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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1/17 19:48:01
Name 이치죠 호타루
Subject [일반] 진혜제 사마충을 위한 변론
최근의 일련의 사태를 사마충과 가남풍의 관계에 비유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생각난 김에 가벼운 변론을 하나 해 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She-who-must-not-be-named" 되시는 분과 사마충을 동급에 놓고 보면, 사마충에게 미안해집니다.

올해 초에 제가 썼던 팔왕의 난에 대한 글을 참고하시면 더 좋을 것 같군요.
https://pgr21.com./?b=1&n=2700



1. 팔왕의 난의 원인

물론 혜제는 그 당시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황제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기는 했습니다. 워낙 유명해서 다들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사서에 기록된 - 그러니까 "오피셜"인 -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이 혜제라는 인물이 얼마나 띨띨한 인물인지 알 수 있죠.

일찍이 황제의 정원에서 청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듣자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것들이 우는 것은 관부에서 시켜서 그런 건가, 아니면 자기들이 알아서 우는 것인가?"
당시 천하에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 죽자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는가?"
- 자치통감, 사마광 지음, 권중달 옮김, 제 9권 진(晉)시대 1, 진기5, p. 285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어떤 고난을 당하는지, 왜 엄청나게 많은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 죽어 가면서 오늘내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황제였으니 지도자로서의 자격은 이 하나만으로도 빵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푸른 기와집에 사시는 어느 분과 혜제가 동일선상에서 비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헌데... 적어도 팔왕의 난이라는 것은, 설령 사마충이 보통 수준의 황제였더라도 막지 못할 역사적 필연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애시당초 팔왕의 난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두 가지였습니다. 지방의 왕들에게 너무나 많은 군권이 주어짐으로써 딴 생각, 다시 말해 지방의 왕이 황제 혹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노릴 경우, 내전이 일어나기 극도로 쉬운 조건이었다는 것이죠. 여기에 문벌 귀족들의 권력 독점 현상이 더해지면서 서로 절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 거죠. 다시 말해서 사회적인 모순이 심화되면서 언젠가 한 번은 치러야 할 홍역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마치 고려 시대의 이자겸의 난, 혹은 무신정권 정도의 느낌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모순 및 불안정한 권력의 균형이 일련의 대란으로 촉발되는 데 혜제가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혜제 그 자신이 직접적으로 기여한 것은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권력이 자기 아내인 가씨 일가에 집중되는 것을 방임하다시피 했으니 그 점에서 간접적으로 난이 터지도록 기여한 정도라고 봐야겠죠.

지방의 왕들에게 군권을 내려준 것은 사마염이었습니다. 이는 진나라에 앞선 위나라가 권신의 반란(고평릉 사변)으로 망한 것을 보고, 이는 황족의 힘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결과였으며, 그를 막고자 한 정책이었습니다. 애당초 고평릉 사변(249)은 천하통일(280) 당시 웬만한 중년층이라면 실제로 그 사변의 결과를 몸으로 느꼈을 테니, 말하자면 그런 거죠. "군권이 왕들에게 가서 국가가 불안정해진다는 것은 이론이고, 고평릉 사변은 실제입니다." 사마염이 앞으로 자기 아들 손자 이어서 천년만년 망하지 않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세운 대비책 중 하나였다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 대책이 결과적으로 심하게 막장이어서 문제일 뿐이죠)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방의 왕들에게 군권을 준 책임을 혜제에게 물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부조리는 어떻습니까? 이는 사마염 그 자신부터가 막장이었습니다. 예, 초기에는 뭐 비단옷을 태우니 검소하게 사느니 어쩌니 하면서 나름대로 노력은 했습니다마는 천하통일이 되고 두 발 뻗고 잠을 자니까 사치에 눈독이 들어서 무슨 만 명의 궁녀를 뽑았다느니, 양이 끄는 수레를 몰면서 양이 멈춘 곳에 기거하는 궁녀와 밤을 지샜다느니, 그걸 알고 궁녀들이 다투어 양이 좋아하는 댓잎을 깔기 시작했다느니 - 이게 또 죄다 사실이라는 게 기막힐 따름이죠(자치통감 진기3 무제 태강 2년, 281년, p. 177) - 아 황제부터 이 모양 이 꼴인데 권신들이라고 오죽했겠습니까?

근본적으로 구품관인법이라는, 관리를 선발할 때 고을의 유력자와 선발관의 카르텔이 깨지지 않기만 하면 그야말로 귀족들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천년만년 지낼 수 있는 제도 하에서 계급의 이동이라는 현상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고, 여기에 황제라는 인간이 사치를 부려대니 권력 가졌겠다 황제 눈치 볼 것도 없겠다 귀족들이 다투어 백성들을 쥐어짜낸 것은 당연한 수순이죠. 자, 돈을 가졌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이 노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권력입니다. 적어도 왕 - 귀족 - 관리 - 백성 - 천민으로 이어지는 신분제 사회에서는 그랬습니다. 자기가 쥔 돈이 많으면, 그 돈을 어떻게든 유지하며 후대에 물려주고 싶고, 그 후대에 물려줄 가장 좋은 방법은 확실하게 권력을 틀어쥠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넘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쥠으로써 따라오는 명성이라는 야망(어쩌면 허영)은 덤이죠. 그런데 자기 손에 부귀 영화가 있고 군권이 있네요? 그럼 그 사람이 뭘 계획하겠습니까?

결과적으로 팔왕의 난이 일어난 두 가지 큰 축, 사회적 부조리와 지방 군벌들의 발호라는 원인에서 사마충이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아버지 사마염이 기여했다면 모를까... 아 물론, 사마충이 띨띨하지 않고 똑 소리나서 아내 가남풍의 전횡을 막을 수 있었다면 모르겠으되, 역사에 가정이란 없는 법이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마충의 책임이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팔왕의 난의 기폭제가 된 인물이라는 책임은 있을지언정, 그 팔왕의 난의 주 원인까지 사마충이 제공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마충에게 있어서는 다소 억울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2. 파트너의 정치적 수완

파트너라고 하니 좋은 단어를 무진장 나쁜 곳에 쓰는 것 같아 좀 그렇기는 한데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는 않는군요. 여하간 팔왕의 난에서 가남풍을 언급할 때 사람들이 자주 잊어먹는 한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가남풍의 정치적 수완이죠. 자치통감은 사건을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이기 때문에, 별 사건이 없으면 그 해에 대한 기록은 물 흐르듯이 짧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놓치기 쉬운 포인트죠.

가남풍이 팔왕의 두 번째 왕인 초왕 사마위를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 세 번째 왕인 조왕 사마륜에게 제거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 얼마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데 그게 햇수로 무려 9년입니다(정확히는 8년 10개월). 팔왕 중 가장 먼저 목이 달아난 여남왕 사마량이 죽은 후부터 동해왕 사마월이 정권을 잡기까지의 햇수가 15년 6개월이고, 여남왕이 정권을 잡기 시작한 시점부터 따져도 15년 9개월, 대충 16년인데, 그 16년 중 절반 이상인 9년 동안 세상은 난이 없이 잠잠했다는 겁니다.

가남풍이 악녀라는 단죄를 받기에는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아들격인 황태자 사마휼을 죽였고(가씨 소생이 아니었습니다), 차도살인지계로 여남왕 사마량과 위관을 날려버리면서 정권을 잡았으니까요. 이외에 자기 남편이 폐태자가 될까봐 자기 남편의 지적 능력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완을 부려 황제 사마염을 속이고 사마충이 황위에 오르게 하는 등, 야사를 통한 이야기 없이 사서에 기록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단죄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가남풍이라는 인물이 정치적 수완이 그런대로 뛰어났다는 것까지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마염의 외척인 양씨 집안을 날렸고, 앞서 말했듯이 사마량과 위관 그리고 사마위까지 한꺼번에 제거했으니 이것만으로도 지방의 군벌들이 가남풍을 내란죄로 단죄하며 당장 들고일어나도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가남풍은 그 내란죄로 자기가 목이 달아날 위험을 사마위에게 뒤집어씌워서 넘겼고, 무엇보다 괜찮은 인재를 등용해서 뒷말이 없게 만들어버렸죠. 그 인재가 바로 선대부터 활동하던 대신 장화입니다.

가남풍 - 장화 - 가밀(가남풍의 동생)로 대표되는 체제는 9년간 별 잡음 없이 굴러갔습니다. 그 체제가 종식된 것도 가남풍이 황태자인 사마휼을 폐서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죽여버리는 바람에 지방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던 사람들이 들고일어날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죠(그나마도 그 들고일어난 조왕 사마륜이 사마휼을 죽이도록 가남풍을 꼬드긴 겁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이 달아나기는 했습니다만, 적어도 그 미친 사회상 속에서 언제고 갈등이 터질 만한 상황을 9년간이나 어떻게든 큰 무리 없이 질질 끌고 갔다는 점에서 가남풍의 수완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백보를 양보해서 가남풍이라는 파트너가 정치적 수완이 아예 없었다 한들, 그 파트너를 정해 준 사람은 누굽니까? 사마충이, 가남풍이 좋아서 결혼했습니까?



3. 진혜제 자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사마충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그냥 로봇과도 같은 황제라고 인식하기는 합니다. 예, 그렇죠. 자기 생각 없이, 자기 의견 없이 천하가 망가지는 걸 아무것도 모르고 구경만 하고 있었으니(아니,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쪽에 더 가깝죠) 그런 인식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고, 저도 상당 부분은 그렇게 봅니다. 하지만 가끔씩 보이는 진혜제의 일화에서는 "얘 바보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세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일화. 가남풍이 자신의 소생이 아닌 황태자 사마휼이 황위에 오르면 가씨의 세도가 끝날 것을 우려하여 황태자를 폐서인으로 만들고자 한 가지 꾀를 냅니다. 일단 황태자에게 술을 엄청나게 먹여둡니다. 당연히 황태자는 정신이 있을 리가 없죠. 이 때 황태자가 가남풍이 의도한 글을 베껴쓰도록 하는 것인데, 그 내용인즉... "아버지는 이제 그 자리를 내려놓으시고 황후마마도 그만 내려오십시오. 제가 알아서 다 준비하겠습니다. 안 내려오시면 제가 직접 끝내 드리겠습니다." (자치통감 진기5 혜제 원강 9년, p. 296)

당연히 조정은 발칵 뒤집혔는데, 이 때 볼 만한 것이 사마충의 반응이었습니다. 아주 그냥 길길이 날뛰었죠. 그냥 날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여버리려고 했습니다. 그걸 대신들이 간신히 뜯어말린 것입니다. 그래서 폐서인 선에서 그친 거죠. 자, 여기에서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사마충이 황제의 자리에 대해서 아예 생각이 없다면, 이렇게 길길이 날뛸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황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거라며? 그걸 내놓으라니 너는 나빠!" 정도의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었다고 한다면, 아예 죽여버리려고까지 길길이 날뛰기에는 뭔가 좀 모자라 보인다는 말이죠. 사마충은 분명히 황제의 자리에 대한 중요성, 그러니까 황제라는 자리가 갖는 파급력 정도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둘째로, 사마충이 설령 황제의 자리에 대해서 아예 생각이 없었다 한들, 그 글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또 그렇게 길길이 날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애초에 사마충이 왜 화를 내겠습니까? "아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뺏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 자리가 황제의 자리다"라는 것에서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만족해야 길길이 날뛰는 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까? 앞서 말했듯이 그냥 "좋은 거를 아들이 가져가려고 한다" 정도로 아들의 모가지를 날려버리려고 펄펄 뛰기에는 뭔가 모자라는 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그거죠.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만족해야 합니다. 사마충이 글을 어느 정도 읽을 능력이 되거나, 황제의 자리가 갖는 무거움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거나.

두 번째 일화는 후자가 만족됨을 더욱 심증적으로 확고하게 굳혀 줍니다.

사마충이라는 인물이 한 번 상황으로 물려난 적이 있었습니다. 조왕 사마륜이 정권을 쥐고 가남풍의 목을 쳤을 때, 사마륜이 사마충을 태상황으로 몰아내고 자신이 황위에 오른 것이죠. 물론 이는 기회를 보던 다른 지방 정권에 빌미를 주었고, 조왕이 패배했으며, 사마륜의 목은 달아났습니다. 자, 그런데 이 때 같이 목이 달아난 인물이 있습니다.

의양왕 사마위. 앞선 초왕 사마위(瑋)와는 다른 한자(威)를 쓰는 이 인물이 목이 달아난 이유는, 바로 혜제 때문이었습니다. 권중달 교수님의 각주를 그대로 옮겨 옵니다(자치통감 진기6 혜제 영녕 원년, 301년, p. 343).

사마위는 본래 죽지 않아도 되는데, 새로 복위한 사마충이 '이 사람이 나에게 퇴위하도록 하고 옥새를 탈취하였다.'고 하여 죽게 된 것이다. 아마도 사마충의 일생 가운데 유일하게 자기의 뜻대로 명령을 내린 것일 것이다.

예, 복수심이라는 것이 작용했겠죠. 자기의 것을 빼앗은 인물에 대한 복수. 그런데 그 복수라는 것을 직접 실행하였고, 누가 자신을 겁박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굳이 죽지 않아도 되는 인물"의 목을 쳤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뜻대로. 권중달 교수님의 각주 뒷부분은 사마충에 대한 일종의 냉소 내지는 비아냥이 끼어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황제의 자리가 갖는 무게감을 사마충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굳이 이런 복수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 할 수는 있었을까 싶군요.

마지막 일화는 황위에 관련된 일은 아닙니다만, 사마충이 사람을 볼 때 최소한 자신의 사람임을 판단하는, 그리고 그 사람이 충성심이 있음을 인지하는 눈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일화입니다.

계군일학 - 군계일학이라고도 하죠 - 의 고사로 유명한 혜소. 죽림칠현 혜강의 아들. 아버지는 사마씨에게 목숨을 잃었지만 본인은 사마씨의 정권에 나아감으로써 사마광 선생님께 "그가 충성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라는 다소 좋지 않은 논평을 받은 인물이지만... 그것은 그 당시로서는 천륜(부자지간)을 거스른 격(아버지를 죽인 불구대천지수의 집안에 머리를 숙임)이었기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었고, 사마광 선생님도 그(혜소)가 충성심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그 충성심에 대한 일화가 바로 혜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팔왕의 난이 절정에 달하여 서로 죽고 죽이는 내란이 격화되던 중, 드디어 동해왕 사마월과 성도왕 사마영의 군사가 서로 격돌했고, 이 과정에서 황제를 모시고 있던 동해왕의 군사가 패주하면서 성도왕의 군사가 황제를 지키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황제 자신도 뺨에 상처가 나고 화살을 세 대나 맞을 정도로 격렬한 싸움이었죠. 이 황제의 곁을 끝까지 지킨 것이 혜소였습니다. 물론 눈이 뒤집힌 성도왕의 군사들에게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때 황제의 발언이...

"그 자는 충신이다, 죽이지 마라!"

참고로 군사들의 발언이 또 기가 막힙니다. "태제(사마영)의 명령을 받들고 있으며 오직 폐하만 가만히 두는 겁니다." 하여간 이렇게 혜소가 죽고, 그 피가 황제의 옷에 튈 정도였습니다. 어찌어찌 전투가 수습되어 황제가 궁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황제의 옷에 피가 튄 것을 보고 그 옷을 빨려고 하자 황제, 진혜제 사마충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혜 시중의 피이니 옷을 빨지 말도록 하라."

최소한 혜제는 사람에 대한 판단력은 있었던 인물이라는 이야기죠. 언뜻 보면 앞서 바보라서 억울하다라는 것과 대비되어 보이는데,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혜제는 황제라는 자리가 갖는 중요성을 알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모 국가의 대통령은 자기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죠.



4. 결론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이상 사마충이라는 인물이 황위에 올라서는 절대로 안 되는 상황인 건 맞습니다. 저 역시 사마충이 황제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아니, 외려 그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하죠. 그러나 팔왕의 난의 모든 책임을 사마충 한 사람에게 몰아가는 것은, 어쩌면 부당한 일입니다.

팔왕의 난이 일어난 축에 사마충이 기여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가 촉발제가 되었을지언정. 팔왕의 난, 영가의 난, 그리고 그 이후의 중국사에 유례없는 대혼란기인 5호 16국 시대와 남북조 시대를 거쳐 수나라로 통일(589)되기까지 무려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흘린 엄청난 피에 대한 책임을 사마충에게 묻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 피에 대한 책임은 선대인 사마염과 혜제의 아내 가남풍 그리고 난을 일으킨 팔왕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혜제가 아니라.

시대를 통틀어 언제나 귀족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키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숱하게 토색질이 벌어졌으며, 수많은 백성들이 쥐여 짜내졌고, 다시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천년만년 철저히 지키고자 권력 싸움을 벌였습니다. 봉건제라는 체제가 갖는 악순환이었죠. 이런 상황에서는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백마 탄 왕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선한 정치를 펴거나, 체제 자체가 뒤엎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팔왕의 난은 후자입니다. 그 때까지 누적되고 누적되던 사회적인 모순이 혜제라는 인물을 계기로 폭발한 것일 뿐입니다. 심지어 혜제는 그 단초를 제공한 일도 없습니다. 단지 그는 바보였고, 바보가 시기상으로 매우 좋지 않을 때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뿐입니다. 세상 어떤 사람에게도 태어난 것을 죄로 물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벌어지는 일련의 대형 부정 부패와 비리는... 명백합니다. 그 머리가 누구인지, 누구의 의지로 파트너가 선택되었으며 누구 때문에 수저론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모순이 폭발했는지는 모두가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책임을 모두가 아는 한 사람에게 묻습니다. 그런 사람과, 그저 핏줄 잘못 타고나고 시대를 잘못 타고나고 지적 능력을 잘못 타고났다는 죄로, 설령 지적 능력이 정상적이었다 한들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은 가엾은 한 인물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후자에게 명명백백한 실례이자 부당한 단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혜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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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스
16/11/17 19:59
수정 아이콘
고기죽 부분은 앙투아네트의 왜곡된 명언?하고 비슷해서 놀랐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16/11/17 20:02
수정 아이콘
이게 자치통감에 기록된, "역사적으로 사실이라고 인정받는 것"이라서 더욱 충격과 공포일 따름이죠.
cadenza79
16/11/17 20:00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 가남풍의 10여년 집권은 팔왕난이라는 명제에 매몰되어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죠.
저도 해당 부분을 수십회 읽었던 듯한데, 최근에서야 어? 이 사람 생각보다 오래 해먹었네? 하는 걸 눈치챘으니 말이죠.
귀찮아서 사서를 주로 이야기 형식으로 된 책으로 읽는 것의 폐단이겠죠.
이치죠 호타루
16/11/17 20:06
수정 아이콘
사실 역사서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건이 없는 역사라는 게 말이 되느냐 이거죠. 로마의 경우를 놓고 보아도 오현제 시대를 놓고 보았을 때 트라야누스나 하드리아누스 시대의 치세를 다루면 다뤘지 안토니누스 피우스에 대해 다루는 사서는 적은 걸로 압니다. 안토니누스의 치세가 무려 23년에 달하는데도(트라야누스 약 20년, 하드리아누스 약 21년) 말이죠. 그만큼 안토니누스의 시대에 별 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반증이겠죠. 가남풍의 9년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답이머얌
16/11/17 20:59
수정 아이콘
본문과 다르지만 오현제 얘기가 나와서 질문하나 할께요.

오현제의 첫 황제인 네르바는 집권기가 1년 남짓인데(만 2년이 안되는 걸로 기억합니다.)

솔직히 집권 과정도 자기가 주도한 것도 아니고 그 짧은 집권기에 한거라곤 트라야누스를 후계자로 지명 후 사망한것 밖에 없는 듯한데 이걸 가지고 현제라 부를만 한건지요?

후계자 선정 잘하는게 중요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집권기 업적이 제일 중요한게 아닌가 싶어서요.

대체 네르바가 왜 현제라 불리게 된 걸까요?
류지나
16/11/17 21:08
수정 아이콘
사실 이 얘기는 당대에서도 나왔었죠.

로마인들은 시니컬하게 "네르바는 후계자 잘 지목한 공으로 현제가 되었다"라고 논평했구요. 다만 네르바가 황제될 당시에 이미 고령이었기 때문에 그 점은 감안해야.
이치죠 호타루
16/11/17 22:07
수정 아이콘
내전이 없었기 때문이죠. 도미티아누스는 원로원과의 사이는 극도로 나빴지만 장병들에게는 인기가 좋았고, 때문에 납득할 만한 인물이 후계자가 되지 않으면 군인 황제 시대가 150년 가량 빨리 올 수도 있었습니다.
신용운
16/11/17 23:07
수정 아이콘
제가 대댓글에 사마충과 가남풍이라 쓴것 같은데 이 글을 보니 조금은 머쓱해지네요. 흐흐
이치죠 호타루
16/11/17 23:41
수정 아이콘
아... 의도한 저격이 아니었는데 저격한 꼴이라 왠지 죄송스러워지네요...; 여하간 저는 사마충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전권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이러려고 내가 역사를 공부했나 자괴감이 들었더라지요.
신용운
16/11/18 11:41
수정 아이콘
아니요. 뭐 저격이라고 생각안했으니 괜찮습니다. 뭐, 저 말을 했을때는 대통령께서 정신지체로 의심받는 사람만큼이나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답답해서 내지른거라..
이치죠 호타루
16/11/18 12:48
수정 아이콘
차라리 지체였으면 그걸로 되도 않는 변명일지언정 억지로라도 변명이나 가능하기라도 하죠... 한숨만 나오네요.
아케르나르
16/11/18 06:51
수정 아이콘
사마충의 두번째 일화에서 옥쇄는 옥새로 고쳐야 될 것 같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16/11/18 12:47
수정 아이콘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16/11/18 07:59
수정 아이콘
오 이런 부분이 있었군요 + _+) 잘 읽었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16/11/18 12:49
수정 아이콘
놓고 보면 혜제도 참 불쌍한 인간입니다.
강가딘
16/11/18 08:08
수정 아이콘
저도 사마충에 대해 여러 글을 읽어보고 생각해봤는데 만약 사마충을 오늘날 우리나라 장애등급으로 본다면 지적장애 3-4급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치죠 호타루
16/11/18 12:51
수정 아이콘
저는 장애등급의 기준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만, 최소한 공감 능력의 결여 및 타인의 환경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이상 오늘날의 사회에서 홀로 살아남기에는 매우 힘든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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