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질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게 무엇일까요? 너무 작고 희극적인 어떤 것이지만 유일무이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나는 내게 더는 세상에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가장 단순한 일상적인 것들과 관련해 흥미를 잃었습니다. ...내가 정말 결여하고 있는 것은 '자연적 자명성'입니다. ...그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아이가 갖추고 있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삶을 영위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하고, 타인과 함께 존재하고, 게임의 규칙들을 아는 데 필요한 가장 단순한 것들입니다."
- 단 자하비의 "현상학 입문"에서, 한 조현병 환자의 인터뷰 중
미셸 푸코의 고고학으로 본 비트겐슈타인
- "수학철학의 열기"와 인류학에 대한 소리없는 아우성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을 설명하려는 글을 쓰려고 한다.
글을 쓸 때 독자가 누구인지를 가정하라고 하는데, 이 글은 아무리 생각해도 독자층이 한정되게끔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다.
1.푸코의 에피스테메
1-1.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을 적용하는 것의 어려움
푸코의 “말과 사물”은 현재 철학에서 그다지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는 책이다.
분석철학이나, 역사학계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책이다.
푸코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비판받는것은, 푸코의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푸코의 방법론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보통 실증적 증거만을 내용으로 삼아야 한다는 학파와 증거를 포함에 그에 대한 해석과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학파로 나뉘는 편이다. 이에 반해 푸코는 이 책에서 역사적 사료를 증거로, 해석의 이유로도 쓰지 않고, 자기 이론을 그려보이고 난 뒤 나온 부분적 사례 정도로 두고 있다. 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이런 행동을 대담한 접근이란 말로 치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부분적인 사례들로서도 비판을 받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 또한 다루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굉장히 잘 알려진 코페르니쿠스가 나오지 않는데,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미셸 푸코의 르네상스 시기의 과학에 대한 주장과 충돌하는 듯이 보인다.
한 학자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성과 합리성을 통해 미셸 푸코의 이론의 문제점을 보이기도 했고, 이 사례도 꽤 정당해 보인다.
푸코는 이 책에서 라마르크와 퀴비에에 대해 퀴비에의 이론은 틀렸지만 그 기반이 되는 사상은 그 시대상에 알맞은 것이라는 논란이 깊은 주장을 하기도 했다.
푸코는 이 책의 끝부분에서 다른 철학자들을 비판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데, 이것이 빈약하다는 주장 또한 있었다.
푸코는 예를 들어 현상학자인 메를로퐁티를 비판하려는 듯한 글을 썼으나, 푸코의 논증을 살펴보면 푸코가 한 일은 퐁티의 철학 내용이 가진 문제의식이 사실 현재 시대의 인식과 관점의 측면에서 첨예화되고 문젯거리가 되게끔 구성되었다는 “비판”보다 “서술”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변론을 해보자면, 이러한 서술 또한 자신이 초-역사적인 철학을 하고 있다는 철학자에게는 비판으로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해 두고 푸코의 이론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취했으면 한다.
1-2. 말과 사물에 대한 극도로 불안정적인 설명
여기에서 나는 말과 사물에 대한 극도로 불안정적인 설명을 진행하겠다.
말과 사물의 가장 중요한 논지는 자기가 초역사적이라는 소박함에 대한 비판이다.
말과 사물은 처음 서문에서 보르헤스를 언급하며 시작된다.
보르헤스는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라는 픽션에서 중국의 한 백과사전은 이런 분류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a) 황제에 예속된 동물들 b) 박제된 동물들 c) 훈련된 동물들 d) 돼지들 e)인어들 f) 전설의 동물들 g) 떠돌이 개들 h) 이 분류 항목에 포함된 동물들 i) 미친 듯이 날뛰는 동물들..."
이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푸코는 우리 사상 체계의 역사에 있어 진짜로 웃음을 자아내게끔 생각한 시대도 있었고, 그때 그 사람들은 그 경우를 평범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런 사람들의 관점이 변화하는 데에는 시대적인 큰 절단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시대의 근본적 관점을 "에피스테메"라고 한다. 쿤의 "패러다임"과 비슷하지만, 패러다임은 물리학에 한정된 반면 에피스테메는 아직 그만큼 명확하지 않은 인간과학을 다룬다.
미셸 푸코가 생각해둔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사물의 질서"였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본 사물의 질서 관점의 변화"라 생각하면 좋다.
푸코는 에피스테메를 셋으로 나눈다. 르네상스 에피스테메, 고전시대 에피스테메, 근대 에피스테메다.
르네상스 에피스테메에서는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철학을 전개했고, 이에 대한 설명은 내 능력의 부족으로 힘든 것 같다.
고전시대 에피스테메에서는 마테시스와 탁시노미아라는 개념을 다룬다.
마테시스는 세상의 단순한 사물에 대해 수학적인 처리를 할 수 있는 분석을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탁시노미아는 세상의 복잡한 자연에 대해 체계적인 배열을 해서 질서를 보이게 하는, 경험적이고 비수학적인, 다른 하나의 방법론이다.
한 예로, 탁시노미아의 대표적인 예시가 린네의 생물 분류 체계이다.
이 둘은 서로 교류하고, 둘 다 그 개념을 쓰기 위해 "재현"이라는 개념을 필요로 한다.
푸코는 경제학, 생물학, 언어학의 역사와 그 당시의 관념에 집중했고, 고전 시대에는 이 마테시스와 탁시노미아가 쓰였음을 보인다.
경제학은 마테시스를 주로, 생물학은 탁시노미아가 주로, 언어학은 둘 다 주로 쓰여졌다.
생물학에서 린네의 분석은 기호를 동일성과 차이로 구분하면서, 생물을 유기적 통일체로 보려고 하지 않고 가시적이고 표면적으로라도 분석이라는 태도를 처음 실행하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형식과 구조라는 면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종을 나눌 수 있게 되면서, 방법론이라는 개념을 생물학에 처음 쓸 수도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그러나 현재 사변적인 면이 있었다. 그들의 체계에는 "자연의 연속성"이라는 숨겨진 전제가 있다는 것이 한 예다.
경제학에서는 마테시스 개념이 형성됨으로서 화폐에 대한 분석을 할 수 있었다.
푸코는 여기서 화폐에 대한 탐구가 재현에 의해 한정되어 있음을 주목했다.
경제학의 역사에서는 "대논쟁"이라고 불리는 고전 시대의 부의 분석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중농주의로, 사물의 가치는 땅에서 발생하므로 땅이 상품의 잉여를 생산한다는 이론이다.
하나는 공리주의로, 사물의 가치는 인간의 필요로부터 출발하며 교환과정이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푸코는 이 논쟁이 자신의 이론을 잘 드러낸다고 했고, 둘이 사실 같은 근거 안에서 이 논의를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화폐를 표상으로 보아서, 화폐가 "교환"만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상품의 내재적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가지지 않았고, 이 논쟁은 표면적인 불일치일 뿐이라고 언급한다.
언어학에서는 일반 문법이라는 개념이 나오면서 마테시스와 탁시노미아가 역할을 같이 담당했다고 말한다.
고전시대 언어학에는 속성, 분절, 지시, 파생이라는 4가지 역할이 있었다.
여기서 속성, 지시는 마테시스적인 대상에서 역할을 하고, 분절과 파생은 탁시노미아적 대상에서 역할을 했다.
이것은 서로 상호작용으로 진행되었고, 언어는 고전시대 에피스테메에서 재현과 가장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그 이후, 고전 에피스테메의 기반이 된 재현이 한계가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에피스테메의 한계와 변화가 나오는 방식을 푸코는 설명한다.
생물학에서는 진화론의 탄생과 해부학의 발전으로 그 예를 들 수 있다.
고전시기에는 린네의 생물 분류 체계는 표식을 넘어서 하나의 사유 도구였으나, 근대시대 생물학자들은 그 한계를 자각한 것이다.
진화론과 해부학 등으로 인해 "숨겨진 재현"이 일어나면서 더 이상의 표면적 접근은 과학적이지 않다는 취급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사유에 대해서 더욱 복잡한 방식을 택하려 든 것이다.
(사실 푸코는 이 책에서 다윈을 언급하기보다 라마르크와 그 전의 진화론을 주장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편이다. 푸코는 라마르크조차도 전시대적 관점을 가졌다는 입장을 취하고 대신 퀴비에의 이론이 비록 틀린 이론이나 자연의 연속성에 대한 확고한 부정 등으로 그 이 재현의 한계를 더 잘 포착했다는 다소 논란이 있는 입장을 펼쳤다.)
푸코는 또한 경제학에서 숨겨진 재현이 일어났다고 보았다.
푸코는 가치의 근원을 표상으로서의 연결로 보지 않고 오직 노동의 생산성에 집중하게끔 단절이 된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에 주목한다.
애덤 스미스에 들어서서 노동의 양이란 말이 중요해지게 되었으며, 애덤 스미스는 더 이상 노동의 가치가 노동에 쓰이는 도구와 욕구 등에 교환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다.
리카도는 노동이 가치의 중요점을 넘어서서 가치가 나오는 유일한 원천으로 본다. 가치는 더 이상 땅이나 사물에 있지 않고 노동에 있고, 노동 그 자체의 탐구, 즉 노동의 도구, 노동분화 체계, 이에 쓰인 자본의 양에 집중한다. 이는 근원적으로 인간성과 인간의 역할이라는 위치가 중요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 경제학자들이 "소외" 등의 개념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설명한다.
언어학 또한 단절이 일어났으나, 이는 뒤 글에서 언급하겠다.
이 재현과 표상의 한계에 있어서 또다른 대안과 개념의 모임이 나오게 되었다.
하나는 학문에서 이러한 표면적 재현을 거부하면서 비판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그 비판의 기반과 근거를 마련해주는 실증주의라는 개념이 나오게 되었다.
마지막 하나는 이런 비판과 실증주의에도 불구하고 정반대로 경험의 기반을 위한 “인식 조건” 이나 “선험”을 다루는 상호 연관이 일어나, 한 형태의 형이상학이라는 개념이 다른 둘과 묶이게 되었다.
이렇게 비판, 실증주의, 형이상학이 묶인 것을 근대 에피스테메라고 부르게 된다.
이를 통해 선험적-경험적 이중체라는 체계가 철학에서 중요해지게 되었고, 현상학이라는 분야가 주목받게 된 이유라고 말한다.
푸코는 또한 이 에피스테메에서도 하나의 긴장이 있다고 말한다. 선험의 축을 담당하는 심리학과 정신분석 등의 인간과학은 인간의 유한성을 중요시하지만, 경험의 축을 담당하는 과학과 논리학은 이 광대한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한 형태의 형이상학을 구성하려고 한다. 푸코는 유한성과 형이상학이라는 이 둘의 충돌을 평하며 근대 에피스테메에 또다른 한계가 왔다는 암시를 보인다.
1-3. 현대의 르네상스인
푸코는 이런 인간과학과 철학에 대해 근대 에피스테메의 한계를 알아챈 사람이 있다고 보고, 그런 예로 니체를 예시로 든다.
내가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근대 에피스테메의 한계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그 전의 에피스테메의 이론을 다시 따와서 제시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슈펭글러를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그의 철학은 요약해서 말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희귀한 형태의 철학적 서술을 진행했으나, 그의 모티브의 측면에서 봤을 때 어느 정도의 명백한 설명이 가능하다. 슈펭글러는 자신의 역사 분석은 아주 명백하게 괴테의 형태학에서 따와 그 철학을 본받아 역사를 소묘했다고 말했으며, 괴테의 생물철학이 가장 크게 겨냥하고 있던 인물은 바로 탁시노미아 유리베르살리스를 주창한 린네였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해 보인다. 그를 르네상스 에피스테메로 돌아가려는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굉장히 도드라지는 것이 발터 벤야민이다. 내가 보기에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나온 “인식비판적 서론”만큼 르네상스 에피스테메적인 철학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또 없는 것 같다. 만일 발터 벤야민에 익숙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철학으로 르네상스 에피스테메에 대해 인지했으면 한다.
2. 분석철학에 에피스테메 적용하기
“말과 사물”이란 책에는 분석철학에 대한 내용이 아예 없다시피하지만, 이에 대한 연결점을 부여한다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2-1. 언어철학이 아닌 언어의 철학
여기서 언어학에 대한 단절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푸코의 말을 따르자면, 언어학은 고전시대 에피스테메에서 재현의 근본적인 도구의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이 말대로라면, 언어는 그 자체가 사유와 도상이었으며, 서양의 인류는 아직 “언어철학”이라는 것을 구축할 만한 인식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라이프니츠의 보편기호학 체계는 묻힐 수밖에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18세기 말에 음성학이란 것이 나와 표현의 탐구가 아니라 음성들과 음성의 상호적인 관계를 다루면서 재현의 한계가 찾아오게 된다.
그 뒤로, 언어학자인 보프의 어근의 역할에 대한 분석에 있어 비교언어학이 나오면서 근대의 에피스테메가 찾아오게 된다.
비교언어학이라는 것은 비교와 차이를 뜻하는 것이 아닌, 사실 다른 언어들 사이의 숨겨진 보편성이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산스크리트어의 분석에서 에트르 동사와 동일한 역할을 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보프의 업적 중 하나이다.
보프가 "동사와 인칭대명사는 언어의 진정한 지렛대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말을 함으로서 동사의 어근이 대상을 표상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언어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본 계기가 되었다.
2-1-1. 언어의 격하
이를 통해 고전시대의 일반 문법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면서, 언어가 본질적으로 무엇이냐라는 물음이 굉장히 중요해지게 되었다. 이때 기호논리학이란 개념이 나온다. “언어가 문헌학을 위한 대상으로 떠오르는 바로 그 시기에 불에 힘입어 기호논리학이 탄생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것은 언어학에 대한 근대과학적 성찰의 특징을 보여주게 되었다. "수학을 토대로 한 지식 영역들의 분류, 더 복잡하고 덜 정확한 것 쪽으로의 진전을 위해 정립되는 위계, 경험적 귀납의 방법에 대한 성찰, 이 방법에 철학적 근거 및 형식적 정당화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비롯하여, ... 자체를 정련하고 형식화하고 가능한 한 수학적으로 처리하려는 시도가 유래한다.”
이렇게 되면서부터, 진정 “언어철학”이라는 것이 생길 수 있게 되었다고 이 책은 주장하고 있다.
고전시대 에피스테메에서의 언어철학은 말하자면 “언어 도식주의”라고 할 수 있다. 고전주의 시대에 언어는 재현을 표현하는 그 자체였고, 생물, 인간의 욕망, 인간의 언어가 전부 말의 분석에서 상관관계를 맺고 있었다.
물론 근대 에피스테메가 도식의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근대 에피스테메에서도 유용한 언어를 통해 도식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많았으나, 근본적인 목표가 달랐다.
고전주의 에피스테메에서는 표상의 일정한 도표로 자연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고, 따라서 수정 가능한 "격자"를 제공한 것이나, 이제 언어는 격자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깝다. 고전주의 에피스테메에서는 언어가 격자를 제시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자연을 표상했으나, 이제는 자연의 충실한 그림이 되기 위해서 수동적으로 도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을 푸코는 “언어의 격하”라고 부른다.
2-2. 에피스테메의 절단
이 에피스테메의 절단을 요약하면 “인간의 유한성 탐구의 시작”와 “형이상학의 재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말의 분석의 상관관계와 그의 기반이 되는 재현으로 분석을 했지만, 재현이라는 개념이 한계를 보이면서 이젠 유한성과 인간의 분석론, 그리고 그와 정반대로 대립하는 생명, 노동, 언어의 형이상학을 구성하려는 경향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부분이 언어를 판을 두고 맞서게 된다.
2-3. 두 가지 부류, 해석과 형식화
이 언어의 격하가 일어나면서 언어는 두 가지 형태로 가치가 부여된다. 하나는 해석이며, 하나는 형식화이다.
언어가 철학의 대상이 되면서 경제학, 생물학, 언어학의 수많은 이론들이 전부 언어의 이론으로서 설명되게 되었고, 글을 쓰는 푸코조차도 이 모든 설명을 하기 위해 서술 방식을 정돈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 언어학은 “전통, 말없는 사유의 관습, 민족들의 정신, 기억으로 인식되지 않은 것” 등으로 감춰져 있는 수많은 인간과학의 개념들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담론의 진실"이라는 것은 "문헌학의 올가미"에 걸려들게 되었다. 프랑스 철학의 개념을 빌려, 이제 언어와 주석의 역할은 "우리의 관념에 잡힌 문법"의 “주름”을 드러내며 지속되고 비완결적인 해석을 반복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해석의 대표주자로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를 언급한다.
2-3-1. 해석학의 극단 -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이 해석의 대표주자를 말하기 전에, 푸코가 어떻게 기호학과 해석학을 정의하는지부터 살펴본다.
그는 간단하게 이를 정리한다.
“기호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기호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인식과 기법 전체를 해석학이라 부르고, 기호가 어디에 있는가를 판별하고 기호를 기호로 성립시키는 것을 규정하며 기호들 사이의 관계와 기호들의 연쇄법칙을 알게 하는 인식과 기법 전체를 기호학이라고 하자.”
그가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를 언급하며 이들의 해석학에 주목했다는 말은, 근대 에피스테메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기호학보다 해석학에 치우쳐져 있는지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라는 강의록에서 이들이 어떤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제시한다.
푸코는 근대 에피스테메의 해석에 대해 먼저 논한다.
해석은 무한한 작업이 되었고, 해석은 언제나 미완성으로 남아 해석 자체의 가장자리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갈가리 찢겨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해석의 극단들을 설명한다. 푸코는 이 해석의 대표주자, 해석학의 극단에 있는 세 사람의 이론에서 극단의 형태들을 발견한다.
푸코에 따르면, 해석학이 극단이 될 경우 해석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해석이 다 완결되지 못한 채 귀환점을 발견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해석으로서의 해석 자체가 사라지며, 해석자 자신도 사라지게 되는 지점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고 설명한다.
프로이트의 도라가 그 사례다.
도라에 대한 분석에서 프로이트는 전이라는 개념을 고안해서 해석의 무한한 지속을 막고 해석이 적당한 곳에서 알맞게 멈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방식으로 정신분석은 끝없이 펼쳐지게 만든다.
니체의 사례도 그렇다.
니체의 경우, 항상 해석은 미완이다. 철학은 언제나 미완이고, 미결이고 목적도 없고 항상 멀리 나가는 문헌학일 뿐이다. 그는 “절대적인 인식으로부터 소멸되는 것이 존재의 토대를 이룬다"라고 하며 해석자가 소멸하기를 원한다.
또한 푸코에 따르면, 해석의 본질적인 미완결성 자체가 해석학의 하나의 공리가 된다.
해석에 선행하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이미 해석이며, 기호조차 다른 기호들에 대한 해석이라 칭한다.
니체가 그리스어의 좋음, 아가토스의 어원을 분석하는 것에서도 그렇다.
도덕의 계보 첫번째 논문 5장에서 용어는 항상 지배 계급이 만든 것이라고 할 때, 이는 기호는 언제나 기호의 의미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조직으로서의 해석을 요구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니체가 해석 작업에 매달리는 이유는 일차적인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이라는 것을 해석하기 위해서이고, 언제나 언어에는 해석의 거대한 조직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증상에 대한 분석에 대해서도 그렇다.
프로이트는 증상에서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존재 자체가 하나의 해석에 속하는 환각phantasm이다.
프로이트는 환자가 증상에서부터 해석된 언어를 제외하곤 다른 것을 해석할 수가 없었고, 해석이 주어진 용어에 의해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서 해석학은 아주 큰 우위를 지니게 된다.
니체는 해석자를 진실한 자라고 불렀다. 푸코는 여기서 해석이 진리가 된 방식이 단절되었음을 포착한다.
이제 해석은, 시야에 지금까지 없던 진리를 포착하는 게 아니라, 지식들의 그물로 은폐되버린 진리를 드러낸다.
기호는, 말하자면, “악의”를 가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자본에서 나오는 화폐라는 기호는 바로 이런 기능이었다. 이제 이론들은 화폐라는 기호에 대한 부정적 개념들을 알려주려고 한다.
니체에게는 낱말, 정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분류,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기호 전체가 전부 가면을 쓰고 있다고 보았다.
해석학은 하지만 이러한 점으로 특성이자 하나의 단점이 나오게 된다.
첫째로, 해석학은 해석을 대체 누구가 하느냐가 중요해진다. 의미를 해석하기보다 해석자로부터 해석하려 한다.
니체가 철학을 "심리학"이라 부른 이유가 이것이다.
둘째로, 해석학에서 해석은 항상 자기 자신을 해석해야 한다.
여기서 해석학은 기호학이라는 억제기를 만나는데, 기호는 자기 자신의 일관성과 체계성을 가지고 있고 이 두가지 특성에 답할 수 있게 해석의 폭력성과 무한성을 막기 때문이다.
푸코는 "해석학과 기호학은 사나운 원수지간"이라고 말한다. 기호학은 해석학으로 하여금 해석의 폭력성과 미완결성, 무한성을 버리고, 더 이상 해석을 해석하려 하지 않고 기호에 의존해 해석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해석학은 니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뒤엉키게 하는 해석으로 가기 때문이다.
2-3-2. 대립의 서막
이렇게 해석과 형식화, 해석학과 기호학 중에서 해석에 대해서는 푸코가 아주 긴 논변을 펼쳤으나, 나머지 하나인 형식화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말과 사물이란 책의 극후반부에서 실증주의와 “인간이 구성할 수 있는 과학”의 충돌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형식화에 대한 내용을 암시하지만 이마저도 그렇게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책에서 해석과 형식화의 대립을 (그 적혀 있는 몇몇 부분에선) 이렇게 설명한다.
"근대적 사유에서 해석의 방법은 형식화의 기법과 대립한다. 즉 전자는 언어 아래에서, 그리고 언어 없이 언어로 말해지는 것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언어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자 하고, 후자는 모든 잠재적 언어를 통제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의 법칙에 의해 모든 잠재적 언어를 위로부터 지배하고자 한다. 해석하기와 형식화하기는 우리 시대의 두 가지 중요한 분석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러셀과 프로이트의 대립”이라고 비유하기도 하였다.
미셸 푸코는 분석철학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가졌던 편이라고 하나, 어떤 때에도 이것을 중심적으로 탐구한 적은 없었다. 푸코의 모든 저술 중에서 러셀에 대한 언급은 이 말과 사물에 나온 이 언급, 단 하나뿐이다.
또한, 미셸 푸코는 형식화의 예시로 구조주의를 예로 들 뿐, 분석철학과 같은 “변방”의 학문을 가져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접근일 수 있다.
그래서 사실 미셸 푸코로 분석철학을 분석하는 것은 정말 그다지 좋지 않은 접근이다.
그러나 나에게 굉장히 눈에 뜨이는 부분이 하나가 보인다.
저 해석과 형식화의 대립을 설명한 뒤, 이렇게 적었다 - "이 분할의 두 갈래는 우리와 너무나 동시대적이어서 우리로서는 이 분할이 단순한 선택을 강요한다거나, 의미의 실재를 믿었던 과거와 의미하는 것을 발견한 현재 사이에서 우리가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의 정반대라는 것이다.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구분은 매우 심했다.
둘은 서로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으며, 진정으로 선택과 결단을 택해야 했다.
그렇다면 시험삼아서라도 러셀을 푸코의 고고학으로 분석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4. 러셀 - 하나의 극단, 하나의 변종
2-4-1. 실증주의와 인간과학
러셀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아직 말과 사물에서 설명해야 할 부분이 존재하므로, 다시 설명을 진행하겠다.
근대 에피스테메는 전에 말했듯이 비판, 실증주의, 형이상학이 같이 묶인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형이상학에 대응되는 선험성과 실증주의에 대응되는 경험성이 중요하게 되었고, 선험적-경험적 이중체라는 체계가 철학에서 중요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선험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은 상호보완하는 면도 있으나 충돌하는 면도 있다.
예를 들어 “기원”의 문제가 그러하다.
“인간이 구성할 수 있는 과학”, 심리학과 정신분석과 같은 인간과학은 선험성과 대응되고, 인식 조건을 다루기 때문에 인간의 유한성을 중요시한다. 그에 반해 사물을 다루는 과학은 경험성과 대응되고 무한성에 뗄래야 뗄 수 없게 된다.
이 상황에서 인간과학의 개념에 대한 기원을 살펴보게 되는 경우 인간으로의 기원과 사물에서의 기원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사물에서의 기원은 인류 자체의 기원까지 뛰어넘어 훨씬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충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 극단이 나오게 된다고 푸코는 보았다. 하나는 인간의 개념을 사물의 개념에 완전히 환원하려는 극단적 실증주의의 시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사물에 관해 얻는 지식으로 사물을 완전히 환원하려는 극단적 "인간이 구성할 수 있는 과학"의 시도이다.
2-4-2. 러셀 - 하나의 극단, 하나의 변종
이렇게 된다면, 러셀이 어떻게 푸코의 고고학 개념 속에 속하게 되는지를 보일 수 있다.
근대 에피스테메는 “인간의 유한성 탐구”와 “형이상학의 재탄생”으로 대표된다. 재현의 한계를 보이는 인간의 유한성을 탐구하려 하면서, 동시에 생물학, 경제학, 언어학에서 나오는 숨겨진 재현들을 분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러셀이 취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개념을 사물의 개념에 완전히 환원하려는 극단적인 실증주의적 시도와 함께, 남은 인간성에 대해서 유한성의 소박한 부정, 소박한 무한성을 취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수학 원리”로 대표되는 언어의 기호논리학의 환원가능성이다.
이 경우, 근대 에피스테메의 세가지 쌍인 비판, 실증주의, 형이상학에 있어서 아주 안정적인 구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극단적 실증주의로 경험성을 추구하고, 소박한 무한성으로 무한정적인 비판을 가능케 한다. 이는 모두 기호논리학이란 “형이상학”을 기반으로 잘 적용할 수 있게 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해석과 형식화, 해석학과 기호학 중에서 러셀이 취한 것이 무엇인지가 아주 명확하다는 것이다. 러셀은 형식화의 극한, 기호학의 극한을 취했고, 이는 “수학 원리”와 그로 인한 수리논리학, 또한 언어철학에서 “해석”의 역할이 얼마나 빈약한지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을 한 형태의 대항담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 에피스테메에서의 해석은 “해석을 도중에 멈추고 귀환점으로 돌아가고, 해석으로서의 해석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까지 존재하며, 해석의 본질적인 미완결성 자체가 해석학의 하나의 공리가 되고, 모든 것이 이미 해석이고, 기호조차 다른 기호들에 대한 해석이 되는” 극단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여기서 수리논리학이 하는 역할은 "해석"에 대한 완전한 저항, 완전한 형식화, 완전한 기호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러셀의 소박한 무한성과 기호논리학으로서의 형이상학적 개념은 현재에도 다니엘 데닛이나 토마스 네이글과 같은 현대의 몇몇 분석철학자들도 가지고 있고, 확실히 비약이 있지만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개념을 만드는 기반이 되기도 한 것 같다.
이것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나는 여기서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을 언급하려고 한다.
주관과 객관이란 개념 구분을 피하려는 가다머에게는 “교양” 개념을 인간에게 교육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교양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주관적이고 사적인 것을 객관적이라 생각하지 않게 하는 것, 즉 “공통감각” 개념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진리 추구의 중요한 점임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 교양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수학”이 아니라 인문주의적 연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수학”의 예시로 “포르루야얄의 논리학”의 역사성와 정신과학의 빈약함을 드는데, 이 포르루야얄 학파의 논리는 수학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고, 수학이라기보다 명석판명한 데카르트적인 지식에서 학문을 쌓아놓으려 했던 역사적 시도 중에 하나였다. 이것을 “수학”이라고 라벨링을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진리와 방법”이란 책에서는 그 “수학”을 완전히 비판하려고 하기보다 빈약함 그 자체를 호소하는데, 여기서 분석철학 또한 그러한 “수학”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4-3. 데스튀트 드 트라시
이렇게 “비판, 실증주의, 형이상학”이란 근대 에피스테메의 삼중 쌍을 아주 안정적이게, 극적이게 구성해낸 러셀에 대해서 무슨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로, 러셀이 저지른 철학의 초역사성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생략하겠다.
둘째로, 이것이 어쩌면 근대 에피스테메의 가장 큰 발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푸코는 고전시대 에피스테메에서 재현의 개념을 가장 크게 발휘한 “데스튀트 드 트라시”와 그가 고안한 관념학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이 데스튀트라는 철학자는 당대 칸트와 대립했으며, 관념학은 재현의 영역을 전반적으로 살피고 재현에서 유지되는 구성과 해체의 법칙을 드러냈다. 이 학문은 단순한 최초 형태와 최소 내용으로의 감각이 사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푸코에 의하면 "재현의 분석이 최대로 확대되는" "인간에 대한 자연과학"이었으나, 고전시대 에피스테메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었고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 데스튀트 대신 자리잡은 것은 칸트였다. 칸트는 재현의 토대, 한계, 근원을 탐구한 사람 중 하나이고, 무엇보다 이 사유와 감각의 재현을 가능케 하는 관계에 대해 의문을 삼아 철학의 결실을 얻게 되었다.
러셀은 가정하건대 또다른 형태의 데스튀트 드 트라시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과 사물 9장에서 나오다시피 근대 에피스테메에서는 몇 가지 큰 한계점이 존재하는데, 소박한 무한성을 취함으로서 선험성의 인간과학과 경험성의 사물을 다루는 과학의 충돌에 한 편을 들어주거나 이 대립 자체를 무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러셀의 목표였던 “논리적 토대의 구성”에 대해서 수많은 한계점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알 것이다.
이 글은 다른 목표를 잡고 있다. 이 글은 그 한계에 대한 설명을 하려기보다, 이 러셀의 시도 자체가 그 첫걸음부터 한계가 예시되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2-5. 비트겐슈타인 - 러셀의 반발
2-5-1. 아주 소박한 문제 - 코뿔소는 소인가?
러셀의 철학은 그의 철학이 빛을 발하기도 전에 다른 철학에 의해 보충되기 시작했다.
러셀과 그로부터 비롯된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는 “소박한 문제”들이 일어난다.
그런 예시로 “코뿔소는 소인가?”를 들 수 있다.
코뿔소가 소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린네의 종 분류 체계는 그 린네의 체계만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 생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그로 인한 생물 분류법의 수정이 무엇인지 또한 알고 있어야 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알고 있지 않으나, 현대 과학의 발전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조류와 파충류에 대한 구분이 굉장히 희미하므로 “석형류”라고 분류가 되어 있다고 하고, 더 이상 린네의 분류법을 쓰고 있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구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나, 논리실증주의자에게는 꽤 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는데, 왜냐하면 마흐 등의 철학으로 인해서 “감각 인상의 해체”라는 개념과 같이 전문가의 감지력, 언어로 표시할 수 없는 분별력을 배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자는 이러한 문제는 그렇게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소박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박하기에는 철학적으로 꽤 진지한 문제들 또한 일어나게 된다.
“인과성”이나,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그런 예시이다.
흄이 언급한 인과성의 문제나, 세계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그들에게도 꽤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는 그들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초기 비트겐슈타인이 러셀의 소박한 무한성을 버리고 유한성을 택했는지에 대해, 그것이 왜 필요했는지에 대해 꽤 자연스러운 접근을 취할 수 있다.
초기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지으려고 한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함으로서 수많은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지켜야 하는 문제에 속하는 것에 “인과성 문제”와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있다. (6.44 세계가 어떻게 있느냐가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 6.522 실로 언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스스로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로도 막을 수 없는 몇몇 점이 존재하게 된다.
2-5-2. 아주 큰 문제 - 프레이저
이러한 소박함으로 인해 “러셀 학파”라 불릴 수 있는 이 단체는 아주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초기 비트겐슈타인을 후기 비트겐슈타인으로 만들게 한 시작점이 된다.
이 근대 에피스테메의 극단이자 변종에서 나온 책이 바로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이다.
프레이저는 "황금 가지"에서 인류학적으로 다른 부족의 주술과 신화와 전설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이 시대에서 굉장히 평범한 형태의 책을 썼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에 관한 소견들"이라는 짤막한 글을 쓰는데, 여기서 그는 프레이저를 말그대로 "극혐"한다.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에 관한 소견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프레이저의 책에는 고대 시기의 불가리아에서 여성이 어린아이를 입양할 때 그 아이를 치마 속에 넣고는 그 뒤론 그들의 전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프레이저는 이 일을 주술의 일부로 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프레이저가 이것을 주술로 본 것은 이것을 오류의 일부라 생각했다는 것이고, 오류라 생각했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프레이저의 또다른 예로 아프리카의 한 부족에 있는 비의 왕을 언급한다.
그 부족이 사는 지역은 3월 말쯤에 우기가 온다고 하고, 3월 말이 될 때마다 그에게 빈다고 한다.
프레이저는 이걸 의식이라고 보고, 그들은 신앙이 비가 오게끔 한다고 믿는다고 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여기서 이렇게 비판한다. 그들이 왜 하필이면 우기에 빌고 있는지, 진짜 그렇게 믿는다면 건기에는 왜 안 비는 것인지.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는 행위와 다른 행위의 유사성만이 확인이 가능하고, 유사성 이상의 것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주술과 의식의 의미는 우리가 하는 키스가 가진 의미나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그 "미개인"들의 문화는 우리의 문화와 같았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우리가 왜 키스를 하는지 이론화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저 문화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 기쁨을 얻을 정도로 완전히 "내장되어" 있다.
프레이저는 이것을 모르고 그저 이론을 가져다 일반화하고 수학화해서 설명해댔고, 따라서 프레이저는 "미개인들보다 훨씬 더 미개하다"고 말한다.
이 프레이저와 “러셀 학파”에 대한 고함과 분노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비트겐슈타인이 쓴 조각글 중 가장 기괴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문화와 가치”의 한 문구, Philosophical Remarks에 달 예정이었던 “서문을 위한 스케치”에 있다.
서문을 위한 스케치는 다음과 같다:
"서문을 위한 스케치:
이 책은 이 책이 쓰이게 된 정신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들을 위하여 씌었다. 내가 믿는 바로는, 이 정신은 유럽적이고 미국적인 거대 문명의 정신과는 다른 것이다. 이 문명의 정신은 -그 표현이 현대의 산업, 건축, 음악, 파시즘 그리고 사회주의인데- 필자에게는 낯설고 공감되지 않는 정신이다. 이는 결코 가치 판단이 아니다. 오늘날 건출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건축이 아님을 마치 내가 모른다거나, 또 현대 음악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마치 필자가 (그 언어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최대의 불신을 표명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술의 소멸은 인류에 대해 비난하는 어떠한 판단도 정당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실하고 강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시대에는 예술의 영역으로부터 몸을 돌려 다른 일들에 종사하며, 개별자의 가치는 어떻게 해서든 표현되기 때문이다. 물론 위대한 문화의 시대에서와 같지는 않다. 문화는 말하자면 하나의 커다란 조직과 같다; 그것은 그것에 속하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자기 자리를 할당하여 거기에서 그가 전체의 정신 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며, 또 그의 힘은 전체의 뜻 속에서 그가 이룬 성과에 의해 어떤 정당성을 갖고 측정될 수 있다. 그러나 문화가 없는 시대에는 힘들이 갈기갈기 찌어진고 개별자의 힘은 대립된 힘들과 마찰 저항들로 인해 소모된다; 그 힘은 거쳐 지나온 길의 길이에서가 아니라, 아마도 단지 마찰 저항의 극복에서 그가 산출하는 열기 속에서나 표현된다. 그러나 에너지는 여전히 에너지로 남는다; 이 시대가 보여주는 드라마가, 최고의 사람들이 동일한 커다란 목적을 위해 기여하는 위대한 문화 산업의 생성이란 드라마가 아니라, 그 최고의 사람들이 단지 사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대중의 거의 볼품없는 드라마일지라도, 우리는 중요한 것은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화의 소멸이 인간적 가치의 소멸이 아니라 단지 이 가치를 표현하는 어떤 수단들의 소멸을 의미할 뿐이라는 점은 나에게는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럽 문명의 흐름을 공감 없이 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목적들을 -만일 그것이 목적들을 지닌다면- 이해함이 없이 보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니가 나는 실은 세계의 구석진 곳들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전형적인 서구 과학자에 의해 이해 또는 평가될지 여부는 나에겐 아무래도 좋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어떤 정신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를 어쨌든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명은 진보라는 낱말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진보는 그것의 형식이지, 그것의 속성들 중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전형적으로 구축적이다. 그것의 활동은 점점 더 복잡한 구성물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명료성조차도 단지 이 목적을 위해 봉사하지, 목적 자체가 아니다.
이에 반해서 나에게는 명료성이, 투명함이, 목적 자체이다.
나에게 흥미 있는 것은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건축물의 기초들을 투명하게 만들어 내 앞에다 놓는 것이다.
나의 목표는 그러니까 과학자들의 목표와는 다른 것이며, 또 나의 사유 운동은 그들의 것과 구별된다.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은 이미 언제나 전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니까 늘 계속해서 동일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마치 상이한 각도에서 고찰된 하나의 대상에 대한 견해들만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오직 사다리로 올라갈 수 있다면, 나는 거기에 도달하려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로 가야만 하는 곳, 그곳에 나는 원래 이미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다리로 도달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흥미를 주지 못한다.
한 운동은 생각과 생각들을 일렬로 이어 나가고, 다른 한 운동은 언제나 계속해서 동일한 곳을 목표로 한다.
한 운동은 돌을 하나씩 (손에) 집어 들어 건축하고, 다른 한 운동은 언제나 계속해서 동일한 것을 붙잡으려 한다.
긴 서문의 위험은, 책의 정신은 책 자체에서 보여야 하지, 기술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책이 극소수의 사람을 위해 씌어 있다면, 이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 책을 이해한다는 바로 그 점을 통해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책은 그 책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동적으로 분리하지 않을 수 없다. 서문조차도 그 책을 이해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씌어 있다.
어떤 사람에게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비록 우리들이 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부언하더라도, 아무런 뜻이 없다. (이런 일은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우 종종 일어난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들이 방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가진 열쇠로 열 수 없는 자물쇠를 걸라. 그러나 당신이 그들이 그 방을 밖에서 찬탄하는 것을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방에 대해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은 뜻이 없다!
더 적당하기로는, 문을 열 수 있는 사람들만 끌어당기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자물쇠를 문에다 걸라.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 책이 유럽과 미국의 진보하는 문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이 문명은 아마도 이 정신의 필연적인 주위 환경이라고, 그러나 그것들은 상이한 목표들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마치 대제사장 같은) 모든 의식은 엄격히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부패하기 때문이다.
키스는 물론 하나의 의식이면서도 부패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식은 키스처럼 진솔한 꼭 그만큼만 허용된다.
정신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것은 커다란 유혹이다."
이것이 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문명, 음악, 예술, 진보, 의식, 부패, 그리고 의식의 한 형태로서의 키스까지 언급되어 있는 이 문구는 대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푸코의 고고학을 쓴다면 이것에 대한 꽤 좋은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이 조각글은 슈펭글러와 그가 가진 르네상스 에피스테메를 취하려는 하나의 흔적이다.
2-5-3 - 슈펭글러와 수학철학
말과 사물에서 슈펭글러에 대한 언급이 하나 나온다. 근대 에피스테메의 큰 난점인 기원의 문제에서 슈펭글러가 나오는데, 인간이 구성할 수 있는 과학과 실증주의의 기원의 충돌에서 “극단적인 궁핍에서 강렬한 평정”을 원하는 사람 중 하나로 슈펭글러를 든다.
이것을 보다 더 세부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하나의 가설을 세우려고 하는데, 그것은 근대 에피스테메의 한계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그 전의 에피스테메의 이론을 다시 따와서 제시한 사람들이 있고, 슈펭글러가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르네상스 에피스테메로 되돌아가려는 자이다. 그의 철학은 명백하게 괴테의 철학을 오마주했다 하고, 괴테의 생물철학이 가장 크게 겨냥하고 있던 인물은 바로 고전시대 탁시노미아 유리베르살리스를 주창한 린네였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해 보인다.
슈펭글러와 비트겐슈타인의 연결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비트겐슈타인의 “일목요연한 묘사”의 개념과 “수학”의 충돌에서 볼 수 있을 듯 하다.
“일목요연한 묘사”는 명백히 슈펭글러를 오마주하기 위한 개념이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수많은 활동은 이 일목요연한 묘사를 통해 수학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슈펭글러의 책을 볼 때 더 설득력을 얻는다. 슈펭글러가 그의 주저 "서구의 몰락"을 쓸 때 가장 처음 한 일이 문명 간에 "수학"이라는 개념이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다르다는 것이었고, 이것에서부터 문명 각각에서의 논리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전개한다.
비트겐슈타인과 수학철학의 관계는 정말로 미묘하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을 시작한 이유는 러셀의 수학의 논리주의 때문이었고,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을 다시 시작한 때 브라우어가 수학의 직관주의를 주창했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가 가장 벽에 막힌 이유가 수학철학 때문이었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의 맨 마지막은 수학철학을 말하기 직전이다.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을 본다면, 그가 수학철학에서 하는 말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의 확실성이 정말로 그렇게 확실한가? 수학의 확실성은 왕의 대관식만큼이나 확실하거나 확실하지 않지 않는가?"
이를 슈펭글러에 대한 접근의 흔적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슈펭글러가 한 문화에 대한 접근은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다.)
2-6. "수학 원리"의 사상 비판으로서의 비트겐슈타인
"마치 우리가 의미의 미묘한 차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에, 문제가 되는 것은 정확한 뉘앙스를 지니는 낱말들을 찾아내는 게 전부인 듯이 말이다. 그것은 철학에서 우리가 다만 어떤 특별한 종류의 표현을 사용하려는 유혹을 심리적으로 정확히 묘사해야 하는 그런 곳에서만 문제가 된다. 그런 경우에 우리가 '유혹에 빠져 하는 말'은 물론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원료이다. 따라서 예컨대 수학자가 수학적 사실의 객관성과 실재성에 관해서 일반적으로 하는 말들은 수학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 다루어야 할 어떤 것이다." (탐구 254)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은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이 유고에 대해서 수리논리학을 원시적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주었다.
그러나 이 수많은 철학자와 수학자의 비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한 사람은 베르나이스인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을 어린 아이들의 놀이 정도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을 꽤 잘 요약하는 말인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이 하려고 한 일을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은 “수학 원리”의 사상에 맞서서, 즉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기호학에 맞서서,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해석학을 논하려 한 사람이라고.
그 당시의 분석철학자들은 수학과 논리가 가지는 엄밀성을 보고 그곳에서부터 철학에 체계화와 도식화를 하고 있었다. 막스 블랙의 구별불가능성 논지나, 진리 이론을 진리 대응이론 - 진리 정합이론 - 진리 실용이론 - 진리 잉여이론 등으로 구분하는 것과 같이, 현대 분석철학의 기반이 되는 형식화와 체계화가 그가 수학철학을 쓸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이 체계화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어의 “윤리학 원리”의 good의 구분이 마주친 난점처럼 전부 난점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접근하려 했던 것이다. 이 형식화와 체계화의 근원이 되는 수학의 가장 근원적인 측면을 찾아보고, 바로 이 근원적인 측면에서 수학과 산수는 형식성도 체계성도 도식성도 가지지지 않음을 아주 원시적인 형태에서 보이려 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분석철학의 논의들은 헤르츠의 말을 빌려 “헛돌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을 접근하는 방식은 완전히 역전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이 어디에서 가장 논쟁이 심한지를 생각해보자.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에서 보이듯이 그의 수학철학의 대부분은 가장 원시적인 산수와 “무어의 얼굴” 같은 그림이나 기호에 집중하고 있다. 그에 반해 현대 수학철학자가 이 수학철학책을 볼 때 주목하는 부분은 불가능성 증명의 문제, 소수점 아래 숫자의 조망가능성,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같은 고차적인 곳에서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은 수학철학이 목표가 아니라 해석학이 목표일 것이다. 철학적 탐구에서 일목요연한 묘사 개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읽기” 파트라는 점이나, 이 “읽기” 파트 뒤에 얼마 안 있어 수학철학을 다룰 흔적이던 189가 나오는 것이 이를 지지해준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대한 퍼트남의 해석은 많이 소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퍼트남의 해석은 나의 의견을 지지해준다고 생각한다.)
3 -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다른 접근
3-1. 클로소프스키적 재해석
이제 이러한 관점을 통해, 여기서부터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재해석을 하려고 한다.
이 재해석은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책인 “논리철학논고”와 “철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연구하기보다 그의 “문화와 가치”,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과 같은 유고집을 주로 사용하며, 그의 수학에 대한 광기와도 같은 집착을 가장 중점으로 두고, 문화에 대한 이상한 관심을 주목하며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 재해석에는 좋게 말하면 대담한, 나쁘게 말하면 과잉된 가설들을 많이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재해석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정당하고 완결된 해석이라기보다 이런 새로운 관점이 있을 때 어떤 사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알리는 데에 맞춰져 있다.
피에르 클로소프스키의 “니체의 악순환”이 이런 재해석의 모델이 되었다.
나는 이 클로소프스키적 재해석에서 아주 강한 주장을 펼치고 싶다. 그것은 바로, 비트겐슈타인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수학철학이었고, 비트겐슈타인이 평생 천착한 문제가 바로 수학철학의 문제였으며, 그 수학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사실 “확실성에 관하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규칙 따르기”와 "확실성"이란 논제 자체가 애초에 중기 비트겐슈타인의 규약주의적이고 구성주의적인 수학철학을 포기하면서 나온 부수적인 논제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급작스럽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3-2. 이승종의 문제에 대하여
적어도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에 대해서는 클로소프스키적 재해석을 요구한다.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이승종의 "비트겐슈타인 새로 읽기"에서 나오는 수학철학 파트의 한 부분이다.
이러한 "단절적 해석"은 굉장히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또한 이승종의 글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이 공리의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듯해 보이는데,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가는 모든 상황이 absolute geometry 등 공리 체계에 대한 선택으로 모두 설명 가능한 데 비해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RFM)"에서 나온 논의는 공리의 선택과 전혀 관련이 없이 간단한 계산과 증명이 있을 때 이것이 전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충돌하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더밋이 왜 비트겐슈타인을 극단적 규약주의자로 두었는지에 대해서 큰 고찰이 필요하다.
이 더밋이 요구한 문제는 아주 강경한 상대주의의 문제이다. 이것은 어떻게 말하자면 논리학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학의 문제이다. 스트라우드가 장작 더미에 대해서 인류학적인 접근을 하는 것은 이것에 대한 방어로서 해석되어야 하는데 그 내용이 전혀 적혀있지 않은 것은 문제이다.
스트라우드가 인류학적인 논의를 한 이유에 대해서 전혀 적혀 있지 않음으로서,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에 대한 상당한 무시를 드러냈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은 인류학적인 논의와 이어지고, 바로 이 관계는 슈펭글러와 아주 끈끈이 이어져 있다. 이승종이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을 논하면서 단 한 번도 슈펭글러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봐야 한다.
3-3. 사적 언어에 대한 재고 필요
3-3-1. 헤르츠의 그림 관계에서 나오는 난점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경우 자주 사용한 "그림"이라는 개념이 후기 비트겐슈타인에게 어떻게 쓰이는지는 중요하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용어의 사용이 어떤지에 대해서, 우리는 "헤르츠의 개념에 대한 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그림"이라는 개념은 헤르츠에게 나온 것인데, 헤르츠의 이 개념에 대해 "단숨에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탐구 191)", "과도한 사실에 대한 모형 (탐구 192)"라 말하며 난감한 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초-표현", 혹은 "철학적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 예시로 논리철학논고에서 나오는 명제의 일반 형식, 진리 함수의 일반 형식, 자연수의 일반 형식을 그 예로 둘 수 있는데, 탐구 192 전체는 이에 대해 "넌지시 난감을 표하는 부분" ("수학철학의 열기") 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 게임", "가족 유사성"으로 아주 유명한 문구는 탐구 66에서 나온다. "가족 유사성"이 적용되는 용어의 예시로 게임을 예로 드는데, 이 탐구 66 이후 탐구 67에서 게임 다음으로 예시로 드는 것은 "수number"이다.
실제로 현대 수학에서 "수"에 대한 정의, 필요충분조건은 제시되어 있지 않는데, 이것에서부터 비트겐슈타인은 헤르츠에 대한 극복, 초기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극복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3-2. 201절에 대한 탐구
비트겐슈타인의 사적 언어 논변으로 유명한 탐구 201과 그에 대한 논쟁은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이것에 대한 논의 중 주목할 텍스트로 Gordon Baker의 Wittgenstein's Method와 이영철의 "규칙 따르기와 사적 언어"를 두고 싶다.
이들에 따르면, 결정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사적 언어가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들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사적 언어의 부정"이라는 논지보다 "의미의 유한성"이라는 논지에 훨씬 더 가까웠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에 대한 논변의 보충을 탐구에서 찾으려고 한다.
크립키는 사적 언어 논쟁을 일으킬 당시에 사적 언어로 대표되던 문구보다 더 앞선 곳에 있는 탐구 201을 핵심 주제로 삼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 탐구 201의 기반이 되는 것은 바로 탐구 192와 탐구 194라는 것이다.
기존의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모델"로 대표되었던 "초-표현"과 "철학적 최상급"에 대해 탐구 192 전체는 "넌지시 난감을 표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고, 이와 관련된 탐구 191, 193, 194는 이 헤르츠의 "그림" 개념에 대한 문제점을 서술하려고 한다.
여기서 탐구 194에서 논의한 이 부분은 굉장히 주목해 볼 만하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관한 우리 자신의 표현 방식에 주의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 해석한다. 철학을 할 때, 우리는 문명인들의 표현 방식을 듣고 그것을 잘못 해석하여 아주 이상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미개인들, 원시인들과 같다. (탐구 194)"
"미개인", "원시인"이라는 어수룩한 표현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슈펭글러를 본다.
푸코의 말과 사물에서 나오는 말라르메의 언급은 볼 만하다.
푸코는 근대 에피스테메에서 니체가 말에 대해 말하는 자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는 분석을 긍정적으로 평하며, 그 대답을 말라르메가 했다고 한다. 말라르메에 따르면, 말을 하는 자는 다름 아닌 말이다. 이는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답과 대응된다.
"의미의 출처가 어디인가"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굉장히 어려운 논변을 사용했고, 의견 또한 통일되어 있지 않다. 논리철학논고 5.54-5.5422에서도 그렇고, 이 통칭 "메타-의미론"에 대해서 비트겐슈타인은 주-객 관계를 최대한 제거하려고 애쓰는 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분명 말라르메의 답변, "말이 말한다"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말라르메를 따라 "말이 말한다"라는 논지를 취했다면, 이도 또한 한 형태의 "초-표현", "철학적 최상급"이 아닌가? 여기서 문화와 가치에 있는 이 문구는 아주 인상깊다.
"예술 작품은 '감정'을 전한다는 톨스토이의 잘못된 이론화로부터 우리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그리고 어쨌든 예술 작품은 감정의 표현은 아니지만, 감정의 한 표현, 또는 하나의 느껴진 표현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표현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해하는 만큼 그것에 맞춰 '몸을 흔들고', 그것에 응답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은 다른 어떤 것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전하려 한다. 마치 내가 어떤 사람을 방문할 때 나는 단지 그에게 이러이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를 방문하고, 또 물론 환대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MS 134 106)"
(이것은 "서문을 위한 스케치"와 아주 큰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3-4. 확실성에 대한 해석
3-4-1. 확실성, 술책, 종교
비트겐슈타인의 확실성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는 하나의 가설을 주장하고 싶다.
그 가설이란, "확실성"이라는 개념은 소박한 그 의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중기 철학에서 후기 철학으로 옮기는 1937년을 주목해야 한다.
그가 논고에서 "논리적 공간"으로서, Big Typescript에서 나온 "문법적 공간"은 한 형태의 수학철학이라 볼 수 있다.
1937년 RFM 1부가 쓰여지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이 "공간"과 "방법" 개념에 대한 한계 도달이다.
(여기서 "방법"이라는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중기 수학철학의 구성주의, 규약주의, 유한주의 등이 포함된 단어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인류학에 대하여, 1937년부터 겪게 된 한계는 "방법론을 넘어선 '술책'" ("수학철학의 열기") 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는 철학적 탐구라는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고, 철학적 탐구라는 책 전체가 확실성이라는 문제 하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부딪힌 것은 방법론을 넘어서야 하는 것, 한 형태의 "최후의 공약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은 말한다: 그렇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아- 그러나 어쨌든 그건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 명제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MS 119 59)"
이것이 1937년 탐구 189 이후를 목적으로 쓰여진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 RFM 1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임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 "물렁물렁한 자로 재는 사람", "기이한 셈법을 쓰는 사람", "장작을 무게가 아닌 넓이로 재는 사람"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를 다룬다.
이 "기이한 사람들"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독자들의 판단으로 볼 때 상당히 "기이한" 서술을 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것에 대해서는 스트라우드의 해석이 전적으로 옳다고 판단된다. 인류학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은 말할 것이다:’그렇다. 이제 그것은 많은 양의 나무이고 가격이 더 나간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일 것이다.- 이 경우에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단지 그들은 ‘많은 양의 나무’와 ‘적은 양의 나무’라는 말로 우리가 의미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 의미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RFM 1 149)”
“그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회는 아마도 우리에게 동화 속의 ‘현자들’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RFM 1 150)”
“현자들”이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슈펭글러를 본다.
바로 이 인류학적인 연결로서의 방법론을 넘어선 한계, "확실성"은 비트겐슈타인에게 종교와 직결되었던 듯 하다.
1937년에 나온 수많은 "문화와 가치"의 문구들 중에서 특히나 "부활에 대한 문구"는 인상깊다.
"나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나를 심판하러 온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그것은 아무것도 말해 주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전혀 다른 삶을 살 경우에만 나에게 뭔가를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마저도 예수의 부활에 대한 신앙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말하자면 생각을 굴려 본다. 그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무덤에서 소멸하였다. 그는 죽었고 소멸하였다. 그렇다면 그는 다른 모든 선생과 마찬가지로 일개 선생이고, 더는 도와줄 수 없다. 우리는 또다시 고아가 되고 홀로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혜와 사변으로 만족할 수 있다. 우리는 말하자면 단지 꿈만 꿀 수 있는, 그리고 말하자면 덮개 같은 것에 의해서 천국으로부터 차단된, 지옥에 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구원받으려면, 나는 지혜, 꿈, 사변이 아니라, 확실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확실성이 신앙이다. 그리고 신앙이란, 나의 사변적 지성이 아니라, 나의 가슴, 나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왜냐하면 나의 추상적 정신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 그 열정과 더불어, 말하자면 그 육체와 피와 더불어,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사랑만이 부활을 믿을 수 있다. 또는: 부활을 믿는 것은 사랑이다. 우리들은 말할 수 있으리라: 구원하는 사랑은 부활조차도 믿는다: 부활에조차 꽉 매달린다. 의심에 맞서 싸우는 것은 말하자면 구원이다.
그때 모든 것은 달라지며, 또 당신이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그때 할 수 있다 해도 '하등 놀랄 일이 아니다.'"
그의 이러한 수학철학적 해석은 모종의 이유로 "철학적 탐구"에 넣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성"이라는 개념은, 비트겐슈타인이 그가 암에 걸려 죽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새롭게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확실성"이란 개념은 그가 세운 가장 광대한 개념이라고 보아야 한다.
3-4-2. 조감과 치료
이승종이 “일목요연한 묘사”나 “조망가능성”으로 번역된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를 “통찰”로 번역한 것을 옹호하는 내용이 이승종의 “비트겐슈타인 새로 읽기”에 드러나 있다.
이승종에 따르면 해커는 “조감”을 중심으로 이를 논했고, 베이커는 “치료”를 중심으로 이를 논했다. 여기에서 해커의 “조감”은 문법이나 낱말의 쓰임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고, 베이커의 “치료”의 논지는 베이커의 조감과 치료의 구분 자체가 인위적이고 어설프기 때문에 논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조망가능성”이라는 주제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관통하는 문구이기 때문에 이렇게 길지 않은 평가로 끝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커가 이 개념에 대해 주목한 이유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베이커가 비트겐슈타인의 문법과 조망가능성이란 개념은 “서류 일체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이승종이 1931년의 편지 내용을 통해 반박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조망가능성”이라는 개념은 확실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역사적인 변경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 스라파의 비판 전인 1931년 바이스만과의 편지는 좋은 사료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이 세 부분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분기를 이룬다고 판단하고, 하나의 대안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임시적으로 다룬 대안적 해석으론 다음이 있다.
A. 논고부터 내재되어 있던 완전한 분석으로서의 수학
B. 스라파의 비판으로 이루어진 규약으로서의 수학
C. 탐구 89-133의 수정으로부터 나온 "최후의 공약가능성", 둘의 불완전한 혼합으로서의 수학
3-5. 미개인과 현자들, 문화
비트겐슈타인에게 중기 "방법론을 넘어선 '술책'"은 그의 후기 철학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종교적 믿음과 확실성에 대해 아주 크게 연관지었다.
중기 수학철학을 벗어나 RFM 1부를 쓰게 된 1937년 한 해에만 한 "문화와 가치"에서의 종교의 언급은 다음과 같다. 문화와 가치 MS 118 56r, MS 118 86v, MS 118 117v, MS 119 71, MS 119 151, MS 120 83c, MS 120 108c.
이 종교적 언급이 확실성과 연관지어져 있다는 것은 이전에 언급했지만, 이것은 종교보다 더 큰 범위를 언급하려고 한다.
RFM 1부의 시작이자 철학적 탐구에서 수학철학의 언급을 시도하는 탐구 189와 탐구 190 이후로, 사적 언어의 기반이 된 탐구 192와 탐구 194가 나오게 되었다.
여기서 탐구 194에서 논의한 이 부분은 굉장히 주목해 볼 만하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관한 우리 자신의 표현 방식에 주의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 해석한다. 철학을 할 때, 우리는 문명인들의 표현 방식을 듣고 그것을 잘못 해석하여 아주 이상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미개인들, 원시인들과 같다. (탐구 194)"
그리고 바로 이 예시와 연관지어진 것이 "문화와 가치"에서의 르낭에 대한 언급이다.
MS 109 200가 바로 그 예시이다. "이스라엘 민족사"에서, 르낭은 출생, 질병, 죽음, 꿈 등에 대한 인생의 일들에 대해 원시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적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에 반박하며, 그들의 원시성은 전혀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르낭의 실증주의대로 과학의 설명이 그 놀람을 없앨 수 없다고 믿는 것이 오히려 원시적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르낭의 "이스라엘 민족사" 뿐만 아니라 "기독교 기원사"에 대한 서술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고, 프레이저에 대한 비판과 동등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종교가 아닌, 모든 실증주의적 해석에 대해서 반발을 하려는 시도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 확실성을 hinge epistemology나 동물성으로 언급하는 논문은 소박하거나 더 심하게 말해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보여지며, 적어도 "미개인"이나 "문화"라는 관점이 꼭 수반되어야 한다.
"미개인들보다 훨씬 더 미개하다.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에 관한 소견들)"
"어떤 사람이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발견했다고 믿고, 이제 모든 것은 아주 쉽다고 자신에게 말하고자 한다면, 그는 단지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하기만 하면 자신이 반박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해결'이 발견되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는 것; 그러나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살 수 있었음이 틀림없고, 그 시대에 비추어 보면 그 발견된 해결은 우연처럼 보인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는 논리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논리적(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전대미문의 해결'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단지 다음과 같이 훈계해야 할 것이다. 즉 그것들은 실로 한때 해결되어 있지 않았다고 (그리고 또한 그때도 사람들은 살고 사유할 수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말이다. (Big Typescript, '철학' 부분)"
비트겐슈타인의 확실성에 대한 설명은 진실로 재고되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확실성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가 논리적인 탐구를 하면서, 말하자면 '자연적 자명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자연적 자명성'에 대한 탐구였던 것이다. ("수학철학의 열기")
"문화는 단체 규칙이다. 또는 어쨌든 단체 규칙을 전제한다. (MS 169 62v)"
"문화"라는 개념에서 우리는 슈펭글러를 본다.
1937년에 나온 수많은 "문화와 가치"의 문구들 중에서 또한 "사도 바울에 대한 문구"가 인상깊다.
"복음서에서 조용하고 맑게 흐르는 샘물은 사도 바울의 편지들에서는 거품을 내며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또는,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아마도 여기서 혼탁함을 들여다보는 것은 단지 바로 나 자신의 비순수성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비순수성이 깨끗한 것을 더럽힐 수는 왜 없단 말인가? 그러나 나에게는, 여기서 나는 마치 복음서의 겸허함과는 가락이 맞지 않는 인간적 열정을, 자랑이나 분노와 같은 어떤 것을 보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무래도 여기에는 자기 자신을 강조하는 일이, 게다가 종교적 행위로서, 있는 듯한데, 이는 복음서에는 드문 일이다. 나는 묻고 싶다- 이것이 신성 모독이 아니기를- :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정말 무엇을 말했을까?'
복음서에서는- 나에게는 이렇게 보인다- 모든 것이 더 솔직하며, 더 겸허하며, 더 단순하다. 거기에는 오두막집들이 있다; 바울에서는 교회가 있다. 복음서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신 자신도 인간이다; 바울에서는 이미 위계질서 같은 어떤 것이 있다; 지위와 직위들 말이다.- 나의 후각은 말하자면 그렇게 말해 주고 있다. (MS 119 71)"
여기서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고 싶다. 복음서에서부터 사도 바울의 편지들로 변질되었던 무엇인가는, "강둑", "힌지"가 무엇인지를 제시하려던 비트겐슈타인의 시도였다. 이는 한 형태의 문화가 생성되는 과정이거나, 하나의 인간성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 힌지가 바로 프레이저와 르낭, "러셀 학파"에 대해 비판한 뒤 슈펭글러적 입장을 취하는 비트겐슈타인의 방법론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유머"에 대해 한 문구들은 그 유머의 특성을 반영하듯 극단적인 사례를 다루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그 문구들은 주목받아야 한다.
"사람들이 유머에 대해 같은 감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 도대체 어찌 될까? 그들은 서로에게 올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어떤 사람들 가운데에는 남에게 공을 던져 보내고 또 그 사람은 그 공을 잡아 되던져야 하는 풍속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공을 되던지지 않고 주머니 속에 쑤셔 넣는 것과 같다.
또는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취미를 전혀 헤아릴 줄 모른다면 어찌될까? (MS 138 32b)"
"유머는 분위기가 아니라 세계관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치 독일에서는 유머가 말살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면, 이는 사람들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그런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깊고 중요한 어떤 것을 뜻한다. (MS 137 135a)"
4. 미래의 분석철학 - "반표상주의는 억압되었는가?"
우리는 근대 에피스테메의 "심리학"과 "실증주의"의 충돌을 보게 된다.
분석철학의 가장 거대한 형태에서의 축의 흐름이 언어철학에서 심리철학, 그리고 다시 반표상주의로서의 언어철학이라는 점은 고무적이다.
초반 분석철학의 이상언어학파와 일상언어학파, 그리고 일상언어학파의 반발로 나온 화용론의 경우 경험성과 함께 한 형태의 선험성을 전제해야 했다(탐구 99). 그로 인한 인지적 전환과 심리철학은 선험적-경험적 이중체, 심리학과 실증주의의 충돌이 되었다.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에서 나오는 현상학에 대한 비판은 푸코의 주석가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푸코는 현상학자인 메를로퐁티를 비판하려는 듯한 글을 썼으나, 푸코의 논증을 살펴보면 푸코가 한 일은 퐁티의 철학 내용이 가진 문제의식이 사실 현재 시대의 인식과 관점의 측면에서 첨예화되고 문젯거리가 되게끔 구성되었다는 “비판”보다 “서술”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변론을 해보자면, 이러한 서술 또한 자신이 초-역사적인 철학을 하고 있다는 철학자에게는 비판으로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술"을 다루는 부분이 고전 시대 경제학의 중농주의와 중상주의의 충돌, 통칭 "대논쟁"이라고 불리는 부분에서 다뤄진다. 거기서 나오는 말을 하나 참고하겠다.
"연구의 두 가지 방식, 즉 두 가지 차원을 세심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는데, 하나는 18세기에 누가 중농주의자였고 누가 반중농주의자였는가, 문제로 대두된 이익은 무엇인가, 쟁점과 논거는 무엇이었는가, 권력 투쟁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알기 위해 견해들을 조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물들이나 그들의 내력을 고려하지 않고 '중농주의적인' 지식과 '공리주의적인' 지식을 일관성 있는 동시적 형태로 사유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시작한 조건을 규정하는 데 있다. 첫 번째 분석은 찬양의 소관일지 모른다. 고고학은 두 번째 분석만을 인정하고 실행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분석철학이 가지고 있는 암시적인 초-역사성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Jacob Klein을 주목하고 싶다.
Jacob Klein의 글에서 나는 하나의 번개를 발견한 것과 같아보였다. 그는 후설의 현상학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연구한 다방면의 철학자 중 하나로, Greek Mathematical Thought and the Origin of Algebra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이 Greek Mathematical Thought and the Origin of Algebra라는 책에서 그는 굉장한 박식함을 발휘하는데, 이를 통해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데카르트 시기를 지나서 우리가 수학이라는 개념에 대해 급변했다는 논의를 펼친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하학을 위주로 이뤄진 수학과 그로부터의 철학은, 수학자인 vieta를 거치면서 대수학으로의 전환이 일어났고, 근의 공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흔히 말하는 "에피스테메의 단절"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논증한다.
Jacob Klein은 이를 통해 phenomenology and the history of science라는 글에서 후설이 "기하학의 기원",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에서 보여준 수학에 대한 소박한 역사적 관념을 비판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에피스테메의 단절"은 후설보다 훨씬 더 큰 개념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현대 수학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밝혀지는 것은 이것이다.
수학의 기초나 확실성, 수학철학에 대해서 사람들이 진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는 정말 30년 정도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시기이다.
이 수학의 기초에 대한 담론은 큰 것도,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짧은 시기에 끝나버린 것이다.
흔히 아주 중요한 주제라고 말하지만, 아주 강하게 말하면 중세철학의 바늘 위의 천사 담론의 재현만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논리"를 과도하게 쓴 적이 없었다. 중세에 "바늘 위에서 춤추는 천사는 얼마나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정말 사변적이고 사소하다고 조롱한 분석철학자들은 한 세대쯤 지나서 "3은 존재하는가"나 "e^ix는 발견인가 발명인가"를 진지하게 논의하게 되었다.
이것을 프레게-러셀의 수학의 기초에 대한 담론에서부터 나온 어떤 형태의 "에피스테메의 한계", "수학철학의 열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시도는 주목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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