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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7/11 03:19:48
Name 타조알
Subject ....그리고 그녀는 없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녁을 먹고 술자리에 앉아서까지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걱정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않는 날 보며 친구들은 그저 힘내라는 말뿐이었다.
굳이 분위기를 뛰우려고도, 날 위로하려는 것도 하지 않았기에
난 술과 함께 내 자신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많이 고마웠다.

며칠째 계속해서 마신 술이었기에 적은 술에도 난 취해있었고
그렇게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운동이 부족했었는 탓인지
담배와 술 때문이었는지 집으로 오는 길이 유독 힘이 들었고
그렇게 너무나도 길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끝나고
난 집 앞에 도착해 가뿐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집 근처 화단에 걸쳐앉았다.

평소에 통행이 적은 길이 아니었는데도
유독 지나가는 차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너무나도 고요했기에
그래서 난 마음껏 다리를 펴며 화단에 기대어 앉았다.

'치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여 입에 문채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은 붓에 먹물을 가득 묻혀 칠한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 어둠에 별들은 갇혀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고개를 내리려는 순간에
달이 보였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고
달이 막 구름에 가려지려하고 있었다.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달이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어지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너무 오래 고개를 들고 있어서인지
갑자기 구토가 치밀어올랐고 난 근처 하수도로 뛰어갔다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을때 누군가가 내 등을 두들겼다.

-괜찮아요?

난 일어나서 입을 닦으며 고맙다는 말대신에 고개를 끄덕였고
근처 화단에 기대어 앉으며 담배를 물었다.
그녀는 내 옆으로 다가와 화단에 걸터 앉으며 물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그녀는 얼굴에 안쓰러운 미소를 띄며 날 쳐다보았고 난 오늘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후회가 되서요.

그녀는 뭐가 후회가 되는지를 물어왔고 난 평소와는 다르게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난 평소에 후회하지만 않게 살려고 했고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것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많은 고민끝에 솟아나는 눈물을 참으며 그것을 선택했고 잘한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난 후회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고 ..
이제와서 그걸 돌이킬 수 없었기에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조금 더 힘내보지 그랬어요?

겁이 났었다.
그렇게 달리고 있는데 목표가 사라져버리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때가 되면 예전에 참지 못했던것을 후회할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잘한 선택이라고 스스로 납득시키려고 하고 혼자 아파할려고 하지만
자꾸 미련이 남고 후회가 남고 너무 아프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녀가 말했다.

-글쎄요...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아마 고개를 끄덕였던것 같다.

-정말 그 선택밖에 없었어요?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 선택밖에 없었던거에요?

-...네

-그럼 왜 후회하고 있죠? 왜 미련이 남는거죠?
내 생각에는 당신이 정말 진심으로 그 목표를 향해 뛰었다면
지금 이렇게 후회하고 아파하는게 아니라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너무 많은 말이 입에서 맴돌았기에 난 아무말도 하지를 못했다.

-당신이 지칠까봐..그게 겁나서 주저앉아 버린거 아니에요?
내가 보기엔 그건 선택이 아니라 포기 같은데.....틀린가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정말 잘한 선택이었고 열심히 했다면 이렇게 아파할 이유가 없어요.
물론 아프기도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지금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
자신이 포기해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있는 거고
그걸 미화시키지 못했기에 아픈거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시 한번 해봐요.
예전처럼 그렇게 덮어놓고 뛰지말고 조금 여유를 가지고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좀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요.
그렇게 한걸음씩 한걸음씩 걸어봐요.
그러면 당신은 자기도 모르게 그 목표에 다다라서 분명히 웃고 있을 거에요.
이렇게 울고만 있을 건가요?
그렇게 후회하느니 할 수 있다면..그럴 수 있다면 좀 더 마음을 열고 다시 일어나서 걸어봐요
진심으로 걷는 사람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이에요.
그럼 난 이만 갈게요.

그렇게 그녀는 골목을 돌아 갔고 난 내 맘속에서 뭔가가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 그녀가 사라져간 골목으로 뛰었다.

그녀는 없었다.

그녀가 걸어간 골목은 조그만 가게들이 붙어있는 골목이었고
주택가는 없었다.
작은 골목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곳으로 걸어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난 등골이 오싹하며 소스라치는 느낌에 다리가 풀려
집 앞 계단에 주저앉아 버렸다.

멍하니 그녀가 걸어갔다고 생각했던 골목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보았고
그 곳에는 달이 있었다.
너무나도 밝게 빛나는 달이 있었다.


나는 일주일만에 큰소리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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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만피하자
05/07/11 04:59
수정 아이콘
제목에서 애거서 크리스트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생각나는;~
05/07/11 06:01
수정 아이콘
헐;;;; 귀신과 마주치셨군요;;;;
05/07/11 06:57
수정 아이콘
-_-;; 무섭잖아요. 진짜 귀..귀신?
05/07/11 08:57
수정 아이콘
멋지네요... 자기보호를 위한, -_-; 잠재 된 M의 존재가 부각되는건가요? ... 자아붕괴 및 신체훼손을 막기 위한, ... 잠재된 그 무언가가 . .
울랄라~
05/07/11 12:47
수정 아이콘
덜덜덜;;
여자예비역
05/07/11 19:50
수정 아이콘
이래서.. 내가 술을 안사주려 하는 것입니다;;;
존댓말을 쓰려니 정말 어색합니다...;;;
새벽오빠
05/07/11 20:01
수정 아이콘
무슨 일이 있었나보군요;;
힘내십시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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