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2/18 01:58:46
Name Right
Subject [일반] 자유의 역설
나에게 자유는 대체로 옳은것처럼 보인다. 자유의 반대말이 속박이라면, 나에게 행동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당연히 좋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선택지가 늘어날때, 내 마음은 더 불안하다. 실제로 마트에서 20종류의 잼 중에 하나를 고르는거랑 3종류 중에 고르는거랑 비교하면 3종류에서 고르는게 더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그런면에 있어서 글쓰기란 최악(?)의 자유도를 보여준다. 첫 단어부터 무수한 선택지가 놓여있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첫 대화를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좋네요', '오버워치 하세요?' 중 어떤걸로 해야할까? 미연시게임처럼 이렇게 세 개의 선택지 중에서 고를 수 있다면 참 편할텐데. 말의 내용 뿐만 아니라 음의 높낮이, 어조, 억양, 얼굴 표정, 몸짓, 시선처리 등등 우리의 자유는 이렇게 무한대로 펼쳐진다. 이런 것들에 대해 '내가 잘하고 있나' 하고 신경쓰게 되면 긴장이 되고 불안을 느끼게 된다.

자유를 내 식대로 정의하자면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근데 여기에 반론을 해보자면 '인간은 원하는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인가'라고 의문이 들 수 있다.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별 쓸데없는 잡생각, 잊고 싶은 기억들이 계속 머리에 떠오르고, 매일 성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 그래서 다시 정의하자면 '나의 생각과 행동을 타인에게 제한받지 않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자유에 제한을 가한다. '스터디 모임'에 가입해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부여해 공부를 하며, 편한 집을 놔두고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가서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불편하게 공부한다.

누군가가 내 자유를 강제로 제한한다면 화가 날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자유가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유를 있는 그대로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인간의 능력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원하는대로 통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는데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자신을 통제하려는 데에 있다. 역사 이래 최대로 주어진 자유 앞에서 그것을 충분히 누리며 성실하게 살지 않는 자신을 보며 괴로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큰 숙제는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무수한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9/02/18 03:0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이제껏 큰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 든 생각이 알아서 될 일은 알아서 되게 내버려 두는 게 좋다는 건데
본문 내용 중 [~ 통제 할 수 없음을 깨닫는데 있다.] 이후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출입문옆사원
19/02/18 09:07
수정 아이콘
자유를 대부분 버거워하다 권위주의에 자신을 의탁하고 결국 파시즘에 빠진 무수한 사례가 있죠.
19/02/18 14:38
수정 아이콘
대표적으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있죠. 읽어보려고합니다.
19/02/18 09:46
수정 아이콘
그래서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자유는 최대한 제한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게 보편적인게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첸 스톰스타우트
19/02/18 11:10
수정 아이콘
목적 달성을 위한 효율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행동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걸 군대에서 아주 잘 느꼈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HA클러스터
19/02/18 11:11
수정 아이콘
쓰신 글이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이란 말과도 일맥상통 하네요. 요즘 자주 올라오는 결혼 찬반글도 사실 보면 비혼의 자유 및 불안, 결혼의 부자유 및 안심-안정감과의 대결로도 볼 수 있겠죠. 자유와 제한를 적절히 조절해서 심적 안정을 찾는 것도 인생의 행복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데 말이 쉽지 저 자신이 행하려고 하니 너무나 어렵습니다.
19/02/18 14:38
수정 아이콘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는 선택이 참 어렵습니다. 얼핏 보면 자유가 더 좋아보이거든요. 자유에서 행복을 느끼는 인간이 되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은 부자유의 가치에 대해 논하는 글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답이머얌
19/02/18 11:50
수정 아이콘
말로 표현하니까 그렇지 이미 어릴때 부터 느끼던 문제였죠.

어릴때 더운날에는 사이다 아니면 콜라, 쭈쭈바 아니면 브라보콘 밖에 선택지가 없었죠.

그리고 그 중 하나를 고르면 행복했죠.

지금은 편의점 들어가면 오만가지 좋류가 있고, 거기서도 1+1 혜택이 달리면 별로 안좋아해도 싼맛에 선택할까 하는 갈등까지.

막상 고르고 나면 첫 입맛을 느끼면서 '아까 그걸 골랐어야 하는데...'라는 어처구니없는 후회까지.

좀 더 사고를 확장하면 자유 연애 하느라 쓰는 에너지(그것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나중에 후회하고 이혼까지 가는) 쓰기보다 예전에 부모님이 정혼자 정해준대로 결혼하고 사는게 인생 만족도가 어쩌면 더 놓았을지도? 라는 뻘생각까지 하게됩니다.
19/02/18 14:41
수정 아이콘
많은 선택지들을 게임에 나오는 것처럼 수치화해서 계산할수 있다면 선택지가 많을수록 좋겠죠. 근데 실제론 너무 모호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걸 축복이라고 봐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이비군
19/02/18 14:29
수정 아이콘
저도 그래서 자유도 높은 게임들 현기증나고 jrpg가 좋습니다
19/02/18 14:33
수정 아이콘
오픈 월드 게임이 참 시작하기가 어렵더군요
비가오는새벽
19/02/20 09:52
수정 아이콘
와 한자한자 많은 생각의 결과물이 나온듯한 문장들이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추천 꾹~
19/02/20 12:2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0164 [일반] 녹지국제병원(제주도 영리병원)이 내국인도 진료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32] 홍승식12411 19/02/18 12411 2
80163 [일반] 개발운영진 두 분을 모셨습니다. [39] 당근병아리6736 19/02/18 6736 23
80161 [일반] 통계청, 개인정보 공개 동의 없이 금융정보수집 추진 [170] 사악군15068 19/02/18 15068 55
80160 [일반] 자유의 역설 [13] Right7091 19/02/18 7091 10
80159 [일반] 양보운전 감사합니다 [48] 사진첩9528 19/02/17 9528 6
80158 [일반] 삼국통일전쟁 - 12. 백제는 죽지 않았다 [9] 눈시BB9842 19/02/17 9842 24
80157 [일반]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어떻게 될까 [61] 안초비9840 19/02/17 9840 0
80156 [일반] [북한] 북한 관련 중요한 소식 두 가지 [73] aurelius13661 19/02/17 13661 10
80155 [일반] 친하지만 솔직히 안 친한 친구 [28] 2213997 19/02/17 13997 20
80154 [일반] 병역거부, 대체복무제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 [62] 모아8589 19/02/17 8589 1
80153 [일반] 2018년 방송심의에서 양성평등 제재는 왜 늘었나? [145] 라임트레비11375 19/02/17 11375 6
80152 [일반] 이제 마음 편하게 살긴 틀린게 아닐까요 [32] 루트에리노11614 19/02/17 11614 16
80151 [일반] 북유럽식 교화 모델의 효과(재범률)? [12] 플플토10566 19/02/17 10566 9
80150 [일반] 부자가 되는 법 [60] 절름발이이리12074 19/02/17 12074 18
80149 [일반] 학창시절 공부 열심히 하신분들 현재 상황에 만족하십니까? [138] WhiteBerry17218 19/02/17 17218 11
80148 [일반] 에어프라이어를 사야하는가? [96] 청자켓19279 19/02/16 19279 0
80147 [일반] 우리체크카드 이용시 소소한 이벤트가 있습니다. [8] style8394 19/02/16 8394 1
80146 [일반] LG U+가 CJ헬로를 인수해 유료방송 점유율 2위가 되었습니다. [14] 홍승식10529 19/02/16 10529 1
80145 [일반] 젠더 이슈와 극단적 과잉 반응: 여가부 '가이드라인'의 짧은 역사 [144] 라임트레비14819 19/02/16 14819 17
80143 [일반] 경주 스타렉스 고의추돌사건 한문철Tv도 나왔네요 [28] 자연스러운10721 19/02/16 10721 1
80141 [일반] 애들싸움이 어른싸움되면 안되는데. (늦은 후기) [27] 탄이11119 19/02/16 11119 16
80140 [일반] 캐나다 의사가 미국으로 이주? 이제는 그 반대 [60] 달과별18290 19/02/16 18290 2
80139 [일반] 영화 극한 직업: 역대 흥행 기록 2위??? [68] 가자미14787 19/02/15 14787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