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12/16 08:08:35
Name 글곰
Subject [일반] (삼국지) 조위의 인사제도 (9) 위나라의 종말 -끝- (수정됨)
1편(조조의 용인술) https://pgr21.com./?b=8&n=78872
2편(구현령) https://pgr21.com./?b=8&n=78896
3편(친족 중심의 군부 장악) https://pgr21.com./?b=8&n=78954
4편(아버지를 계승한 조비) https://pgr21.com./?b=8&n=79005
5편(구품관인법의 도입) https://pgr21.com./?b=8&n=79287
6편(기울어진 저울) https://pgr21.com./?b=8&n=79298
7편(사마의, 버팀목인가 위협인가) https://pgr21.com./?b=8&n=79312
8편(여덟 살배기 황제) https://pgr21.com./?b=8&n=79329


  어린 조방이 즉위하자 위나라는 두 명의 탁고대신에게 맡겨졌습니다. 조상은 대장군(大將軍) 시중(侍中) 도독중외제군사(都督中外諸軍事) 녹상서사(錄尚書事)였고 사마의는 태위(太衛) 시중(侍中) 도독중외제군(都督中外諸軍) 녹상서사(錄尚書事)였지요. 그냥 ‘이 두 사람이 짱임’이라고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여기에다 조비가 죽기 직전 황후로 삼은 곽씨 일가가 더해졌지요. 선덕장군(宣德將軍) 곽립, 전호장군(鎮護將軍)인 곽덕과 곽건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조상과 사마의에 비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조상과 사마의는 권한을 나누어가지며 대부분의 직함이 겹치는데, 겹치지 않는 부분을 살펴보면 그래도 조상이 사마의보다 반 발짝 정도는 앞에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상이 꾀를 하나 부립니다. 어린 황제 조방에게 상주해서 사마의를 승진시켜 달라고 하죠. 대장군인 자신보다 높은 지위인 태부(太傅)로 말입니다.

  사서는 이걸 조상이 사마의를 위해주는 척 하면서 실속을 차리기 위해서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사마의를 자기보다 더 높이 올리면 실무적인 보고가 자신을 거친 이후 사마의에게 올라가게 되니, 이로써 은근히 정사를 좌지우지하기 위함이라는 거죠. 이 일은 조상의 뜻대로 이루어져서 사마의는 태부가 됩니다. 승상이 없는 위나라 제도 하에서 이보다 더 높은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후 조상은 여러 동생들과, 조예 시절에 중히 쓰이지 못한 여러 사람들을 요직에 올립니다. 자신의 세력을 차곡차곡 쌓아 나간 거죠. 이를 보면 조상이 처음부터 사마의를 이용해 자신이 위나라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던 의도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럼 사마의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열심히 나라를 지켰습니다.
  아니 정말이에요.
  241년. 오나라가 형주 일대를 크게 공격해 오자 사마의는 출격하여 적을 박살냅니다.
  243년. 사마의는 오나라의 제갈각을 다시 한 번 박살냅니다.

  자. 이쯤 되니 사마의의 명성은 이미 천하를 뒤흔들 지경이었습니다. 나이로든 실적으로든 벼슬로든 간에 위나라를 통틀어 사마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조상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사마의에게 미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하후상의 아들이며 조상의 이종사촌뻘인 하후현이 사마의에게 도전합니다. 그는 사마의에게 여러 가지 개혁 방안을 제시하죠. 이중 가장 핵심적인 건 바로 구품관인법을 갈아엎자는 겁니다. 중정의 권한이 너무 강하니까 제한하고, 또 추천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연대책임도 도입하자는 것이었지요. 이 개혁 방안에 대한 사마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거 참 좋은 의견이니 우리가 늙어 죽은 다음에나 검토해 봅시다.”

  조비가 구품관인법을 도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황제가 중정들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그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방 호족들을 관리할 수 있죠. 그런데 조예를 거쳐 조방에 이르면서, 황제가 중정들을 제어하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애초에 여덟 살짜리 꼬마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구품관인법은 황제의 손에서 벗어나 귀족만을 위한 제도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강성한 중앙 귀족이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 데 가장 적합한 제도가 된 지 오래였지요.

  그런 현실 하에서 사마씨의 세력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이미 위나라에서 가장 강대한 귀족 가문이었고, 여러 가문들이 그들과 직간접적으로 결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후현의 제안, 구품관인법을 수정하고 보완하자는 제안은 사마씨로 대표되는 귀족들의 힘을 줄이겠다는 의미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조상 일파의 사마의에 대한 공격이었지요.

  그러나 이 공격은 너무나도 손쉽게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조상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사마의의 세력을 꺾지 못한다면 반대로 자신의 세력을 더 키우면 되는 거였죠. 조상은 하후현을 정서장군(征西將軍), 하후유를 정남장군(征南將軍), 왕릉을 정동장군(征東將軍)으로 임명합니다. 마치 조비가 그랬던 것처럼 밖에서 군사를 이끄는 권한을 죄다 친족과 측근에게 몰아준 것이었죠. 그리고 당당하게 제안합니다. “촉나라를 공격합시다.”

  사마의는 몇 번이나 오나라를 격파하며 전공을 쌓았습니다. 조상이 그와 대등한 위치에 서고자 한다면 결국 그에 맞먹는 전공을 세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죠. 사마의는 그 정벌을 반대했지만 조상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244년. 조상은 하후현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촉을 공격해 들어갑니다. 그리고 촉장 왕평과 비의에게 완벽하게 박살났습니다.

  자. 이제 세상이 다 알게 되었습니다. 조상은 얼간이라는 사실을, 또한 위나라의 진짜 실세는 사마의라는 것을 말입니다. 무능하기 그지없는데데도 단지 친족이라는 이유로 임용된 낙하산 조상. 수십 년 전 조조가 내세운 유재시거(唯才是擧)가 이제는 오히려 조씨 황실의 목을 조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 아닌가요.

  조상은 그런 평가를 뒤집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만 그의 재능과 깜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후 수년간 조상은 삽질에 삽질만을 거듭하게 됩니다.

  5년 후인 239년 정월, 사마의는 이른바 고평릉 사변을 일으킵니다. 그리하여 조상 일파를 죄다 잡아들여 죽이고 삼족을 멸한 후 위나라를 장악하지요. 기대하셨던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그 자세한 저간의 상황을 묘사하는 건 이 글의 취지와는 맞지 않으니 관두겠습니다. 언젠가 따로 서술할 기회가 있겠죠.

  핵심은 고평릉 사변으로 인해 조씨의 친족들이 완벽하게 쓸려나갔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황족 보위 세력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조조와 조비, 조예 삼대에 걸쳐 구축한 황권 수호 체제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사마의는 정권을 장악한 후 주대중정(州大中正)을 설치합니다. 이게 뭐냐면, 원래 구품관인법은 군(郡)마다 중정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정들 위에 주(州)를 관할하는 주대중정을 새로 만든 거죠. 그리고 그 역할은 조정의 대신들에게 부여되었습니다. 즉 사마씨와 사마씨를 따르는 극소수 귀족 가문에게만 허락된 권한이었습니다.

  이 주대중정의 신설로 인해 구품관인법은 당초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오직 귀족만을 위한, 기득권 세력의 강화를 위한 인사 제도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제 귀족 중에서도 일부는 이른바 문벌귀족(門閥貴族)이 되었습니다. 귀족들은 철저하게 계급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황실마저 뛰어넘는 권위를 가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문벌귀족의 필두였던 사마씨 가문이 황위를 찬탈하고 위나라를 멸망시킨 건 어쩌면 그저 당연한 수순일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위나라가 멸망하고 새로이 진나라가 건국된 시점에서도 문벌귀족들의 권세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미 나라의 이름 따위는 딱히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황제들이 오히려 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경이었지요.



  이 모든 걸 단지 조상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가혹한 일입니다. 오히려 조씨 일가가 만들어 온 체계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살펴보는 게 더 합당한 행동일 겁니다.

  조조의 유재시거, 능력 중심의 인재 채용은 군주 한 사람의 안목에 전적으로 의지한 것이었기에 본질적으로 지속될 수 없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꺼내든 방책은 친족을 중심으로 군부를 장악함으로써 황실을 보위하는 것이었습니다. 난세에는 무력(武力)을 가지고 있으면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간단명료한 논리였죠. 그리고 조조는 친족 중에서도 특히 능력 있는 자들을 알아보는 뛰어난 안목까지 있었습니다. 이들이 조씨 일가를 떠받치는 기둥이 됩니다.

  하지만 국가의 체계가 갖추어질수록 단순히 무력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찬탈자 조비는 아버지의 방식이었던 친족 중심의 군부 장악을 유지하면서도, 부족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구품관인법을 도입함으로써 지방 세력을 중앙으로 끌어들이고 회유합니다.  이 두 가지 체제를 통해 조비는 적어도 당대에는 황권을 위협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비가 너무 빨리 죽고 정통성이 부족한 조예가 황위를 계승하자 그런 시스템에 균열이 생깁니다. 조예는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좋든 싫든 간에 귀족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했어요. 조진과 조휴의 때 이른 죽음은 그런 현실 인식을 부채질했습니다. 친족을 통한 군부 장악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조예는 친족이 아닌 사마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적어도 조예의 판단으로는, 신뢰할 수 있는 충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예는 귀족에게 기울어진 저울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황족과 친족들을 중용합니다. 친족이라는 무척이나 제한된 인재풀에서 억지로 사람을 끌어다 썼다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건 어느 정도까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젊은 친족들에게 경험과 실적이 쌓이면 조진과 조휴를 대신할 수 있을 터였죠. 그러면 할아버지 조조와 아버지 조비가 만들어놓은 체제를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조예에게 필요한 건 오직 시간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조예는 아버지보다 더 일찍 죽어버립니다. 그가 남긴 후계자는 출신성분조차 알 수 없는 여덟 살짜리 아이 조방이었습니다. 조비의 충신이자 조예의 충신이었던 사마의는 그 정체 모를 꼬마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의 속내는 어떠했을까요.

  조상. 환범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조진은 훌륭한 인물이었으나 이런 소 새끼 같은 자식들을 낳았구나!’ 하고 탄식하였던 그 조상은 사마의를 어설프게 견제합니다. 너무 어설펐던 나머지 사마의에게 역습의 기회를 주고 결국 자신의 가문 전체가 멸족되었죠. 이로서 조씨 황실은 모든 힘을 잃습니다. 저 이상 되돌릴 저울조차 남아 있지 않았지요. 조상이 죽는 순간 천하는 이미 사마씨의 손에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것이 조씨 위나라의 인사 제도와, 그 붕괴로 인해 황실 자체마저 무너져 내리고 만 전말입니다. 제도를 만든 건 사람이지만 결국 제도를 무너뜨린 것 또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조비와 조예가 충분히 오래 살았더라면 위나라가 그토록 맥없이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황제가 오래 살아야만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애초에 그 시스템 자체가 글러먹었던 게 아닐까요.



  위나라 체제가 붕괴한 후 남은 것은 오호십육국으로 대표되는 수백 년간의 끔찍한 혼란기였습니다. 그 혼란기가 끝나고 마침내 수나라가 건국된 후,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사 제도가 도입됩니다. 바로 과거제였습니다.

  (끝)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8/12/16 08:1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신의와배신
18/12/16 08:18
수정 아이콘
이 시리즈 전체에 대한 한줄 요약 :
그러나 황제가 오래 살아야만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애초에 그 시스템 자체가 글러먹었던 게 아닐까요.
용노사빨리책써라
18/12/16 09:17
수정 아이콘
왕이 단명하면 왕권이 흔들리는건 어느 나라나 그렇죠. 심지어 후계자 낙점도 굉장히 늦게 받았구요.
홍승식
18/12/16 12:43
수정 아이콘
군주제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점이죠.
그러나 공화제로는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었던 난세였기 때문에 군주제가 유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8/12/17 10:16
수정 아이콘
솔직히,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시절에 통치자가 오래 살지 않고 죽어도 괜찮은 시스템을 만들라는 게 무리한 요구임은 잘 압니다. 더군다나 태생불명의 8살짜리를 황제로 앉히고도 망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라는 건 더더욱 무리수겠지요.

위나라의 멸망은 사실 조예가 너무 빨리 죽은 게 가장 결정적이었습니다. 조비는, 물론 조예를 후계자로 삼는 게 너무 늦었다는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반면 조예의 지나치게 이른 죽음은 이후의 모든 걸 망쳐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위나라의 멸망이 무조건 조예의 이른 죽음 때문이라는 운명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조조가 만들어놓고 이후 아들과 손자가 보완해 온 제도였지만 그 자체의 문제점도 있었고, 그게 조예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촉발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요.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브라운
18/12/16 08:32
수정 아이콘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18/12/16 09:03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긴 하루의 끝에서
18/12/16 09:14
수정 아이콘
1. 조조 시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친족 측근으로는 조인, 조홍, 하후돈, 하후연이 있습니다. 조비와 조예 시대에서는 조진, 조휴, 하후상, 조상, 조조, 하후현이 있고요. 그런데 두 집단 모두 똑같은 조씨 또는 하후씨 일가라고는 하지만 직접적인 혈연 관계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진에서 조상, 조휴에서 조조, 하후상에서 하후현으로 권력과 명성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과 달리 조조 시대의 인물들로부터는 이어지는 인물들이 없다는 점은 특이한 것 같습니다. 별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고평릉 사변 이후 조씨의 친족들이 완벽히 쓸려나감으로써 황족 보위 세력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조상의 삼족이 멸해질 때 조인, 조홍, 하후돈, 하후연의 후손들도 다 같이 죽임을 당한 것인가요?

2. 애초에 위나라는 조비가 워낙 친족에 대한 견제를 많이한 터라 왕이라고 해봤자 별 힘이 없었고, 이미 사마의를 필두로 한 귀족들이 정권을 많이 장악한 상태였다고 하죠. 그럼에도 황실이 직접적으로 귀족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는 것을 넘어 나라가 아예 사마씨에게 넘어가 망할 지경에까지 이른 상황에서는 남아 있는 조씨 일가들이 위나라 전역에 걸쳐 있었다면 미약하나마 이를 결코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았을 듯싶은데 어떻게 별다른 내분이나 갈등 없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인가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18/12/16 09:36
수정 아이콘
조창 조식 등의 세력이 조비대에 한번 휩쓸리고.. 조예 대에도 조상이 본인외의 하후/조씨 세력을 쓸어버리고.. 친족이라는게 왕위 계승권이 있으니.. 왕권에는 늘 양날의 검... 결론적으로 보면 유재시거+친족중심의군권..이라는 시스템은 조비 조예의 수명보다도 조조라는 걸출한 인물이 아니면 본질적으로 진행이 불가능한게 아닐까...요
18/12/16 09:52
수정 아이콘
1. 일단 당시의 가문 개념은 현대 대한민국보다 훠어얼씬 더 강력했습니다. 그리고 조조 대의 유명인사들 자식도 다들 높은 벼슬을 했습니다. 당장 하후상만 해도 하후연의 조카, 하후무는 하후돈의 아들로서 중용되었지만 이후 쫓겨난 케이스, 하후연의 아들 하후패도 정촉호군까지 역임했으니 잘나갔습니다. 그 외에도 마찬가지고요.

2. 결코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조위의 충신이 없었을 리 만무하죠. 반란만 해도 왕릉 문흠 관구검 제갈탄... 요란했어요.
Concentrate
18/12/16 10:08
수정 아이콘
관구검이라니.. 고구려 침략했던 그 관구검인가요? 그 스토리도 기회가 된다면 듣고싶네요^^;
그간 글 잘읽었습니다!
18/12/17 10:16
수정 아이콘
그 관구검 맞습니다. 조위의 충신이기도 했지요.
강미나
18/12/16 12:02
수정 아이콘
그래서 반란 스토리도 써주신다는 말씀이신거죠? 흐흐흐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홍승식
18/12/16 12:55
수정 아이콘
지금까지 100부작 반란 프롤로그 인사제도였습니다.
18/12/17 10:17
수정 아이콘
원래 제가 프롤로그만 쓰고 때려치우는 걸 특기로 합니다.
一言 蓋世
18/12/16 09:57
수정 아이콘
잘 배우고 갑니다.

조위의 황족들이 성공적으로 경륜을 쌓았다면, 그 다음엔 찬탈을 했겠죠. 당태종처럼. 어차피 피는 흘렀을 겁니다.
18/12/17 10:22
수정 아이콘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친족'과 '황족'을 구분해서 썼습니다. 황위계승권의 유무를 기준으로 해서요.

조비는 황족에 대해서는 미칠듯이 견제를 했지만 친족에게는 그러지 않았죠. 조예의 대에 이르러서는 조우 등 일부 황족들에게 오히려 힘을 실어주었고요. 조우가 찬탈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데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친족들은 그러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예컨대 조상 같은 녀석들이 찬탈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사마씨 같은 귀족들보다 더 가능성이 낮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친족들의 권위는 본질적으로 황실이 힘을 실어주었기에 생길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18/12/16 10:15
수정 아이콘
숨막히는 필력입니다...

중간에

할아버지 조조와 아버지 조예가 만들어놓은 체제를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조예에게 필요한 건 오직 시간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 조비로 고치면 더더욱 숨막힐거 같습니다 헤헷
18/12/17 10:23
수정 아이콘
고쳤습니다.
이제 숨이 좀 덜 막히실지...
하이아빠
18/12/16 10:25
수정 아이콘
필력 부럽습니다. 술술읽히네요.
18/12/16 10:37
수정 아이콘
제일 중요한 부분을 넘어가시다니 ㅠ
검은별
18/12/16 11:27
수정 아이콘
다음 시리즈는 고평릉 사변이겠지요?
오늘도 추천하고 갑니다!
18/12/17 10:23
수정 아이콘
아니요. :)
펠릭스30세(무직)
18/12/16 11:58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MyBubble
18/12/16 12:06
수정 아이콘
어떤 의미에서 사마씨는 위나라를 무너뜨리기만 했지 권력을 잡다고 말하기 어려운 거 같아요. 서로마제국의 멸망때 처럼 무너뜨린 사람은 있어도 계승한 사람은 없는 상태랄까요. 사마염도 무려 통일군주임에도 귀족한테 약했고 그 이후는 그냥 강한 귀족 1 정도?
비오는거리
18/12/16 12:3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18/12/16 14:22
수정 아이콘
애초에 조위의 붕괴는 조비 때문에 생긴 것이죠. 조비가 주변 황족을 믿지 못하니 결국 외부 세력에 의존하는 체제가 구성된 것이 너무나 큽니다.
18/12/17 10:29
수정 아이콘
저는 조비가 조위 붕괴의 원인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조비는 황위계승권의 유무에 따라 황족과 친족을 철저히 구분했고, 황족을 극도로 경계했지만 친족에게는 매우 너그러웠을뿐더러 오히려 중용했습니다. 물론 조비가 사마의나 진군 등 일부 귀족들에게 문호를 열어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친족만으로 국가를 경영하려는 게 아닌 다음에야 그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조비 제위시 외군은 조진/조휴/하후상이라는 친족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지요. 현실적으로도 이들은 조위 황실을 보위하는 보루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사마의가 본격적으로 황제조차 제어하기 힘든 권세를 가지게 된 건 오히려 조예 대에서부터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위나라 멸망의 책임은, 적어도 60% 이상은 조예에게 있습니다.
18/12/17 10:51
수정 아이콘
저는 처음부터 조비를 후계자로써 지정해주지 않고,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서 기반을 탄탄하게 마련해 주지 않은 조조에게 10%

조창, 조식이야 후계자 다툼이 있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형제들에게 매우 가혹하게 대해서 친족들이 귀족들을 견제할 힘을 뺏아버린
조비 20%.

어디서 데려왔는지 출신도 모르는 조방을 후계자로 낙점하고, 사마의와 함께 조상 따위에게 후사를 맡긴 조예에게 30%

본격적으로 나라 말아먹은 조상에게 40% 있다고 생각하고 싶.....
신의와배신
18/12/19 23:41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어쩌면 어쩌면 말입니다. 위나라 멸망의 책임의 10% (나머지 30% 가까이는 조비에게 돌아갈테니까요) 정도는 조식에게 있었던게 아닐까요?

음주운전을 즐기지만 않았다면 조식이 황제가 되는 다른 역사를 만났을 지도 모릅니다.


결국 인류역사의 분기점은 술이 아닐까요?
너에게닿고은
18/12/16 16:42
수정 아이콘
한국어로 정사 삼국지 읽어볼 방법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번역서가 있다고는 하는데 오역으로 엄청나게 까이는 걸로 봐서 다른방법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18/12/17 10:47
수정 아이콘
기본적으로 파성넷을 보고, https://ctext.org/sanguozhi/zh 에서 원문을 봐서 대조합니다.
그런데 저 원문 사이트에도 가끔 오타가 있어요...
너에게닿고은
18/12/17 16:21
수정 아이콘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록레슬러
18/12/17 10:26
수정 아이콘
그냥 조비가 자기죽기전 사마의집안을 멸족시켰어야..
19/02/06 21:27
수정 아이콘
늦게 보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9371 [일반] 요즘 핫한? qcy t1 블루투스 이어폰 후기 [90] 달달합니다16487 18/12/17 16487 2
79370 [일반] 현대차 GBC, 내년 상반기 착공 2023년 완공 예상 [96] 삭제됨12567 18/12/17 12567 0
79369 [일반] 도로·철도·항만…모든 공공시설물에 민자 허용 추진 [143] 여망15308 18/12/17 15308 10
79368 [일반] 아들에게 살해되는 순간에도 “옷 갈아입고 도망가라” 외친 어머니 [31] 삭제됨12478 18/12/17 12478 4
79367 [일반] (스압, 펌)한국으로 돌아온 이유 : 영어의 한계 [88] adwq2216081 18/12/17 16081 15
79366 [일반] "소년원 들어가 봤자 6개월" 인천 중학생 추락사 가해자들 반성 안해 [132] TAEYEON14854 18/12/17 14854 11
79365 [일반] 1929년 나치의 부상을 예견했던 베를린의 한 그림 [6] aurelius9321 18/12/17 9321 2
79364 [일반] 취약 계층의 보호를 위한 역차별 [41] 홍승식9584 18/12/17 9584 1
79363 [일반] Burn Out [49] 치키타10362 18/12/17 10362 30
79361 [일반] 여론 참여 심사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18] jjohny=쿠마7184 18/12/17 7184 9
79360 [일반] 지난 날을 반성합니다. [18] 삭제됨10036 18/12/16 10036 9
79359 [일반] SKY캐슬 실재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90] 펠릭스30세(무직)17216 18/12/16 17216 14
79358 [일반] [독일 드라마] 1929 바빌론 베를린 [2] aurelius10217 18/12/16 10217 4
79357 [일반] 입시 스릴러 드라마 SKY캐슬 추천글 [74] 삭제됨9973 18/12/16 9973 4
79356 [일반] 저탄고지의 위험성을 파헤친 괜찮은 방송이 있었군요. [113] 미트파게티19490 18/12/16 19490 11
79355 [일반] 2018 올해의 영화 BEST 10 [16] 송파사랑8375 18/12/16 8375 4
79354 [일반] 전자·조선·타이어·태양광 '업종불문'…동시다발 희망퇴직 시작됐다 [164] 삭제됨15203 18/12/16 15203 14
79353 [일반] 2018 올해의 책들 [12] KID A7768 18/12/16 7768 17
79352 [일반] 소득분위별 성취도에 대한 잡상 [112] 절름발이이리12801 18/12/16 12801 6
79351 [일반] [도서추천] 근래 구매한 책들 목록입니다. [8] aurelius6859 18/12/16 6859 7
79350 [일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양성평등 승진인사 홍보 트윗 [95] 모데나10762 18/12/16 10762 12
79349 [일반] 랜섬웨어에 감염되었습니다 [25] 갈길이멀다8870 18/12/16 8870 0
79348 [일반] pgr21에 굉장히 실망한 한 주 였습니다. [113] 로각좁19346 18/12/16 19346 2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