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곰입니다. 벌써 세 번째 글이네요.
오늘은 소위 명작으로 꼽히는 SF장편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많은 명작 가운데서도 가능한 한 성향이 다른 작품들을 위주로 하여 초심자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으로 추렸습니다.
[신들의 사회] / 로저 젤라즈니
[라마와의 랑데부] / 아서 클라크
[앨저넌에게 꽃을] / 대니얼 키스
[강철도시] / 아이작 아시모프
-------------------------------------------------------------------
첫 번째 글 링크입니다.
여러분에게 SF를 추천합니다 (1.단편집)
https://pgr21.com./?b=8&n=26185
두 번째 글 링크입니다.
여러분에게 SF를 추천합니다 (2.작가별 단편집)
https://pgr21.com./?b=8&n=26272
-------------------------------------------------------------------
[신들의 사회Lord of Light] / 로저 젤라즈니
종교와 신화와 과학이 뒤섞여 요동치는 가운데, 불굴의 의지로 신들에 맞서는 프로메테우스
뉴웨이브New wave라는 SF의 하위장르, 혹은 작법이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SF가 지나치게 과학적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데만 집착하거나, 아니면 그저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액션 우주 활극 수준으로 격하된 것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 SF의 새로운 물줄기였습니다. 뉴웨이브 SF작가들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SF는 과학에 모태를 두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진정한 문학이어야 한다!’ 이는 SF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움직임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뉴웨이브 이후의 작가들은 SF의 문학성에 추구하고 문체와 전개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인간 내면(내우주內宇宙)에 대한 탐구와 사회 비판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문학 장르와의 접점이 생겨나며 SF가 비로소 문학의 한 장르로 편입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로저 젤라즈니는 이러한 뉴웨이브 운동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작가입니다. SF와 판타지 양쪽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는 온갖 신화와 문학, 과학을 버무려서 멋진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신들의 사회]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간결한 문장과 시니컬한 위트, 현학적인 지식의 인용과 신화적 세계의 구축 등 젤라즈니 SF세계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 젤라즈니의 주인공들은 대개 ‘성격은 더럽지만 왠지 멋있는 마초’들입니다. 이 명작의 주인공인 샘 또한 마찬가지지요. 샘이라는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은데, 언뜻 보면 매우 평범한 서양 남자의 이름이지만 사실은 mahasamatman(위대한 영혼)에서 maha(큰, 위대한)와 atman(영혼, 인간의 본질)을 생략하고 남은 글자니까요. 게다가 그는 싯다르타, 정각자, 빛의 왕, 마이트레야(미륵) 등 실로 어마어마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직업은 신. 말 그대로 신입니다. 이를 보면 소위 ‘이고깽’의 주인공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수준이지요. 그런 주제에 싸움 잘하고 머리 좋고 시니컬하면서도 유머감각 넘치며 불굴의 의지를 가진, 하여튼 멋있는 마초입니다.
이러한 주인공이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 동료 신들과 반대편에 서서 맞서 싸우는 것이 이야기의 대략적인 요지입니다. 그 와중에 온갖 힌두, 불교의 신학적 지식들이 난발하고 칼과 최첨단 과학과 정신력과 윤회 등이 난무합니다. 그러면서 차츰 드러나는 신들의 정체는 이 작품의 장르가 어째서 신화 판타지가 아닌 SF인지를 말해 주지요. 게다가 신권주의와 촉진주의의 대립을 빗대어 나타내는, 작품 전체에 걸쳐 흐르는 사회비판적인 면모가 작품 전체에 무게를 더해 줍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젤라즈니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줌으로써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면서도 후회하지 않았던 반역자 신을 재창조해냈습니다.
이 작품은 SF에 ‘열광’하기에 가장 적당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마와의 랑데부Rendezvous with Rama] / 아서 클라크
외계 문명과의 조우. 철저한 과학적 논거 아래 쓰인 거대한 경이
SF는 말 그대로 과학소설Science Fiction로, ‘과학’과 ‘소설’의 합성어입니다. 앞서 말한 뉴웨이브 운동은 SF의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중요시했지요. 그렇다면 둘 중 어느 한쪽을 강조하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말해서, ‘소설’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학’을 최대한 강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서 클라크의 걸작
[라마와의 랑데부]가 바로 그 해답입니다. 길이 50km의 거대한 원기둥이 우주 저편에서 나타납니다. 인류보다 훨씬 발전한 문명이 만들어낸 것임에 틀림없는 이 물체는 내부에 인공중력과 함께 산과 바다까지 있는 거대한 우주선입니다. 그러나 정작 ‘외계인’의 존재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요. 인류는 이 거대한 우주선을 힌두 신의 이름을 따 ‘라마’라고 명명하고 조사대를 파견하여 탐색에 나섭니다. 그리고 흡사 어둠 속을 손으로 더듬는 듯한 탐색 와중에 하나 둘씩 발견되는 과학적 경이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학적으로 철저하게 계산되어 등장하는 작품 속 수치들은 그 과학적 견고함을 더욱 탄탄하게 해 줍니다. 예컨대 XX의 속도로 원기둥이 회전할 때 YY의 인공중력이 생긴다거나, ZZ의 속도로 우주선이 움직일 때 관성에 의해 물이 AA만큼 뒤로 밀리므로 BB높이의 장벽을 설치했다 등입니다. 무시무시하지요.
아서 클라크는 그가 즐겨 다루던 주제인 ‘인류보다 훨씬 더 발전한 존재와 그 경이’을 주춧돌로 놓고 엄밀한 과학적 사실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림으로서 외계 존재와의 첫 만남First Contact이라는 SF의 전통적 주제를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표현해 냈습니다. 여담으로 저는 이 작품의 엔딩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 광막한 우주에서 인간이란 정말 하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해 주거든요.
SF의 최고 고전이라 할 만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앨저넌에게 꽃을Flowers for Algernon] / 대니얼 키스
지식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앨저넌의 무덤에 꽃을 놓아 주세요.
빵가게에서 일하는 정신지체 장애인 찰리의 꿈은 머리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는 머리가 나쁘기에(정신지체 장애가 있기에) 주변사람들에게 놀림당하기도 하고 고생하기도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사람의 머리를 좋게 만드는 획기적인 시술이 개발되었고 찰리는 그 시술의 임상실험 대상자로 뽑힙니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면서부터 찰리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지요. ‘나는 머리가 조아지고 십다고 생각함니다.’라고 말하던 찰리는 수술 후 머리가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앞서 소개드린
[라마와의 랑데부]가 ‘소설’을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과학’을 최대한 강조하였다면,
[앨저넌에게 꽃을]은 ‘과학’을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소설’에 최대한 집중한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그 정도로 이 작품이 가진 문학적 성취는 대단합니다. 문장의 세련됨이나 플롯의 전개라면 어슐러 K. 르귄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깨달음을 준다는 점에서는 저는 단연 이 작품을 선택하겠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천재가 된 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과정은 서글플 정도이며, 그 이후의 전개는 가슴이 아릿해 옵니다.
SF가 주인공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며 레이저를 쏘고 광선검을 휘두르는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러한 편견을 깨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 바로
[앨저넌에게 꽃을]입니다.
[강철도시The Caves of Steel] / 아이작 아시모프
SF와 추리가 함께하는 초유의 경쾌한 모험담, 그리고 인류는 우주로.
SF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주선. 로봇. 외계인.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인간이 창조해낸 인조인간 ‘로봇Robot’은 실로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관심사였습니다. 옛 전설이나 민담에 언급되어 왔던 골렘Golem은 로봇의 프로토타입이라 하겠으며,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본격적으로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존재였습니다. 이후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수많은 종류의 로봇들이 등장하였지요. 그러나 그 지향점은 다들 같습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존재. 그리고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러한 로봇의 모습을
[로봇]연작의 주인공 중 하나인 R. 다닐 올리버를 통해 정립했습니다.
[강철도시]는 로봇 연작 중 최초의 작품입니다. 미래 사회의 인류는 우주의 여러 행성에서 나뉘어 살게 됩니다. 그중 지구인들은 강철로 된 돔 안의 거대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많은 로봇들을 활용하지요. 그러나 이런 로봇들은 언뜻 보기에도 인간과 확실히 구분되며, 성능 또한 뒤떨어져서 어려운 일을 시키기는 곤란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지구를 방문한 타 행성의 요인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형사 일라이저가 정치 외교적으로 지극히 민감한 이 사건을 맡게 됩니다. 게다가 상대 행성에서 온 파트너와 함께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이 파트너는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운 완벽한 로봇입니다.
로봇 3대 법칙(1. 로봇은 인간을 해치거나 인간이 해를 입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2. 로봇은 1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로봇은 1원칙과 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을 창조한 것으로도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는 SF와 추리가 혼합된 이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로봇을 이야기합니다. 형사 2명이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해 간다는 점에서 언뜻 헐리웃 영화가 떠오르지만, 전반적으로 경쾌한 진행 가운데도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충돌이나 인류를 얽어매고 있는 내면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등 무거운 테마를 솜씨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시모프의 이야기 솜씨는 훌륭하며, 전반적으로 추리소설의 틀 아래 이야기가 재미있게 진행되기 때문에 SF를 접해보지 못한 초심자에게 추천하기에는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철도시]의 후속편으로는
[벌거벗은 태양]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명의 로봇]과
[로봇과 제국]이라는 두 편의 작품이 더 있기는 합니다만 이 둘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입니다. 아시모프도 그렇고 아서 클라크도 그렇고, 걸작의 후속작으로 망작을 써내는 괴악한 성향이 있습니다. (
[파운데이션] 연작,
[로봇] 연작,
[라마] 연작,
[스페이스 오디세이] 연작 등)
후우. 장편의 소개는 어렵네요. 쓰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습니다.
다음에 소개드릴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별의 계승자] / 제임스 P. 호건
[쿼런틴] / 그렉 이건
[스타십 트루퍼스] / 로버트 하인라인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케이트 윌헬름
ps) 항상 이 연재물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특히 피지알에서 그동안 잠복 중이던 SF 팬 여러분이 한둘씩 나오시는 걸 보니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