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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2/23 15:35:10
Name 도큐멘토리
Subject [일반] 나로서 살기 (수정됨)
#01.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온전히 나로서 사는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주변과의 교류, 소통, 기대에 대한 부응 등등.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은 주변에 많은 요소들과 결부되어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요소들과 적당한 정도의 타협을 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꾸려나갑니다.

그렇기에 지나친 다름에 대한 배척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는 요소입니다.
그것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어지기도 하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기도 하며
사회적 관습이라는 이름으로도 규정되기도 하죠.

이러한 틀에서 많이 어긋나는 사람은 범죄자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심판을 받기도 하고
이레귤러라는 이유로 무리에서 따돌려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적인 기준과 자신사이에서 타협을 합니다.


#02.

다양성에 대한 존중.
정치적 올바름 등으로 포장되어지는 말은 사실 선택적입니다.

그것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내에서 취사선택되어지는 존중이며
존중을 해야할 것과 말아야할 것은 사회가 정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호오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합니다.

보통은 범죄라고 규정되지 않는 선에서의 모든 사람들은 존중받아야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회나 커뮤니티의 관습에 따라서 상이하기도 하고
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합니다.

여러 다양성 중에서는 생리적으로, 혹은 개인의 신념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 혐오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혐오를 굳이 억지로 참아야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란 말이죠.
그걸 밖으로 드러냈을때 또 다른 사람들과의 논쟁, 반발같은 것 역시 혐오를 드러낸 사람이 감내할 몫이지만.

그래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구호.
대충 20년전에 들었을 당시에는 마땅히 그래야하는 것이라고 믿었었지만
지금의 저는 냉소적입니다.


#03.

몇년전, 저는 몇 달에 걸쳐 심리상담을 진행한 다음, 그 후에 검진을 통해서 진단서를 하나 받았습니다.

성주체성 장애

진단명을 받고 난 다음에 든 생각은, "비로소 좀 편해졌다."는 것이였습니다.

3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고민해왔던 문제였지만
집안 사정과 주변의 시선때문에 차마 입밖으로 꺼낼수 조차 없는 고민이었으니까요.
그 오랜 기간동안 무엇다워야 하는 나와 그게 아닌 나 사이에서, 도대체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고민해오다가
결국 큰 마음을 먹고 상담을 받기 시작하고, 진단까지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제서야 저 자신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분명해진 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누군지를 방황한게 30여년이 지나 조금 알게되었다고 해서
모든게 뚜렷해지고 삶을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누군가의 아들로서 살아가야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벌어야하며, 그간 만들어나간 사람들과의 관계는 유지해야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이레귤러라는것은 어찌보면 확실해진 상황이니까요.

나로서 산다는 게 무엇인가, 에 대해서 그때부터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04.

그후 몇년이 지나서 저는 변한 것들은 있지만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은 삶을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직장은 여전히 다니고 있고,
밖에서는 원래 지정성별대로 살아가고 있으며
몇몇 친구들에겐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가 갈등이 심하게 발생한 적도 있었죠.
지금도 부모님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태이고,
친구들은 고맙게도 받아들여주는 친구가 있기도 하고, 들었지만 마치 못들은양 넘어간 친구도 있긴 합니다.

호르몬을 시작했고, 조금씩 몸이 변해감을 느끼고 있지만
딱히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고 있진 않습니다.

사회적 삶을 유지해야하는 입장에서 트랜스젠더로서 아직 밖으로 나를 드러내기에는 많은 것들이 난관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을 존중해달라고 요구할 수 없음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회적인 기준과 자신사이에서 타협을 해나가는 중입니다.
아직까지는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습니다.


#05.

'나'라는 인격 자체가 사회에서 살아가기에는 마냥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나로서 산다는 것.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이레귤러라서가 아니라, 그냥 사회적인 나를 유지시키는 것 자체가 꽤 많은 것을 요구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행여 사회적인 요구와 나 사이에서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얘기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지금까지 어떻게든 해왔듯이, 앞으로도 잘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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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산바라기
23/02/23 15:40
수정 아이콘
지금까지 잘해왔듯이, 앞으로도 잘되실 겁니다.
도큐멘토리
23/02/23 16:23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노래하는몽상가
23/02/23 16:07
수정 아이콘
앞으로 꽃길만 걷길 바랄께요
도큐멘토리
23/02/23 16:23
수정 아이콘
그럴수 있도록 맘 다잡고 살아야죠
실제상황입니다
23/02/23 16:11
수정 아이콘
나이 차이 많은 사람의 정당한 대시 행위조차 늙은년/놈이 나잇값 못한다고 혐오하니까요. 하여튼 내가 불쾌하다는 게 중요하죠. 자신의 불쾌를 제거하는 것이 불쾌의 주체들에게 있어서는 쾌일 테니까요. 저는 우리들의 불쾌가 우리를 억압하지 않는 사회이길 바랍니다. 누가 불쾌하다고 해서 자중하지 않는 사회이길 바랍니다. 그러니 존중하지 마세요. 배려하지 마세요. 어차피 타인들도 우리들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을 테니까요.
도큐멘토리
23/02/23 16:26
수정 아이콘
별로 존중해야한다거나 바른것이 무엇인지 따지면서 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겨를도 없고요.
그냥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기를,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도 내가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고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소이밀크러버
23/02/23 16:41
수정 아이콘
들었지만 못들은 양 넘어간 친구들도 그 나름대로 받아준 것 아닐까요.

더 얘기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스무스하게 넘어간 그런...

어떤 성별을 바꾸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풍자가 나온 또간집을 재미있게 보다보니 트랜스젠더에 익숙해진 느낌이에요.

주변분들도 도큐멘토리님을 자주 접하면서 변하는 혹은 변해진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3/02/23 16:50
수정 아이콘
사람들 대부분 이상한 부분을 한둘은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사회적 통념이나 '주류'와 다른 부분은 좀 더 두드러져 보이겠고 거슬리는 사람들이 많겠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마이웨이로 사는게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Gavygroove
23/02/23 16:55
수정 아이콘
본인이 느끼는 본래의 모습과 사회적 시선 사이에서 많은
갈등이 있어 보이십니다. 지금에서나마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 발견 하셨다니 축하 드리고 내려놓고 본래의 모습으로 달려갈 수 있는 날이 오시길 바라겠습니다.
23/02/23 17:32
수정 아이콘
다른 사람들이 나의 중요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건 참 안타까운 일이죠. 그래도 나는 나를 인정해줄수 있으니까, 그런 자존감은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페스티
23/02/23 17:51
수정 아이콘
어제 유튜브로 게임 실황을 보는데 게임에서 '이해 할 수 없는 것을 통해 우리는 이해를 얻는 것이 가능한 걸까.' 라는 질문이 나오더군요. 본문 글을 보고나니까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네요. 적어도 저 자신의 어떤점은 확실히 이해를 하게 되는군요.

하지만 ... 다른 점이 몇가지 있다고 해도 결국 같은 인간일 뿐. 다른 것에 비중을 두면 다른 것이 보이고 같은 것에 비중을 두면 같은 것이 보이겠죠. 한글을 쓰고 읽고 같은 피지알 유저인 도큐멘토리님. 곧 퇴근시간이네요. 좋은 저녁 되세요
23/02/23 18:38
수정 아이콘
병원에선 아직 그걸 ‘장애’로 표현하는군요..
그래도 세상이 점점 긍정적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화이팅입니다
도큐멘토리
23/02/24 16:04
수정 아이콘
병원마다 다를수도 있고.. 제가 진단을 받은 시점이 좀 시간이 지난터라 그때는 그랬을수도 있겠네요
23/02/23 21:40
수정 아이콘
어떨 때는 무심함이 존중이 될 수 있으니
다 잘될 겁니다
blue_six
23/02/24 09:25
수정 아이콘
이레귤러이면서도 정치적 올바름에 냉소적일수 있다니 의아하군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구호는 기분 좋으라고 있는게 아닙니다.
혐오할 자유라구요? 그건 자유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혐오할 자유를 통제하지 못한 결과가 아우슈비츠라는 교훈을 얻은지 1세기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살인자, 아동성애자, 폭력행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신변의 자유를 뺐는 것으로 합의한 유구한 역사가 있습니다.
집단이 존속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에 정한 노선이죠.
다름에 대한 혐오를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류는 '배타적 혐오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살인공장을 돌리더라'를 겪었고 비극을 막기 위해 '정치적 올바름'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다름에 대한 혐오를 분출한다면 적극적으로 제지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멋있는 옵션이나 착한 태도 같은게 아니라 인류가 홀로코스트와 같은 희생으로 배운 생존방식 입니다.
도큐멘토리
23/02/24 16:02
수정 아이콘
현실의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하기도 어렵거니와, 대체로 정치적 올바름이 통용되는 기준이라는게 사회적 합의, 개인의 호오에 따라 선별적으로 이루어지니까요. 구호와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실제상황입니다
23/02/26 01:34
수정 아이콘
(수정됨) 라는 것은 신봉자들의 이데올로기 강령에 가깝고 실제로는 자신들의 불쾌를 관철시키는 것과 비슷한 양태를 보이거든요. 약자 보호라는 명목 하에 가학적인 포르노는 금지돼야 올바르고 마찬가지로 성상품화도 자제하는 게 올바르죠. 올바름이라는 슬로건이 내세우는 존중과 배려라는 게 대체로 그런 식입니다. 오취리 사건만 봐도 인종문제 또한 비슷한 양태를 보이죠. 최근에 나온 재페니메이션 수성의 마녀라고 아십니까? 그 작품 주인공이 유색인종인데 백인 성우 썼다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소리 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배타적 혐오자들만 억압입니까? 기본적인 아이디어 자체는 저도 부정하진 않지만 그 역시 패턴화된 억압을 반복하며 재구조화되고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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