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진행된 이동진 평론가의 '시네마 리플레이'로 '더 파더'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런던의 있는 '자신의 집'에서 노년을 보내는 안소니(안소니 홉킨스)는 멀쩡한 자신에게 자꾸만 간병인을 붙이는 딸 앤(올리비아 콜먼)이 불만입니다. 그러나 딸의 요구도 무리는 아닌 것이, 안소니는 자신이 아끼는 시계를 숨겨놓고 애먼 간병인을 의심해 쫓아내고, 사고로 죽은 자신의 둘째 딸 루시와 큰딸을 지속적으로 비교해 딸에게 상처를 줍니다. 여기까지 보면, 영화는 치매 증상이 시작되는 노인과 딸의 이야기가 되겠구나라고 직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세련되다 못해 공포스러운 연출로 이미 주인공 안소니는 중증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은 알게 됩니다. 어느 날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집 안에서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대화 끝에 그가 자신의 사위 '폴'이라는 것을 알고 안도하지만, 곧이어 들어온 낯선 여자는 자신이 앤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망연히 쇼파에 앉아 한숨만 쉬는 안소니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씬에서 딸은 다시금 올리비아 콜먼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안소니는 식탁으로 걸어가다가 딸과 사위가 자신을 두고 요양원에 보낼지 말지를 놓고 싸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색한 식사 자리가 계속되고, 안소니가 닭고기를 더 가지러 부엌에 다녀오는데, 식사 전에 들었던 대화가 다시금 반복됩니다. 사람의 얼굴도 알 수 없고 눈 앞의 일이 언제 벌어진 일인지도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치매 체험의 시퀀스가 주욱 이어집니다.
마지막 시퀀스, 안소니는 요양원에서 눈을 뜹니다. 모르는 여자가 다가와 약을 건내고, 사위인 줄 알았던 남자가 간호복을 입은 채 자신에게 인사를 건냅니다. '여기가 대체 어디냐고' 성내 묻지만 남자와 여자는 수십 번을 겪어본 듯 말끔하게 그를 안심시키고 자리에 앉힌 뒤 사실을 말해줍니다. 안소니의 딸 앤은 몇 달 전 사랑하는 남자와 파리로 떠났고 안소니 본인은 요양원에 몇 주 전에 입원했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시퀀스를 제외한 이전의 모든 내용은 치매를 앓는 와중에도 나는 누구이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고자 했던 안소니의 마음속 분투였던 셈입니다.
모든 희망이 무너져버린 안소니는 엄마를 찾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내 나뭇잎이 모두 져버렸어. 바람에, 천둥에 모두 사라져버렸어' 어쩌면 이런 모습조차 처음이 아니었던 듯 여간호사는 능숙하게 안소니를 달래며 꼬옥 안아줍니다. 카메라는 시선을 돌려 창문밖의 나무를 비춥니다.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은 안소니에게 주는 위안이자, 관객에게 건내는 메시지로도 읽힙니다. 젊은 우리 역시 언젠가는 안소니처럼 될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은 주로 감독인 플로리앙 젤레르에 대한 배경지식과 복잡한 플롯을 다루었습니다. 안소니 홉킨스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와 올리비아 콜먼의 호연 역시 짚고 넘어갔죠. 그런데도 하루가 지나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영화가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처럼 너무나도 무서운 영화라는 말이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영화여도 30~40년이 지나면 다시 생각하기가 어려운데 이 영화는 분명히 기억날 것 같고, 누구나 늙고 죽게 마련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는 영화라는 평가를 덧붙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블로그에 쓴 10년 전 일기를 뒤적여 봤습니다. 우리 집에서 마지막 몇 년을 지내셨던 외할머니는 중증 치매에 걸려 벽에 본인이 싼 똥을 칠하시고 딸과 손주들에게 온갖 집기를 집어던지며 도둑놈, 도둑년 물러가라고 소리를 지르곤 하셨습니다. 그때 쓴 일기에는 '할머니는 정말이지 끝까지 이기적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저는 치매가 본인과 주변인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하나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많이 걸 생각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되새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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