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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9/12/04 14:39:54
Name 키큰꼬마
Subject (09)내가 진짜로 듣고 싶었던 말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사랑을 주세요"에 나오는 한 구절이 싸이월드나 기타 블로그에서 굉장히 유행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다들 한번쯤 들어보셨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저는 체육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세상 어떤 종류의 과목(혹은 종목?)중에서도 체육이 제일 싫습니다.
보통 초등학생들의 움직임 욕구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초등학생 치고 체육시간 싫어하는 아이들 없다."
하지만 전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전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이 싫었고 그 이후로도 쭉 싫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체육이 싫어서 체육을 점점 못하게 된 건지, 체육을 못하니까 체육이 점점 싫어진 건지는 분명히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두 개의 조건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렀지 않나 생각을 해 봅니다만..

그런데 더 안타까운 점은, 저의 신체적 조건이 누가 봐도 한 눈에 "나 체육에 소질 좀 있어염." 하며 자랑하게 생겼다는 겁니다.
여자 치고는 큰 키에 길쭉한 팔과 다리, 90도의 각도를 자랑하는 다부진 어깨(흐흑)
거기에 플러스로 남들보다는 조금 활달한 성격으로 인하여 더욱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릅니다.
간단한 율동 하나만 시켜보면 "아, 얘가 머리와 손과 다리의 협응이 안되는 상태구나." 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텐데 말이에요.


이런 저에게 체육은 항상 피하고만 싶은 마음의 짐입니다.
평생 체육을 안하고 살면 참 좋겠지만 가끔 어쩔 수 없이 체육 활동을 해야만 하는 때가 옵니다.
그리고 같이 운동을 하자고 권유를 받았을 때 매몰차게 거절할 만큼 분명한 성격도 아니라서 울며 겨자먹기로 일단 하긴 합니다.
대신 전 저를 방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 사실은 체육을 엄청 못하거든요. 그래서 저 가르치시면 짜증 좀 나실거에요. 죄송해요."


그러면 상대방은 저를 위로한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저의 동기를 부여시키려 합니다.
"아니에요. 딱 보니까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가르쳐주면 금방 배워요. 걱정말아요."




하지만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전 그런 뜬구름같은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게 아니거든요. 실제로 운동감각이 없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저 자신이 제일 잘 아니까요.

그 때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은 사실 이거였습니다.



"괜찮아요. 못해도 되요. 어떻게 모든 걸 다 잘하나요? 천천히 배우세요. 비웃지 않을께요."



왜 그걸 모를까요.
난 금방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허황된 조언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닌데.
그냥 나를 나 자체로 인정해주고 이런 나를 이해해주길 바랬던 것 뿐인데. 그러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실패해도 겁 먹지 않고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을텐데.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이 구절이 그렇게나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아마 그래서였나 봅니다.
힘들고 지칠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암담한 기분이 들 때,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금방 잘 될 거라고 너라면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힘 내라고 지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보다


괜찮아.  힘들 때는 쉬어가도 돼. 나는 여기서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있어. 네가 모든 것에 완벽한 사람이라 네 옆에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실패하든 실패하지 않든 너는 너 자신이야. 그러니까 안심해.

라고 말해주는 사람의 위로가 훨씬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인가 봐요.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1-0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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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04 14:52
수정 아이콘
헐.. 저희 아버지가 초등체육학 박사이신데..
사실 초등생중에서도 체육 싫어하는 애들 많죠.

그래서 아버지는 줄넘기로 애들 체육흥미를 돋구워주는 논문을 작성하신 기억이...
제가 그 논문을 한글워드로 작성했던 기억이..
막 타자치면서, 혼자 아... 아... 그렇구나...했었죠..

공감+1
껀후이
09/12/04 14:56
수정 아이콘
조용히 추천 한 방 누르고 갑니다.
저도 얼마 전에 저 말을 좋아하는 연예인의 블로그에서 봤었는데,
참 뭐랄까...이유 모를 공감이 막 되더군요.
그때는 그냥 이 연예인을 좋아하니깐 그런가보다 했는데
키큰꼬마님의 실제 경험담과 더불어 생각해보니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는것 또한 작은 배려에서 시작하는건가봐요.
덕분에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09/12/04 14:58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심히 공감이 갑니다.
제가 한창 인라인스케이트에 빠져서, 대략 3년차쯤 됐을때, 저한테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는 친구들한테 늘~ 이렇게 얘기했죠.
꼭 보면.. 한 1주일 타 놓고는, 턴이 안된다느니, 정지가 안된다느니, 자꾸 넘어진다느니... 하는 친구들에게.
"괜찮아. 1주일 배운 니가 나만큼 타면, 3년 탄 나는 억울해서 어떻게 사냐??" 라고요.
그런 얘기를 듣고 나면, 다들 의욕에 불타서 더 열심히 하던데;;;
09/12/04 15:00
수정 아이콘
가장 좋은 배려는 '공감'이겠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만 앞선 조언이 아닌, 상대방의 상황이나 처지를 같이 느껴주는 것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걸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에 공감합니다. ^^
09/12/04 15:12
수정 아이콘
간단한 율동 하나만 시켜보면 "아, 얘가 머리와 손과 다리의 협응이 안되는 상태구나." <-- 이부분에서 갑자기 개콘의 허경환이 떠오르네요. 크크
벙어리
09/12/04 15:14
수정 아이콘
저도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몸집도 크고 전체적으로 선이 굵고 좀 강한 인상이라 누가 봐도 운동 잘하고 힘쓰게 생겼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보통 여자분보다 훨씬 느리고 힘도 약한편입니다. 어렸을때부터 운동회,체육대회나 체력장 하는 날이 제일 싫었지요.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어쩌다 친구 손에 이끌려 동아리를 운동 동아리에 들었습니다. 테니스 동아리요.
처음에 운동나갔을땐 그냥 아주 천천히 살살 던져주는 공도 , 제자리에서 튀겨주는 공도 못쳤습니다.
제가 들어갔을때 아주 잘치던 2학년 형들도 1년전엔 다들 그랬다며 괜찮다고들 합니다.
그렇게 나가서 운동하고 운동하고 하다보니 아주 조금씩 늘더군요. 같은 학번에 친구들이랑 같이 하다보니 욕심이 생깁니다.
테니스화랑 라켓도 사게 되더군요. 이래저래 재밌게 했습니다. 과제와 레포트를 내팽겨치고 어두워질때까지 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친구들이 군대에, 저는 개인사정으로 휴학중에 있습니다. 아마 복학하게 되면 처음으로 복귀될지 모르지요.
이래저래 하다보니 잡설이 길었네요... 결론은 동기가 어떻든간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못해도 즐겁더군요. 물론 지금은 못해도 된다는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요.
가만히 손을 잡
09/12/04 15:19
수정 아이콘
흠...전 보기만 하면 말술하게 생겼는데, 맥주 한 잔도 못마신다는...
저도 듣고 싶다는 '괜찮아요. 술 안마셔도 되요.'
그대가있던계
09/12/04 15:31
수정 아이콘
지금도 운동과 땀흘리기를 싫어하고... 학창 시절 체육시간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공감합니다..ㅠㅠ
09/12/04 15:39
수정 아이콘
도..동지이군요! 체육에 소질 따윈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려서 저도 체육시간이 반갑지 않았습니다..ㅠㅠ
나이스후니
09/12/04 15:53
수정 아이콘
전 운동은 좋아하는데 운동을 너무 못합니다.
등산이라던지 헬스는 좋지만
축구 농구는 최악이죠.
운동신경이 거의 저주 받은 수준이라
학교 다닐때에도 체육시간은 정말 싫었네요
축구를 할때도 잘 못하니까 수비수를 보게 되고
그러다 상대를 못막으면 친구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재미도 못느끼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운동을(구기운동이죠) 더 싫어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가끔그래.^^
09/12/04 16:13
수정 아이콘
아. 정말 공감하네요. 운동신경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 분명이 있다는...
못하는데 좋아할수가 있나요.. 그 시간에 차라리 잘하는 다른걸 하지..
공업셔틀
09/12/04 16:15
수정 아이콘
아....정말 공감가는 글이네요. 정말 정말 잘 읽었습니다. (__)
09/12/04 16:15
수정 아이콘
와..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짠하네요..
09/12/04 16:19
수정 아이콘
저도 체격만 좋고 운동 신경자체가 제로;; 그래도 축구는 좋아해서 자주 하다보니까 몸을 이용한 플레이는 어느정도 되더군요^^
구기종목을 하면 몸이 마치 탱탱볼인냥 몸에 닿은 공이 저 멀리 사라집니다.. 그래서 축구도 수비만... 그것도 몸빵용으로만ㅠㅠ
한승연은내꺼
09/12/04 16:54
수정 아이콘
저도 다른분들과 마찬가지로 공감되네요 체육시간때 운동신경이 안드로메다라서 체육시간이 그렇게싫어서 빠지고그랫습니다ㅠㅠ
柳雲飛
09/12/04 17:14
수정 아이콘
이야..운동은 좋아하는데 운동 못하는 분들 여기 많군요..우리 친하게 지내요..
참고로 전 노래도 못합니다. 타고난 음치에 박치죠..덤으로 몸치구요..
그걸 장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분위기 메이커로.. 음화하하하..
하지만..난 노래방을 싫어한다는 거..-_-
LunaticNight
09/12/04 18:39
수정 아이콘
운동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네요.
읽고 나니 왠지 훈훈합니다. 추천할게요^^
Minkypapa
09/12/04 18:45
수정 아이콘
전 사실 야구경기관람, 농구경기관람, 축구경기관람, 스타경기관람,, 이렇게 보는걸 좋아하는데, 와이프는 항상 운동좀 하라고 합니다.
스포츠기자는 아니지만 보는것만 좋은데요. 하는건 다른이야기인데...
王天君
09/12/04 20:26
수정 아이콘
와. 저랑 똑같네요. (전 남자지만) 저도 어디가서는 운동 잘하게 생겼네~ 하고 기대를 받지만 개발에 날개손입니다. 구기종목은 아예 꽝~
어렸을때 운동하는게 귀찮아서 안했더니 나중에는 못하는 게 부끄러워서 안하게 되더군요.
그게 참 컴플렉스로 남아서 일부러 혼자 하는 헬스나 격투기 쪽에 더 관심이 가게 됩니다. 무시 받는게 너~무 싫어서..

참 따뜻한 말이에요. 힘내지 않아도 된다니.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좋아해준다는 저말.
추천 하나 드릴께요. 읽으면서 와...하고 감탄이 나오는 글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09/12/04 20:50
수정 아이콘
그렇게 매일 힘내지 않아도 돼. 오늘은 푹 쉬렴.
너가 울던 그날 밤, 나는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힘들어 하던 어느 밤에, 너는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을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매일 힘내지 않아도 돼. 오늘은
너 푹 쉬어도 되는 날이야.
키큰꼬마
09/12/04 22:48
수정 아이콘
앗, 다들 많은 관심과 댓글 정말 감사드려요 ^^ 글 올려놓고 반응이 어떨까 전전긍긍하고 있었거든요.

Arata님// 초등체육학 박사라구요? 많은 점을 조언 받아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체육을 너무 못하지만 가르쳐야 하는 형편이라 ㅠㅠ
껀후이님// 저도 경험에서 우러난 생각을 막연하게 표현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뭔지는 몰랐는데 껀후이 님의 댓글을 보고 알게 된 점도 있네요!
AhnGoon님// 그런 조언도 오히려 참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3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못타고 있다면 낭패...
2ndEpi.님//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참 따뜻한 댓글이에요 ^^
메롱님// 어, 저도 그 개그 알아요.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지만요 히히
벙어리님// 맞아요. 본인이 재미만 있으면 사실 잘 하지 못해도 괜찮은데. 그런데 잘 하지 못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기도 어려운 일이니..
가만히 손을 잡으면..님// 어쩐지 술을 잘 마실 것 같은 이미지의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요! 흠, 이제 함부로 그런 단정을 하면 안되겠네요
그대가있던계절님// 그쵸.. 체육.... 진짜 힘든 활동이에요 ㅠㅠ
Gidol님// 반갑습니다. 저는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체육을 좋아하는 줄 알고 몇년간 지내왔더랍니다..
나이스후니님// 그래도 체육의 어느 분야에라도 재능이 있으셔서 부러워요. 전 nothing..담을 쌓아야 할 듯.
키큰꼬마
09/12/04 22:53
수정 아이콘
가끔그래.^^님// 그래서 요즘은 제가 잘하는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어요. 차라리 소질이 있는 분야에 힘쓰려구요..
공업셔틀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essKie님//의 댓글을 읽는 제 마음도 순간 뭉클했어요..
악어님// 전 유일하게 피구는 좀 좋아할락 말락 하거든요. 물론 거의 처음 공을 맞고 수비수로 배치되지만 ㅠㅠ
한승연은내꺼님// 전 범생이라 빠질 생각은 도저히 못하고 스트레스만.. 흐흑
柳雲飛님// 자기가 못하는 것을 과감히 인정하고 거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LunaticNight님// 추천까지 받을만한 글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감사드려요 ^^
Minkypapa님// 보는 건 저도 좋아요! 특히 올해는 야구의 해였으니까요. (전 기아 팬~)
王天君님//남자들은 더더욱 대부분 운동을 잘할거라는 선입견이 있으니까 더 힘들 것 같아요. 글에 대한 칭찬 감사드려요!
판님// 파, 판렐루야............! 라고 항상 외쳐보고 싶었어요. 드디어 기회가~!
09/12/04 22:58
수정 아이콘
운동 이야기는 그냥 글을 시작하기 위한 것이고, 사실은 뭔가 더 힘드신 일이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

라고 저도 말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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