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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3/09 20:49:02
Name 번개맞은씨앗
Subject [일반] 어려운 텍스트
※ 편의상 높임말은 생략하겠습니다.

:: 어려운 텍스트 ::

1
어려운 텍스트가 잘 이해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특히 예전에는 읽고 이해하기 힘들었다면 그러하다. 자신의 발전을 확인하고 있기에 즐거움이 커진다. 그때는 책의 10%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즐거움의 또다른 원인은 그 책을 읽고 소화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란 생각이 들 때이다. 그 이유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면, 희소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의의 모든 재료가 희소할 필요는 없다. 일부 재료는 희소해야 한다.

다수의 사람들과 동일한 것들만 보았는데, 자신만 뭐 대단히 특별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선 곤란하다. 넓은 분야의 독서를 할 수 있으면 유리한데, 어려운 학술서의 경우 사람들은 대개 좁은 분야에서만 독서하기 때문이다. 경계를 넘어서 독서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정리하면 어려운 텍스트가 잘 이해될 때, 과거의 발전을 확인하게 되어 즐겁고, 미래의 창의를 기대하게 되어 즐겁다.

2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실력을 넘어서는 책을 읽을 때에는, 박물관 견학한다고 생각하는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박물관에서는 모든 사물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일부만 이해해도 좋다. 다음에 또 오면, 다른 것도 이해될 것이다. 또한 박물관에서는 사물을 놓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즉 책이 잘 이해가 안 되어도, 그 책을 읽는동안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았다면, 훌륭한 독서라 할 수 있다.

생각을 넓혀두면, 이제 시간이 흘러, 이런저런 경험도 하고, 다른 자료도 보면서, 생각이 더욱 풍성해진다. 그때 다시 읽으면 책이 보다 쉬워졌을 것이고, 보다 많은 걸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들을 늘려둘 때에는, 그 생각이 틀렸을까봐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틀린 생각조차도 넓혀두면, 그것이 나중에 이해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개방적 태도만 갖고 있으면 된다. 틀릴까봐 두려우면 생각을 안 하게 되고, 그러면 실력도 안 좋아지고,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다.

때로는 책의 급소가 되는 일부분, 또는 책의 근본이 되는 일부분만 놓고,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해본 것으로 훌륭한 독서가 된다. 시간이 흘러 그 생각이 뿌리처럼 자라나고, 더욱 더 번성해나갈 때, 이제 책을 다시 읽으면, 뿌리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일부분이란, 5% 때로는 고작 1페이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게 돌파할 때, 그것은 마치 송곳으로 북을 찢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과거로 거슬러 내려가, 저자의 생각과정을 상상해보자. 그 저자의 생각도 고작 1페이지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저자의 생각 여정과 유사하게, 독자가 생각 여정을 갖는 건 자연스럽고 유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AI가 있기에 어려운 텍스트에 도전하기 수월해졌습니다. 이때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 그걸 중요하게 여기는게 좋다고 봅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농사짓듯 읽는 것보다는, 수렵 또는 채집하듯 읽는게 좋다고 봅니다. 학교안에서는 시험을 잘보기 위해 농사가 미덕이더라도, 학교밖에서는 사냥 또는 전쟁이 미덕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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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25/03/09 22:45
수정 아이콘
박물관 견학같은 느낌으로 본다는건 색다르면서 좋은 접근방법으로 생각되네요 흐흐흐
닉언급금지
25/03/10 12:01
수정 아이콘
하지만 번역이 이기적인 유전자 90년대 판이었다면? 아니면 괴델,에셔, 바흐 초판 번역이었다라든가....

이기적인 유전자 한국어로 처음 읽고, 뭔가 되게 어렵고 상세하지만 복잡한 글이니까 역시 이런 걸 고등학교 추천도서로 집어넣은 새x는 x잡고 죽어버려...라고 생각했었는데 대딩되어서 영어교양 때 선정도서로 있길래 읽었더니... 아니 이 간단명쾌한 글을... 순간 내가 영어 잘하는 줄 알 정도로 술술 읽히는 글인데...
모링가
25/03/10 13:50
수정 아이콘
멘사 퀴즈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세를 고쳐잡고 각을 세워 분석하려 들죠.
넷플릭스 세계 1위라면 안보이던 감독의 철학이 보인다고 하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가에 놓인 돌멩이에게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권위가 있어야 복종하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배우려고 하죠.
어렵게 쓰인 텍스트들을 보면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것들처럼 반응하지 않고 욕을 하기 바쁩니다. 얻어갈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결국은 매사에 임하는 내 태도라고 봅니다.
번개맞은씨앗
25/03/10 15:15
수정 아이콘
저는 권위에 의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인생에 있어서 '신비로움'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라 봅니다. 어느날 갑자기, 뭔가 중요한게, 내 눈앞에 나타날리가 없다고 생각이 되는 거죠. 

중요하다면 권위의 옷을 입고 있거나, 혹은 값비싼 가격이 있거나, 혹은 대중의 평판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죠. 

그게 바로 중세적 마인드인 거라 봅니다. 르네상스 정신은 이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연을 보고서도 신비로움을 기대하고, 인간 세상을 보면서도 신비로움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관찰하고 몰입했을 것입니다. 
가우너
25/03/10 18:0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고맙습니다.
라파엘
25/03/10 21:08
수정 아이콘
비슷한 취지로 수학을 잘하면 이공계 타전공 서적 보는것도 정말 수월 합니다
심지어 영문의 독해가 빠르지 않아도 수식을 먼저 이해하고 글을 읽으면 보다 빠르게 이해 되더군요

화학 쪽 베이스의 전공 서적은 어려움이 있지만 (유기 화학 쪽은 베이스가 없으면 거의 고대 언어 해석 느낌이라..)
물리, 기계공학, 토목공학, 건축공학 등 수학 물리 비중이 높은 전공서적은 수학을 잘하면 이해하기 상당히 수월합니다

유체역학과 전자공학의 다양한 수식들이 너무도 유사한 형태를 띄는 것을 보며 큰 즐거움을 느꼈던 젊은날이 떠오르네요
텔레토비
25/03/11 20:26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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