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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9/10/10 12:42:07 |
Name |
퀀텀리프 |
File #1 |
방시혁.jpg (5.8 KB), Download : 35 |
출처 |
구르르 |
Link #2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022708282935996 |
Subject |
[기타] 분노하는 사람 |
< 서울대 졸업 축사중 >
(중략)
아마 뉴스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접하셨을 때 이런 성공 뒤에는 분명 원대한 꿈이 있었거나, 방시혁은 엄청난 야심가여서 큰 미래를 그려놓고 이를 차근차근 실현해가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야심은 둘째치고 꿈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실 겁니다. 매번 하고 싶은 것들을 아무렇게나 하고, 그렇게 선택하다 보니 어쩌다 이 자리까지 왔다? 물론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이야기를 잠깐 바꿔 볼게요.
여러분!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 표현을 찾아냈는데, 이게 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 같습니다. 오늘의 저와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불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타협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 더 잘할 방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튀기 싫어서, 일 만드는 게 껄끄러우니까, 주변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혹은 원래 그렇게 했으니까, 갖가지 이유로 입을 다물고 현실에 안주하는데요. 전 태생적으로 그걸 못하겠습니다. 제 일은 물론 직접적으로 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최선이 아닌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게 되고, 그럼에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만이 분노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아마도 ‘위대한 탄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멘토로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분노를 폭발시키는 제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굉장히 많이 비호감이었죠? 그때 이후 그런 형태의 분노 표출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이제는 그렇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 모습이 제가 ‘불만 많은 사람’이라는 걸 설명하기에 좋은 예인 것 같아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런 저의 성정은 제 작업과 제가 만든 회사의 일에도 똑같이 발휘됐습니다.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를 가장 불행하게 한 것은 음악산업이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곳이었습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이 세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저의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산업에 종사한 지 21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거래 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음악회사를 일은 많이 시키면서 보상은 적게 주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K-Pop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은 지금도 ‘빠순이’로 비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업계와 사회가 나서서 찬양하고 최고의 예우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이런 대우를 하는지 저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전 세계 음악팬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우리 아티스트들은 근거 없는 익명의 비난에 힘들어하고 상처받고 있습니다. 우리 피·땀·눈물의 결실인 콘텐츠 역시 부당하게 유통되거나 저평가되며 부도덕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분노하게 되고, 이런 문제들과 싸워 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 다만, 음악산업의 불합리·부조리에 대해서 저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외면하고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원대한 꿈이 있거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 있고 저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그 분노가 제 소명이 됐다고 느낍니다.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를 내는 것. 아티스트와 팬들에 대해 부당한 비난과 폄하에 분노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싸우는 것. 그것은 평생을 사랑하고 함께한 음악에 대한 저의 예의이기도 하고, 팬들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이기도 하면서 마지막으로 제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 같습니다.
(중략)
꿈이나 큰 그림은 없음.
불만이 많은 사람임.
불만때문에 늘 분노함.
아직도 분노하고 있음.
분노하십시요. 그러면 BTS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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