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5/12/21 20:20:36
Name unipolar
Subject 낮은 마음으로 기다리기
#1
오랫동안 한 여자를 좋아해오고 있다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녀에겐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녀는 그 친구에게 이젠 다른 여자를 좋아하라고 계속 얘기한다지만... 그 친구는 그게 잘 안되나 봅니다.

바보같은 녀석이죠. 나 같으면 아예 시작도 안할 사랑을.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 그녀는 다음에 전화하겠다며 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화를 하지는 않는다고...... 그렇지만 그녀석의 문자 보관함 1, 2번은 아직도 그녀의 문자.

그런데 그녀가 보내준 문자라고는 그 두개가 전부랍니다.


그 얘기를 듣는 내겐, 그 친구에게 괜찮은 새로운 여자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지만,

그 친구는 그녀와 닮은 여자를 기다리겠다고 하네요. 그녀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자기 마음을 말하겠다고......


한때 실연을 겪은 나에게 그 친구가 말했었습니다.

"세상 어디엔가...... 한 사람과 똑같은 다른 사람이 꼭 있대.

언젠가 너에게도 그 사람이 나타날거야."


#2
바보같은 녀석같지만, 그녀석이 부러운 이유는,

예전 누구의 이 모습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단점만은 안 가졌으면 좋겠다. 이러지는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 따위의 바램들만을 가지고 있는 내 마음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낮은 마음으로 기다리기.

다른 것은 다 필요없고,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사랑할 사람을 기다리기......

Unipolar, 너도 꼭 그렇게 될 수 있길.


#3
명동에서. 카페 창가에 앉아서, 앞에 앉아있는 그 친구를 보며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두 손으로 두 개의 원을 만들며.


"처음 사랑하고 처음 반할 때는 이렇게 완전한 원이지. 그렇지만 이렇게 흠이 없는 두 개의 원은 부딪쳐서 튕겨나가 버리지.

사람들을 사랑해 보고, 이별해 보고, 그 사람들에게 자기 마음을 조각조각 떼어주고 나면. 자신의 것들을 잃어버리고 나서 울퉁불퉁 이 빠진 원이 되면, 그때 자기처럼 흠이 많은 원을 만나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되는 거지.

지금까지 내가 겪은 사랑의 실패는, 모두 흠집을 가진 원이 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 조금씩 잃어가면서 결국은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시행착오의 과정.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을 좋아하면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4
그래요. 나는 후회하지 않고, 꼭 나와 같은 부족함과 결점과 상처를 가진 톱니바퀴를 만나서 맞물려 돌아갈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잘난 동그라미, 완벽한 동그라미로 남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계속 사랑을 할 겁니다.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또 누군가를 기다리겠죠.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아직도 다른 원을 튕겨내는 완전한 동그라미 흉내를 내고 있는 나는... 더 많이 부딪치고 쓰러져 봐야 합니다. 아직 나는 충분한 사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사랑 때문에 잃었던 시간들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나만큼 잃어 온 사람을 기다립니다. 언젠가 부족한 나와 맞물릴, 또다른 부족한 누군가를,

지금도 낮은 마음으로 기다리려고 합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사랑할 사람을.








오래 전에 썼던 글이네요.
방금 힘겹게 커플지옥에서 기어나와, 기쁜 마음으로 솔로천국을 향하며.
unipolar
unipolar@naver.com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Juliett November
05/12/21 21:3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케미
05/12/21 21:34
수정 아이콘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killyoumine
05/12/21 22:40
수정 아이콘
멋진 글이네요...부디 좋은일 있으시길....
과자공장사장
05/12/21 23:47
수정 아이콘
살포시 추게로 갔으면 하는 마음...내비치고 갑니다..
어딘가 잘 맞는...톱니를 가진 원이...있을 꺼예요...
unipolar
05/12/22 00:12
수정 아이콘
앗...... 감사합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굴러가고 또 굴러가도 언젠가 멈추는 게 사랑과 원이 다른 점 아니겠습니까.
쪽빛하늘
05/12/22 11:56
수정 아이콘
낮은 마음으로 기다리기... 란 말 참 좋네요...
저도 아직까지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좀 나타나는게 늦는군요 이사람이;;;
unipolar님도 꼭 맞는 그런사람이 하루빨리 나타나시길 바랄게요~~~
unipolar
05/12/22 15:14
수정 아이콘
나타나겠죠 우허허~(이 쓰라린 웃음소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9433 게임에 인생을 걸고 있는 선수들입니다. 한번 더 그들의 입장에 서주세요. [17] 청보랏빛 영혼3723 05/12/22 3723 0
19432 [잡담]성CEO는 부도나지 않았습니다 [13] Daviforever3906 05/12/22 3906 0
19431 성학승 선수의 최근 경기들을 돌아보면 오늘의 결과가 너무나 아쉽습니다. [64] 피플스_스터너4306 05/12/22 4306 0
19430 내일....... 드디어...... 온게임넷 스타리그 경기가 1000전째를 맞이하게 됩니다~~! [40] SKY923598 05/12/22 3598 0
19428 CEO....... 괴물에 의해 직급이 좌천당하다...... [172] SKY926067 05/12/22 6067 0
19427 [P vs Z]장기전,, 다크아콘의 새발견 [28] 박준우3572 05/12/22 3572 0
19426 MSL 이렇게 바뀐다면 어떨까요.? [16] Tari3838 05/12/22 3838 0
19425 작업의 정석을 알려주세요. [21] 수경3672 05/12/22 3672 0
19424 중국선수들이 도착했네요 [30] 20th Century Baby3882 05/12/22 3882 0
19423 앞으로 나올법한 애칭들. [28] 백야3527 05/12/22 3527 0
19422 토스걸(서지수 선수)을 이기는 방법 [22] 메카닉저그 혼5902 05/12/22 5902 0
19421 수고했다 라는 말이 부담되는 요즘입니다. [15] 이성혁3469 05/12/22 3469 0
19420 개인적으로 꼽은 2005 E-Sports 10대 사건(2) [14] The Siria5859 05/12/22 5859 0
19419 생사람 간단하게 잡을수 있는 방법들. [112] 루루4702 05/12/22 4702 0
19417 플러스팀은 프로토스 제조 공장? [13] KOOLDOG*4355 05/12/22 4355 0
19416 드록바 vs 크레스포 -_ - !!(그외 잡담~) [43] 디질래 랜드5152 05/12/22 5152 0
19415 팀단위리그에 대한 고찰 [8] AttackDDang4771 05/12/22 4771 0
19414 호남지방엔 지금 재앙이 내리고있어요 [25] 베넷아뒤0dotado3855 05/12/22 3855 0
19413 배틀필드 하시는 분 혹시 pgr에도? [4] HALU4042 05/12/22 4042 0
19412 서지수,김정환,나도현,김선기..그리고 이승원해설까지... [34] 김호철5878 05/12/22 5878 0
19410 MSL....... 치열한 정글에서의 집안싸움. [31] SKY924143 05/12/21 4143 0
19408 낮은 마음으로 기다리기 [7] unipolar3883 05/12/21 3883 0
19407 자유로운 영혼 겐신 그리고.. [11] 아키라3427 05/12/21 3427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