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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5/06 20:34:40
Name 지하생활자
Subject [일반] 응급실 #4

# 응급실에는 인턴이 차팅하는 컴퓨터가 정해져 있다. 그곳에서 기다리다가 새로운 환자가 왔다는 소식이 뜨면 수첩과 펜을 챙겨 나가 신환(새로 온 환자)의 병력청취를 하는 것이 인턴의 주 직무이다. 인수인계를 받고 처음으로 일을 시작했던 그 날, 환자가 물밀듯이 쏟아져들어왔다. 지금 내가있는 병원은 중한 환자가 많기로 유명한 병원이고 그래서 지원했지만, 이정도로 환자가 많을줄은 몰랐다. 차팅이라는 작업은 환자의 병력, 병이 어떤 양상인지, 어떤 동반증상이 있는지, 다른 만성질환이있는지 등을 물어보고 적는 작업이다. 이 차팅 작업은 의사의 지식과 능숙도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천차만별이다. 교수님 정도 급의 경험이 있으면, 몇 가지를 물어보기만 해도 질환에 대한 Impression이 잡혀 정말 필요한 질문만 하지만, 의사 일을 이제 하기 시작한 우리는 어떤 증상에 대해 물어보아야하는 질문 목록을 핸드폰에 저장하고 다니며 혹여나 잊어버리는 순간에 꺼내서 물어보곤 한다. 문제는, 필수적으로 물어보아야하는 질문 목록이 꽤나 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사 국가고시 볼 때 연습했던 것 처럼 최대한 환자 말을 끊지 않고 친절하게 물어보며 병력청취를 하였다. 그렇게 하다보니 병력 청취하는 속도가 느려 환자들이 병원에 유입되는 속도에 맞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차팅을 해야 세부 과에 노티가 되는데, 차팅 속도가 느리면 상위 과에 노티하는 속도도 느려지고, 결국 응급실에 정체되는 환자가 늘어난다. 환자의 유입속도 Inflow와 환자를 해결하는 속도 outflow사이에서 응급실에 정체되는 환자의 수와 시간이 결정된다. 
 결국 병력 청취의 속도를 올리기 위하여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불친절이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병력이 우리가 궁금한 내용이고, 그 외 다른 내용은 증상이 크게 심하지 않으면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실, 예를 들어 어지러움증의 지속시간을 물어보았을 때 단박에 5분 정도요, 라고 내가 필요한 대답을 해주는 환자는 오히려 드물다. 지속시간을 물어보았는데 가정사 얘기가 나오던가, 이전에 겪었던 두통, 본인의 의학적 추리를 마구 쏟아내는 사람이 훨씬 많다. 내가 보아야하는 환자는 쌓여있는데 이렇게 동문서답하는 환자의 썰을 듣고 있으면 환자들에게 화가 난다. 환자의 말을 끊고 공감이나 라뽀사 없는, 심문에 가까운 병력 청취가 이루어진다. 물론 잘 하시는 분들은 심문을 하여도 친절한 말투, 웃는 얼굴로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인턴인 나는 그럴 여유를 부릴 수 없다. 같이 근무하는 인턴이 몇명만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두번 한 것이 아니다. 왜 인력난이 해결되지 않을까? 왜 모든 병원이 인력이 소화할 수 있는 양보다 환자가 많은 것일까? 병원이 살려면 인건비를 줄여야하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이 다른 병원보다 이윤이 더 많이 남는가? 맞다, 그러나 이윤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나머지 병원은 적자이거나 겨우 현상 유지를 하는 정도이고 우리병원만이 흑자를 내는 정도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일하는 양이 많은대신 더 많은 급여를 받는가? 인턴은 응급실에서 일주일에 84시간 (실제로는 넘게) 일하고 최저임금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 돈을 받는다. 결국 내가 이렇게 불친절 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애당초에 수가가 낮게 책정되어있기 때문이고, 우리나라 의료가 가격을 위해 친절함/라뽀를 희생한 것이라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근무를 하던 도중이었다. 대기 환자 목록 창에 11/M T-star라고 떠 있었다. 방금 119에 실려 온 그 사람일 것이다. T-star가 뜨면 외상에 관련된 여러 과에게 모두 연락이 가고, 모두 10분 안에 응급실에 내려와서 visit을 찍어야 한다. 각 과의 던트 선생님이 오기 전에 119에게 환자가 어떻게 다쳤는지, 대략 무엇이 의심되는지 파악을 해 놓는 것은 응급실 인턴의 일이다. 119 대원에게 가서 어떻게 다친거냐고 물어보았다. 자전거를 타던 도중 덤프 트럭과 부딪혔다고 한다. 정확한 사고 기전은 기억나지 않고, 왼 손 새끼 손가락이 near amputation 이라고 한다. 왼 손을 감싸고 있는 붕대를 풀어보니 새끼 손가락 뿐 아니라 거의 손목까지 (해부학 용어로는 metaphalangeal bone)까지 손에서 뜯겨져있었다. 근육인지 신경인지 모를 하나의 가느다란 것이 새끼 손가락과 나머지 손바닥을 간신히 이어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많은 상처를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처럼 소름 돋았던 적은 없었다. 상처의 심각성 보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환자가 아직 11살 밖에 되지 읺았다는 점이었다. 수술이 잘 되어도 새끼 손가락은 이전처럼 움직이기 힘들테고 잘 안된다면 그는 평생 새끼손가락과 손바닥의 1/5가 없는 상태로 살아야 할 것이다. 아직 사고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이 환자는 가만히 누워있으며 질문에 답변하고 있었다. 다른 부위의 손상은 없다고 판단되었고 손의 절단은 성형외과에서 수술하기에 성형외과가 담당과로 연결되고 수술 들어가기 전에 evaluation을 진행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현실은 장이 튀어나와있는 정도의 환자가 아닌 일반적으로 위급한 환자면 수술방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바로 수술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전신 마취와 수술을 견딜 수 있는 상황인지 확인을 꼭 한다. 심장은 괜찮은지, 폐 기능은 괜찮은지, 혈액은 잘 응고되는지, (외상 환자의 경우) 다른 부위에 상처는 없는지. 전신 마취라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이고 잘못되면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철저히 검사한다. 이 때문에 병원에서 바로 수술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이러한 각 장기의 evaluation이 다 끝난 후에 수술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고, 병원도착 1-2시간 후에 수술방에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11살 자전거 타던 애기는 그렇게 1시간 반 째 응급실에서 대기중이었다. 허벅지에도 상처가 있던 애기를 수술방 올라가기 전에 허벅지를 꼬매기 위해 처치실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 아이의 부모가 나에게 소리지르기 시작했던 것은. 
"왜 바로 수술 안해주는거야!!!, 올때는 바로 된다며!!"
그 아이의 찢겨진 손을 보았던 나는 충분히 그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차분히 설명을 하려 하였다. 
"모든 수술실이 수술중이고, 검사가 끝나야지 올라가실 수 있습니다" 
"다리 꼬매고 그러는건 수술방 들어가서 하면 되는거 아니야!! 이 xx 빨리 수술하라고!!" 
눈울 한껏 부릅뜨고 목에 핏줄을 세우며 샤우팅 하는 모습에 나도 본능적으로 감정이 폭발했다. 
"지금 바로 못 올라가고 성형외과 선생님이 필요한 검사 다 끝나면 올라갈거라고요!" 
의사가 이렇게 소리지를거라고 생각은 못했는지 조금 움츠러들었다가 다시 소리지른다. 그러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보안요원과 간호사, 성형외과 이년차 선생님이 달려와 아버지를 끌어내려고 한다. 
"이런 절단된 케이스는 한두시간 지체된 것으로는 예후에 변함이 없어요, 오히려 전신마취 검사 안하고 걸면 사망할 수도 있어요!" 성형외과 이년차 선생님이 얘기를 하자 그 아버지는 "xx 올때는 바로 된다며!! 이십분안에 못올라가면 딴 병원 갈거야!!" 소리지르며 안전요원에게 문 밖으로 끌려 나갔다. 
 나는 저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을 해 주고 있는데, 왜 저런 분노를 받아야하고 욕을 들어야 하는건가?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곳에는 학교에서 배운 친절함과 공감이 설 자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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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06 21:10
수정 아이콘
그곳이 바로 생과 사가 갈리는 그곳이라 그리고
일반인은 더 아는 것이 없어 그런거라고 생각 하시는것이 좋지 않겠나 싶습니다.
물론 이것도 충분히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환자와 그 가족과
또 의사는 전부 각기 처한 상황이 다르니까요..
개리지효
16/05/06 21:18
수정 아이콘
마취과로써 이해는 가지만 황당할때도 많죠.
마취할필요없이 살짝만 재우고 움직이지 않게만 해달라는 정형외과나(그거랑 마취랑 뭐가 달라요??)
바이탈도 안잡히는 환자를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외과를 보면 느는건 한숨뿐이지만, 어쩌겠습니까. 각자 입장이 다른걸요.
다들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들 합니다.
환자분들 보호자분들 조금만 너그러이 봐주시길
16/05/06 22:01
수정 아이콘
모르는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설명을 해줘도 억지를 부리는건 답이 없죠..
최종병기캐리어
16/05/06 22:10
수정 아이콘
하지만 당장 내 자식이 내 눈 앞에서 피를 펑펑 흘리면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기다리세요'라고하면 누구나 눈이 뒤집혀 질 수 밖에 없다는거...
싸구려인간
16/05/06 23:39
수정 아이콘
내 자식이 눈앞에서 피를 펑펑 흘리면서 괴로워하고 있지만

당장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수술에 들어가기 위해 꼭 필수적인 검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했는데도 누구나 눈이 뒤집혀야만 하는걸까요...

자기 가족 고통이 무조건 최우선이고, 자기 가족부터 봐줘야한다는 이기적인 마음때문에 얼마나 응급실이 전쟁터가 되는지...

'내 가족이 아프기 때문에 내가 하는 항의는 모두 옳은것이고 내 행동은 당연한 것이다. 이해받아야한다' 라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16/05/06 23:43
수정 아이콘
근데 제대로 된 응급실이라면 피가 "펑펑" 나는 상황에서는 그냥 기다리세요 하고 내버려두진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지혈을 하든지 지혈제를 주던지 수혈을 같이 해 주던지 뭔가 조치를 취하거든요
이 글의 환아의 경우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싸구려인간
16/05/06 23:46
수정 아이콘
댓글에 빗대에 예를 들다보니 중요한 걸 적지 않았군요

'적절한 조치가 취해진 후'가 전제조건이겠죠
클라우스록신
16/05/06 22:14
수정 아이콘
많이 배우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라일라
16/05/06 22:31
수정 아이콘
다급한 건 알겠는데 다급하면 의사에게 막말하고 소리질러도 되는 건 아니지요. 저런 일이 벌어지는 건 가족이 심하게 다친 상황이라면 '그래도 된다' 또는, 적어도 '그러면 안 되긴 하지만 용납되는 범위다' 정도의 생각이 있기 때문인것 같기도 합니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의사가 아니고 경찰이라면 저런 경우가 훨씬 줄어들 텐데요.. TV가 문제인 걸까요..
토니토니쵸파
16/05/06 23:51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진짜 TV가 문제라고 봅니다.
급한 상황이면 의료진들에게 화를 내고 난동을 피우는게 우리나라 영상물의 클리셰 중에 하나니깐요.
그리곤 아무 문제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죠.
이로써 난동을 피운 사람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정표현과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라고 보여집니다.
16/05/06 23:26
수정 아이콘
하지만 환자가 많아도 무조건 친절하게 해 주길 바라죠. 그래서 참다참다 다들 울컥 하는 거고 아님 내공 쌓이면 ARS/앵무새 모드로 일관하게 되구요.

ER의 understaffing 문제는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수가가 우리보다 훨씬 현실적인 국가에서도 의료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피할 수가 없더라구요
다만 그 문제에 대해서 니들이 끌어안고 죽든지 말든지로 일관하는 우리나라 당국과 달리 타국에서 제시되는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그 중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 현실적으로 도입해볼 수 있는 방법은 일단은 경환/중환 분리 정도를 꼽고 싶습니다. 그 미국 ER조차도 환자 몰리거나 대량재해 생기면 경환들은 말 그대로 '방치'되거든요.
연필깎이
16/05/07 00:07
수정 아이콘
제 이해의 지평이 한뼘 더 넓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자루스
16/05/07 01:03
수정 아이콘
참 씁슬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참 안타갑네요. 1주 84시간이라니 쩝~!
한국에서는 어느 조직이나 쥐어짜야 한다가 정론이군요.
무릎부상자
16/05/07 02:07
수정 아이콘
시스템의 문제라고 봅니다.. 축약해서 말하자면요
yangjyess
16/05/08 15:01
수정 아이콘
응급실 행패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환자, 환자 보호자라는 이유로 너무 봐주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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