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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2/27 22:08:45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117
Subject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62. 달릴 발(犮)에서 파생된 한자들

2024년 올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跳梁跋扈)의 세 번째 한자, 밟을 발(跋)을 파생시킨 달릴 발(犮)의 자원을 살펴볼 차례다. 이 한자는 개 견(犬)에 삐침(丿)을 하나 그은 것처럼 생겼는데, 실제로도 개가 달리는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개의 다리에 강조 부호로 丿을 더한 지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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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犮의 상나라 금문, 진(晉)계 금문, 소전, 예서. 출처: 小學堂

금문은 犬이 아니라 큰 대(大)를 기반으로 한 글자 같이 생겼고 예서의 犮도 지금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그러나 금문의 犬 중에는 지금의 犬처럼 大와 비슷하게 생긴 문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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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犬의 금문 1, 2, 예서. 출처: 小學堂

犮의 예서도 위의 犬의 예서에 삐침 하나가 추가된 형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犮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가 달리는 모습이다. 개 견(犬)에 丿로 가는 모습을 따른다. 다리를 끌며 가는 것을 날발(剌犮)이라 한다.” 그러나 나중에 이 한자가 쓰이지 않게 되면서 발 족(足)을 더한 밟을 발(跋)이란 한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犮이란 한자는 홀로 쓰이지 않고 항상 剌과 짝지은 날발이라는 낱말로만 쓰며, 이 날발의 발은 걸을 발(癶)로 대신해 날발(剌癶), 또 여덟 팔(八)로 대신해 날팔(剌八)이라고도 한다. 《자원》에서는 이 개가 다리를 끌며 걷는 모습이 불편하게 걷는 모습이나 팔자걸음을 걷는 모습으로 이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사자성어 낭패불감(狼狽不堪)으로 이어진다.

세간에는 흔히 '낭'과 '패'라는 앞다리 길이가 서로 다른 두 이리가 상대방이 없으면 걷지 못하는 모습에서 낭패불감, 줄여서 낭패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하나, 이는 민간어원이고 실제로는 날발의 발음이 변한 것이 낭패다. 뜻글자라 해 한 한자에 한 뜻이 있는 보통의 한자와는 달리, 이렇게 두 한자가 한 낱말을 이루어 쪼갤 수 없는 것을 연면사라고 한다. 낭패를 '낭'과 '패'로 쪼개려 한 시도는 무의미하고, 날발과 낭패 모두 연면사다. 즉 날발·낭패 모두 원래는 개가 다리를 질질 끌며 걷는 모습을 나타낸 2음절짜리 낱말이다.

犮(달릴 발, 급수 외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犮+手(손 수)=拔(뽑을 발): 발탁(拔擢), 선발(選拔) 등. 어문회 준3급

犮+火(불 화)=炦(불기운 발): 인명용 한자

犮+示(보일 시)=祓(푸닥거리할 불): 불양(祓禳), 불제(祓除) 등. 인명용 한자

犮+糸(가는실 멱)=紱(인끈 불): 왕불(王紱: 원말명초의 학자·문인·화가) 등. 어문회 특급

犮+艸(풀 초)=茇(풀뿌리 발): 필발(蓽茇: 후춧과의 풀) 등. 어문회 특급

犮+足(발 족)=跋(밟을 발): 발호(跋扈), 탁발(拓跋) 등. 어문회 1급

犮+車(수레 차/거)=軷(길제사 발): 어문회 특급

犮+金(쇠 금)=鈸(방울 발): 동발(銅鈸), 향발(響鈸) 등. 인명용 한자

犮+韋(다룬가죽 위)=韍(폐슬 불): 적불(赤韍: 임금의 정복 중 무릎을 가리는 옷) 등. 인명용 한자

犮+髟(늘어질 표)=髮(터럭 발): 발부(髮膚: 머리털과 피부), 모발(毛髮) 등. 어문회 4급

犮+鬼(귀신 귀)=魃(가물 발): 내한발성(耐旱魃性), 한발(旱魃) 등. 어문회 1급

犮+黹(바느질할 치)=黻(슬갑/보불 불): 불삽(黻翣, 보불 문양을 따른 상여 도구), 보불(黼黻: 임금의 하의 예복에 놓은 도끼와 '亞' 자 모양의 수) 등. 어문회 특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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犮에서 파생된 한자들.

犮에서 파생된 한자들 중에서 오래된 한자로는, 현대까지도 이들 중 가장 익숙할 한자인 터럭 발(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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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髮의 금문 1, 2, 고문, 소전, 혹체, 예서 1, 2. 출처: 小學堂

髮의 금문은 지금과는 달리 개 견(犬)과 머리 수(首)를 합한 한자로, 현대식으로 예변하면 ⿰犮首로 쓸 수 있다. 이 한자는 지금의 髮처럼 머리털이라는 뜻으로도 쓰였고, 또 음이 같은 푸닥거리할 불(祓)을 통가해 쓰이기도 했다. 이 한자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아직 犬에서 犮이 분화되지 않아, 犮을 대신해서 犬이 소리를 맡은 형성자.

犬과 首의 뜻을 모두 이용한 회의자.

그러나 사람 머리털을 나타내는 한자인데 개를 굳이 넣어서, '사람 머리에 있는 개털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억지 같고, 형성자로 봐야 할 것 같다. 저 금문을 예변할 때 ⿰犬首가 아니라 ⿰犮首라고 하는 것도 형성자로 본다는 것이다.

금문의 이 형태는 《설문해자》에서는 표제자가 아니라 혹체로 나오고, 표제자는 首 대신 머리털이 길게 드리운 모습을 나타내는 드리울 표(髟)를 썼다. 그리고 또 고문으로 사귈/가로그을 효(爻)와 머리 혈(頁)을 합한 ⿰爻頁이 있는데, 머리털이 서로 엇갈린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예서 1은 소전을 본떴지만 髟가 아니라 길 장(長)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髟와 長이 원래 다른 글자였으나 서로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둘 다 머리털이 길게 드리운 사람의 모습을 본뜬 상형자라 그렇다. 두 한자를 구별하기 위해 소전에서 髟에 彡을 더해주었고, 예서 2에는 이것이 적용돼 현대의 髮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터럭 발(髮)은 예나 지금이나 인체의 털 중에서도 머리털, 즉 두발을 주로 가리키는 데 쓰이고 있다. 어원은 원시중국티베트어에서 깃털, 날개, 머리털 등을 뜻하는 어근인 *s-pu가 꼽힌다.


달릴 발(犮)은 개가 다리를 질질 끌며 달리는 모습을 가리키기에,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달리는 모습이나 질질 끄는 것, 길고 가는 것을 뜻한다.

炦(불모양 발)은 火(불 화)가 뜻을 나타내고 犮이 소리를 나타내며, 犮의 뜻을 따라 불이 길고 가늘게 일렁이는 모습을 뜻한다.

茇(풀뿌리 발)은 艸(풀 초)가 뜻을 나타내고 犮이 소리를 나타내며, 犮의 뜻을 따라 길고 가는 풀뿌리를 뜻한다.

紱(인끈 불)은 糸(가는실 멱)이 뜻을 나타내고 犮이 소리를 나타내며, 犮의 뜻을 따라 도장에 딸린 긴 끈을 뜻한다.

跋(밟을 발)은 足(발 족)이 뜻을 나타내고 犮이 소리를 나타내며, 犮의 뜻을 따라 달리는 것이나 밟는 것을 뜻한다.

髮(터럭 발)은 髟(드리울 표)가 뜻을 나타내고 犮이 소리를 나타내며, 犮의 뜻을 따라 길고 가는 머리털을 뜻한다.

또 길고 가는 잡초의 뿌리는 제거해야 하는 것이기에,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제거한다는 뜻을 지닌다.

拔(뽑을 발)은 手(손 수)가 뜻을 나타내고 犮이 소리를 나타내며, 茇의 뜻을 따라 손으로 풀뿌리를 뽑는 것을 뜻한다.

祓(푸닥거리할 불)은 示(보일 시)가 뜻을 나타내고 犮이 소리를 나타내며, 茇의 뜻을 따라 재앙을 제거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인 푸닥거리를 뜻한다.

軷(길제사 발)은 車(수레 차/거)가 뜻을 나타내고 犮이 소리를 나타내며, 茇의 뜻을 따라 길의 재앙을 제거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를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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犮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犮(달릴 발)은 犬(개 견)에 다리를 가리키는 丿을 더해, 개가 다리를 질질 끌며 달리는 것을 뜻하는 지사자다.

犮에서 拔(뽑을 발)·炦(불기운 발)·祓(푸닥거리할 불)·紱(인끈 불)·茇(풀뿌리 발)·跋(밟을 발)·軷(길제사 발)·鈸(방울 발)·韍(폐슬 불)·髮(터럭 발)·魃(가물 발)·黻(슬갑/보불 불)이 파생되었다.

犮은 파생된 한자들에 달리는 것이나 질질 끄는 것이란 뜻, 또는 茇(풀뿌리 발)의 뜻에서 파생된 제거하다는 뜻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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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我聞
24/12/27 22:13
수정 아이콘
낭패의 어원에 대한 말이 낭설이었습니까? 몰랐습니다.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계층방정
24/12/28 10:16
수정 아이콘
문헌적 근거는 있긴 한데, 낭이랑 패란 한자가 따로따로 쓰이는 용례가 없다 보니 억측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에 발이란 한자 조사하다 처음 알았어요. 항상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닥터페인
24/12/27 22:52
수정 아이콘
마침 오늘 발본색원(拔本塞源)이란 말이 언론에 나왔네요. 그 마음을 담아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계층방정
24/12/28 10:17
수정 아이콘
도량발호에 이어 발본색원까지 흉흉한 한 해 마무리군요. 아무쪼록 이 난리가 잘 수습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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