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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7 16:12
하지만 고려는 첩이 아닌 정식 부인을 여럿 두었는데요..?
(고려태조왕건이나..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나..) 이걸 1부1처로 바꾼게 조선의 개혁인데..?
23/05/17 16:49
공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였는데 왕은 예외였고 일부 귀족들이나 권력자 집안은 그런 원칙 쌩까고 처를 둘 이상 두기도 했습니다. 이성계도 함흥에서 장가 든 다음 중앙정계에 진출하면서 가문의 세력 확장을 위해 당시 개경의 명문가였던 신덕왕후와 중혼한거구요.
태종이 일부일처를 못 박은건 본인이 그 배다른 동생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거라 후대에 이런 일이 없도록 첫째와 둘째 부인과의 서열을 나누기 위해서.....
23/05/17 18:21
고려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데릴사위제가 공고한 사회였습니다. 신랑은 자식이 태어나서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처가살이를 했으니까요. 사대부 집안도 예외가 아니었고요.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처제가 성립되기 어려운 면도 있었을 겁니다.
23/05/17 18:40
조선시대도 여성의 지위는 낮은편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고려때는 고위직들의 처와 첩은 대부분 정략혼이라서 뭐.. 대부분 다 인척관계로 엮여있음 그때문에 고위층의 부패가 심각하기도 했음 그래서 고려말~조선초에 가장 강력하게 추진한 정책중 하나가 일부다처 금지였음(축첩은 허용)
23/05/17 19:48
저게 박유가 무슨 흑심이 있어서 주청했던게 아니라 나름 그 시대상에 비추어 볼 때 이유가 있었던 건의라고 하던데 뭐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요
23/05/17 20:25
몽골한테 30년 두들겨 맞고, 삼별초 진압한다고 싸움 나고, 일본 쳐들어갔다가 많이 죽고 등등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너무 많이 죽어 여자들이 더 많아져서 저런 얘기가 나왔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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