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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1/12/14 15:18:39
Name
눈시BBver.2
Subject
백제 vs 신라 - (4) 한성 백제의 멸망
https://pgr21.com./recommend/1668
삭게로!
난 지금 분명히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랑 백제 본기를 외우고 있었는데 (내일 시험) 정신을 차리니 이 글을 쓰고 있는 걸까요? ( ..) 이건 또 누구의 음모인지...
나제 동맹 다 끝내려고 했는데 다음 편 내지 다다음 편까지 가야겠군요. 삼국시대는 근초고-광개토의 영웅 이야기 지나면 이 부분이 제일 재밌어요. ( - -);
늘 그렇지만 지도는 믿지 말 것. 대략 이런 정도라는 겁니다.
========================
백제는 이미 고구려에 맞서 가야든 왜든 최대한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죠. 가야와 왜는 어차피 신라랑 투닥투닥거리고 있었으니까요. 금관국이 신라에 종속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해 안야국과 북쪽의 반파국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신라를 그저 적대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어느새 신라는 하나의 힘의 축으로 성장해 있었으니까요. 서로간에 분쟁은 계속되더라도 최소한 고구려에 대해서만큼은 힘을 합쳐야 했죠. 나제라고만 칭하지만, 이 동맹은 남부세력 전체가 고구려를 막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쳤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때문에 나제 동맹은 큰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구려가 쳐들어올 경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경우, 특히 고구려가 약해질 경우 언제라도 균열이 생기는 상태였죠. 언제나 들어갈 때랑 나올 떄의 기분은 다른 것이니까요.
어쨌든, 지금은 마려울 때였습니다. 그 어느때보다도요.
1. 동맹의 시작
고구려의 힘으로 왕에 올랐음에도 눌지는 반 고구려 정책을 폈습니다. 실성이 고구려와 왜 양쪽에 볼모를 보내야 했던 것은 고달픈 신라의 상황을 말해준 것이겠죠. (이 때문에 실성이 눌지의 형제들을 억누른 게 아니라 정말 사정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박재상의 활약으로 복호와 미사흔이 돌아온 후, 신라는 고구려에게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6년, 일단 큰 전쟁은 없었습니다. 백제는 백제대로, 신라는 신라대로 힘을 키우고 있었죠. 433년부터 비유왕은 세 차례 신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고, 눌지 마립간은 황금과 야광구슬을 백제에 선물하면서 친교를 시작합니다. 이 시기 나제동맹이 시작된 게 아닐까 하죠. 그러고도 준비는 조용히, 하지만 꾸준히 진행됩니다.
450년 가을, 고구려의 장수가 실직(삼척)에서 사냥하다가 하슬라(강릉) 성주 삼직에게 죽게 됩니다. 이에 분개한 장수왕은 사신을 보내 꾸짖고, 병력을 보냅니다. 이 때 서쪽 변경을 침입했다고 하고 신라에서 사과하자 물러났다고 합니다. 막은 건지 그냥 위협만 주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이 삼직의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지만, 신라가 고구려와 화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지려고 한 것을 보면 계획적인 일일 가능성도 높죠. 혹은 고구려에 반대하는 기운이 신라 내의 고구려 주둔군에게 알려져서 어쩔 수 없이 해 버린, 우발적인 일일수도 있구요.
어쨌든 장수왕은 이 일을 묵과하지 않았습니다. 454년 8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게 됐죠. 아직 전면전 수준까진 가지 않았습니다. 아마 일단 백제부터 밀고 보자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예 신라를 치는 척 하다가 백제를 친 것일 수도 있고, 백제의 요청으로 신라가 고구려를 유인하려 한 것일수도 있죠.
어느 쪽이든 455년 겨울, 고구려가 백제를 침공하자 신라에서 원군을 보냄으로써 나제 동맹은 양지에 드러습니다.
장수왕은 이 변화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라 두 번, 백제 한 번 치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공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죠. 아직은 아버지 광개토대왕 때 넓힌 땅들과 평양 천도 후 반발하는 국내성의 세력들도 다듬기 힘들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백제야 한창 살아나려고 발버둥칠 때였고, 신라도 고구려에 온전히 신경을 쓰지 못 합니다. 남쪽에서 왜가 계속 공격해 오고 있었거든요. -_-;
눌지의 아들 소지 마립간이 즉위한 후 459년부터 4년간, 왜의 강력한 공격이 시작됩니다. 신라의 왕성인 월성까지 포위됐다가 쫓겨나는 등 신라는 고전을 면치 못 하고 있었죠. 뭐 겨우 다 막아내긴 한 모양입니다.
+) 만약 왜가 백제의 신하였다면 이건 설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신라의 힘이 더 필요한 상황인데 말이죠. 반면 임나일본부대로 왜가 백제와 신라, 하다못해 백제 하나라도 신하로 두고 있었다면 역시 말이 안 됩니다. 급한 건 고구려와의 싸움이고 신라는 백제를 열심히 돕고 있었는데 그 힘을 약화시키려고 하다니요 -_-; 아무튼 동맹임에도 왜와 이렇게 싸운 걸 보면 가야와의 사이도 그리 좋지 않았나 봅니다. 아마 이 가야는 북부의 대가야가 아닌 남부의 안야국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아닐까 싶네요. 이들은 나중에 대가야가 친신라적으로 움직이자 아예 따로 놉니다.
463년까지의 왜의 침략, 67년에 보면 전함을 수리하게 하는 등 여전히 왜의 위협에 대처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곧바로 고구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2. 한성백제의 멸망
보통 나제 동맹으로 인해 고구려의 공격이 막히고, 대치상황으로 간 것처럼 인식됩니다. 애초에 그들의 목표도 이것이었겠죠.
하지만 고구려는 그 때 너무나도 강했습니다.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요?
468년, 장수왕은 말갈병을 동원해 실직성을 공격합니다. 이 이전의 공격 때 혹은 이 시기 강릉 역시 고구려에 넘어간 것으로 보이구요.
이 틈을 타 백제의 개로왕은 고구려와의 싸움을 재개합니다. 469년에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했고, 여러 성들을 수리하고 쌓으면서 고구려의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이 때 청목령에 큰 목책을 쌓았다고 하는데, 개성 부근으로 추측됩니다. 여기까지 영토를 수복했다는 게 되겠죠.
한편 신라에서는 70년에 삼년산성을 쌓습니다. 순수하게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산성으로 이 때는 물론 후에도 엄청난 역할을 한 산성이죠.
http://blog.naver.com/love_stepano?Redirect=Log&logNo=40118371132
정문인 서문은 계곡의 작은 길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성문 밖에 옹성을 만들고 안쪽에 다시 해자를 팠습니다. 동문은 성벽의 구조를 Z형으로, 북문은 S형으로 만들었죠. 남문은 아예 문이 아닌 창문처럼 만들어 사다리 없이는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현 충북 보은에 있는 이 산성은 곧 당시 고구려, 백제와 신라의 경계를 말 해 주기도 하겠죠.
이듬해에는 명활성을 수리하는데, 여기는 서라벌에 있는 제 2의 왕성입니다. 왜의 계속된 공격에도 천도는 생각도 않던 신라였습니다. -_-a 제대로 기록이 안 돼 있을 뿐 고구려의 위협은 계속된 모양입니다.
472년, 개로왕은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공격해 주길 요청합니다. 하지만 북위가 고구려와 싸울 이유가 없었죠. 개로왕은 실망했는지 북위에 대한 조공을 멈춥니다. 본격적으로 쳐 올라가려고 했거나, 고구려가 이전에 뺏긴 땅을 탈환하면서 백제를 강력하게 압박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어 고구려의 공격이 계속되거든요. 북위에까지 줄을 대려 한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백제를 그냥 둘 수 없었겠죠.
474년 혹은 75년, 장수왕은 그 나이에 (...) 직접 병력 3만을 이끌고 대규모로 남진합니다. 이 때 신라는 열심히 성을 쌓고 있었고, 백제는 그 공격을 몸으로 받고 있었죠. 이 이전에 장수왕은 승려 도림을 보내 개로왕에게 문명 아니 받구을 두게 했고, 개로왕이 여기에 빠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도림이 궁궐 수리와 토목공사를 건의하니까 그를 믿던 개로왕이 실행해 백제의 재정이 파탄났다고 하죠.
하지만 이는 개로왕을 그냥 까기 위해 만든 말인 것 같습니다. 고구려와의 대치 상황에서 토목공사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했음에도 고구려의 힘은 너무나 강했죠.
7일만에 백제의 수도는 다시 포위됐고, 고구려군은 일주인간 화공까지 해 가면서 맹공을 가해 마침내 성을 함락시킵니다. 개로왕은 배신자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에 의해 침 세례를 받고 아차산성에서 목이 베이죠. 이렇게 한성백제는 멸망합니다.
한편 개로왕은 태자 문주에게 성이 함락되기 전에 빠져나갈 것을 명합니다.
"내가 어리석고 총명하지 못하여, 간사한 사람의 말을 믿다가 이렇게 되었다. 백성들은 쇠잔하고 군대는 약하니, 비록 위급한 일을 당하여도 누가 기꺼이 나를 위하여 힘써 싸우려 하겠는가? 나는 당연히 나라를 위하여 죽어야 하지만 네가 여기에서 함께 죽는 것은 유익할 것이 없으니, 난리를 피하여 있다가 나라의 왕통을 잇도록 하라"
도림의 영향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보면 다른 생각이 들죠.
문주는 목협만치와 조미걸취를 데리고 도망갔다가 신라의 구원병 1만을 이끌고 옵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죠.
참고로 아내를 뺏으려고 도미라는 평민의 눈을 빼 버린 -_-; 개루왕의 설화가 이 개로왕이라는 버전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장수왕이 개로왕을 죽인 또 하나의 이유로 만들어지거나 퍼진 거겠죠.
3. 절체절명
475년, 자비 마립간은 명활성으로 옮깁니다. 신라에 대한 공격은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방어하기 좋은 곳으로 옮겼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는지를 보여주겠죠. 자비 마립간에 이은 소지 마립간의 시대에 고구려는 마침내 신라를 공격합니다.
소지 마립간 2년, 480년 11월에 말갈이 우선 북쪽을 찔렀고, 이듬해 3월에 고구려의 총공격이 시작되죠. 이 때 우산성이 넘어가고 현재의 포항인 미질부까지도 공격당합니다. 이 곳이 뚫리면 바로 경주였죠.
하지만, 백제와는 또 달랐습니다. -_-; 이 때 백제와 가야의 원군이 도착하면서 겨우 고구려군을 막아냅니다. 이렇게 신라는 한 숨 돌리게 됐죠.
그런 가운데 백제에서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기존의 진씨, 해씨와 지방의 사택씨, 연씨간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죠. 이 중 좌평을 맡은 해구는 권세를 휘두르다 반란을 일으켜 문주왕을 죽이게 됩니다. 대대로 내려온 수도를 잃은데다 아버지의 복수는커녕 신하에게 죽었으니 -_-; 참 박복한 인생입니다.
13세의 나이에 겨우 왕위에 오른 삼근왕, 해구는 권력에 맛이 들었는지 아예 왕이 되려 했습니다. 이를 진압한 것은 진씨 세력, 해구는 죽고 같이 반란을 일으킨 연신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상황은 겨우 안정됩니다. 그리고 그 직후 삼근왕도 죽게 되죠. 진씨와 힘을 합친 동성왕이 그를 죽인 게 아닌가 하고 있습니다.
문주왕의 동생 곤지의 아들 동성왕, 그가 왕위에 오르면서 상황은 조금은 나아집니다. 만약 이 때 백제의 혼란이 끝나지 않았다면 불과 4개월 뒤에 일어난 미질부 전투에서 신라에 원군을 보내지 못 했겠죠. 나제 동맹에 있어, 두 나라의 운명에 있어 참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고구려의 공격은 계속됐습니다.
484년 가을 7월, 소지 마립간은 고구려에 맞서 백제와 함께 모산성에서 싸웠고, 이깁니다. 그 4년 후에야 본성인 월성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고구려의 공격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리고 이제 좀 해 볼 만하다 느꼈다는 걸 알 수 있죠. 493년에는 동성왕과의 혼인 동맹을 통해 나제 동맹을 더 공고히 했습니다. 다음 해에 또 고구려가 공격해 오죠. -_-;
494년 7월, 고구려와 살수의 들판에서 패해서 신라는 견야성으로 후퇴했고, 고구려 군사가 포위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동성왕이 3천의 병력을 보내자 고구려군이 물러났다고 하죠. 이 곳은 상주 화북 견훤산성으로 비정되고 있습니다. 신라가 지키려 했던 현 경상북도 라인마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죠. 한편으로는 97년에 우산성이 함락됩니다. 현 울진 지역으로 비정되죠.
이렇게 신라가 신라대로 밀리는 동안 백제도 끝 없이 밀리고 있었습니다. 웅진, 현 공주의 코 앞인 대전 지방까지도 고구려군의 흔적이 발견된다고 하죠. -_-; 장수왕의 뒤를 이은 문자명왕도 남진을 지속했습니다. 신라고 백제고 언제 수도가 함락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고구려는 정말 한 번만, 한 번만 더 밀면 이들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요.
4. 5세기의 끝
동성왕은 진씨에 의해 옹립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을 억누르기 위해 사씨(혹은 사택씨), 연씨 등을 대거 등용했습니다. 그리고 왕권 강화에 크게 힘 썼죠. 궁궐 등을 증축하는 모습 등으로 전제왕권을 누리며 사치한 것으로 평가되고 백성들이 굶어죽어가는데도 돕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가 후에 암살됐고, 다음 왕이 그의 아들이라고 하는데도 나이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되죠. 그 때문인지 문주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는 백가세력에 의해 암살당하는데 희한하게 그에 반대할 구 귀족이 아닌 그가 측근으로 삼은 신진 세력이라는 점이죠. 뭔가 음모 냄새가 풀풀 나는 상황입니다. 서동요의 주인공이 아닐까 추측되는 인물 중 하나죠.
후... 그럼 다음 편에 하긴 애매하니 여기서 잠깐 정리를 하죠.
똑같이 공격을 받은 백제와 신라, 하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백제는 금방 수도가 함락당했고 신라는 결국 막아냈다는 점이죠. 역시 지형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한성은 살기는 좋은데, 방어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신라의 구원군이 이르기도 전에 함락당할 정도면 말 다 했죠. -_-; 이후의 역사에도 이 지역이 제대로 방어된 건 없다시피하니까요. 딱히 가로막을 장애물도 강 말고는 없었구요.
반면 신라는 방어할 곳이 두 군데였습니다. 첫 번째는, 이후의 역사에도 큰 역할을 하는, 경상북도와 충청북도를 가르는 소백산맥이죠. 조령, 죽령, 추풍령 등 방어가 쉬운 곳을 신라는 선점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전 백제와 주요 전장이 됐던 곳도 여기일 겁니다. 이 때문인지 신라가 밀리는 곳은 동쪽, 태백산맥 너머의 강릉-삼척-울진-포항-경주로 이어지는 선이었습니다. 서쪽을 하도 찔러도 안 돼서 동쪽을 찌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죠. 하지만 이 곳은... 좁죠. (...) 거기다 신라의 수도 경주는 백제에 비해 한참 남쪽입니다.
서쪽의 주요 전장이 됐던 충청북도 지역은 백제, 신라, 고구려가 모두 국경을 맞대게 된 곳으로, 신라는 여기에 많은 성을 쌓아 방어합니다. 상주 정도까지 뚫리기는 했던 것 같지만, 결국 막아내죠. 이 때문인지 백제도 차령산맥 남쪽인 웅진으로 피했구요. 하지만 소백산맥에 비해 차령산맥은 좀 부족하죠.
한 마디로 이 시기, 둘 다 고구려에 몰렸지만, 살아남는다는 점에서 신라가 매우 유리했습니다. 이 점이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어쨌든 이런 상황이 고구려도 좋진 않았습니다. 어느 한 곳을 집중적으로 찌르는 게 힘들었으니까요. 남쪽으로 피한 백제를 찌르면 신라가 구원 오고, 신라를 찌르면 백제가 구원 옵니다. 둘의 접경지대인 충북 지방은 신라가 우주 방어를 해 놓았고, 양 쪽의 병력 모두를 상대해야 했죠. 그럼에도 고구려는 두 나라 수도 근처까지 강하게 압박해 나갔습니다. 고구려의 전성시대가 계속됐다면, 여기서 삼국시대는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는 또 여기서 게임을 끝내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고구려의 시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시대였던 5세기가 끝이 납니다. 5세기가 4세기와 달랐듯, 다가온 6세기 역시 5세기와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나죠.
500년, 신라의 지증왕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501년, 백제의 무령왕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두 나라에서 손 꼽히는 명군의 등장으로 상황은 반전됩니다. 이제 나제 동맹의 턴이 돌아온 것이죠.
=================================
야하. 다시 공부하러 가야지 ( ..)
이 때 백제는 정말 안습 시기였습니다. -_-; 북쪽은 그렇다 치고 남쪽도 대가야가 전주 지방까지 진출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요. 북쪽에서는 수도 코 앞까지 고구려가 밀고 오지 남쪽에서는...
... 웃긴 건 그런데도 생산량으로 따지면 신라보다 백제가 더 낫다는 거 (...) 정말 순도 높은 땅을 가지고 있긴 한 것 같은데...
반면 고구려가 이 한강 유역이랑 경기 동부-강원 서부에 이르는 땅을 제대로 통치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 지역 지리가 워낙에 휙휙 거려서요. -_-; 다음 편부터 또 이 문제로 자세히 얘기할 것 같네요.
순도 높은 땅이라 하긴 하는데... 삼국시대 보면 한성백제 멸망 후에는 한강의 이점을 제대로 못 살릴 것 같아요. 허구헌날 전장이 돼 버리니... 통일신라 때까지도 제대로 복구가 안 되는 것 같고, 고려는 돼야 좀 사람 살만한 데가 돼지 않나 싶습니다.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2-1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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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원동김군
해시 아이콘
11/
12/14 15:29
수정 아이콘
예전에 국사공부할때 괴로워서 개로왕이라고 외웠던 기억이 나네요
TheMarineFly
해시 아이콘
11/
12/14 15:40
수정 아이콘
잘보고 있습니다^^
중간에 사비로 천도하셨다고 하셨는데 오타나신거 같네요^^
시경
해시 아이콘
11/
12/14 16:36
수정 아이콘
그럼 한성백제 뒤에는 무슨 백제인가요..
[m]
信主
해시 아이콘
11/
12/14 16:38
수정 아이콘
아. 재밌어요. 재밌어요. 정말로.
이미 10년쯤 지나버렸지만, 풍납토성에 대한 역사스페셜에서 당시 이후에는 한참동안 이 지역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 와중에 한강이 홍수가 날때마다 위로 흙이 쌓이고 쌓이고해서 당시의 성터가 그대로 흙에 뒤덮였다고. 그런걸 보면 정말 오랫동안 버려진 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양의 위치인 서울 종로 주변지역도 청계천도 직선화시킨 완벽한 계획도시라 그 전까지 별로 뭔가가 없던 도시를 다 엎어가며 지은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OrBef
해시 아이콘
11/
12/14 18:21
수정 아이콘
오오 드디어 고구려의 안습 시대가 다가오는 군요. 잘 읽었습니다 :)
HealingRain
해시 아이콘
11/
12/14 20:17
수정 아이콘
고구려 순 사기야! 덜덜;;
힘을 합쳤음에도 가까스로 버텨내 살아남았군요 나제동맹.
그 와중에 개로왕은 온갖 고생은 다하다가 끔살당하시고...
TheMarineFly
해시 아이콘
11/
12/14 22:42
수정 아이콘
시경 님// 그 이후에는 수도를 따라서 웅진백제, 사비백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Je ne sais quoi
해시 아이콘
11/
12/14 23:20
수정 아이콘
밀고 내려간 지역이 동쪽으론 포항까지였는줄은 몰랐네요. 백제든 신라든 아무 쪽이나 정말 좀만 힘 좀 더 써보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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