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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0/07 05:42:54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m.blog.naver.com/supremee13/223230326371
Subject [일반] <킬링 디어> - 이상하고 무심한 나라의 스티븐.(스포)
최근에 어딜 다녀오면서 가는 길에 <아키라>, 그리고 이번 오는 길에는 <킬링 디어>를 봤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는 봐야지 해놓고선 처음 보는 영화인 셈인데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스포 없이 이야기 하는 건 좀 어려울 것 같네요.

<킬링 디어>는 그리스의 비극을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 영화 상에도 짧게 언급되는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라는 비극이라고 하는데요, 영화 상의 내용은 어느 정도 연결된듯, 연결되지 않은 듯 합니다.
자, 짧게 언급하면, 이피게네이아 비극은 성스러운 사슴을 죽여버린 아가멤논이 죄를 씻기 위해 딸을 제물로 바치게 되는데, 아르테미스 신의 배려로 딸은 바쳐지기 직전 바꿔치기 되긴 하지만, 딸을 죽게한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 후 아내에게 살해당하고, 아내는 아버지의 복수로 아들에게 살해당합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외과의, 스티븐이 의료 사고(실상은 음주였지만)로 한 사람을 죽여버리고, 그의 아들, ‘마틴’과 엮이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무심함, 그리고 등장 인물을 굉장히 작게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영화의 캐릭터들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이상할 정도로, 혹은 기괴할 정도로 침착하고 무심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결심 전까지, ‘이 인물들은 감정이 없나?’ 싶을 정도로 무심하게 그려놓고 있어요. 동시에, 영화는 캐릭터를 프레임 안에 넣거나, 혹은 위에서 바라봄으로써 굉장히 캐릭터를 ‘인공적‘으로 표현합니다. 어찌보면 이건 비유극이라는 걸 대놓고 드러내는 느낌이기도 해요. 비슷하게 쓰이는 건 <유전> 같은 영화의 미니어쳐겠죠.

영화의 이야기는 마틴의 예언으로 진행됩니다. 팔다리가 마비되고, 거식증상을 보이며, 눈에서 피를 흘리게 되면 곧 죽게되리라. 예언을 거부하지만 그에 결국 순응하고 마는 것도 굉장히 그리스 신화적이기도 하네요. 재밌는 건, 마틴과 스티븐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죄책감-복수심으로 표현되기도 애매한 관계라고 생각해요. 마틴에게 스티븐은 복수의 대상인 동시에 애정과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고, 아버지를 겹쳐보이게 하는 동시에 이미 진행된 이야기를 바라보기만 하는 인물입니다. 잠깐 마틴의 권능으로 걷게 되는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어떠한 물리적 문제도 찾지 못한 시점에서, 이건 알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구요.

이 영화에서 스티븐은 유일하게, 칼자루를 쥔 사람입니다. 수술을 하는 의사의 의미이든, 혹은 누가 죽을지에 대해서 결정하는 사람의 의미이든. 마틴의 비틀린 애정(?)이 통했다면, 어찌되었을 지는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구요. 동시에, 스티븐은 ‘죄책감’이라는 영역에서 굉장히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의료 사고는 마취의의 책임이다.’라고 말하면서 의료사고의 죄책감을 피하기도 하고, 마지막, 결말에서 한 사람의 죽음을 결정하는 방식도 러시안 룰렛이죠. ‘나’의 문제는 없거나, 혹은 확률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마지막 엔딩으로 가봅시다. 아들을 희생시키고, 남은 세 가족은 식당에서 마틴을 마주칩니다. 음식을 시켜놨고, 케첩도 뿌리지만, 바로 나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마주치기 싫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무엇인가 과장되어 있던 ‘괜찮아 보이는 가족’의 해체와 불편한 진실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재밌는 건 ‘먹는다’라는 행위가, 스티븐에게는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거식증이든, 혹은 시켜서 먹는 장면이든, 가족이나 마틴은 먹는 행위가 중심이 되는 장면이 있는데, 스티븐은 배가 부르거나 먹은지 얼마 안되어서, 여튼 안 시키고 안 먹습니다. 이것도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일반적으로 이 영화가 추천할만한지, 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담담하고 기괴하다는 두 상반된 수식어가 동시에 어울릴만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킬링 디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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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7 09:12
수정 아이콘
<더 랍스터>, <킬링디어>, <더 페이버릿> 세 편 봤는데, 킬링디어가 제일 별로였어요.
그 별로라는게 영화를 못 만들었다는게 아니라, 잘 만들어서 너무 소름끼치고 불쾌한거...
더 랍스터는 킬링디어만큼 기괴하지만 꿀잼인 영화고,
더 페이버릿은 실화바탕이라 그런지 전작같은 기괴함은 없지만 진짜 강추할만한 작품이죠.
나머지 영화들도 꼭 보시길.
23/10/07 11:26
수정 아이콘
니콜이 이뻐서가 빠졌군요 크크
aDayInTheLife
23/10/07 18:28
수정 아이콘
더 랍스터는 되게 궁금합니다. 시놉시스보고 꼭 봐야지 해놓고선 아직 못보고 있..
후치네드발
23/10/07 12:47
수정 아이콘
란티모스의 필모 중 <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을 봤는데, 공통된 테마는 역시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그의 세계관은 줄곧 이분할 수 없는 어떤 성질의 것이 나뉘어져 있고, 등장 인물들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과 긴장감, 고뇌가 그의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영화 안을 신적으로 군림한다는 점에서 예로 드신 <유전>과 비슷한 면이 있죠. 물론 조금 악취미 적이긴 합니다.

앞으로의 개봉 예정작 들은 다 엠마 스톤과 함께 하던데, 개인적으로 레이첼 바이스를 엄청 좋아해서 레이첼도 계속 같이 갔으면 좋겠네요.
aDayInTheLife
23/10/07 18:29
수정 아이콘
저 밑에서 올라오는 기괴하면서도 독특한 딜레마가 독특한 거 같아요.
아이폰12PRO
23/10/07 13:57
수정 아이콘
킬링디어의 최고 강점은 베리 케오건이라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헐리웃이든 예술영화든 90년대생 이후 젊은 배우중에서 연기든 마스크든 가장 좋아하고 기대하는 배우입니다 필모도 잘 쌓고 있고요(이터널스는 좀 에바긴했음 크크)

이니셰린의 밴시에서의 바보연기나 그린나이트에서의 기괴한 악역등 개성 강한 캐릭터를 주로 하는데 할때마다 참 소름끼치게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aDayInTheLife
23/10/07 18:30
수정 아이콘
조금 뭐랄까 떠오르던 시절의 데인 드한에서 병약미와 반항기를 묘하게 멍한 표정으로 채우는 배우 같습니다. 크크 무서우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비틀린 캐릭터가 인상적이더라구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도 매우 좋았구요.
더치커피
23/10/07 20:45
수정 아이콘
이터널스에서도 가장 눈에 띄더군요 크크
23/10/09 23:12
수정 아이콘
올타임 레전드 중 하나
aDayInTheLife
23/10/10 00:50
수정 아이콘
정말 좋았습니다. 추천은 별개지만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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