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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1/02 20:31:25
Name 사나이의로망
출처 .
Subject [기타] 일본의 디씨, 2ch에 올라왔었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 모음. (아버지 편)

초등학교 1학년 가을, 어머니는 남자람 바람이 나 집을 나가고, 나는 아버지의 밥으로 컸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서툰 요리가 싫어 견딜 수 없는데다가

아직 어머니가 갑자기 없어진 외로움도 겹쳐 밥 먹을 때마다 짜증내고,

크게 울거나 소리를 치거나 심할 때는 타버린 계란말이를 아버지를 향해서 집어던진 적도 있었다.

다음해 초등학교 2학년 봄에 있었던 소풍의 도시락도 역시나 아버지가 직접 만들었다.

나는 싫어서 한입도 먹지 않고 친구들이 조금씩 나눠준 반찬과 가져갔던

과자만으로 배를 채웠다. 도시락은 길에 버렸다.

집에 돌아와 빈 도시락통을 아버지에게 주자, 아버지는 내가 전부 먹었다는 생각에 울먹이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귀여워해주고는 “다 먹었니. 잘했어! 고마워!” 라고

정말로 기뻐보이는 목소리와 얼굴로 말했다. 나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의 가정방문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내가 소풍때 도시락을 버렸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선생이 돌아간 뒤에는

나에게 소리지르며 화를 내지 않고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지만, 죄책감을 느낀 나는 거북하기도 하고 해서 그날 밤 빨리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쉽게 잠 못 이루고, 역시 아버지에게 사과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아버지가 있는 장소에 돌아가려 했다

. 싱크대 근처에 전등이 켜져 있어서 그릇이라도 씻으시나 생각하며 엿보았더니

아버지가 읽고 또 읽어서일까 너덜너덜해진 요리책과 소풍 때 가지고 온 도시락통을 보며 울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말도 안 되는 짓을 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처음 보는 우는 아버지의 모습에 주눅 들어, 사과하려고 해도 좀처럼 다가갈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이불로 돌아와서 마음속으로 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사과하며 울었다.

다음날 아침, 도시락과 함께 지금까지의 일을 사과했고

, 그런 나의 머리를 아버지는 다시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아버지가 해주신 밥을 더 이상 남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아버지의 숨이 멈추기 직전,

슬픔 때문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져 눈물,콧물 다 빼며 “

여러가지 고마워요. 밥도 고맙고, 계란말이도 고맙고, 시금치하고 그거라던가 너무 맛있었다”라고

간신히 말한 나에게 아버지는 더 이상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상태였지만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도시락이라던가 여러 가지, 생각날 때마다 안타까워져서 울고 싶어진다.



전날 친구(신랑쪽)의 결혼 피로연

일정의 마지막. 신부 아버지의 말

아키코, 아키코가 태어나자마자 네 어머니는 병으로 죽었어.

네 어머니의 얼굴을 사진으로 밖에 알지 못하고, 어머니의 목소리도 모르지.

어머니의 애정도 알지 못하지. 한부모 가정이라 괴로웠겠지.

그래도 아버지인 나에게 불평 한 마디 없이, 밝고 솔직하게 사려 깊은 아이로 잘 자라줬어.

정말로 손이 많지 가지 않는 아이였고, 집안일도 잘 해 줬지.

마지막으로 너에게 사과할 일이 있어.

아키코한테 25년 동안 숨긴 것이 있어.

언젠가 시집 갈 때 보여주려고 생각하고 계속 간직한 물건이야.

... 그리고 낡은 양철같은 상자에서 꺼낸 한 개의 비디오 테이프.

결혼식장의 플레이어에서 재생.. 결혼식장은 웅성웅성...

거기에는 침대 위에서 웃는 얼굴의 아이를 얻은 어머니의 모습.

25년 전 신부와 어머니

어머니의 웃는 얼굴은 얼마나 성스로운가. 마치 성모와 같이...

처음 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신부도 전원이 오열했다.

특히 신부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정도로 울고 있었다.

그리고 비디오를 재생하던 신부의 아버지. 그 사람 만은 울지 않고, 담담히 있었다.

그 부분이 또 눈물 나게 만드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중학생 때, 부끄러울정도로 삐뚤어져있었다.

아버지가 안 계신동안, 집에 돈이 없는지 옷장안을 뒤지고 있었는데 비디오 테이프가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빨간 비디오일까?라는 생각을 봤다.

그러자...

병실 침대 위에 어머니가 있었다.

“〇〇 쨩 스무살 생일 축하해. 아무것도 사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없더라도 〇〇쨩은 강한 아이가 됐을까?

지금쯤 대학생이 되어있을까? 혹시라도 결혼은 했을까?“

10분 정도의 비디오테이프였다.

나는 울었다. 진심으로 울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면도기로 펀치 파마를 전부 밀어버렸다.

모두에게 바보취급을 받을 정도로 공부했다.

내가 재수했지만 MARCH에 입학했을 때

※ MARCH : 일본의 사립 명문대 그룹 (M: 메이지대학, A: 아오야마가쿠인대학, R:릿쿄대학, C:츄오대학, H: 호세이대학)

아버지는 마치 내가 도쿄대에 붙은 것처럼 울면서 친척들에게 전화했었다.

그리고, 스무살의 생일날.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나에게 비디오 테이프를 건네왔다.

다시 잘 보니까

비디오에 찍혔던 아버지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한심하네에” 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또 울어버렸다.

아버지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그 말을 했더니 “몰라.”라고 말했지만,

취업이 결정되었을 때,

아버지가 “이걸로 엄마에게 혼나지 않아도 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나 이 비디오 테이프가 있어서 똑바로 살 수 있어.



아유미 결혼 축하해.

지금의 너는 아직 5살이지.

어제는 "아빠 사랑해"

오늘은 "아빠 너무 싫어"

라고 말했어.

내일은 뭐라고 말할까.  

그런 아유미가 어떤 훌륭한 사람이 됐는지,

어떤 사람과 결혼했는지 볼 수 없는 것은 엄청 아쉽네.

아유미 옆에 있는 남편은 좋은 사람일까?

아빠와 닮거나 그런.

너무 길게 쓰면 별로니까 아직 보지못한 남편에게 소원이 있어.

소원은 단 하나

아유미보다 먼저 죽지마.

이것 밖에 없어.

결혼식에서 하기에는 불량한 말이라고 화낼 수도 있지만

싫어져서 헤어지던, 바람펴서 헤어지던 상관 없어요.

하지만 절대 죽지 마세요.

내 아내와 같은 생각을 아유미가 하지 않게 해주세요.

이것만 모두의 앞에서 맹세해 주세요.

부탁이에요.

아유미가 만약 엄마를 닮았다면 공처가?일지도 모르지만

아유미를 지지해 주세요.

아유미도 남편을 도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인생이라고 부르는 긴 길을 걸어주세요.

5살의 아유미는 잘 웃고 있어요.

이 웃는 얼굴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요.

아버지로부터

P.s 손자가 생기면 한번은 묘 앞까지 데려와 주세요.



좋은 아버지라는 것은 무엇일까?

쉬는 날에는 놀러 데려가주는 아버지일까?

자상한 아버지일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아버지일까?

나는 아버지에게 칭찬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좋아’는 말 한마디 듣는게 최고의 보수였다.

같이 놀았던 기억도 많지는 않다.

아버지는 언제나 크고 말이 없어서 바위같았다.

아버지가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위대함을 알았다.

달려와 준 사람의 수.

울면서 관을 두드리며 “나보다 먼저 죽다니 이게 뭔 소리야!” 소리치는 사람.

“아직 은혜도 못 갚았는데!” 라며 우는 사람.

오츠야 후에 관 위에 잔을 올려 놓고 평소처럼 아버지에게 말을 걸며 술잔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친구

※ 오츠야 : 일본의 장례 풍습으로 장례식 전 죽은 사람의 성불을 비는 의식. 밤에 시행된다.

8주기를 맞은 날, 부르지도 않았는데 모여든 많은 사람들

아버지는 골수암의 극심한 고통속에서 죽기 불과 10분전에 나를 불러 말했다.

“엄마를 지켜라. 동생을 지켜라. 여동생을 지켜라. 할아버지를 지켜라. 할머니를 지켜라.

남자는 누군가를 지키고 죽는다. 나처럼 죽지는 마라.

내가 죽어도 울지 않아도 좋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떤건지. 잘 봐둬라.“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에게 잘 전해줘. 미안하다. 난 여기까지다.”

마지막 말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이 CPR을 했지만, 소생은 하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어머니가 선생님을 말렸다.

“남편을 편하게 해주세요.”

나는 그저 압도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나는 이번 달 아버지가 되었다.



학생 시절, 서류절차 때문에 1년반 만에 본가에 돌아갔을 때의 일.

원래는 하룻밤 잘 예정이었지만, 다음날 놀 약속이 급하게 잡혀서 결국 당일치기가 되어버렸다.

어머니에게 사인, 날인을 받고, 돌아가려고 현관에서 신발끈을 매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회사에서 돌아오셨다.

말도 적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잔소리를 하거나 나나 엄마의 푸념을 늘어놓는 아버지가 거북해서 함께 있으면 숨 막히는 것이

느껴졌던 나는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집에) 돌아가 얼른 끝내는 것도, 당일치기(를 계획한 것도).

한 발 더 나아가선 (집에서) 다닐 수 없는 거리의 학교를 선택한 이유중의 하나였다.

아버지가

“너 자고 가는 거 아니었냐?”라고 물어봐서

“좀 바빠서.” 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손에 들고 있던 도넛 상자를 내게 내밀고는

“이거 샀으니까, 전철 안에서 먹어라. 갈 길이 머니까.”

역에 도착하자 전철이 출발한 지 얼마 안되어 인기척도 없고 3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조금 출출해져서 아버지에게 받은 도넛 상자를 열었다.

3개씩 3종류가 들어있었다. 가족 3명이 모여 차를 마실 생각이었구나.

근데 내가 9개 받아도 다 못먹어. 상자 안을 들여다보면서 쓰게 웃었다.

그 직후, 아아... 아버지는 굉장히 서투른 것 뿐이구나.

갑자기 그렇게 생각하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나 추억이 거품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지는데

이것저것 모두 안타깝거나 씁쓸한 것들 투성이다.

가지고 있던 티슈가 다 떨어져도, 손수건이 세탁해서 말리기 전처럼 젖어도 눈물은 그치지 않고

결국 다음 전철이 올 때까지 역 벤치에서 계속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 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재혼 상대였고, 내가 초등학생 때 갑자기 아버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아서, 슬프게 했을지도 모른다.

'○○씨' (아버지 이름) 라고 아들에게 불린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들에게 "진짜 아빠도 아니면서!"라는 말을 듣는 아버지는 어땠을까?

마구 욕하고 화풀이를 하는 아들에게 무척 속을 태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사고로 두 다리를 부러져서 걸을 수 없게 된 적이 있었다.

그 시기에 기말고사였고, 추가시험은 거의 결정이라고 생각했을 때, 아버지가 업어서 학교까지 데려다 주었다.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다른 학생들이 점점 호기심 어린 눈에 조리돌림 당하는 기분 같아서 나는 너무 부끄러워졌다.

실제로 중1이나 돼서 아버지의 등에 업힌 나를 비웃는 여자도 있었다.

그러던 때, 우연히 아버지의 얼굴을 등 너머에서 보자, 매우 당당하셨다.

“내 아들 업는게 뭐가 나빠?” 곧 그렇게 말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사과도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한 채 아버지는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나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있다.

만약 아버지가 걸을 수 없어서 곤란할 때가 오면 내가 업어 드린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지만...



진학할 대학이 결정되어 자취하기 전날. 아버지가 시계를 사주셨다.

금빛으로 반짝반짝하는 취향이 별로인 거 같아보이는 시계였다.

“돈 때문에 곤란해지면 담보잡아. 돈은 쫌 될거니까.”

그렇게 말하셨다.

2학년의 어느 날. 도박에 빠져 집세를 낼 수 없게 되었다.

어찌할 바 모르고 있을 때.

번뜩 생각이 나서, 아버지의 시계를 담보로 잡았다.

가짜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나 : “아버지! 가짜를 자식에게 주지마!”

아버지 : “봤지? 도움이 안되지? 곤란할 때일수록 배신당한다고. 마지막으로 잡은 밧줄말이다

으하하하하 이게 나의 교육이다. 그런데 얼마나 필요한거냐? 돈 때문에 곤란한거지?”

나 : “... 십이만엔만 빌려주세요.”

아버지 : “내일 입금해줄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으마.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많겠지!

와하하하 여자한테라도 빠진거냐? 이 바보 아들이! 하하하하!”

솔직히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회사지만 경영자다운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아버지도 작년 여름 암으로 돌아가셨다.

왕년의 모습도 사라지고, 빼빼 마른 아버지가 다시 시계를 주셨다.

아직 상자에 들어간지 얼마 안된 시계였다.

필사적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버지 “돈에... 곤란하면... 담보라도... 잡아라...”

오메가의 시마스터였다.

기묘하게도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나 : “아버지의 시계는 의지가 안되니까... 담보 안잡을 거야.”

둘이서 웃고 3일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도 금빛 시계는 도금도 벗겨졌지만 아직 시침은 돌아가고 있다.



나는 엄마가 없다. 나를 낳자마자 죽은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았던 나는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간단한 수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나는 꽤 고생했다.

일반학교를 가지못하고 특수학교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편모이기도 해서 근처의 아이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했다.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라고 하지만 모른다).

하지만, 그 깔보는 듯한 바보같은 얼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는 내가 왜 이렇게 당하는지 몰랐지만,

이윽고 장애인이라는 것이 그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우울해져서 사춘기의 대부분을 집 안에서 보냈다.

자신에게 아무 잘못도 없이 불행한 일을 당한 것이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심지어 죽은 엄마마저 미워했다.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났을까. 왜 평범한 인생을 나에게 주지 않았을까?

수화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폭력으로 바꾸어 외쳤다.

가끔 터져나오는 내 마음을 앞에 두고 아버지는 저항하지 않고 그저 눈물만 흘리며

"미안해" 라고 수화로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아무것도 의욕이 생기지 않고, 거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활 속에서의 유일한 이해자가 나의 주치의였다.

내가 태어난 후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계속 봐주던 선생님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미 한 사람의 부모였다.

몇번이나 고민 상담에 응해 주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도, 상냥한 눈으로

아무 말 없이 들어줬다.

어쩔 수 없다고도, 그럴 때도 있다고도,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도 하지 않고, 비난하는 일도,

위로도 하지 않고 들어주는 선생님이 너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찌할 수 없이 상처받는 일이 있어서, 울어도 눈물을 멈추지 못해서, 분해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내용은 쓸 수 없지만 나는 다시 선생님을 찾아 상담을 했다.

긴 푸념 같은 상담도중 아마 '죽고 싶다'라는 걸 수화로 나타냈을 때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갑자기 화를 내며 내 뺨을 힘껏 때렸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선생님을 돌아보자 더욱 놀랐다.

선생님은 울고 계셨다.

그리고 나를 때렸던 그 떨리는 손으로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우리 아버지가 갓난아기인 나를 안고 선생님을 찾아왔다는 것.

검사 결과는 최악이며, 내 귀가 평생 들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아버지에게 전한 것.

우리 아버지가 사나운 얼굴로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따지며 온 것.

그리고 다음 말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너는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어? 네가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수화를 쓸 수 있었다는 거.”

확실히 그랬다. 나는 특별히 수화를 배운 기억이 없다.

그럼 왜...

“너희 아버지는 나한테 이렇게 말했어.”

“목소리처럼 제가 수화를 사용하면 이 아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놀랐다. 확실히 그러면 그 사람은 목소리처럼 수화를 쓸 수 있게 될 거야.

어렸을 때부터의 청각장애는 그것만으로 지능발달에 장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에게 수화를 사용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근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모님이 수화를 익숙하게 할 수 있는 레벨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보통 사람이 수화를 보통의 회화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데 몇 년이 걸린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수화 공부에 전념한다고 해도, 도저히 시간에 맞출 수 없다.

불가능해. 나는 그렇게 전했다.

“그 무모한 도전의 결과는 네가 가장 잘 알거야. 네 아버지는 말이야,

무엇보다도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거야. 그러니까 죽고 싶다는 말은 하면 안돼.”

들으면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버지는 그때 하던 일을 버리고 나를 위해 수화를 공부한 것이다.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그다지 수입도 없는 아버지를 바보 취급한 적도 있다.

내가 잘못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나의 고통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나의 슬픔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다.

눈물로 젖은 볼을 닦지도 않고 나는 계속 울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한 자기 자신을 증오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저 사람은 나의 부모다.

귀가 안 들리는 거에 지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지지 않은 것처럼

행복하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지금 나는 수화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봄에는 결혼도 정해졌다.나의 장애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줄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다.

아버지께 소개하자 어머니께 말씀드려야지 하고 아버지는 웃었다.

하지만 영정을 향해 향을 피우는 아버지의 어깨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영정을 본 채 말문을 열었다.

“나의 장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사고에 의한 것이었던 것 같다.”

나를 데리고 걷던 부모님께 졸음운전 하던 자동차가 돌진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다행히 경상을 입었지만 어머니와 나는 심한 상태였다.

나는 어떻게든 목숨을 건졌지만, 어머니는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 같다.

어머니는 죽기 직전 아버지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 몫까지 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줘.”

아버지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약속했다. 하지만 얼마 후 나에게 이상이 발견되었다.

"매우 초조했다, 네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까봐 약속을 못 지킬까 봐. 근데 이제 겨우

약속 지킨걸까? 여보..."

마지막에는 수화가 아니라 고개를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뭐라고 하는지 전해져 왔다.

나는 울면서 아버지에게 수화가 아니라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내가 귀가 안 들려서 제대로 말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깨를 크게 흔들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천국의 엄마, 그리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 지금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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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오스
23/01/02 21:36
수정 아이콘
어머니편은 몇번 봤었고 아버지편은 처음봤는데 이것도 눈물샘 치트키네요 ㅠㅠ
Asterios
23/01/03 00:38
수정 아이콘
처음 도시락 얘기부터 슬프네요..
모토모토
23/01/04 02:06
수정 아이콘
눈물날거 같은거 꾹 참고 보다가 5살의 딸을 보며 미리 보낸 결혼축하메세지에 못 참고 터졌네요.
아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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