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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4/12 13:17:18
Name meson
Link #1 https://cafe.naver.com/booheong/230530
Subject [일반] [역사] 한국사 구조론 (수정됨)
마치 외국사를 보는 시선에서처럼 말한다면,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삼한일통(三韓一通)이었다고 선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한일통은 삼국통일이 아닐 수는 있어도 분명히 ‘한국통일(Unification of Korea)’이며, 이때 출현한 통일체는 그 뒤로 1910년까지 통일-회복성을 발휘하며 공고한 역사공동체로 확립되었습니다. 이 사이의 한국에서 왕국이 병립한 분열기는 오직 한 번이었으며 약 35년이었고, 외세에 의한 통치도 한 번으로 몽골의 다루가치가 약 8년간만 시행하였습니다.

따라서 한국사의 구조를 개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통일체의 성격을 규명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특히 고구려의 활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고구려가 [ 한국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유일한 정복 세력 ]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압록강 일대에서 발흥하여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정주민들을 모두 복속시켰고, 서쪽으로는 요동을 차지하여 중국과 접하였으며, 남쪽으로는 낙랑군을 점령함으로써 삼한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등장한 후대의 정복자들과는 달리 서쪽이 아니라 남쪽으로 정복을 이어감으로써 마침내 한국사에 진입했습니다.

이러한 ‘광개토’를 거치며 용맹한 기마전사였던 고구려인들은 점차 문명화했으며, 5세기에 평양으로 천도하고 한반도 중부를 점령한 뒤부터는 이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고구려는 한반도 전체를 정복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한반도 남부의 국가들은 동맹을 맺어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으며, [ 1세기 뒤에는 고구려를 옛 삼한 지역에서 몰아내기에 이르렀습니다. ] 이 과정 뒤에는 남부 역시 두 개의 국가로 재편되었으며, 그중 한때 고구려의 속국이었던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경쟁자인 백제를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 뒤에 신라는 영토 분할 문제로 당나라와도 전쟁을 벌여 백제 지역을 점유했으나, 고구려 지역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나라 역시 고구려 지역의 통치에 실패했으며 고구려인들은 곧 발해를 건국해 독립하였습니다. 신라는 이를 틈타 [ 옛 낙랑군에 해당하는 고구려 지역 일부를 차지함으로써 ] 평양 이남을 영유했습니다. 이것이 한국사에서 ‘통일 신라(Unified Silla)’ 혹은 ‘후기 신라(Late Silla)’라고 불리는 국가이며, 앞서 언급한 ‘삼한일통’을 천명한 국가입니다. 이 시기에 ‘삼한’은 더는 낙랑군 이남의 옛 소국들을 의미하지 않았으며,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를 가리키는 이칭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고구려의 정복이 [ 한반도 북부를 통합하여 한반도 중부와 연결시켰고, ] 이 연결이 훗날 신라에 의한 삼한의 확장을 유발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 확장은 고구려 지역 전체를 포괄할 수 없었으며 신라가 지배한 지역에만 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뒤를 이은 고려는 서북쪽으로 압록강까지 정복하여 삼한을 다시 확장시켰으며,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 역시 동북쪽으로 두만강까지 정복한 뒤 점령 지역을 삼한에 포함시켰습니다. 이것은 모두 ‘삼한일통’ 관념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고구려의 옛 영토는 모두 삼한의 영역이라는 명분에 의거한 일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고구려 남진의 피해자 중 하나였던 신라가 북진 당시에는 역으로 고구려와의 친연성을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14세기에 명나라가 몽골의 위상을 계승하려고 시도하고, 20세기에 중국이 청나라의 영토를 물려받으려 노력한 점을 연상시킵니다. 바로 이 맥락에서 고구려는 한국사의 서사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발해의 멸망 이후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한 국가가 한국뿐이었던 점은 [ 고구려를 삼한의 일부로 보는 인식 ]을 일반화시켰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사는 고조선, 부여, 발해 등을 포괄하게 되었는데, 이들과 삼한은 물론 고구려를 통해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간추려 말한다면 한국사의 구조는 북방과 남방이 고구려를 매개로 결합하는 형태를 띠며, 이 관점은 신라의 ‘삼한일통’ 선언에서 기원하였고, 그 결과 한국사는 ‘삼한’이 계속 북쪽으로 확장되는 전개를 보인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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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참치
25/04/12 17:05
수정 아이콘
이 관점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 게, 고구려를 한국사에 편입된 '정복 세력'으로 인식하는 것부터가 이상한 느낌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백제의 건국설화조차 (그게 진짜든 아니든)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만 봐도, 고구려는 그 건국 단계부터 이미 '한국사의 일원'이었지 외부의 세력이라 보기 힘들어 보입니다.
삼국시대 이전-직전 만주와 한반도의 구분이 그렇게까지 명확해 보이지도 않고요.
25/04/12 18:24
수정 아이콘
(수정됨) 한국사 체계를 소급 적용해서 고구려가 건국 당시부터 '한국사의 일원'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급 적용이 가능한 이유는 결국 고구려가 한반도 중부까지 남진했기 때문이죠. 고구려의 정복이 없었다면, (말씀하셨다시피)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백제 건국신화만 가지고는 고구려를 삼한과 한 덩어리로 묶을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원삼국시대에 만주와 한반도의 구분이 불명확했던 것은 맞는데, 그건 삼한의 경계가 낙랑군 이남이었기 때문이지 만주까지 삼한으로 인식되어서가 아니니까요.
사조참치
25/04/12 18:54
수정 아이콘
고구려가 만주만이 아니라 한반도 일대에서도 확고한 영역을 구축한 점은, 당연히 고구려의 역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보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하지요.
하지만 그것을 '한국사에 진입했다'거나 '유일한 정복 세력'이라고 보는 관점은 고구려를 '주류 한국사와 구분되는 외부 세력'으로 인식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당나라와의 협공 하에 이루었다고는 하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를 '남쪽의 정복 세력'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25/04/12 20:36
수정 아이콘
고구려가 '진입했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종족 계통 때문입니다. 낙랑군 이남은 삼국지 동이전에서부터 한(韓)으로 묶이는 반면에, 초기 고구려는 한(韓)으로 인식되지 않았죠. 부여, 옥저, 동예까지 합쳐서 대략 예맥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고구려가 예맥을 통일하고, 낙랑군을 정복하고, 삼한의 일부까지 정복한 덕분에 고구려를 한(韓)으로 부르기 시작한 겁니다. 이 인식이 이어져서 예맥을 한국사로 보게 된 거고요.

그리고 한국사는 한(韓)을 중심으로 전제하고 있으니, 고구려가 한(韓)으로 인식되는 과정을 '진입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죠.
사조참치
25/04/12 20:58
수정 아이콘
중국에서 고구려를 비하할 때 '맥'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까지 있는 거로 아는데... '고구려가 예맥으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말은 대체 어디에 근거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계에서도 일반적으로 예맥에 고구려를 포함시킬 텐데요.
25/04/12 21:02
수정 아이콘
위 대댓글을 보시면, [ 부여, 옥저, 동예까지 합쳐서 대략 예맥이라고 불렀어요. ] 라고 썼습니다.
당연하게도, '(고구려에) 부여, 옥저, 동예까지 합쳐서 대략 예맥이라고 불렀다'는 말입니다.
사조참치
25/04/12 21:07
수정 아이콘
아 그런 의미로 이야기하셨군요. 오독하여 죄송합니다.
다만 그렇게 이야기할 경우 '진입했다'는 표현은 더 이상해집니다. '삼한의 의미가 바뀌었다'고 해야지 '진입했다'고 하는 건 이상한 표현이라 보거든요.
25/04/12 21:15
수정 아이콘
고구려가 삼한으로 인식되면서 한국사의 구성요소로 진입했다는 느낌을 살리기 위한 표현인데, 어차피 고구려의 시작부터 한국사로 소급 적용할 것이니 굳이 '진입했다'고 하지는 않아도 되긴 합니다. 그냥 '삼한' 개념의 확장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읽어 주셔도 무방합니다.
사조참치
25/04/12 21:38
수정 아이콘
예. 이만 줄이려 했는데.. 중간에 급발진한 게 걸려서 또 글 남겨둡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사조참치
25/04/12 19:10
수정 아이콘
그리고... 확실치 않으니 유보한다는 의미에서 '진짜든 아니든'이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여러 기록들로 미루어 볼 때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성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 거듭 언급하고 있으니까요. 거기에 일본 쪽의 기록에서는 아예 부여와 연관짓기까지 한 거 보면...
물론 부여와의 관련성을 언급하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지더라도, 결국 백제 자체가 북방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죠.
심지어 그걸 고구려-백제의 건국단계(온조왕 이야기할 때 고구려 건국 시조인 주몽을 함께 이야기하니)에서 계속 언급하는 점도 유의미한 지점입니다. 고구려의 건국 시점부터 이미 한반도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음을 보여주니까요.
25/04/12 20:56
수정 아이콘
백제 왕실은 처음에는 고구려 출자를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부여 출자를 주장했는데, 주장을 그렇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한다면 신라 왕실이 흉노 출자를 주장한 것은 신라 기마민족설의 근거가 될 것이고, 고려 왕실이 당나라 출자를 주장한 것은 고려 중국인설의 근거가 될 것입니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고고학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백제의 고구려 출자설은 물론 고구려의 부여 출자설조차도 물질문화의 변화와 잘 조응하지 않고 있죠. (참고: https://cafe.naver.com/booheong/220862 )
사조참치
25/04/12 21:00
수정 아이콘
위의 예맥에 고구려 포함되지 않는다도 그렇고 민간의 독자연구에 근거하시는 말씀을 자꾸 하시는 느낌이네요.
그리고 '정복세력'과 '기마민족'은 등치어가 아닙니다;; 개념 정의부터가 뭔가 이상한데요.
삼국사기/삼국유사와 같은 가장 권위 있는 사료의 내용을 부정하려면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질문화의 변화 이런 다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말씀하시는 근거들을 보니 솔직히 더 이상의 이야기는 의미없다고 생각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25/04/12 21:04
수정 아이콘
예맥에 고구려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적 [ 없습니다. ]
'정복세력'과 '기마민족'을 등치어로 주장한 적도 [ 없습니다. ]
의견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건 이해하는데, 정작 제 대댓글을 잘 읽지 않으시고 말씀을 하시니 저도 좀 곤란하네요.
사조참치
25/04/12 21:1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일단 위에서 구절을 오독한 건 사과드립니다. 정식 근거가 아닌 카페 가입을 해야 볼 수 있는 글을 출처로 가져오셔서 민간 독자연구에 근거하는 주장을 하시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현재의 정설을 부정하려면 더 많은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백제가 출자를 주장했다거나 물질문화의 변화 등은 일부 소논문 등지에서 주장하는 바이지만 그것이 '정설'로 인정되었는가부터, 그러한 주장이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의 문헌에서 백제의 뿌리를 고구려에서 찾는 것을 반박할 정도인가는 다른 이야기니까요.
위에서 이야기된 대로 부여-고구려가 같은 '맥'인 것도 그렇고, 백제가 부여-고구려 출자를 차례로 주장한 것부터가 이미 상호관계성을 강하게 보여주는 셈입니다. 신라 기마민족설/고려 중국인설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요. 오히려 밑에 인용하신 '백제 국가형성사 연구의 발전을 위한 제안'과 같은 논문에서조차 "마한문화과 예계문화권은 선으로 명확하게 그어질 수 있는 성격의 공간이 아니다"(242쪽) 같은 표현을 쓰고 있으니까요;

암튼 이 정도로 하고 줄이겠습니다.
25/04/12 19:41
수정 아이콘
고조선 준왕이 마한왕이 되었다는 기록이나 백제의 부여 계승의식, 신라가 고조선 유민의 후예라는 기록 등을 보면 고구려의 남진이 없었더라도 "한국사 진입"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한반도 중부 / 만주와 북부 (뭐 여기서 한반도의 중북부의 정의도 지리적이진 않죠. 사실상 한국의 영토를 지리상 한반도로 규정하니)가 분리됐다 보긴 힘들다고 봅니다. 물론 본문에선 말한 고토회복 수준의 명분을 가질 정도는 못 됐겠지만요

삼한일통 의식이 현 통합된 한국사의 시작이라는 건 동의합니다. 이걸 무시할수록 오히려 고구려는 우리 역사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라 봅니다.
25/04/12 21:00
수정 아이콘
'한국사에 진입'했다는 문구를 '삼한의 일원으로 진입'했다고 읽으셔도 전체 맥락에는 별 차이가 없긴 합니다.
25/04/12 21:23
수정 아이콘
그렇게 되면 한국사 = 삼한이 돼버리니 맥락에서 차이가 발생합니다. 본문에서 명시하신 "통일체" 상태의 한국사까진 맞겠지만, 본문의 논리를 적용해도 고조선, 발해 같은 케이스가 애매하게 발생해 버립니다. 본문에서 쓰신 대로 직접적인 게 아닌 고구려를 통한 연결이 돼버리니까요. 이 부분은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25/04/12 22:53
수정 아이콘
한국사=삼한이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예맥이 고구려를 매개로 삼한에 결합하여 한국사를 구성한다는 것이 본문의 논지이지만, 고조선·부여·발해 자체도 한국사와 직접 연결될 수 있죠. 다만 저는 삼한 개념의 확장이 이러한 연결을 더 주목하게 하는 일종의 프레임을 제공해 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요.
카서스
25/04/12 21:06
수정 아이콘
무덤 양식, 여러 기록과 설화로 볼때 3세기경 고구려계 세력이 남하하여 토착세력과 결합되었고 이들이 백제를 건국했다가 정설로 알고 있는데...
관련 논문이나 연구 결과가 있을까요?
25/04/12 21:1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석촌동 고분군을 원래 그렇게 해석해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논의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관련하여 위 링크에서 언급한 논문들은 다음과 같네요.

권오영, 「백제 국가형성사 연구의 발전을 위한 제안」, 『한국사론』 67, 2021, 227-253.
김진영, 「원삼국~백제 한성기 중부 동ㆍ북부지역 적석분구묘의 재인식」, 『백산학보』 123, 2022, 5-51.
신광철, 「임진강 유역 점유 세력의 변천 -백제・고구려의 관계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5-44.
이형원, 「서울·경기지역의 마한·백제 주거 연구」, 『고고학』 18(1), 2019, 33-66.
임영진, 「서울 석촌동 집단토광묘의 구조와 축조배경」, 『백제학보』 30, 2019, 89-111.
정치영 외, 「새로 찾은 ‘양평 양근리 적석총’의 현황과 특징」, 『백제학보』 30, 2019, 227-249.
정치영, 「2020년 서울·경기·강원지역의 백제 고고학 조사 연구 성과와 전망」, 『백제학보』 37, 2021, 5-36.
카서스
25/04/12 21:3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요즘 이쪽에서 새로운 주장이 나오고 있나 보군요? 재밌게 읽어보겠습니다.
전기쥐
25/04/12 23:49
수정 아이콘
그런 시점에서 생각해볼 때 한국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신라 문무왕, 고려 태조죠.
조던헨더슨
25/04/13 00:37
수정 아이콘
요도 고구려 계승 표방한 적 있지 않나요? 1차 여요전쟁 때 고구려 계승한다고 주장했던 걸로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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