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까 유게에
https://pgr21.com./?b=10&n=262628 글을 올린 Danpat 입니다.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각색한 것으로, 지인이 작성해서 카톡에 올린 것을 지인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원래는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 때문에 자게 대신 유게에 올렸었는데요, 글을 조금 덧붙여서 자게로 가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어 이걸 어떻게 나게에 보낼까 고민하다가.. 제가 생각한 시에 대한 해석을 단편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한 번 적어보았습니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쓴 것으로, 여기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이력 헤는 밤>
계약이 지나가는 시즌은
이력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이력 속의 글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이력 속 하나 둘 새겨지는 회사를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만료가 오는 까닭이요
월급날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력 하나에 추억과
이력 하나에 회사와
이력 하나에 계약직과
이력 하나에 동경과
이력 하나에 통장과
이력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이력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적어봅니다.
인턴쉽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궈, 징,
췐 이런 외노자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취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흙수저들의 이름과, 닭둘기,
개**, 토쟁이, 노력, 노오력,
이런 꼰대들의 어록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전업주부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이력이 나린 회사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걸레도 닦아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하는 고시생은
부끄러운 이력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계약이 끝나도 나의 이력에도 정규직이 오면
그린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박힌 통장 위에도
자랑처럼 숫자가 무성할 게외다.
* 소설:
곧 있으면 지금 하고 있는 알바가 끝난다. 학원에서 애들 자습 감독하고 숙제 봐주는 일인데, 원장님이 요즘 많이 힘드신지 이번 달 까지만 하고 당분간 학원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하긴 내가 봐도 애들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 이거 끝나면 다음엔 무슨 알바를 구해야하나 싶어서 인터넷에 올라온 알바 자리를 알아보다가 내 이력서 파일을 열어보았다. 그 동안의 흔적을 죽 읽어보며 속으로 참 이것저것 많이도 했다고 생각했다. 공장에서 기계부품 나르는 일, 편의점에서 카운터 보는 일, 카페에서 커피 타는 일, 식당에서 주방보조 하는 일까지. 별 생각없이 그때 그때 구해지는 대로 하다보니 실속없이 이력서만 길어졌다.
그래도 나름 대기업 인턴도 한 번 해보긴 했다. 정규직 전환이 안돼서 그렇지. 같이 인턴하던 친구 중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애가 페이스북에 자랑하는 걸 보면서 나는 페이스북 계정을 지워버렸다. 공장에서 일할 때 만났던 외국인 애들은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대학교 간다고 비자받고 한국와서 공장에서 몰래 일하던 중국애는 이름이 첸 뭐시기였는데, 내가 중국어를 몰라서 그런가 기억이 안난다. 카페에서 같이 일하던 이쁘장한 여자애는 무슨 소개팅 어플을 하더니 결혼하고 애엄마가 됐고, 나랑 사정이 비슷한 친구들은 흙수저답게 아무 알바나 하고 있겠지. 같이 알바하던 애들 중에는 그나마 내가 고학력자다. 나름 인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까. 맨날 토토나 하면서 최저시급이랑 주휴수당 빼먹으려고 용쓰던 편의점 사장놈이 생각난다. 최저시급 못줄거면 장사를 하지 마 이 강아지야. 꼭 법 안지키는 놈들이 노오력은 더럽게 강조해요. 지금 생각하면 다 옛날 일들이다.
대학에 처음 입학할 때는 나도 이렇게 많은 알바를 하게 될 줄 몰랐다. 알바라고 하면 편하게 책상에 앉아서 애들 가르치는 과외나 할 줄 알았지. 서울에 친척도 없고 대학도 그저 그렇다보니 과외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하긴 내가 학부모래도 스카이 나온 애들한테 과외 맡기지 나 같은 인간한테 누가 맡기겠어.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잠깐 울컥했다. 우리 엄마가 이러라고 나 대학 보내준거 아닌데.. 엄마는 내가 대학 졸업하고 고시를 패스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해서 편하게 돈벌기를 바라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미래는 그렇지 않다. 엄마한테 세상이 변했다고, 서울대 나와도 별거없다고 수 십번 말해봐도 어릴 때 똑똑했던 내 모습만 기억하는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성공할 거라고 믿는다. 나도 옛날엔 엄마말 믿고 밤에 알바하면서 낮에 고시공부를 해봤는데.. 1차에서 몇 번 떨어지고 나니까 이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언제쯤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지하철에서 내릴 때 지금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알바를 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 회사에 일하러 가는 길이 되는 꿈을 꾼다. 설날이 되면 파란 넥타이를 매고 집에 내려가서 상여금 받은 내 월급통장을 보여주며 엄마한테 갖고 싶은거 있으면 사라고, 저번에 말했던 김치냉장고 얼마 안하는 거 같은데 이번에 사자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