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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29 02:11:45
Name jerrys
Subject [일반] 용산의 추억 (1) 컴퓨터 키드의 생애

용산의 추억 (1) 컴퓨터 키드의 생애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용산전자상가에 들락날락해본 경험 있는 컴퓨터 키드라면  한 번 쯤 들어본 말입니다.
솔깃한 말일 수도 있지만 "고객님 맞을래요?"를 아는 사람들에겐 섬찟한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용산은 제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정말 기분 좋은 곳입니다.

심지어 저는 결혼도 용산 전자월드 예식장에서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의 첫 직장이 용산 전자상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소위 "용팔이" 출신입니다.

제가 용산전자상가를 처음 방문한 것은 1992년도입니다.

1992년 봄에 휴학을 하고 몇개의 알바를 전전하다가 모은 돈으로 "모뎀"을 사러 간 것이
저의 첫 용산 방문입니다.  55,000원짜리 2400bps 모뎀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XT 컴퓨터에 모뎀을 연결하고 하늘소의 이야기를 실행시키마자
"치지직-" 하면서 접속되던 그 기억은 정말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당시엔 온라인으로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주고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신기했습니다.
처음 대화방에 들어가는데 손이 덜덜덜 떨리더군요.(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 날 제 집에
데려온 후배도 덜덜 떨더군요-이 친구는 이제 18년차 베테랑 프로그래머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Pc-Serve(천리안)에서 주로 놀았고 93년부턴 하이텔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과학소설 습작을 했기에 하이텔에선 과소동(과학소설동호회)에서 주로 놀았는데
대화방에서 종종 만난 네임드 중 기억에 남는 분은  역시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혀 짐작이

안가는 시크한 듀나님이었습니다.

그렇게 소일하던 중  한 선배의 제의를 받았습니다. 용산에서 알바하지 않겠냐고.
아무런 전문지식도 없고,  AT도 아닌  XT컴퓨터 달랑 한대 소유한 인문대 다니는
대학생에게 언감생심 컴퓨터 장사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OK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컴퓨터를 만지고 갖고 놀고 싶다는 욕망.
더군다나 당시 최고의 컴퓨터인 386을 지근거리에서  보고 싶은 욕심이 제 맘을 널뛰게 했습니다.
컴퓨터를 꽤나 잘한다고 호언장담을 했건만... 면접 날짜가 다가오자 매우 떨렸습니다.


여차저차하여 찾아간 나진 상가의 한 작은 매장.

사장님은 유명 증권회사를 다니다가 퇴사한 30대 초반의 젊은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과장님은 대위로 전역하신지 얼마 안되어 군인냄새가 가시지 않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PC시장의 여명기라서 그랬을까요?

저는 경악을 했습니다. 용산에 매장을 내고 컴퓨터를 두어 달 판매하신 이 두분의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정말로 일천했습니다.

심지어 이 두분은 무식에다 용감하기까지 했습니다.
매뉴얼 정독 같은 것은 사전에만 있는 단어이고 어떤 제품이 오든 그냥 지레짐작으로
조립해버립니다.  CPU를 잘못 꽂아서 태운 적도 있답니다.


PC 잡지(PC-Line) 2년 정독한 저의 내공(?)에 두 분은 까무라쳤습니다.
드디어 두 분이 바라던 전문가(!!)가 입사한 것입니다.

jerrys : 저기 고객한테 판매하는 PC인데 디렉토리가 너무 엉망입니다.
            일단 NCD를 깔고, NC도 넣고.. PC TOOLS 도 깔아둘까요?

사장님 과장님 : 우와 jerrys군. 너 천재구나!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래도 59MHz라는 멋진 LED 불빛이 반짝이는 미니케이스의 386 메인 PC는 너무 멋졌습니다.

퇴근하면 자정이 가까웠고 녹초가 되었습니다. TV 를 켜면 날씨와 생활이 나왔습니다.
좋았습니다. 저에겐 컴퓨터가 있고 짝사랑하는 여신도 있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최초의 여성 기상캐스터인 이익선 캐스터가 그분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포스는...못 본
분은 모를 겁니다. 젊음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지금은 그냥 이쁜 누나인데...)


당시 제 꿈은 제 컴퓨터를 하나 짜는 것이었습니다.

386-DX 33 평균가 150만원. 486DX-33 가격 200~250만원(용산시세)
하지만 당시 첫 월급은 박봉 30만원.
돈이 생길 때마다 저는 부품을 하나씩 사서 모았습니다.
어느 달은 386-DX 33 CPU를 사고 어느 달은 RAM을 사고.

학교 근처, 친구 자취방에 기생을 하며 살았기에 별로 돈 나갈 일도 없었습니다.
가끔 친구,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면서 이들이 제 삶을 알게 되었고 과에도 소문이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공대가 멀리 떨어진 대학의 인문계열 학과 대학생이었고
당시 레포트를 제대로 쓰기 위해 필요한 컴퓨터라는 물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저! 하나 뿐이었습니다.
단과대 유일의 용팔이. 더군다나 저는 당시 학생회 활동을 했던 사람이라서 인맥이 넓은 편이었습니다.

선,후배들이 매장을 들락날락했고 사장님이 저를 보는 표정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드러워졌습니다.
당시 제가 경제관념이 있었다면 다른 생각을 했을 수 있습니다.
PC 한대만 팔아도 50만원 남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사장님은 월마다 10만원씩 월급을 올려 주셨습니다. 저는 만족했지만, 유혹을 못이긴
과장님은 주말에 몰래 나와 사적으로 판매할 PC를 조립하다 해고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다른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 이 글은 언젠가 댓글로 지나치듯 올리겠다고 했던 제 어린시절 용산 유람기입니다. 정말 오래 걸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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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qwe123
14/03/29 02:18
수정 아이콘
흐흐흐.. 제가 초등학교때 용산이라는곳을 처음 알게되었는데요. 한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게임을 미치도록 좋아했던 그 당시 친구가 용산이라는곳을 갔다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거긴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니 온통 패밀리팩이 나열되있으며 게임아니면 먹는거 파는곳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한 2년간은 정말 가고싶은 장소 1순위가 되어서 부모님한테 한번만 가자고 죽어라 쫄랐지만 결국 등짝스메쉬맞고 간간히 뉴스로만 보는 지금까지도 상상속 장소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흐흐

근데 이야기 재미있네요. 담편 조속히 부탁드립니다!!
14/03/29 06:44
수정 아이콘
저는 용산 첫방문이 게임씨디 사러가는거 였는데
아직도 생생하네요 아빠랑 차타고 돌아오는길에 게임 매뉴얼 정독하고... 아 우리집컴퓨터에 안깔리는거아냐? 하며 두려움에 떨고 씨디키 잃어버릴까 씨디키 적힌 표지 책에끼워두고..
후 그리워요 디아블로2 처음 깔았던날이...
Shurakkuma
14/03/29 08:05
수정 아이콘
컴퓨터 사던 날 생각나네요..
무려 세진컴퓨터 세종대왕이었습니다(!)
그 때 돈으로도 한 100만원 했던 것 같습니다.

초2..아니 국2 때군요. 첫날부터 드라이버 잘못 깔아서 부팅안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크크..
게임피아 부록으로 온 대항2가 실행이 안 되어서 여기저기 전화하던 생각도 납니다.
그놈의 메모리... EMM386이니 HIMEM.SYS는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그 때부터 시작된 컴퓨터를 지금도 붙잡고 있으니 어찌보면 진로선택은 잘 한 것 같기도 합니다 흐흐
그리고 저희 동아리 이야기가 나와서 반갑기도 하고요.

잘 읽고 갑니다!
14/03/29 12:51
수정 아이콘
세진 컴퓨터에서 수리하고 온 컴의 램이 4메가에서 2메가로 바뀌었단 얘기는 유명합니다.
멍멍이가 선전하던 악명높은 세진 컴퓨터. 대표이사가 직원들 새벽 6시에 불러모아 구보시켰던
추억 돋는 회사입니다.^^
조리뽕
14/03/29 13:01
수정 아이콘
저의 첫 컴퓨터는 찬호박형님이 선전하시던 삼보컴퓨터엿는데 친구네집 세진컴퓨터를 보고 엄청 부러워했었죠 크크 투명한 디자인과 가격대 성능도 뛰어났던걸로ㅠ기억합니당
14/03/29 13:11
수정 아이콘
컴의 진리는 힝상 새로 산 컴이죠^^
켈로그김
14/03/29 09:13
수정 아이콘
ncd, nc, pctools 추억돋네요.
막상 mdir이 나온 후에도 dos시대의 마지막까지 사용했던 프로그램들..;;
14/03/29 11:56
수정 아이콘
nc부심을 부리며 nc를 고집하려 했으나.. mdir에 결국 굴복했습니다.-_-;
감자해커
14/03/29 10:12
수정 아이콘
어제 용산갔다 왔는데 이젠 유통이랑 고객센터 아니면 전자상가는 다 죽었더라고요~ 선인21동도 사람 거의없고요ㅠ
어렸을 때 도깨비상가 두꺼비 많이 갔었는데, 요샌 이미지가 너무 안좋아서 꺼리는거 같고요.
아이파크몰 전자상가들도 장사 잘 안되는거 같고요.
14/03/29 12:52
수정 아이콘
저도 어제 업무차 용산에 갔다가 필을 받아서 쓰는 글입니다. 감자해커님이랑 지나쳐 갔을 수도.
14/03/29 11:37
수정 아이콘
그래도 물품 구하려면 결국 용산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찾아찾아 오는 손님한테 호갱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아 이미 그게 호갱인가....
14/03/29 12:53
수정 아이콘
터미널에서 물건 사는 분들은 말 그대로 호갱님이라 볼 수 있습니다.
깊숙이 들어갈 수록 더 싸고 직원들의 질(?)도 나아집니다.
14/03/29 13:43
수정 아이콘
그렇죠 나진상가 안쪽이라든지. 선인프라자라든지.
자연스러움이 중요합니다 자연스러움이
워3팬..
14/03/29 20:25
수정 아이콘
정말 저 때 제 첫컴이 당시 200만원이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께 미안합니다
vlncentz
14/03/30 00:24
수정 아이콘
제가 용산에 처음 갔을때 부모님하고 같이 카메라였나, 보러 어렸을때였는데

갑자기 아빠가 플스나 엑박을 알아보시더라고요. 어렸을때니까 필요없다고했고

지금 절망중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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