의 시화공업단지는 안산으로 넘어가고 소래읍만 따로 시흥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당시에는 안산시에 편입되지 않은 구 안산군 지역이 덜 개발되어서 가능했던 일 같거든요.
하아아아암
24/02/13 09:49
수정 아이콘
이런글 재밌네요
계층방정
24/02/13 12:56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24/02/13 11:38
수정 아이콘
정치탭 간게 아쉽긴 한데 이런 글 재밌어요. 지명을 알아보면 점점 꼬여서 재밌는 경우가 많긴 하죠.
계층방정
24/02/13 12:5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꼬여서 재미있기도 하고 머리 아프기도 하죠. 서초가 시흥이었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요?
일반상대성이론
24/02/13 13:00
수정 아이콘
잠실은 고양이었고요 크크
계층방정
24/02/13 13:01
수정 아이콘
그건 원래 석촌호수가 한강이었던 탓인데 그것도 재미있네요 크크
갑자기왜이래
24/02/13 11:49
수정 아이콘
시흥없는 시흥시에 거주 중이고 직장은 화성없는 화성시에 있습니다 시화호 시화공단에 시화가 시흥과화성은 앞글자를 딴거란것도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시흥 살면서 느끼는건 구성이 특이하긴 합니다 북쪽과 남쪽이 전혀 다른 도시에요 앞으로 개발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고 여러가지가 진행중인곳이긴 한데 그만큼 그동안 개발이 안된 남은 땅들이었단 거겠죠.....
DownTeamisDown
24/02/13 12: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원래 시흥 북쪽 소래는 74년까지 부천이었으니까요 시흥군 해체할때 시흥시를 안만들고 차라리 해체해서 나누는게 지금보면 문제가 덜했을것같더군요.
그리고 화성군은 애초에 없던이름 만들어서 지어진거라서 근본없는 이름이긴 합니다. 예전에 다른지역도 있었는데(월성군이라던지 여천군이라던지 도농분리 하면서 겹치니까 짜내서 만든 거죠 아직남아있는 다른 근본없는 이름을 들면 신안군을 들 수 있습니다. 새로만든 무안 이라고 해서 신안군이거든요) 거의 다 정리했는데 아직 남아있는게 몇몇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화성시거든요. 화성이라는 고을 이름을 쓴적이 없었죠.
계층방정
24/02/13 12:59
수정 아이콘
어쩌면 수원+남양인 구 수원군에서 그만큼 남양보다도 수원이 중요했단 거 아닐까요? 수원시가 떨어져나오고 나머지 영역의 이름을 남양이 아닌 굳이 수원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붙여준 거니까요.
DownTeamisDown
24/02/13 13:01
수정 아이콘
지금도 수원시가 떨어져나갔을때도 지금 화성시 인구에서 구 남양군 지역 인구가 구 수원군 지역 인구를 넘은적이 없죠.
특히 세월이 지나갈수록 수원시로 떼어나가는 지역이 늘어났지만 인구차는 늘면 늘었지 줄어든적이 없다는게...
하아아아암
24/02/13 15:18
수정 아이콘
화성유수부가 있지않나요. 수원도호부 > 화성유수부
DownTeamisDown
24/02/1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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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조시기에 화성을 짓고 화성으로 개칭한적이 있었네요...
그러다가 다시 구한말에 수원으로 돌려놓았네요.
하아아아암
24/02/13 15:34
수정 아이콘
그래서 근본이 없다고는 말하기 어려운거 같긴합니다. 화성시도 정조 관련해서 융건릉 등을 내세우고 있기도 하고요. 정작 수원화성은 수원에 있지만
파프리카
24/02/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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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누르고 싶었는데 탭이 정치로 되어있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계층방정
24/02/13 20:47
수정 아이콘
제가 정치 댓글을 달아서 그랬다고 하네요. 댓글 삭제해서 다시 일반탭으로 왔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라울리스타
24/02/13 22:13
수정 아이콘
한 가지 더는...

덕분에 시흥IC와 시흥대로도 금천구와 시흥시 두 군데에 있다는...
근데 두 개의 시흥IC와 시흥대로도 나름 각각의 인지도들이 있어서 한 쪽이 이름을 바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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