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일본 반도체 왕국 쇠망사'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일본 반도체 왕국 쇠망사 1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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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랭킹 1위부터 10위를 차지하는 기업 리스트에 일본 기업은 몇 개나 있을까? 대략 반 정도라고 답했으면 얼추 맞았을 것이다. 물론 아마 20년 전쯤에 같은 질문을 했다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2019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시장 탑 10에 일본 기업은 딱 한 곳, 바로 도시바만 남아 있다. 1위는 인텔, 2위는 삼성전자, 3위는 TSMC, 4위는 SK 하이닉스, 5위는 마이크론 순이다 (첫번째 첨부 그림
[2019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업체의 매출 랭킹] 참조). 리스트를 15위까지로 넓혀 봐도, 일본의 기업은 9위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바 (Toshiba)와 1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니 (Sony) 두 군데가 전부다. 한국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두 곳 밖에 없지만 나란히 2, 4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삼성전자와 매년 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인텔, 그리고 마이크론 같은 미국 기업이 6곳, TSMC 같은 대만 회사 2곳, 유럽이 3곳을 차지하며 시장이 나뉘고 있다. 그나마 9위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바 역시 나날이 악화되는 재무 구조로 인해, 언제 사업을 정리하고 반도체 시장을 떠날지 모르는 상태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5%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점유하고 있으며, 시스템 반도체 부분은 미국이 65% 정도 점유하고 있다. 두 분야 합치면 한국이 25%, 미국이 50%를 점유함으로써, 두 나라는 사실상 전세계 반도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나머지 25% 영역은 NXP나 보쉬 같은 유럽의 몇 개 업체, TSMC 등의 대만 업체, 중국, 그리고 일본의 업체들이 나눠 점유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존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전통적인 반도체 시장에서 밀려나며 자취를 감추고 있던 사이, 소니는
[CCD]* 와
[CMOS]** 라는 확실한 카드가 있다.
*Charge Coupled Device (전하결합소자): 외부에서 들어오는 광자를 전자로 변환하여 이미지로 만드는 이미지 센서. 2009년, 발명자인 월러드 보일과 조지 스미스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준 소자이기도 하다. CCD센서와 광다이오드를 결합하여 칩 위에 배치하면 이미지 센서가 된다. 2010년 이후, 스마트폰 시장이 성장하면서, CCD는 범용 이미지센서, CMOS는 스마트폰 및 자동차, 의료 및 과학 용 이미지센서로 용도가 양분되었다. 2020년 현재, CMOS 이미지센서의 시장이 CCD 이미지센서 시장의 10배에 달하며,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 금속산화물 반도체로 만든 집적회로로서, MOSFET 소자를 기반으로 한다. 주로 디지털 카메라의 이미지 센서로 활용된다. 설계 구조 상 CCD에 비해 전력 소모량이 적다는 장점이 있으며, 불량화소율이 작고 원가가 더 저렴한 장점도 있다.
소니는 다른 일본의 반도체 기업과는 달리,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큰 존재감이 없었다.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5위권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2012년이래, 소니는 계속 15위권 내외의 자리를 꾸준히 지키며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버티고 있는 중이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에 필요한 카메라 용 이미지 센서 수요의 급증, 2020년대 이후 의료용 장비와 자율주행차용 이미지 장비로 인한 수요 급증세가 예상되면서, 소니의 CMOS 세계 점유율은 적어도 40% 이상을 굳건히 지킬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약 185억 달러에서, 2022년 약 38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전 세계 이미지 센서 시장은 그 자체로만 보면 거대한 IT 분야의 산업이나, 2020년 기준, 약 4,220억 달러 (시스템 반도체 2,547억 달러, 메모리 반도체 1,677억 달러), 이후 연 평균 5% 내외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더 거대한 반도체 시장 전체를 대변하기에는 마이너한 시장이다.
한 때, 일본의 전자 산업과 반도체 산업이 잘 나갔던 시절, 전 세계 시장에서 일본의 반도체 산업 지배력은 막강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반도체 산업 지배력은 상위 10개의 반도체 회사 리스트에 6곳의 회사 (NEC (니폰전기), 도시바 반도체, 히타치 반도체, 후지쯔 반도체, 미츠비시 반도체, 마쓰씨타 전기)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두번째 첨부 그림
[1991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업체의 매출 랭킹] 참조). 그렇지만 한 세대가 훌쩍 지난 2000년대 초중반 들어, 일본의 반도체 산업 지배력은 날이 갈수록 수축되었고, 2010년대의 혼란기를 거쳐, 2020년대가 되자 일본이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소수파가 되었다. 그야말로 불과 4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본 반도체 왕국은 쇠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기 변동이나 기술 경쟁은 다른 사업에 비해 유독 심한 수준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치킨게임’이라는 용어가 가장 자주 언급되는 분야도 바로 반도체 산업이다. 따라서, 한 때 제왕의 위치까지 등극했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 반도체 회사라고 해서 백 년, 아니 하다 못해 수십 년 간 그 왕좌를 무사히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겨우 한 세대 만에 이렇게 쉽사리 일본이 반도체 산업이라는 첨단 고부가가치 제조업 분야의 왕좌를 내려 놓게 된 것은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아니, 이는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다. 2010년대 들어 점점 극심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전쟁 국면, 중국의 공격적인 반도체 굴기 투자, 미국의 자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 보호주의, 대만의 굳건한 파운드리 사업을 비롯한 각종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약진 등을 생각하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언제든 외부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고, 내부적인 개혁을 못 이뤄 실착이 누적되면, 지금으로서는 반도체 산업에서의 포지션을 굳게 지키고 있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 역시 일본과 비슷한 쇠망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즉, 일본의 반도체 산업 쇠망사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 주소를 조망하고, 그 미래에 대해서도 경고 메시지를 주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중흥과 시련]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중국, 대만,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던 비중은 미미했다. 한국, 중국, 그리고 대만은 아예 그럴듯한 글로벌 수준의 반도체 회사 자체가 없었고, 일본이 내세울 수 있는 기업은 히타치제작소 (Hitachi) 정도가 전부였다. 참고로 일본 기업 중에서 가장 먼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것은 히타치가 아닌 파나소닉 (Panasonic)이었다. 더 정확히는 파나소닉의 경우 1952년, 네덜란드 전자 회사인 필립스 (Philips)와 합작 회사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바 있다. 당시 반도체 산업을 지배하고 있던 기업은 대부분 IBM,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Texas Instruments), 모토롤라 (Motorola), 그리고 인텔 (Intel) 같은 미국 회사들, 그 외 필립스, 지멘스 (Siemens) 같은 서유럽의 기업들이었다. 실제로 메모리 반도체의 대명사인
[DRAM]***
***Dynamic Random-Access Memory (동적 막기억장치): 정보를 구성하는 개개의 비트를 서로 분리된 축전기 (capacitor)에 저장하는 기억 장치로서, 축전기에 쌓이는 전하량을 주기적으로 리셋함으로써 정보 저장 용량을 동적으로 유지하는 메모리 장치. 리셋을 위해 전기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므로, 대표적인 휘발성 기억 장치이기도 하다.
의 역사도 미국의 반도체 기업 인텔이 1971년 1Kb 용량의 DRAM을 발명한 것으로 시작된다. 후발 주자로 출발했지만, 일본 역시 반도체 산업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긴 했다. 파나소닉과 히타치를 비롯하여, NEC (일본전기주식회사), 도시바, 후지쯔 (Fujitsu), 미츠비시 전기 (Mitsubishi Electric) 같은
[기업들]****
****파나소닉을 제외한 도시바, 히타치, NEC, 후지쯔, 미쓰비시 전기의 다섯 개 기업은 한 때 빅5로 불리기도 했다.
도 컴퓨터에 대한 산업적 수요의 증가세, 그리고 이에 대응해야 하는 메모리 반도체, 각종 산업용 기계에 대응할 아날로그 반도체와 범용 반도체의 시장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여 반도체 산업에 차례로 뛰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유럽 주자들에 비해 늦은 시점에 시장에 진입하긴 했지만, 일본 기업들은 정부의 막강한 연구개발 투자, 산학연이 연계된 톱니바퀴 같은 연구개발 산업화 생태계, 그리고 원천 선행 기술에서 확보된 다양한 기술 IP를 바탕으로 80년대 초반부터 시장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 이전, 일본의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해 일본 정부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잊으면 안 되는 대목이다. 1970년대, 오일 파동을 겪으며 수출 위주로 경제를 일으키던 일본 정부는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신산업으로서 첨단 산업 육성을 낙점했다. 일본
[통산산업성]*****
*****현 일본 경제산업성의 전신.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하는 정부 부처다.
은 ‘초LSI 기술연구조합’이라는, 일종의 관민단체를 주도적으로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일본 특유의 관-주도 방식으로 탄생한 조직으로서,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미국의 선행 주자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태였던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로 하여금, 연구개발 비용의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며, 시장 변동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동하였다. 특히, 이 관민단체는 일본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 자생까지 목표로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의 거대 반도체 업체들과 더불어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리콘 웨이퍼 같은 반도체 소재, 부품, 에칭이나 증착 장비 같은 공정 장비 관련 중소기업들이 많이 육성되었다. 강고한 생태계는 일종의 수직화된 반도체 산업 구조를 형성했고, 이는 일본 반도체 산업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DRAM이 대용량 컴퓨터와 통신 장비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DRAM 수요는 폭증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일본의 전자 회사들은 우수한 공정 수율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단가, 그리고 엔저 호황을 앞세워, 1984년을 기점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미국이 독점하고 있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가져올 수 있었다. NEC는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세계 반도체 점유율 1위를 기록하였고, 이 시기 매출액 기준 반도체 업계 상위 10개 사 중 6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이 시기 일본이 점유율을 순식간에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치킨게임에서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버블 시기를 거치며 나날이 쌓여 가던 막대한 자금력, 그리고 그 이전에 선행 기술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확보된 높은 가치의 기술 IP를 바탕으로, 일본 회사들은 반도체 업계의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여, 무려 80%까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승자 독식의 포지션을 취해 갔다. 오죽했으면 당시 충격을 받은 미국 언론들이 일본의 치킨게임을 ‘제 2의 진주만 습격’이라는 원색적인 수식어구를 동원하면서까지 표현했을 정도였다. 도대체 반도체사업에서는 왜 치킨게임이 통하는 것일까?
사실 반도체 업계의 치킨게임 원리는 꽤 간단하다. 이런 식이다.
1) 선행 주자는 선행 기술 투자로 확보된 노하우를 이용하여 후발 주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품질의 반도체 칩을 만든다.
2) 후발 주자가 시장에 진입하는 시기에는, 이미 당대 기술 기반의 반도체 칩에서 선행 주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충분한 자금을 회수한 상태이다.
3) 후발 주자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단가를 낮추면, 선행 주자는 이미 확보된 넉넉한 자금을 바탕으로 단가를 압도적으로 더 낮춰 버린다.
4) 후발 주자의 자금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원가보다 한참 낮은 단가를 오래 버티기 힘들며, 이 과정에서 자금 회수가 안 되는 대부분의 후발 주자들은 떨어져 나간다.
5) 시장은 다시 소수의 선행 주자들의 과점 상태가 되며, 반도체 칩의 가격은 이들의 기술 개발 사이클에 맞춰 원상복구된다.
6) 그리고 후발 주자가 다시 그 다음 세대의 반도체 시장에 뛰어 들지만, 과정은 1)로 되돌아 간다.
1980년대 중반, 이런 방식의 반도체 업계 치킨게임에서 많은 후발주자들이 실제로 명멸했다. 이 과정에서 후발 주자였던 한국의 삼성전자는 1984년, 64Kb DRAM을 앞세워 세계 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하필 그 시기는 전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보다 작았던 역시장이었고, DRAM의 가격은 나날이 떨어져 갔으며, 덕분에 일본 업체들을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의 수익성은 악화되던 시기였다. 1985년 64Kb DRAM의 가격은 30센트까지 떨어지기도 하였는데, 당시 생산 원가가 1달러 70센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익은커녕, 무려 82.5%의 손해율이 지배하던 시장이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삼성이 야심차게 준비하던 반도체 사업은 몰락하기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삼성은 이 치킨게임 국면을 오히려 상식과는 정반대로 바로 다음 세대 제품 (즉, 256Kb DRAM)의 공급량을 늘리는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다다음 세대 (즉, 1Mb DRAM)의 선행 기술에 더 막대한 투자를 하는 역공법을 취함으로써 대응하였다. 즉, 이전 세대 기술을 채택한 제품에서 회수한 자금을 선순환시켜 다음 세대 기술 기반의 제품 라인을 만드는 종래의 방식이 아닌, 이전 세대 제품은 그냥 치킨게임의 희생물로 바치고, 신규 투자를 일으켜 바로 다음 세대 라인을 건설하는 것으로 대응했는데, 이는 1987년, 전 세계 반도체 사이클이 다시 호황으로 접어 들면서 1Mb DRAM 시장이 호황을 맞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삼성의 공격적인 투자는 코너에 몰려 있던 삼성을 기사회생시키는, 말 그대로 신의 한수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한국의 다른 후발 주자였던
[금성 반도체]******
******이후 LG 반도체로 개명했다가, 1999년, 현대전자와 합병된 후 사명을 하이닉스 (Hynix)로 바꿨으며, 이후 2012년 SK 그룹에 인수됨으로써 현재의 SK하이닉스가 되었다.
를 비롯한 대부분의 후행 주자들은 투자된 자금의 회수 없이 신규 투자를 할 만큼 기초 체력이 튼튼하지 못 했고, 과감한 경영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일부 회사들은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그대로 시장에서 철수한 후였다.
1980년대 중반, DRAM의 시세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수준이 되었던 것은 위에 기술한 치킨게임으로 인한 것이었고, 이를 주도한 업체는 다름 아닌 일본의 반도체 업체 5인방이었다. 반도체 업계에서 치킨게임이 벌어지면 선행 주자가 유리하다는 것은 불문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치킨게임에서 완벽한 선행 주자로 보기는 무리였던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물론, 아예 치킨게임 이후, DRAM 시장 전체를 장악하다시피했던 일이 가능했던 것은 풍부한 자금력과 더불어, 선행 주자보다 반발 앞선 기술 개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업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미국 업계는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1985년 6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 (SIA)는 1974년 미국 통상법 (Trade Act of 1974)의 악명 높은 301조 (일명 슈퍼 301조)를 걸고 넘어지며 미국 무역대표부 (USTR)에 일본 반도체 산업 정책의 불공정성, 특히 일본 정부 주도의 반도체 산업 보조금 지급 등의 혜택에 대한 불공정 무역 요소를 청원하였다. 같은 시기 미국의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은 일본의 반도체 기업 일곱 곳을 불공정 거래와 덤핑 혐의로 USTR에 제소하였다. 1986년, 미국 상무부는 USTR에 제소된 사안에 대해 직권조사를 시작, 이후 본격적으로 일본 반도체 산업에 대한 무역 제재를 천명하였다. 곧이어, 일본 반도체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부과하였고, 이로 인한 원가 상승, 이후 경쟁력 약화 기조를 버틸 수 없었던 일본 반도체 업계는 같은 해인 1986년, 굴욕적으로 제 1차 ‘미·일 반도체협정’을 체결할 수 밖에 없었다. 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는 대 미국 저가 반도체 수출을 중단하고, 이후 미국 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절반 이하로 유지, 그리고 자국 내 미국 반도체 업체 점유율을 1986년 기준 10%에서 1992년까지 20%로 상향 조정한다는 것에 합의하였다. 미국의 무역 제재와 가혹한 견제 조치는 1996년까지 연장되었고, 반도체 협정도 1991년 재차 갱신되어 제 2차 협정이 맺어져 그 유효 기간은 1996년까지 5년 더 연장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10년 간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반도체 산업 시장 장악력은 1위를 내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는 장기적으로는 일본 반도체 산업이 초격차를 벌여 나갈 수 있었던 10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잃게 한 조치가 되기도 하였다. 그 기간 동안, 한국의 후발 주자 삼성전자는 과감한 라인 증설과 선행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에 힘입어 무사히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 남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DRAM 메모리 반도체의 최상위권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