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학가는 엄혹한 시절이라 살벌하기만 했을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운동권이 대학문화의 주류가 된 시기는 80년대 말~90년대 중반까지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 초중반의 대학가는 문화적으로 억압되었던 70년대 유신시절을 뒤로하고 자본주의스런 향락/오락문화가 나름 꽃을 피웠던 시기였죠. 당시는 고교졸업생의 20% 미만만이 4년제 대학에 들어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학생들 중에는 집안형편이 그래도 여유가 있는 쪽이 많았습니다.
광주의 비극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고 일부 운동권 학생들은 '좌경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실제보다 500배쯤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었기 때문에 지하에서 숨어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냥 평범하게 수업듣고 미팅하고 엠티가고 그랬는데, 듣는 음악은 아무래도 좀 달랐습니다. 당시까지는 대학가 문화가 일반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어느정도 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70년대 명계남 등이 했던 대학 연극이 기존 연극계를 씹어먹었다거나, 80년대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노래들이 전국적으로 히트를 하고 성인가요 위주였던 기존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거나 하는 일들을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노래 중에는 대학가요제 풍도 아니고 기존의 대중음악풍도 아닌 대학가 부근에서만 인기 있는 노래들이 있었습니다. 같은 젊은이라도 생업전선에 뛰어든 이들은 알 수 없는 대학가만의 노래들. 그렇다고 운동권의 민중가요도 아니고 그냥 별 걱정없는 부잣집 대학생이 엠티가서 통기타 들고 해맑게 부를 것 같은 노래들인 것이죠. 물론 그 중에서도 전국적으로 알려진 노래들이 많지만 기존 대중가요에 편입된 대학가요제풍의 노래들과는 또다른 면이 있습니다.
정광태는 바로 그런 노래들에 있어 1인자였습니다. 물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국민 히트곡이 있지만 정광태스런 노래들은 그보다는 이런 것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은 어린이들도 잘 아는 동요처럼 되었지만 예전에는 대학가 인싸들만 아는 노래였지요.
이건 컵라면 광고에 나오는 바람에 유명해진 노래
코믹 댄스를 추는 아저씨로 인해 2010년대가 되어서 밈으로 등극한 노래
정광태 노래중에 가장 진지한 노래. 좀 분위기 잡고 불렀습니다.
찾아보니 정광태는 55년생으로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더군요. 하지만 80년대 초 앨범을 발표하면서 단연 대학가의 인기 가수로 떠오릅니다. 그러다 독도는 우리땅으로 가수보다 노래가 더 유명해진, 독도명예시민이 되는 등 인생이 노래에 이끌려가는 삶을 살게 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응원가로 유명한 '힘내라 힘'도 정광태 노래라고 하고,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도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부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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