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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2/01 18:50:49
Name 칭찬합시다.
Subject [일반] 나 스스로 명백한 잘못을 행한다고 판단할 알고리즘이 있을까?
"난 그저 명령을 따랐을뿐입니다"라는 말은 비겁한 변명으로 들립니다. 나치의 부역자들이나 일제의 군국주의자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그 같은 변명으로 일관했고 그런 항변은 그들을 사형장으로 가는 것을 막아주진 못했습니다. 그들이 자행한 악행들은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을거라고 현대의 우리들은 판결합니다. 단호하게요.

1989년 동독인 크리스 게프로이(Chris Gueffroy) 베를린 장벽을 넘다 국경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사살당합니다. 그는 베를린장벽을 넘다 살해당한 수백명 중 한 명이자 마지막 인물로서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총격을 가한 4명 중 2명은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다른 2명은 유죄로 징역형을 판결받았습니다. 비록 그들의 행위가 당시 동독군의 프로토콜에 존재하는 합법적인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침해한 것라는 것이 판단의 이유였습니다. 재판부는 비무장 난민을 살해하는 것이 “국제법에 따라 보호되는 정의와 인권의 기본 원칙에 대한 명백하고 용납할 수 없는 위반” 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즉 재판부는 더 나은 진영으로 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 아니라, 비무장 난민을 사살한 행위 자체가 국제법에서 금지하는 명백한 잘못이며 개별 국가가 그것을 합법이라 한들 사후에 처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판단은 저에게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2013년 국군은 임진강에서 북한으로 월북하려던 남성을 사살한 바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국군은 당시 월북하던 남성에게 복귀를 요구하면서 경고사격을 하고 이후 조준사격으로 사살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에나 지금에나 국내법으로 처벌되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지만 독일 법원의 태도를 긍정한다면, 이는 비무장 난민을 의도적으로 사살한 것으로 현재 우리 법률이 처벌하지 않더라도 차후에 언제든지 처벌할 수 있는 명백한 불법행위가 됩니다.

명백한 잘못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명백하지 않아 보이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만약 사전에 명문화되지 않은 죄로 처벌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면 우린 2차대전이 끝나고 진행했던 전범들에 대한 재판 역시도 재고해야합니다. '평화에 반한 죄'나 '인류에 반한 죄'를 명문화했던 국제조약은 없었으니까요. 반면에 이를 긍정한다면, 인류가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 죄악이 존재하고 처벌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애매한 사례에서 무엇이 죄고 무엇이 죄가 아닌지를 사전에 명백하게 알 수 없게 됩니다. 수십년 뒤에 임진강에서 사살 명령을 내렸던 중대장을 법정에 세워 죄를 물어야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명백한 잘못을 할 수 있는 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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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옹손건미축
23/12/01 19:01
수정 아이콘
"난 그런 '그저 명령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 모든 걸 잃어왔어. 다신 그렇게 되지 않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매그니토가 한 대사인데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23/12/01 19:01
수정 아이콘
상황을 판단할 절대적인 기준은 없는거 같더군요.
법률적인 근거도 중요하지만 본문과 같은 경우는 시대적 상황과 같은 배경적인 부분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거 같습니다.
본문의 사건도 한창 냉전시기였다면 모두 무죄 방면 됬겠죠.
칭찬합시다.
23/12/01 19:04
수정 아이콘
가끔씩 내가 저 입장이면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을까를 상상하는데 대부분의 대답은 아니오였습니다. 그냥 운이 좋아서 비도덕적 행위를 강요받지 않을 위치에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드네요
人在江湖身不由己
23/12/01 19:21
수정 아이콘
[판단할 수 없으므로 OOO 하겠어!] 라면서 한 방향으로 기울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칭찬합시다.
23/12/01 19:27
수정 아이콘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한 도덕적 판단을 하려는 게 실천가능한 최선인 것 같습니다
둥그러미
23/12/01 20:25
수정 아이콘
저는 좀 더 단순하게 바라봅니다.
바이마르 헌법을 참고한 우리의 헌법과 현내 독일의 헌법 정신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죠.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독일 헌법 1조 1항: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지 아니한다. 모든 국가권력은 이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

우리 나라는 아직 민주주의, 민주적 정치 체계나 합의, 갈등의 조정같은 가치를 높이 산다면

독일은 그것들은 나치 독일로 한계를 경험하고 나서 결국 민주주의적 이상을 초월한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본문 표현에 사용하신 '합법적', '프로토콜'과 같은 말들은 결국 독일 헌법 체계에서는 인권이나 존엄성보다 아래에 있는 것이지요. 그 법을 따르는 법관은 자연히 그렇게 판결하게 된 게 아닐까요?
칭찬합시다.
23/12/01 20:43
수정 아이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독일 법원의 판결은 독일 헌법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므로 타국(한국)에게까지 일반화하긴 어렵다는 말씀이시죠?
아우구스티너헬
23/12/01 22:37
수정 아이콘
(수정됨) 하지만 저 처벌은 독일 헌법 기반이 아닌 국제법을 기반으로 처벌한거죠

원칙적으론 국내법을 상외하는 강제력이 없어 유명무실하지만 국가가 공권력을 상실하거나(나라가 망했거나)이를 국제법에 위임되었을때(국제법 범죄자를 국제사법제판소에 이관(잡아갔거나 넘겼거나))만 가능한 상황이죠

따라서 행동의 법적 책임 문제는 어떤 사법권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동일 행위를 어느 사법체계에서 하냐에 따라 불법도 되고 합법도 되는거니까요
법을 너무 보편적 정의로 오해하시는게 아닌가 합니다.
칭찬합시다.
23/12/03 07:48
수정 아이콘
관할권의 문제라기보단 국제 관습법의 적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얼마전 일본의 강제징용 배상문제가 국제관습법 상 주권면제가 배제된다고 판단한 판결이 있었죠.
손꾸랔
23/12/01 21:2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역할수행'이란 말이 암시하듯이 사람의 사회생활, 조직생활이란게 지시하고 지시받고, 그 지시란 것도 더 상위의 규범이나 지시를 집행하는 것이고... 이렇게 서로서로 얽혀 있다 보니 순수하게 개인 인격체의 몫을 획정하는게 곤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나저나 예시하신 월북자 사살 사건은 사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죠. 국경의 군인이 총을 겨누는 방향은 바깥쪽이어야지, 안쪽에 총을 겨눈다는건 마치 국민을 죄수로 보고 탈출 못하게 지키는 교도소 경비나 같은 꼴입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더니 정작 떠나려니까 두들겨 패고 창고에 가둬)
다만 법적으로 정당화하자면 북쪽 방향에는 반국가단체가 있다는건데, 마치 적군에 합세하려는 아군은 사살한다는 병영국가적 사고입니다. 휴전 상태가 종식되어야 이것도 끝이 나려나..
닉네임을바꾸다
23/12/01 21:33
수정 아이콘
뭐 군사구역에 접근하는데 지시같은거 거부하면 원칙적으로야...흠...
민통선이라던지 이런게 괜히 있진 않죠...현 대한민국엔...
손꾸랔
23/12/01 21:45
수정 아이콘
본문에 [월북하던 남성에게 복귀를 요구하면서] 라는 대목을 보면 군사시설 보호를 위해 사격을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3/12/01 22:21
수정 아이콘
(수정됨) 뭐 이미 무단으로 군사적목적으로 통제된 구역을 넘어서거나 설려고 하는것일텐데요...지시를 듣지 않으면 거수자일텐데...흠...
차라리꽉눌러붙을
23/12/01 22:07
수정 아이콘
적군에게 중요 정보나 뭘 넘길지 모르고 간첩이 넘어갈 수도 있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사살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소독용 에탄올
23/12/01 22:12
수정 아이콘
우려만으로 죽일수 있다는건 곤란한 입장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우려 만으로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까지 합법영역에 들어간다면 다른 우려들에 대해서 비례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죠.
차라리꽉눌러붙을
23/12/01 22:23
수정 아이콘
휴전 중인 특수 상태이니 현 대한민국에 그런 법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요
소독용 에탄올
23/12/01 23:17
수정 아이콘
휴전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진 않죠.
차라리꽉눌러붙을
23/12/01 23:29
수정 아이콘
앞의 댓글은 이동 중에 좀 짧게 생각하고 썼고 좀 더 생각하여 다시 제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우려만으로 비행기 탈 때 소지품 검사 등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 등등에서

더 많은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은 희생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제도를 유지하는 건 타당하다고 봅니다
손꾸랔
23/12/01 22:43
수정 아이콘
그런 중대한 미션을 수행하는 고급스파이가 총과 지뢰가 우굴대는 위험하고 힘든 길을 뚫는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하기는 힘들지요.
차라리꽉눌러붙을
23/12/01 22:10
수정 아이콘
선험적 진리나 절대적 진리, 규칙, 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황과 케이스에 따라 최대한 좋은?(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 할 뿐...
αυρα
23/12/01 22:55
수정 아이콘
예시라면, 저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인간다움이라 하겠습니다.혹은 정의로움이랄 수도 있고. 이게 저라는 개인에겐 신념인 것이구요. 저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다는 의미의 신념입니다.
이걸 어떤 글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이지만 그게 개개인이 판단할 영역이겠고,
그게 아주 보통이 동의하는 수준이 된다면 어느 정도는 말로 구체화할 수 도 있겠지요(싸이코패스는 그런 걸 학습합니다. 소시오패스는 그걸 거부하는 셈이고)

일상.일반에서는 수학적 논리와 인문학적 논리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인가? 라면 형식은 맞지만 저는 '아니오' 할 터인데, 이것도 각자 다르겠지요. 댓글중 헌법조문부터 그러하네요. 그것이 정의로 교육받지만 저는 독일헌법이 더 와닿는데

쓰는 시점 마지막 댓글의 '간첩'이야기는 솔깃?합니다. 이게 가치관이 싸우는 것일 터인데, 저는 그래서 그런 상명하복식, 정보비공개 종류의 일을 못합니다. 뭔 지 알아야 하죠. 디테일을 다 지정해주지도 못하면서(직장인이여 일어니라! ???)
더 가면 한 때 유행하던 마이클 샌들 아저씨가 한창 던지는 화두였죠. 고를 수 있는 게 두갠데 누구를 죽게 해야하나. 각자의 가치관이 있고 그걸 서로 나누어 볼 수 밖에요.

마지막으로, 매사에 늘 답을 갖지는 못하지만 고민고민 끝에 명백한 잘못은 피하는 답을 내리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나치 시절에도 물론 그랬고.
화두가 모든 인간에게 특정 알고리즘이 가능한가? 라면 글쎄요. 수학도 아니고. 그게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실행이 아니라) 기본 존중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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