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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5/21 02:29:01
Name Godvoice
Subject 주목받는 승부라는 것.
이번에 학교에서 여는 2:2 팀플 대회에 친구와 팀을 짜서 출전했습니다.

사실 공부벌레들이 우글우글하며 학생 수도 적은 교대에서 얼마나 수준 높은 선수들이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며, 우승 상금 10만원에 +_+ 눈이 멀어 과감히 참가비 5천원 - 2인 부담이죠 -을
질러버렸을 때는 '뭐 간단히 우승할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또 연습을 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저같은 경우에는 교육방송 - ONGAMENET, MBC GAME - 을 꾸준히 시청하는지라...
팀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고,
친구도 1000승이 넘는 아이디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승리의 대부분을 팀플로 채웠다고 했기에,
그다지 우승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배틀넷에서... 공개방으로 팀플레이를 연습할 때는 좋았습니다.
공개방에서는 연습 못하겠다고 친구가 말하기에, 광고 채널에 가서 팀플을 했습니다.

...좀 많이 졌습니다.
그것도 '왜 우리는 팀인데 저쪽은 팀도 아닌데 저렇게 호흡이 잘맞아!' 할 정도로...
이기기도 많이 했지만 지기도 꽤 많이 했죠.

특히 공식맵이 헌터와 로템인데, 헌터에서는 잘 이기다가 막판에 로템에서 무지하게 깨지고,
왜 우리는 로템에서 이렇게 안되는 걸까? 하며 골머리를 썩히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시합 당일 하루 전에.

이래저래 많이 고민하며 잠 못 이루다가 결국 결전의 날이 밝았고...

예선장으로 갔습니다.
개인 마우스를 지참한 분도 있더군요. 손빠르기가 매우 빠른 분들도 보이고...
저희 팀은 자위했습니다.
'개인 마우스가 겜방 마우스보다 더 안좋다'
'손빠르기는 수치일 뿐이다'
...그래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28개의 팀이 참여한 단판 토너먼트였습니다.
무려 결승은 야외 중앙 무대. 대형 슬라이드를 통해 캐스터와 해설자까지 있는 중계방송.
정말 이 정도면 스타크래프트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꽤나 끌리는 조건이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저는 그런 것에 크게 고무되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워낙 생계가 어렵기 때문에... 돈에만 눈이 멀었던 셈이죠.
하지만 제 친구는 그것에 굉장히 불타오르더군요...
아니, 아마 그 대회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분들이 그랬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선이 시작되었습니다.
일꾼 견제가 오더군요.
안그래도 긴장되는데 일꾼 견제 오니... 더더욱 심리적 압박이 심해집니다.
게다가 단판 승부. 지면 그대로 끝.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저희 과에서 저는 거의 폐인-_-으로 통하는지라...
지게 되면 그것 또한 상당히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 되니... 게다가 1회전 탈락은...)

하지만 평상심을 되찾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병력 모아서 러쉬. 끝.
1회전 통과. 2회전 통과. 3회전 통과.
강력한 우승 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하는 가운데에도 결국 준결승까지 갔습니다.
준결승부터는 3판 2선승제. 로템에 자신이 없던 저희는 헌터에서만 게임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로템을 플레이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상대 팀과 상의해서 맵을 정해야 하는데...
저희가 가위바위보에서 이겨서 헌터에서 두 경기를 하기로 했지만,
상대 팀의 제안(?)으로 로템을 첫 경기로 플레이하게 되었습니다.
불안하더군요.

그래도 이겼습니다.
로템을 가볍게 잡고, 헌터는 더더욱 가볍게 잡았습니다.
결승 진출 확정. 상금 확보, 야외 무대 결승 확보.

친구는 좋아서 만나는 사람마다 결승 보러 오라고 성화였고, 전화까지 이곳저곳 하더군요.
아마 저와 그 친구... 둘 다 우승을 확신했을 겁니다.
전승으로 올라갔고, 게다가 상대팀은 부전승 라인에 있었기 때문에 경기 수가 적었습니다.
거기에 더 추가해서 저희가 있던 쪽이 죽음의 조라고 불리는 곳이었기에...

결과부터 말하자면, 2:0으로 완전히 졌습니다.
첫 경기인 로템. 저는 랜덤 저그, 친구는 토스. 상대는 테란/토스.
초반 저글링으로 토스를 반죽음까지 만들고 지속적으로 교전에서 이겼지만,
결국 갖춰진 테란의 병력과 토스의 짜낸 병력에 센터 싸움에서 밀리고...
처절 모드로 진행된 게임 끝에 마지막으로 아칸을 뮤탈로 잡아내고 지지를 쳤습니다.
그 경기가 끝난 후, 초대 가수의 공연 탓에 휴식 시간을 갖기로 하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남은 경기를 다 이길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질 거라고 생각하면 이길 경기도 진다' 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졌습니다. 하필이면 헌터에서 매우 먼 거리 - 6시와 1시 - 에 위치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12드론이 아닌 9드론 저글링을 사용했다가 그대로 밀려버렸죠.
끝까지 럴커로 시간을 끌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습니다...

경기는 2:0으로 끝.
상대 팀에게 악수를 청하고,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그 때... 저는 선수들의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했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힘들게 올라간 결승 무대에서 패배하는 기분...
아니, 설령 결승 무대가 아니라고 해도, 힘들게 준비한 방송 무대에서 힘없이 패배하는 느낌...
너무나 허탈했습니다. 슬프기도 하구요.
그런 좌절스러운 기분... 정말 게임 인생 16년 동안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습니다.
기껏 야외 무대에서, 적은 관객이나마 보는 앞에서 게임을 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지다니...

그건 단순히, 저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아침부터 경기 진행을 도와준 같은 과 친구. (매니저?)
마우스를 몰래 과 사무실에서 가져와준(마베를 살아 생전 처음 써봤습니다) 친구.
응원해준 사람들.
모두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프로게이머들은, 아니 비단 프로게이머만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은 이런 감정을 느끼겠죠?
열심히 준비했는데... 허무하게 패배했을 때의 감정.
지지를 쉽게 치지 못하는 건 아마 그런 이유일 겁니다...
비단 이런 조그마한 대회라도 이럴진데, 더 큰 무대에서는 어련할까요...

이런 살얼음판 같은 세계를 걸어가는 선수들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도전장을 던진 그들이 참 대단하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것은 '머리' 로 알던 것일 뿐.
진짜 그런 감정을 느끼고 나니 더욱 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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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하시
04/05/21 02:41
수정 아이콘
정말 존경합니다.
04/05/21 02:43
수정 아이콘
와 멋진글입이다..라고 생각하고 아이디봤더니 어디서 많이 뵙던 분이군요;
워xp에 Dr.Phantom 입니다(쿨럭)
04/05/21 03:00
수정 아이콘
정말 존경합니다.^^
04/05/21 04:3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경험 좋은 추억을 만드셨군요. 부럽습니다. ^^
나라키야
04/05/21 09:01
수정 아이콘
정말 존경합니다. ^_^
치우천
04/05/21 09:39
수정 아이콘
전 어제 학교대회 우승해써요 ^^
10마넌 받아서 다 술로...ㅡ.ㅡ;;;
무대에만 올라가면 심장이 두근 두근 ...
왜 조용호선수가 처음에 우황청심환을 먹었는지 알겠더라고요.
선수들 모두 다 존경스럽습니다.
Return Of The N.ex.T
04/05/21 10:13
수정 아이콘
이야.. 그래도 그런 경험이 나중에 큰 힘을 발휘 할 거라 생각 합니다...^^
강은희
04/05/21 11:58
수정 아이콘
제가 그 상황이었다면 눈물을 흘렸을거 같습니다.
프로게이머는 오죽 하겠습니까.. 저같으면 억울해서
잠도 못잘거 같네요.
강은희
04/05/21 12:01
수정 아이콘
그리고 1:1 개인전도 아닌 팀플전..팀플전은 상당한 운이 따라야하며 팀원의
호흡도 잘 맞아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지 않나요?
한번 실수하면 끝..심리적인 압박이 장난아니었을것 같습니다.
제가 나간다면 테란,토스 조합을 선택할것 같네요.
같은종족 골라도 된다면 2토스조합(사기야!!)
Anabolic_Synthesis
04/05/21 15:36
수정 아이콘
수고 하셨어요.. 그래도 많이 잘하시나보네요... ^^ 대학 동아리 대항전은 어떨지..
아케미
04/05/21 17:07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추억 만드셨네요. (솔직히, 매우 매우 부럽습니다ㅠㅠ)
선수 여러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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