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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5/26 16:00:56
Name 서양겨자
Subject [일반] 피해자 의식의 범람 - 언론은 왜 항상 저들의 편일까? (수정됨)
(전략) 게다가 이런 식으로 개별적인 집단이 문어항아리화하고 더욱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범위가 점점 더 확대됩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가 점점 더 큰 사회로 발전하게 되면, 각자가 속해 있는 집단 상호간의 이미지 충돌이 점점 더 강하게 인상지어집니다. 게다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이라는 것은, 사회가 방대해짐에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세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그 집단 자체의 눈에는 아주 작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는 각자의 그룹이라는 것이 각각 자신들을 마이노리티(minority)로 의식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각자의 그룹이 각각 일종의 소수자의식, 아니 과장해서 말하면 강박관념 -자신들은 무언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압도적 세력에 둘러싸여 있다는 식의 피해의식을, 각 그룹 특히 집단의 리더가 각각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씨가 전면강화를 주장하는 저명한 한 학자를 가리켜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로 매도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 공격의 대상이 된 학자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어이없는 딱지이며, 그 학자의 전쟁 중 혹은 전쟁 이전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야말로 곡학아세라는 타입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요시다 씨는 그 학자를 아마 정말로 곡학아세하는 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실제로 요시다 씨만이 아니라, 이른바 일본의 올드 리버럴리스트(old liberalist)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적잖게 그런 요시다 씨의 말에 은근히 혹은 공공연하게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현대일본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자신들이 일본에서 압도적인 힘을 가진 진보적 세력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도도하게 흐르는 속론(俗論)에 맞서서 폭풍우 속의 등불을 지키고 있다는 그런 기분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반대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완전히 사태는 거꾸로여서, 그런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나 그것을 떠받쳐주고 있는 세력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또 적어도 현재는 적극적 의견으로서는 아닐지라도 소극적인 동조로서 다수 국민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진보파의 논조는 겨우 한둘의 종합잡지에서 우세할 뿐이고, 현실의 일본의 궤적은 대체로 그것과 반대되는 방향을 걸어왔습니다. 속론에 맞서는 마이노리티는커녕 국민의식에서는 머저리티(Majority)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보수세력조차 피해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진보적인 문화인들에게는 한층 더 그런 마이노리티로서의 피해자의식이 있었습니다. 보수세력도, 진보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민주사회주의자도, 코뮤니스트도 모두 정신의 깊은 곳에 소수자의식 혹은 피해자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전체 상황에 대한 퍼스펙티브(perspective)가 서로 어긋나 있는 것입니다. 흔히 매스커뮤니케이션이 만능이라 말하는 것을 자주 듣곤 합니다. 곧 말씀드리겠지만, 확실히 일본에서는 특히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획일화 작용은 강대합니다만 개개의 신문기자를 만나보면 결코 그런 사람들은 매스커뮤니케이션 만능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꾸로 일반적으로 신문(에 대한) 비판에 대해 매우 신경질, 신경과민이 되어 있습니다. 신문에 대한 공격이나 비판이 너무 많아서 언제나 그 나름대로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일본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관료들이라는 것도 많은 사람들의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제 고등학교나 대학 친구들 중에는 당연히 관리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같은 반모임 같은 데 나가 보면 국장이나 부장급 관리들이 역시 피해자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깥 사회에서 보면 관료는 현재 아주 거대한 권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당사자인 관료 자신들은 지배자라고 할까 아니면 권력자라고 할까, 그런 의식을 놀랄 정도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리라는 것은 사방팔방에서 공격받고, 정당의 간부들로부터는 쿡쿡 찔리고, 신문으로부터는 눈엣가시와도 같다는 말을 듣는, 그야말로 겉과 속이 아주 다른 직업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 신문의 이른바 ‘여론(世論)’은 그런 관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같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이어서 그것에 대한 심한 초조, 고립감, 혹은 분노 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입장이나 논리는 전혀 통하지 않으며, 또 통하게 해주지도 않는다는 고립감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 전체가 모두 피해자뿐이며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다는 기묘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런 의식이 어느 정도의 환상(illusion)인가 하는 것은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자신의 ‘세상’에 대한 기대가 매스컴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과 하나가 되어 다른 세력 혹은 집단에 대한 이미지를 낳고, 그 이미지가 사방팔방에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곳, 게다가 인간관계가 문어항아리형이어서 그들 사이의 자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곳에서는 자연히 그런 사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마루야마 마사오, 1957.


예전에 옮겼던 글입니다. 이런게 뛰어난 학자의 통찰 아닐까요. 육십년 후 한국 사회를 보고 스케치한 글이라해도 손색이 없어보입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 정치학계의 사조라 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의 제자들 중에는 한국 정치학계에도 영향을 끼친 사람이 많습니다. 그의 제자의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국내에선 교수생활 말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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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
19/05/26 16:04
수정 아이콘
와 1957년 글이라니... 역시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시대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거 보면 조조나 카이사르나 세종대왕이 현세로 오셔도 잘할것 같아요.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9/05/26 16:14
수정 아이콘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소위 말하는 '초인'이 활약하기 힘든 구조입죠. 언급하신 인물들의 위업들은 권력 집중을 통한 독재에 가까운 통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건데 현대에선 그게 안되거든요. 조조 카이사르 세종대왕이 한국 대통령이 된다한들 5년 내내 욕 디립다 먹고 업적 두어개 정도 남기고 퇴임할 가능성이 높지요. 반대로 말해, 지금 욕먹는 정치인들 중 어떤 사람은 과거에 태어났다면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겠고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19/05/26 16:25
수정 아이콘
뭐 ^^ 저도 반박할 논리는 없습니다 ^^ 그래도 뭔가는 할거 같아요!!
닉네임을바꾸다
19/05/26 17:02
수정 아이콘
카이사르...응?
녹차김밥
19/05/26 16:07
수정 아이콘
소개 감사합니다. 인간관계가 문어항아리형이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수분크림
19/05/26 16:09
수정 아이콘
저도 문어항아리형이 뭔지 궁금하네요
서양겨자
19/05/26 16:13
수정 아이콘
(수정됨) 문어항아리는 주둥아리가 좁은 토기를 말합니다. 바다에 던져넣으면 낮은 확률로 문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예전 방식의 문어잡이에 쓰던 도구에요. 그리고 여기서의 문어항아리형 인간관계는 서로 많은 것들이 비슷한(정치관, 소득, 학력 기타등등)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폐쇄적으로, 지속적으로 교류하게 되는 그 상황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는 안락하지만, 그 안에서는 타 항아리들과의 교류가 불가능하고 좁은 구멍을 통해서만 밖을 볼 수 있지요.
수분크림
19/05/26 16:17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참돔회
19/05/26 21:04
수정 아이콘
크 좋은 글에 좋은 댓글까지 감사합니다
사악군
19/05/26 16:09
수정 아이콘
사람사는게 다 비슷하다능
펠릭스30세(무직)
19/05/26 16:09
수정 아이콘
일본 정치 사상사 연구를 진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학술서를 재미있게 읽다니...
BurnRubber
19/05/26 16:34
수정 아이콘
왼쪽 오른쪽 양쪽에서 서로 언론편향이라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면 진짜 꼴뵈기 싫더라구요.
통찰력 있는 글이네요.
요정테란마린
19/05/26 16:50
수정 아이콘
피해자라고 항변하지만 실상은 가해자스럽게 권력을 휘두르고 가해자라지만 실상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피해자란 의식을 지니는 모습, 밖에서는 권력자라 삿대질 받으나 안에서는 뭣도 아닌 사람 취급 당하는 경우, 뭣도 아닌 사람이라 항변하지만 그걸 이용해서 적극적인 권력을 추구하거나 정치질을 하려는 사람들 등등. 안과 밖이 다름 없고 안 쪽으로 들어갔다가 바깥으로 나오는 게 가능한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의 병이 생각나네요. 아마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도 이런 의미에서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의 병이란 단편소설이 있었던 걸로...
홍승식
19/05/26 16:53
수정 아이콘
글 보면서 맞는 말 같은데 그래도 너무 단편적인거 아닌가? 했는데 1957년이군요.
19/05/26 17:28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고 의미 있는 통찰이지만, 이런 통찰까지도 어떤 지점에선 문제가 됩니다. 아마 이 글의 내용도 어떤 집단이든 적당히 본인들 유리하게 사용하려면 끝도 없이 쓸 수 있으니까요. 사실 현실은 완벽하게 중립적이지 않고, 어떤 세력이나 집단은 실제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끝에 매달려 있기 마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실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고 인식시킬 필요성이 있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회, 자연과학적 연구와 명료한 텍스트, 좋은 메신저라 생각은 합니다.
metaljet
19/05/26 17:28
수정 아이콘
소위 [언론을 믿지마! XX를 믿어]의 과거 일본판이군요. 사람 사는데는 시공을 불문하고 다 똑같은듯
19/05/26 17:36
수정 아이콘
피해의식은 이젠 넷의 원동력이죠.
-안군-
19/05/26 19:28
수정 아이콘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뭐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이죠. 이건 그냥 역사의 진리인듯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이 죽어가건 말건 그게 나랑 뭔상관인데?!!
CapitalismHO
19/05/26 19:47
수정 아이콘
본문하고는 좀 상관 없는 내용인데, 옛날 일본에서 쓰인글이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내용이 많아 놀란적이 몇번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기시다 슈가 쓴 "게으름뱅이 정신분석"이란 책에서 왜 심리학자의 분석은 시시껄렁한가 등의 칼럼을 읽었는데 작중이서 묘사되는 사회나 멘탈리티가 70년대 일본이서 쓰였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현대 한국사회랑 별차이 없게 느껴졌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아도 한국과 문화적으로 가장 동질적인 외국은 일본이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참돔회
19/05/26 21:06
수정 아이콘
넘 좋은 글이네요. 시대와 나라를 초월해 여기저기서 다 공감이 될..
우리가 정치적 적대세력을 볼 때마다, 때론 지나치게 악마화하여 보면서, 자기자신은 지나치게 피해자처럼 만드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인간 본성이 그런가봐요.
저도 안 그러려 노력하는데 늘 어렵습니다. 실패해도 노력해야죠.
-안군-
19/05/26 21:12
수정 아이콘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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