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8/07/12 20:49:57
Name 보름달
Subject [에버배 결승 감상]박성준, 존재의 이유
선수에 대한 경어는 생략합니다.

그를 폄하하는 사람은 '너무 잘 들이댄다' '너무 공격적이다' '실력에 비해 너무 자신감이 넘친다'라면서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의 근간을 부정하곤 한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MSL에서 보여준 신희승, 주현준과의 졸전을 봐도 그렇고, 김택용과 블루스톰에서 맞붙은 경기도 그러하며, 전성기 이후로 꾸준히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테란전 승률을 봐도 그들의 그런 말은 수긍할 만 한것이다. 오랜만에 상위리그로 발을 디딛은 에버2008 스타리그 내내 출중한 실력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승리는 전술한 이유로 인해 끊임없이 깎아내려져야했다.

그러나 4강에서 손찬웅을 잡았을때의 실력은 프로토스를 두려워하는 일부 어이없는 저그들과 자신을 낮게 보려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을만한 경기력이었다. 그의 유닛 움직임 하나하나는 '아무리 내가 요즘 부진해도 프로토스는 내 밥이다'를 선언이라도 하듯이 굉장히 자신감 넘치고 경쾌했다. 일부 맵의 유리함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경기운영은 일천한 경력을 지니고 있는 프로토스를 상대하는 저그답지 않게 굉장히 치밀하고 준비가 잘 된 것이었다. 더 고무적인 일은 그가 요즘 떠오르고 있는 저그들의 방법론대로 경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성기시절의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였으며, 게다가 연륜이 쌓이면서 경탄할만한 노련미까지 갖추기 시작하였다. 손찬웅의 앞마당에 가디언이 폭격을 시작했을때 박성준의 팬들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맵빨과 대진빨 논란으로 그는 끊임없이 폄하당할 지언정, 그가 존재하는 이유를 오랜만에 찾을 수 있는 다전제 승부였지 않나 싶다.

그리고 오늘 벌어진 결승전.

박성준은 이러한 존재의 이유를 온전히 되찾는데 성공했다. 똑같이 3:0승부가 나온 저번 결승은 패자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데 비해, 이번 결승은 승자에 대한 찬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1경기의 5드론 나악시는 노련미까지 갖춘 박성준앞에서 프로토스는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경기였으며(게다가 그의 오랜 장점이었던 정찰본능까지!) 2경기는 그의 정체성을 무시한 도재욱과 SK의 코칭스태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물론 도재욱은 이에 무너지지 않을정도로 만만찮은 상대였다. 두 경기를 잃고나서도 3경기의 도재욱은 전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반 까지는 도재욱이 유리한 순간이 많았으며, 박성준의 팬들은 또다시 박성준의 지나친 공격성으로 인해 경기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성준은 뛰어난 스커지 운용을 통해 이런 상황을 극복하였으며(커세어가 그 정도로 쌓였는데도 불구하고 끝끝내 스커지로 다수의 커세어와 셔틀을 잡아버리는 그의 저돌성에는 질릴정도다) 프로토스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체제를 변환하는 모습은 그가 절대 '찌르기 빼면 시체'인 저그가 아님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안기효와의 라이드오브발키리 대첩이 생각나는 마무리까지......박성준은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정체성대로 경기를 지배하였다.

그가 승리하자 마자 호사가들은 그의 우승은 운빨이었다느니, 그가 본좌라느니 준본좌라느니라는 허황된 굴레로 그를 씌우기 여념이 없다. 그러나 그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러한 굴레 하나하나에 절대 그를 가둬둘 수 없는 그 자신의 정체성에 있으며, 그가 프로게임계에서 독보적이자 독립적인 게이머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성준 이전에도 박성준과 닮은 사람이 없으며, 박성준 이후에도 박성준같은 게이머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제 그는 프로게임계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결론에 '골든마우스'라고 대답하는 당신은 이번 리그를 다시 한 번 복습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 라벤더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7-26 02:35)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WizarD_SlayeR
08/07/12 20:51
수정 아이콘
드디어 박성준선수 이야기로 GameBBS 한페이지가 점령당했군용
음 이글을 봐도 역시 박성준선수는 대단~
발컨저글링
08/07/12 21:10
수정 아이콘
확실히 실력에 비해 저평가 된 선수는 맞고,
조금만 인기가 더 있었더라면 평가도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겁니다.
또 저그유저라면 지금 누구나 하는 그 '뮤탈 짤짤이'를 실전에서 첫 선보였고
홍진호 선수 이후 저그유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선수임은 확실합니다.
Darkmental
08/07/12 21:21
수정 아이콘
온게임 우승자는 항상 시대의 흐름보다 한발짝 앞서가는 선수가 우승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제가보기에는 이제는 어느정도 짜여진 더블의 홍수속에서 그것을 파훼하는 가지수가 많은 선수가 차기 본좌가 될것같은 느낌..
더블의 가장 발전된 모습이였던 이영호+도재욱선수가 무너진것은 어느정도 우연이 아닌것만 같아요.
이제 시대의 흐름은 점차적으로 더블후 운영에서의 싸움에서 초반에 더블을 붕괴시켜버리는 능력을 요구하는것 같음.
산타아저씨
08/07/12 21:24
수정 아이콘
멋진 글 감사합니다 ^^

박선수가 너무 자랑스럽네요~
08/07/12 21:43
수정 아이콘
시대의 흐름보다 앞서가는 선수가 우승한건 오히려 엠겜쪽 아닌가요. 이윤열 강민 최연성 마재윤 김택용의 패러다임...
임이최마엄
08/07/12 21:46
수정 아이콘
오늘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ㅠㅠ 추게로!
펠릭스~
08/07/12 21:57
수정 아이콘
그래도 박성준 선수는 저그로써는
시대를 앞서갔던 선수는 맞다고 봅니다.

더그나 저그를 죽이는 맵 홍수덕분에
테란이 플토에 막혀 떨어지고
저그 플토의 대결이 된것이 아슷트랄 하네요
김다호
08/07/12 23:11
수정 아이콘
진짜 공감가는 글이다.

추게로!!!!!!!!!!!!!!!!!!!!!!!


스타판에서 투신이란 가치를 플레이스타일에 맞게 올려놓았네요.
王天君
08/07/13 00:00
수정 아이콘
추게로!!!!!(2)

정말정말. 박성준 선수만의 스타일이 오늘 결승전에서 뿜어져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강렬하면서도 어딘가에 여유마저 느껴지는 플레이. 신인때의 날이 바짝 선 날카로움부터 노장의 빈틈없는 노련함까지.
프로토스 유저로써 좌절했습니다.....
토마토7개
08/07/15 09:52
수정 아이콘
한시대를 풍미한 플레이어는 많습니다. 언제나 그 포스가 지속될것 처럼 착각하게 만들죠.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들었던 그 길고 길었던 고난을 뒤로 하고 자기만의 색깔로 보란듯이 돌아온 투신!
본좌논쟁,골든마우스 그 어떤것도 이번에 그가 보여준 투신다운 모습과 드라마를 대신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어쨌든 닥치고 추게로~!!!!
Hellruin
08/07/26 17:04
수정 아이콘
추게로~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825 [음악과 이런저런 이야기]뛰대리의 새로운 시도 [18] 뛰어서돌려차11098 08/07/18 11098
824 이대호 이야기 - 누구나 슬럼프는 있다. [34] 회윤15213 08/07/18 15213
823 [에버배 결승 감상]박성준, 존재의 이유 [11] 보름달13584 08/07/12 13584
822 '몽상가의 꿈'과 '비수 같은 현실' [15] 장경진17741 08/07/01 17741
821 별이 떨어지는 날에. [5] ToGI11086 08/06/29 11086
820 마재윤의 2군 강등을 보며.. [29] skzl15713 08/06/27 15713
819 [L.O.T.의 쉬어가기] Wish... [3] Love.of.Tears.8146 08/06/23 8146
818 이윤열. 그대가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51] The xian11072 08/06/14 11072
817 [스크롤 압박 절대 주의] NaDa의 1000 - 1 [59] The xian13373 08/06/11 13373
816 매니아뿐인, 스타크래프트 [54] 라울리스타16073 08/06/07 16073
815 굿바이, 이제동. [90] sylent22999 08/05/31 22999
814 저묵묵 이제 우리도 저징징 한번 해볼까? [130] Akira15493 08/05/31 15493
813 '최종병기' 이영호는 외롭다 [60] 회윤16390 08/05/29 16390
812 해설진들의 十人十色 [25] 김연우13463 08/05/28 13463
811 pgr인에대한 심층적 고찰 및 분석 [113] 밀가리16550 08/06/04 16550
808 간웅[奸雄] 오영종 [24] Judas Pain14348 08/05/14 14348
806 잊혀진 제국 비잔티움에 관하여 - 1. 개관 [28] Operation_Man10178 08/05/05 10178
805 [서양미술] 빈센트 반 고흐 - 모방과 재해석 그리고 오마주 [26] 불같은 강속구14495 08/04/24 14495
804 멋진 성직자님들 [66] 하만™17150 08/05/08 17150
803 (역사,다시보기)상인의 나라,그 허무한 종말. [13] happyend12354 08/04/22 12354
802 [서양미술]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15] 불같은 강속구14597 08/04/18 14597
801 몸에 해로운 과자 구별하는 방법입니다. [61] 나무이야기25297 08/04/18 25297
800 미안합니다 [79] 나는 고발한다20496 08/04/04 2049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