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6/01 22:44:01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117951228
Subject [일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안개 낀 세계 속, 직업으로서의 '스파이'론 (수정됨)

실은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을 읽어봤습니다만, 뭐 기억이 안나고 또 기록한 데도 (그 당시에는) 없었으니 걍 처음 본 척하고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싶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존 르카레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에스피오나지 장르입니다. 아마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을 알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케임브릿지 사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역시 화면의 질감입니다. 그러니까, 매캐하게 안개끼고 흐리고, 회색의 화면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이야기를 요약하기 위한 '카피 문구'가 참 애매합니다.


누군가 존 르카레의 소설 주인공은 '저항하기엔 나이가 들었지만, 그렇다고 순응하기엔 아직 젊은' 어정쩡한 중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던데, 어찌보면 이 영화도 그렇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참 '프로페셔널'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의 큰 줄기는 첩보부 내에 숨어있는 고위 첩자, '두더지'를 잡아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기교를 들이거나 혹은 서술 트릭을 이용하거나 혹은 액션의 물량공세로 그려내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영화는 꽤 혼란스럽습니다. 집에 있는 소설책 두께와 두 시간 조금 넘는 영화의 러닝타임을 생각해보면, 영화는 꽤 많은 부분에서 잘라내고 또 생략한 부분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동시에, 영화의 이야기도 약간은 산만해요. 몇몇 장면들이 시간 순서가 아니라 오히려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의 생각 순서대로 구성된 느낌이거든요.


영화는 결국 회색 지대의 어딘가를 조준하는 영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멋들어진 스파이는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고 혼란스러운 '슈퍼 스파이'도 아니고. 오히려 영화의 조준지점은 담배 연기마냥 희뿌연 세계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직업인으로서의 스파이, 혹은 하나의 장기말로서 기능하는 스파이의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만, 보면서 원래는 <타인의 삶>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느꼈는데, 막상 쓰면서 정리하니 결이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드네요. '사무적인 스릴러'라는 측면에서는 유사성을 느끼지만, 타인의 영향으로 부조리를 깨닫는 <타인의 삶>과 흑과 백 속에서 결국은 어떠한 방향성을 강요받아야했던 이 영화의 차이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마스터충달
23/06/02 09:41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표현이네요. 직업으로서의 스파이! 그렇게 본다면 <타인의 삶>과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완전 반대의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타인의 삶>은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였으니까요.
aDayInTheLife
23/06/02 10:0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크크크 직업으로서, 사무실의 스파이를 다룬 영화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삶은 벽을 허무는 이야기, 벽 바깥으로 나가기 위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반대로 벽 안의 이야기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8921 [정치] 윤석열이 김명수가 제청한 대법관 임명 거부를 검토한답니다. [86] 홍철16482 23/06/03 16482 0
98920 [일반] 젠슨황:우리는 게이머를 잊지 않았음 진짜임. 잊지 않을거임 [44] SAS Tony Parker 15172 23/06/02 15172 0
98919 [일반] 케이팝의 시대에 서태지 신곡을 기다리는 팬심 (음악 에세이) [52] 두괴즐10538 23/06/02 10538 16
98918 [일반] 말 많은 인어공주 감상평(대량의 스포). [178] 제라그17638 23/06/02 17638 23
98917 [일반] 유치원이 ‘노치원’으로…저출생이 바꾸는 간판 [122] 톤업선크림17341 23/06/02 17341 4
98916 [일반] 1종보통 운전면혀 장내 기능 시험 떨어지고 왔습니다. [79] 드러머9979 23/06/02 9979 1
98915 [일반] 덕후들에게도 이로운(과연?) 락,메탈 공연문화 소개 (움짤주의) [13] 요하네11268 23/06/02 11268 13
98914 [일반] 혼자 괴로운게 화나서 추천하는 웹소설 3편 소개 [77] 챨스15380 23/06/02 15380 7
98913 [일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안개 낀 세계 속, 직업으로서의 '스파이'론 [2] aDayInTheLife6029 23/06/01 6029 6
98912 [정치] 우크라이나는 6.25 참전국인가? [87] 빼사스17836 23/06/01 17836 0
98910 [일반] imgur로 피지알에 움짤을 업로드해보자 [8] 손금불산입10732 23/06/01 10732 17
98909 [일반] 내맘대로 유튜브 채널 추천 [9] goldfish11097 23/06/01 11097 2
98908 [일반] “살인해보고 싶었다”…20대女, 또래살인 충격 자백 [111] 로즈마리18314 23/06/01 18314 4
98907 [일반] 주식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의 글.. [29] Valorant11585 23/06/01 11585 0
98906 [정치] 인도 과학교과서에 주기율표 진화론 삭제 [47] 기찻길13974 23/06/01 13974 0
98905 [일반] [역사] 청주, 약주, 정종의 차이를 아시나요? / 청주의 역사 [28] Fig.111002 23/06/01 11002 26
98904 [일반] 삼성 990 PRO SSD 2테라 풀렸습니다 (21.9만 플스5 장착 O) [40] SAS Tony Parker 10229 23/06/01 10229 3
98903 [일반] 전세계 풍토병이 된 신종코로나 [16] 지나가는비10539 23/06/01 10539 2
98902 [일반] 한국을 역전할 나라는?(gdp ,행복지수) [17] 꽃차11341 23/06/01 11341 0
98900 [정치] 한국인은 애초에 정치에서 타협을 한 적이 없는 게 아닐까 [135] 사람되고싶다14604 23/06/01 14604 0
98899 [일반] K-사이비 동향 (1) [11] 삭제됨8356 23/05/31 8356 0
98897 [정치] 일본언론 "한국군, 日초계기 갈등 이후 마련한 지침 철회할 듯" [48] 아롱이다롱이14262 23/05/31 14262 0
98896 [일반] 北 "정찰위성 만리경1호 추락" 공식 발표…"빠른 시간 내 2차 발사" [60] 유료도로당14215 23/05/31 14215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