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일본 반도체 왕국 쇠망사'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일본 반도체 왕국 쇠망사 1편 :
https://pgr21.com./freedom/88059
*일본 반도체 왕국 쇠망사 2편 :
https://pgr21.com./freedom/88063
*일본 반도체 왕국 쇠망사 3편 :
https://pgr21.com./freedom/88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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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C 메모리 반도체의 쇠망사]
'일본의 IBM'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NEC (日本電気株式会社)의 역사는 다른 일본의 전기 제품 회사들 같이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NEC는 1899년, 미국에서 에디슨과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기도 한, 일본 전기 산업의 전설적인 인물인 이와다레 쿠니히코 (岩垂邦彦, NEC의 창업자)와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 (Western Electric, 현) 알카텔 루슨트 (Alcatel-Lucent Enterprise))의 합작 회사로 설립되었습니다. 2차대전 중, 미-일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미국과의 파트너쉽이 종료되었고, 이후 일본 스미토모 (住友, Sumitomo) 그룹에 인수된 이후, 2차 대전 후에는 통신, 진공관, 반도체, 그리고 컴퓨터를 회사의 주력으로 삼았습니다. 1983년에는 사명을 NEC (Nippon Electric Company)로 바꿨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상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고 거대한 수익을 가져다 준 NEC의 반도체 사업은 199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쇠망의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NEC에서 운영하던 반도체 관련 사업 부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번째는 집적회로 부분으로서, NEC 일렉트로닉스가 담당하였습니다. NEC 일렉트로닉스는 MIPS 계열 CPU와 범용 CPU, 그리고 독자규격 CPU를 골고루 생산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범용 마이크로 컴퓨터와 PC, AV 기기용 시스템 LSI 사업을 하기도 했죠. 두번째 분야는 메모리 부문으로서, NEC 메모리 (이후 NEC-히타치-메모리로 합병)가 담당하였습니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 1991년부터 2001년까지의 10년 동안은 인텔에 이어 점유율 2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NEC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었지만, 이후 대만과 한국의 후발 주자들과의 가격 경쟁, 그로 인한 수익성 약화, 그로 인한 선행 개발 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면서 결국 세계 시장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일본 정부의 구조조정 제안에 따라, 1999년 12월, NEC의 메모리 사업은 히타치제작소의 메모리 사업부와 통합되어 세계 시장 점유율 20% 이상을 목표로 'NEC-히타치 메모리'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1998년 기준, NEC의 DRAM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이 11%, 히타치의 점유율은 6.2%였기 때문에, 양사의 합병은 적어도 17.2%의 점유율, 그리고 NEC의 대용량 고속 처리 기술 노하우와 히타치의 180 nm 패터닝 기술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면 능히 20%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이기도 하였습니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인해, 2000년이 시작되자, 세계 DRAM 시장은 삼성전자, 현대-LG 반도체 ((현)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 그리고 NEC-히타치 메모리의 4강 구도로 재편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회사의 합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극심해져 가는 DRAM 반도체 시장의 기술 경쟁, 생산 단가 경쟁, 수율 경쟁에서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는 큰 효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NEC와 히타치의 공존은 6개월을 가지 못 했습니다.
[엘피다의 DRAM 쇠망사]
반도체 업계 경력이 지긋한 현업자들 혹은 은퇴자들은 한 때 일본 반도체 왕국의 떠오르는 희망이었던 엘피다 메모리 (Elpida Memory)를 기억할 것입니다. 엘피다 메모리라는 회사는 비교적 신생 업체였습니다. 70년대 일본의 반도체 5인방에는 없었던 회사죠. 그렇지만 엘피다의 역사를 추적하면, 결국 일본 반도체 5인방이 다시 나오게 됩니다. 1993년 반도체 치킨게임에서의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각 기업 고위층은 전략적으로 업계의 구조정을 시행했습니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1999년 12월, NEC와 히타치제작소의 DRAM 메모리 사업 부문이 합병되었고, 어정쩡한 공존을 뒤로 한채, 2000년 5월 상호가 ‘엘피다 메모리’로 바뀐 회사가 설립된 것이죠. 그러나 악화되는 일본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수익성으로 인해, 채 3년도 안 되어, 엘피다는 2003년 3월, 미쓰비시 전기의 DRAM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양도받으며, 개발 인력을 그대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다시 덩치를 키우면서 일본의 유일한 DRAM 업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엘피다의 전신은 NEC, 히타치, 그리고 미쓰비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70년대 5인방 중 무려 3인방이 여기에 속해 있는 회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두 회사, 나아가 세 회사의 합병은 DRAM 시장의 점유율을 확장하고 시장 지배력을 한국으로부터 되찾아 오려는 플러스 알파 효과는커녕, 마이너스 베타 효과를 만든 셈이 되었습니다. 애초에 같은 일본 회사라고 해도, 세 회사의 문화는 너무 달랐던 데다가, 규모마저 비슷했기 때문에 주도권 싸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는 3사의 합병으로 탄생한 거대 반도체 기업 엘피다는 플러스 알파 효과가 분명 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엘피다의 DRAM 설계 및 공정 기술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해도 삼성전자를 앞서 있었다고 알려져 있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수익률과 직결되는 수율 (생산된 반도체 웨이퍼 중에 불량이 없을 확률)만 놓고 봐도, 2005년 기준으로, 엘피다는 98%였던데 반해, 삼성은 80%를 갓 넘기는 수준이었던 것이죠. 당시 최신 DRAM 기술 수준이던 512Mb 용량 칩 기준, 18%의 수율 차이는 18% 이상의 수익 차이로 연결되기 때문에, 수익을 곧바로 차세대 공정과 기술 개발에 투입해야 하는 반도체 업계의 특성 상, 엘피다는 누가 봐도 삼성전자에 비해, 한 수 위의 회사로 여겨질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엘피다는 이 수율을 만들어낸 공정 기술의 고도화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수율 80%는 엘피다에 비해 확실히 한 수준 떨어지는 지표이지만, 삼성 내부의 판단은 굳이 엘피다가 자랑하는 98% 수율까지 무리해서 올릴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삼성은 수율보다도 한 웨이퍼에 집적할 수 있는 칩 면적에 주목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밀고 있던 512Mb DRAM의 칩 면적은 70 mm2 였던데 반해, 엘피다가 밀고 있던 칩 면적은 91 mm2나 되었습니다. 결국 300 mm 크기의 웨이퍼를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1,000개 정도 나오는 칩 중, 수율 83%를 유지하여 830개의 DRAM 칩을 생산할 수 있었던 반면, 엘피다는 총 714개 정도 나오는 칩 중, 수율 98%를 유지하여 700개 정도의 DRAM 칩을 생산하게 된 것이죠. 이제 겉보기 수율 차이는 오히려 18% 이상 삼성전자가 엘피다를 앞서게 되었습니다.
삼성이 전략적인 우위로 가져 간 기술은 또 있었습니다. 아무리 불량률 관리를 잘 하거나, 칩 면적이 작더라도, 칩을 만드는 생산 속도가 느리면 의미가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반도체 칩 생산 속도를 결정 짓는 단계는 바로 패터닝 공정이었습니다. 패터닝 공정을 포함하여 웨이퍼 처리 공정의 속도 전체를 놓고 보면, 삼성전자는 엘피다에 비해 두 배 빠른 공정 속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삼성이 엘피다에 비해 2/3에서 1/2 수준의 마스크만 사용하고서도 동일한 스펙 혹은 그 이상의 패터닝 공정을 완료할 수 있었던 이른바 '인테그레이션 기술 (integration technology)'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겉보기 수율 차이 18%에 더해, 생산 속도에서 2배의 차이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단위 웨이퍼 당 칩 생산과 생산 속도로 인한 산업 지배력의 역전 외에도 엘피다의 헛점은 또 있었습니다. 엘피다가 자랑했던 공정 수율 98%는 거저 얻어진 것도 아니고 오로지 기술만으로 얻어진 것도 아니었죠. 결국 98%의 수율 달성을 위해 엘피다는 수익을 거의 버리다시피 하여 생산 단가 (더 높은 검사 비용, 더 높은 에너지 비용 등)를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삼성의 83% 수율은 17%의 폐기품을 낳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 이상 수율을 굳이 올리지 않음으로써 원가를 엘피다에 비해 1/3 이상 절약할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에 더해, 삼성은 기존 장비를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요소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장비 감가상각비를 절감하였고, 이는 반도체 업계 특성 상, 가장 높은 원가 요인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음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2004년 당시 기준으로 보면, 메모리 반도체 생산 비용 구조는 전공정 (pre-process)의 경우, 재료비 (5%), 인건비 (5%), 변동경비 (9%), 기타비용 (12%), 감가상각비 (40%), 그리고 그 외 요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후공정 (post-process)의 경우, 패키지재료비 (2%), 인건비 (4%), 변동비 (4%), 감가상각비 (23%), 고정비 (23%), 그 외 요인들로 이루어진다. 전공정이나 후공정이나 모두 감가상각비가 가장 큰 원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단위 웨이퍼 당 18% 더 많은 칩을 생산함으로써, 생산 캐파 (capacity)의 우위도 점할 수 있었습니다. 생산력 우위과 수율 유지로 쌓인 자금은 그대로 차세대 공정과 설계를 위한 연구 개발에 재투입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은 3세대 DRAM 기술과 별개로, 4세대 기술, 즉, 더 작은 칩 면적을 갖는 DRAM 기술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죠. 앞서 살펴 보았듯, 단위 웨이퍼 당, 더 많은 메모리 칩의 생산은 수율만큼이나, 칩 자체의 면적을 축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였는데, 삼성은 이 전략을 다음 세대에도 이어갈 전략을 실천했던 셈입니다. 또한, 차세대 기술에서 파생된 공정 기술과 설계 노하우는 동세대 DRAM의 수율 향상과 최적화에도 다시 활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결국 삼성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그 결과 엘피다의 DRAM 영업이익율은 3%에 불과했던 데 반해, 삼성전자의 DRAM 영업이익률은 무려 30%로서, 10배의 간격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엘피다는 빛 좋은 개살구로서의 DRAM 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아무리 수율과 기술 수준이 앞서더라도, 결국 자본력의 버티기 싸움인 반도체 산업에서 이 정도 수익률 격차가 지속된다면, 그 어떤 대기업이라고 해도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습니다. 삼성은 15% 차이의 수율을 10배 차이의 수익률로 역전하는 경영 전략을 취했고, 그것은 2000년대 이후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확고한 1인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업계 경쟁의 패배 경험이 있다면, 보통의 회사라면 이로부터 교훈을 얻고 기술에 대한 무한 집중보다, 공정 개선, 수익률 개선,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포기하는 경영의 결단을 내려야 하겠지만, 엘피다의 실책은 계속되었습니다. 자사의 제고 공정 가격 경쟁력이 도저히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엘피다는 과감하게 설계만 남기고 제조는 위탁생산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2007년 1월, 엘피다는 대만의 PSC사와 중국의 SMIC 같은 파운드리 전문 업체에 자사의 DRAM 생산을 맡기기 시작한 것이죠. 이는 삼성전자와의 경쟁을 이어가야 하는 엘피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일견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미 2008년 초에 DRAM의 용량 표준은 기가바이트 시대로 접어들었고, 단가는 1달러 이하의 시대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던 것이죠. 이는 곧 원가 경쟁력과 기술 표준을 모두 갖추지 못 한 업체는 시장에서 점점 밀려나게 될 것임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징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엘피다의 경영 전략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4년이 흐른 시점인 2012년 1월 말, 일본에서 열렸던 ‘3차원 LSI 기술 및 3차원 패키지 기술 국제회의’에서 엘피다의 사카모토 유키오 (坂本幸雄) 사장은 DRAM 기술의 미래 비전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했습니다. 그가 그 강연에서 강조했던 부분은 엘피다 메모리가 2013년부터는 전 세계 DRAM의 탑 3가 될 것이고, 여전히 엘피다의 투자 효율은 타사 대비 3배 이상의 격차를 보이고 있으며, 엘피다의 칩 제조 기술은 칩 면적 최소화와 패키징 부분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것이었습니다. 엘피다는 2012년 당시에도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사카모토 사장은 40 nm 스테이지에서는 삼성에 비해 32% 이상, 칩 면적을 작게 가져갈 수 있음을 천명했으며, 30 nm 스테이지에서는 엘피다를 제외하면 전인미답 영역이기 때문에, 기술의 독점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당시 기준으로는 선행 공정이었던 25 nm 공정에서도 자사의 기술이 이미 양산 전 단계이며, 공정에 필요한 마스크 개수는 경쟁 업체 대비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정 단가를 이전보다 훨씬 줄일 수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모두 엘피다가 2000년대 중후반 삼성전자와의 3세대 DRAM 기술 경쟁에서 밀림으로써 뼈저리게 교훈을 얻었던 부분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력 과신에 대한 함정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엘피다는 사장의 자신감과는 달리, 2000년대의 실패로부터 전혀 교훈을 깨닫지 못한 채 이 함정에 다시 빠지고 말았습니다. 사카모토 사장은 2002년, 당시 실적 부진에 허덕이던 엘피다의 구원투수격으로 일본 파운드리 ((현) UMC 재팬) 사장에서 스카우트되어 온 인물이었습니다. 사카모토 사장 취임 후 2년이 지난 2004년, 회사의 경영진과 전략팀은 사카모토 사장에게 이 함정의 위험성을 수 차례 경고했고, 그 결과는 3세대 DRAM 시장에서의 패배로 실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엘피다 경영진의 판단은 해외 파운드리 업체에 대한 위탁생산 정도에서 위기를 수습하는 것으로 그쳐 버렸던 것이죠. 하지만 위탁 생산으로도 엘피다의 고질적인 문제가 근본적으로 고쳐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0년대 4세대 DRAM 경쟁에서 사카모토 사장를 비롯한 엘피다의 최고위 경영진은 같은 실수, 즉,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과신, 그리고 그를 통한 위기 극복이라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 엘피다, 그리고 엘피다의 경영진은 다소 억울한 측면도 있긴 합니다. 어느 반도체 회사나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현행 공정 외에, 적어도 1-2 세대의 선행 공정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게을리할 수 없으며, 이는 기술에 대한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술에 대해 과도한 집착을 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엘피다가 절치부심하며 차세대 DRAM 공정 기술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던 시점은 08-09 리만브러더스 발 글로벌 경제 쇼크,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타이완의 대홍수로 인한 파운드리 업체의 경기 둔화 등이 연이어 겹친 시기여서, 시장 상황이 매우 안 좋아졌던 시점이었다는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물론 위탁 생산을 통해 개선된 재무 구조를 다시 스마트폰과 태블릿용 모바일 DRAM 사업으로의 확장으로 이어간 경영진의 판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의 타격을 최소화하는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업체 경기가 나빠지는 시점에서는 기술 개발에 대한 과도한 투자보다, 현 공정 단가의 개선과 수익률의 최소 보전 전략이 필요한데, 엘피다의 얼마 남지 않은 자금력은 이 여유를 최소화한 채 선행 기술 개발에만 투입되어, 결국 이것이 다시 한번 엘피다의 발목을 잡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엘피다는 2012년 1월의 사카모토 사장의 자신감 있는 발표가 무색하게, 자금력의 한계를 보이게 되었고, 결국 한 달만인 2012년 2월, 부채 4,480억엔을 안은 채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2012년 기준, 엘피다의 매출액은 2,200억엔에 달하지만, 영업이익은 928억엔 적자, 순이익 역시 990억엔 적자를 보였습니다. 회사의 가치가 4,500억엔에 달하는 부채만 안은 채, 급격히 쪼그라들자, 정상 시장에서 자금을 수혈하기가 어려워졌고, 결국 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2012년 7월, 단돈 25억 달러에 엘피다 메모리를 인수했다. 다시 2014년 2월, 결국 회사의 이름이 ‘마이크론 메모리 재팬’으로 바뀜으로서, 엘피다의 이름은 업계에서 사라지고, 엘피다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일본 DRAM 반도체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019년 6월, 마이크론 메모리 재팬은 야심차게 히로시마 공장을 중심으로 차세대 10 nm급 DRAM 라인을 증설하였는데, 이 공장은 마이크론이 타도 삼성을 외치며 투자한 공장이기도 합니다. 마이크론은 이후 20억 달러를 더 추가로 투자하여 ASML의 EUV 노광 장비가 적용된 10 nm EUV 공정 기반, 64 GB 서버용 차세대 DRAM 메모리 모듈 양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향후 5G 통신,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처리, 금융시장 빅데이터 처리 등, 서버용 대용량 DRAM 수요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임을 예상하면, 이는 마이크론이 2020년대 이후에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DRAM 시장을 놓고 계속 수위를 다툴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부분입니다.
이미 그 이름을 잃어버린 전직 엘피다 관계자들, 그리고 그 이전 NEC와 히타치 반도체, 그리고 미쓰비시 전기에서 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매진하던 전현직 관계자들이 이 광경을 보면서 얼마나 쓴 입맛을 다셨을지 상상이 됩니다. 그렇지만 이미 전 세계 DRAM 시장은 한국과 그 외 국가들의 경쟁 체제로 개편된지 오래고, 엘피다는 현재로서는 마이크론으로부터 사업을 다시 인수하여 DRAM 시장에 재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