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한국 대중음악 명반 단 한장을 꼽으라면 고민없이 선택할 앨범, <청년폭도맹진가>가 26위에 선정되었네요. 2007년 조사와 거의 차이가 없는 순위입니다.
그래서 공식 리뷰도 한번 붙여보겠습니다. 크크
펑크가 죽을 일이 있을까? 절대로 그럴 일은 없다. 태도든 음악이든 펑크는 해마다 아무개의 삶 속에서 꼼지락거린다. 그렇다면 조선 펑크도 여전히 살아 있을까? 슬프지만 적어도 이곳 한반도에서 만큼은, 그냥 펑크가 아닌 조선의 펑크라 불렸던 그 펑크는 죽어 쓰러진 지 10년이 되어간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그때 그 시절의 펑크가 계속 될 수 있겠는가. 다른 음악을 찾아 떠나고 다른 음악에 치이면서 꽃피웠던 펑크는 뒷날을 남기고 너덜너덜해졌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를 남겨놓았듯 밀레니엄 전후로 맹위를 떨쳤던 조선 펑크는 현재 모노톤즈(The Monotones)와 경록절로 남아 있다. 101장의 명반을 뽑는 자리 덕분에 이렇게 회한과 감사가 교차하니 마음이 특별해진다. 그리고 이 음반, 조선 펑크의 최고작이자 한국 인디의 최고작인 [청년폭도맹진가]를 또 한 번 듣는다.
왜 첫 곡 ‘날이 저문다’부터 이성우는 저리 악다구니를 쓸까? 왜 ‘Viva 대한민국’에서 차승우는 노래를 최대한 못 부르기 위해 애를 쓸까? 왜 ‘정열의 펑크라이더’는 마냥 꽥꽥대기만 할까? 가장 먼저 밀려오는 거부의 파도가 쏴아 빠져나가면 모래에 박힌 조개들이 눈에 들어온다. ‘청년폭도맹진가’는 브라스를 곁들인 행진곡과 펑크의 위악을 섞으며 “저주받은 자의 애달픈 혁명”을 노래하고, ‘십대 정치’는 마구잡이로 달리다가 ‘I wanna be your dog’을 슬쩍 흘리고서 사이키델릭의 우주로 떠나며, ‘잡놈 패거리’는 기타 리프가 너무 훌륭해서 펑크의 꽥꽥이를 튼튼한 질주 본능으로 승격시킨다. 이 형형색색의 조개들을 줍다 허리를 펴면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인다. [청년폭도맹진가]는 하나의 드넓은 성찰이 된다. 어른들이 망쳐놓은 세상에 분노하고, 세상을 뒤엎고 싶어 핏대를 올리고, 방법을 알지 못해 자조하며, 최소한 닮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누구는 “우리는 호로자식들”과 “빌어먹을 꼰대들을 죽여라”는 막말이 신발에 들어가는 소금물처럼 기분 나빠 아래만 쳐다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음반에 새겨진 글씨는 한껏 꼬부라진 백송체다. 이성우는 말끝마다 “보리라” “없노라” “하도다” “해주오” “하더냐” 하며 수염을 쓸어 내린다. 노 브레인은 모래사장에 앉아 펑크를 한 게 아니라 고성의 청간정 혹은 울진의 망양정에 올라 앉아 펑크를 했다. 조선 펑크의 이 독특한 방식은 [청년폭도맹진가]에 엉터리와 진지함, 개그와 품위의 완벽한 균형을 가져다 주었다. 오랜만에 다시 들어도 ‘바다 사나이’들이 전해주는 감흥은 예사롭지 않다. 이들의 펑크는 호젓한 정자에 올라 수평선을 바라보며 사포로 만들어진 칫솔로 빡빡 양치질을 하는 펑크다.
지금까지 고작 1부 난투편만 얘기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는가? 2부 청춘예찬편에는 청춘을 향한 애증이 다양한 음악적 방식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레게와 스카로 흥을 돋우고, 오르간과 벤조로 싸구려 낭만을 늘어놓고, 천박한 단어들로 어른들을 밀쳐낸다. 2부의 복잡다단한 감흥은 이 음반을 다시 듣거나 처음 듣는 모든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노 브레인은 직전까지 쌓아 올린 업적을 ‘전자 펑크 리믹스 메들리’로 해체시켜버리는 객기를 부리고서야 비로소 문을 닫는다. 어떤 얄궂은 예언이었을까? 아니면 “이번엔 누구 차례 빈곤의 수레바퀴”라는 말처럼 어떤 역사적 통찰이었을까? [청년폭도맹진가]는 짙은 회한과 깊은 감사를 선사하는 이정표로 그때 그 자리에 다시 한 번 남는다.
추천곡: ‘Viva 대한민국’
차승우는 노래를 일부러 못 부르기 위해 안달한다. 듣기 싫으면 관두라는 투다. 그러나 “좆까라 밀레니엄 이 땅에 미래는 없다”는 쌍욕을 듣고 정지 버튼을 누르긴 어렵다. “아 대한민국 아 나의 조국”을 일말의 성의도 없이 계속 지껄이며 차승우는 정수라에게 엿을 날리고 정태춘 옆에 짝다리를 짚고 선다. 이 모든 일이 거칠고 경쾌한 서프 록 위에서 벌어진다. 이 노래와 짝을 이루는 ‘이 땅 어디엔들’에서 차승우는 ‘아 대한민국’을 기타로 성의 있게 패러디 한다.
(수정됨) 재니스 조플린이면 한영애 2집이려나요.
이거 순위 새로 매길 때 궁금했던 게 이상은의 공무도하가가 몇 위일까였는데, 이번에도 최소 20위권 안에 들어가겠군요. 힌트로 보면 10위권 이내려나...
그런데 외롭고 웃긴 가게는 아예 빠진 모양이군요. 뭐, 그때도 턱걸이였고 새로운 음반들이 추가되었으니 당연한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