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고 막막한데 말할 곳은 없어서 인생 선배님들의 조언을 듣고자 글 올려 봅니다.
장문이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현재 3학년까지 마치고 휴학해서 cpa 준비하고 있는 26 남자입니다.
한창 공부에 매진해야 할 때인데 벌써 몇주째 집중도 못하고 깔짝깔짝 공부하고 있네요
충분한 마음의 준비 없이 진입해서인지 조금만 어려움을 느껴도 자꾸 집중력을 잃게 되는 것 같습니다
회계사라는 진로가 저에게 적합한지, 또 제가 이 시험에 붙을 능력이 있는지 의심이 들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아래부터는 조금 개인적인 인생사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저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서 학벌에 굉장히 민감하셨고 제 교육에 많이 신경을 쓰셨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방과후, 방학에는 항상 열시 전까지 학원에 있던게 일상이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공부를 나쁘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3 현역 수능 때 평소보다 좋지 못한 성적을 받았지만, 운이 좋게 추가 합격으로 나쁘지 않은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이라는 환경에 놓이게 되니까 막상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더라고요.
중고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대학에서는 가벼운 인간관계도 잘 만들어 나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자체가 싫어지고, 혼자 피시방에서 하루 종일 시간 때우는 일이 반복되다가
중간고사를 망치고 도망치듯이 학교를 자퇴하고 재수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재수를 하는 동안에도, 중고등학교 친구들에게는 제가 다시 재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제가 다시 도전했다가 실패한다면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운 좋게도 이번에는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서 비록 원하는 전공은 아니었지만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학교,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인생에서 아주 작은 부분임을 입학하고서야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공부를 억지로 따라가며, 그렇다고 마음껏 놀지도 못한 채 1학년이 흘러가고 남은 건 학고에 가까운 학점 뿐이었습니다.
1학년 내내 심각하게 다시 수능을 볼까 고민을 많이 했었고, 그 때도 피지알에 질문 글을 올려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고, 지금의 학벌을 포기한 채 더 좋은 대학에 갈 자신도 없어서
그냥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래도 2학년 때는 좋은 여자친구를 만나서 함께 의지하며 학과 공부를 따라갈 수 있었고, 2학년을 마친 후에 곧바로 입대했습니다.
입대 전에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군대라는 공간이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오히려 군대에서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이 군생활한 사람들이 모나지 않았고, 거창한 건 아니지만 서로 자극을 받으며 조금씩 자기계발을 할 수 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군생활을 마치고 3학년으로 복학해, 1학년 때 망가졌던 학점을 취업 가능선까지 복구하고 취업 준비를 위해 학회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던 시기부터 우울증이 조금씩 왔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고 매사에 의욕이 잘 생기지 않더라고요.
취업 준비를 위해서 들어간 학회에서는 제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모자란지만 느끼며 이러한 우울증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팀별로 과제를 수행하는 학회여서 같은 팀원들에 저의 능력 부족 때문에 많이 폐를 끼치기도 했고, 우울한 감정이 심해지자
사람을 대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져서 과제가 끝나자마자 양해를 구하고 한 학기 남은 학회를 그냥 탈퇴했습니다.

학회를 포기하자 특별한 스펙도 없고, 학점이 뛰어나지도 않아서 차선책으로 생각해 뒀던 cpa 준비를 위해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정신 상태로는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심리 상담도 잠깐 받다가, 큰 효력도 없는 것 같고 학교를 다닐 때만큼은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금방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잡생각이 많아지고 집중이 많아지고 있네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공부하는 내용이 어려워진 탓일 수도 있고,
제가 제 능력에 대한 확신이나 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해서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Cpa로 뛰어들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시험만 통과한다면 취업에 큰 걱정이 없다는 점, 페이나 사회적 인식이 나쁘지 않다는 점,
전공 상관 없이 학벌이 조금은 도움이 된다는 점 등이 이유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회계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인식이이나 보수였던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 특별히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제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갑인 친구, 혹은 동기들이 로스쿨을 가거나 대기업에 취직을 하고,
혹은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미래를 위한 준비를 잘 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적은 연봉을 받거나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라는 사람이 이 직업에 얼마나 어울리는가에 대한 확신은 뚜렷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영업 능력이 어느 정도 요구될 수 있다는 점이  내성적인 성격 탓에 걸리기도 했고,
회계법인은 워라밸이 안 좋기로 유명해서 그 점도 내심 맘에 걸렸고요.

지금 드는 복잡한 감정이 공부를 하다 벽을 만났을 때 느끼는 일시적 감정인지,
아니면 저에게 맞지 않는 길을 선택하려고 했기에 부딪히는 어려움인지,
아니면 우울증이 다시 도지려는건지
그도 아니면 그저 게으름을 제 스스로 변명하려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인생 선배님들께서 진로에 대해서 혹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도움이 될 만한
아니면 작은 위로와 격려의 말이라도 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쓰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은 개인적인 정보가 많이 있어서 며칠 뒤에 삭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