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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1/05 12:05:10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여요전쟁 - 0. 피할 수 없는 한 판


송과 거란, 고려

1. 고려와 거란
"우리 동방은 옛날부터 당 나라의 풍속을 본받아 문물과 예악이 모두 그 제도를 준수하여 왔으나, 나라가 다르면 사람의 성품도 다르니 반드시 구차히 같게 하려 하지 말라. 거란은 짐승이나 다름없는 나라이므로 풍속이 같지 않고 언어 역시 다르니 부디 의관 제도를 본받지 말라. …
"또 강하고 악한 나라(거란)가 이웃하고 있으니 편안한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병졸에게는 보호하고 구휼하며 부역을 참작하여 면제해 주어야 하며, 해마다 가을에는 용맹하고 날랜 인재를 사열하여 그 중에서 뛰어난 자는 알맞게 계급을 올려 주어야 한다."

왕건의 훈요 10조 중 4조와 9조입니다. 제대로 된 분쟁이야 없었지만, 왕건에게 있어 거란은 최고의 가상적국이었죠. 발해 문제부터 굳이 발해가 아니더라도 고구려를 이은 나라가 고구려 영토를 "강점"하고 있는 나라에게 좋게 대할 순 없었죠. 거기다 고려는 중원과 교역해야 되는데 대립하는 요와 손 잡는 것도 꺼림찍하구요. 원교근공의 원리로도 거란은 좋게 대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 왕건은 후진(오대 십국 중 하나)에게 거란을 협공하자는 제안도 합니다.

"발해는 본디 우리의 친척 나라인데, 그 왕이 거란에게 잡혀갔다. 내가 중국 조정을 위하여 거란을 쳐서 그 지역을 취하고, 또 묵은 원한을 갚고자 하니, 대사는 돌아가서 천자에게 말해 기일을 정하여 양쪽에서 습격하게 해 달라"

이 때가 942년, 후진에서는 거부하죠. 2년 후, 이번에는 후진이 고려에 협공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 때 왕건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죠. 아침의 혼란에 빠져 있던 고려, 혜종은 그걸 거부합니다. 결국 후진은 송과 거란에 의해 멸망하고, 거란은 그 대가로 연운 16주를 받게 되죠.

이런 가운데서 두 국가는 세력 확장을 시작합니다. 단지 서로 경계하던 나라였던 둘은 국경을 맞대게 되죠.

2. 북진과 남진


"거란의 동경부터 우리나라의 안북부(안주)에 이르는 수백 리의 땅은 모두 생여진에게 점거되었었는데 광종이 이를 빼앗아 가주ㆍ송성 등의 성을 쌓았으니,"

고려의 북진은 대규모 정벌보단 이렇게 하나하나 성을 쌓고 여진족을 쫓아내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고구려와 발해가 망한 후 여진은 자기들끼리 넓은 지역에서 할거했고, 전쟁도 게릴라전 수준이었기에 이렇게 거점을 하나하나 박아가면서 고려인들을 이주시키고 통치권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진행됐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거란의 동경"부터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일단 생각은 고구려의 요동까지 갈 생각이었던 거죠.

태조 왕건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까지도 그 작업은 계속됐고, 6대 성종에 이르면서 이런 것도 등장합니다. 성종 9년, 991년의 기록이죠.

"압록강 밖의 여진을 백두산 밖으로 내쫓아 그곳에 살게 하였다"

이게 제대로 된 건지까지는 몰라도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단 저 말대로만 해석한다면 압록강 안의 영토는 다 수복했고, 이제 이북으로 올라가기 위해 여진족들을 내쫓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조선의 체제를 완성한 게 세종대왕이라면, 고려의 체제를 완성한 사람이 성종이었죠. (뭐 고려의 세종대왕은 따로 있습니다만) 최승로의 시무 28조가 그의 대에 올라왔고, 3성 6부제와 12목 설치를 통한 지방 체제 완비까지... 초기의 혼란을 벗어난 고려는 참 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대체 중국 역사라고 하면 영토를 왜 저렇게 크게 해 놓는 건지 -_- 얼씨구 한반도 북부도 드셨어요?

한편, 거란은 발해 부흥 운동과 여진족의 저항을 꺾어 가며 남진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이, 당시 두 나라의 왕이 모두 성종이었다는 것이죠. 압록강 중류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발해의 유민이 세운 정안국은 982년에 무너집니다.

985년, 송에서는 사신을 보내 거란을 협공하자고 제안합니다. 성종은 이를 받지 않다가, 일단은 알겠다고 하죠. 뭐 결론은 거부 쪽이었던 모양입니다만 -_-a 다음 해에는 거란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지만, 고려는 거부합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약간의 혼란이 있습니다. 고려는 고려대로 압록강에서 압록강 북쪽까지 간 것 같고, 거란은 거란대로 남하했죠. 이미 거란은 고려를 친다고 하면서 정안국을 멸망시켰고, 그 후에도 고려를 핑계대면서 여진을 여러 차례 공격합니다. 그들이 "고려의 땅을 경유해서" 여진족을 쳐서 여진족이 송에게 "거란과 고려가 손 잡았다"고 하소연 하기도 했죠. 거기에 송의 사신이 왔을 때 말 한, 거란의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다는 점 등... 이를 보면 한 가지 결론이 나옵니다.

당시 압록강 주변은 제대로 주인이 없었다는 것이죠. 거란과 고려는 경쟁적으로 압록강을 향해 돌진했고, 이런 모습들을 보면 고려도 압록강 북에 성 단위의 기지가 있었을 수도 있고, 거란도 남쪽에 그랬을 수 있습니다. 이 둘의 분쟁도 전면전 수준이 아니었을 뿐 잦았던 것 같구요. 하지만 이들은 일단 이 지역에 할거하는 여진족을 몰아내야 했습니다.

이 때의 압록강 확보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오랑캐 수준이었던 여진은 고려, 거란, 송이든 가리지 않고 곡식이나 농기구 등을 구해야 했습니다. 헌데 송과 연결할 곳은 압록강 하구, 의주 뿐이었죠. 이 곳을 차지한다는 것은 곧 여진족들을 관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거란은 물론이요 고려 역시 영토 수복 외에 이런 목표가 있었죠. 이 때의 여진족은 참 불쌍하긴 한데 주는 거 없이 미운 그런 역할을 하게 됩니다. -_-;

성종이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백두산 밖으로 추방한 991년, 거란은 반대편 위구, 진화, 내원에 각기 세 개의 성을 쌓습니다. 이게 의미하는 건 자명했죠. 여진을 토벌하고 쫓아내서 자국 땅으로 확보하는 평화로운 (...) 시기는 지났습니다. 이제 이 압록강을 중심으로 한 고려와 거란의 담판만이 남았죠.

2년 후, 993년 마침내 거란의 침공이 시작됩니다.

3. D-DAY
여느 전쟁이 다 그렇듯, 이 전쟁도 딱히 기습은 아니었습니다. 고려는 북진하면서도 거란을 경계했죠. 당장 그 송을 가지고 놀던 게 거란입니다. -_-; 한창 좋을 때를 보내고 있었죠. 실제 거란도 정안국 정벌 때부터 심심하면 고려 친다고 하고 다녔구요. 문제는... 이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데 있죠.

"여름 5월에 서북계의 여진이 보고하기를, “거란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침노할 것을 모의한다." 하였는데, 조정의 의논은 '여진이 우리를 속인다.' 하여 방어를 하지 않았다."

그에 이은 8월, 여진은 다시 "거란의 군사가 이르렀다"고 알립니다. 그제야 성종은 병력을 정비했고, 10월에 박양유를 상군사로, 서희를 중군사로, 최양을 하군사로 삼아 북계에 주둔시킵니다.

고려와 거란간의 길었던 전쟁, 여요 전쟁의 시작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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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얘기하자니 다음 편의 임팩트가 부족하네요. 여기서 끊습니다. 걍 예고편이라 생각하면 편해요 (...) 어차피 다음 편 주인공 이름이 마지막에 나와 버렸죠?

그나마 계획한 뒤의 두 편보다 이 편은 좀 널널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_-; 엔딩 스포일러 그냥 막 뿌리겠습니다.

" (A.D.1070) 군·현에서 [고려의 사신을] 접대하는 옛 준례가 없어 백성들이 퍽 괴로웠는데, 규정을 만들어 반포하고, 비용은 모두 관에서 지급하도록 조칙하였다. 또 고려 사신이 중국말에 익숙하지 못한 까닭으로 재리를 엿보는 자들(사기 치는 거? -_-;)이 사사로이 왕래할까 염려하여 사신이 이르는 곳 마다 왕래를 금지시켰다."

고려 사신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

"중귀인에게 명하여 도정·서역의 예에 따라 객관을 수리하여 고려 사신들을 더욱 후하게 대우하도록 하니, 사신으로 오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

(고려에 주는 게 너무 많고 달라는 것도 너무 많으니 소.동.파가 황제에게)
"“맥적(고려 도적놈-_-)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이익은 없고 다섯 가지 손해만 있습니다. 지금 요청한 서책과 수매해 가는 금박 등은 모두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고 아뢰니, 조칙을 내려 금박만을 수매하여 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끝내 『책부원구』도 구입하여 귀국했다. "

이랬던 소동파는 정작 고려 사신이 오자 접대를 맡았었죠 (...) 송나라 관광도 시켜 주고... 자기도 금강산에 한 번 오고 싶어 했다는데 결국 못 옴

"정화 연간(A.D.1111~1117)에 고려의 사신을 국신사로 승격시켜 예우가 서하국보다 위에 있었고, 요나라 사신과 함께 추밀원에 예속시켰으며, 인반관·압반관 등도 고쳐 접관반·송과반이라 하였다. 『대성연악』과 변두·보궤·존뢰 따위의 그릇도 하사하고, 심지어는 예모전 안에서 고려사신을 위하여 연회까지 베풀었다."

"고려가 50년 동안이나 국가를 피폐하게 하였으니 정화 이후로는 사신이 해마다 회·절 등지에서는 이를 괴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젭라 오지 말라고 이것들아 ㅠㅠ

"고려의 사신이 거란에 이르면 더욱 거만하고 포학스러워 관반이나 공경의 비위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함부로 머리채를 잡아 흔들거나 채찍으로 쳤다."

... 이 때 고려는 요나라를 "황제국"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고려가 들어와 조공하려고 하자, 예부시랑 유약이,
“사명이 깨뜨려진 뒤로 황폐하고 미약하므로 침입할 마음을 품을까 염려스러우니, 마땅히 많은 병사들을 주둔시켜 고려 사신이 오는 것에 대비하여야 합니다."

아나 황제야 조공하러 간다니까! - 오지 마 젭라 ㅠㅠ

-_-; 모든 출처는 송사 고려 열전입니다. 뭐 역개루 라이트온님 글 베낀 거지만요. 이건 무슨 "조공"을 하러 온다는데 도둑놈에서 아예 침략군 취급을 하니 (...) 송이 이렇게 고려에 쩔쩔 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천천히 얘기하죠.

... 그런데 어떻게 거란도 (...)

이 때 각 국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리긴 귀찮고 글로 쓰면 이렇게 될 겁니다.

거란 -> 고려 : 마이 킀다?
고려 -> 거란 : 와 함 뜨까?

거란 -> 송 : 돈 내놔
송 -> 거란 : 아나 저 오랑캐가... 드리겠습니다 ㅠㅠ

송 -> 고려 : 오지 말라고! 야 이 강아지야! 누가 오지 말라고 했지 가라고 했냐? 도와주세요 ㅠㅠ 가지 마세요 ㅠㅠ
고려 -> 송 : 순순히 조공을 허락한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후 그럼...

다음부터 본편 들어가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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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05 12:20
수정 아이콘
흐흐 조공무역(?)을 하던 시절이군요

저도 이때 송이 고려의 조공을 무서워했다고 들었는데 역시;

조공을 순순히 받는다면 유희열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m]
12/01/05 12:28
수정 아이콘
미국도 패권을 유지하려고 적자 재정을 유지하듯이, 중국도 패권을 유지하려면 저럴 수밖에 없긴 하죠. 하지만 송나라는 뭔가 그 이상의 이야기가 있는 듯 합니다? 조공을 순순히 받는다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Je ne sais quoi
12/01/05 13:57
수정 아이콘
새로운 시리즈군요. 잘 읽겠습니다~
나이트해머
12/01/05 14:07
수정 아이콘
근데 또 요는 저 전쟁 이후에도 내원성 일대를 가지고 고려를 이리저리 압박주고 낚시질하고 했다는 것이 재미난 점이죠.
12/01/05 14:37
수정 아이콘
어렸을 때 포청천을 보다가 고려 왕자-왕자비가 송나라에 와서 온간 행패를 부리는데 송나라 관리들이 쩔쩔 매길래 '중국인들이 왜 고려에 저렇게 쩔쩔 매나' 생각했었는데 정말이었나 보군요. 덜덜덜...
Mithinza
12/01/05 14:58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최근 읽었던 것 연재물중에 가장 웃깁니다.
만수르
12/01/05 16:22
수정 아이콘
서희가 나오나요...
Langrriser
12/01/05 17:13
수정 아이콘
흐흐 가장 기대하던 편(?)이 나오는 군요. 특히 귀주대첩을 기다리고 있는 저에게는...크크크
날씨가 추우니 감기 조심하세요. 전 몇일째 고생중;;; ^^;;
불패외길자족청년
12/01/05 23:55
수정 아이콘
유목민족의 몰락의 원인은 화기의 등장이 맞지만 실재 모습은 약간 다르지요.

말그대로 너무 잘나서 사라졌지요. 정확히는 유목민족이 아니라 제국으로 그 성격 자체가 바뀌었달까요.

졸라짱센 여진족! 어라 중국을 먹었네? 그리고는 청이 되어 버렸지요.
졸라짱센 투르크족! 어라 중동을 다 먹었네? 그리고는 오스만 제국이 되었지요. 이동네는 그나마 갈라져 있어서 나누어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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