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0/07/09 12:40:43
Name 우주전쟁
Subject 잘못된 정비가 불러온 항공 대참사 JAL 123편 추락사고 (수정됨)
민항기 사고 가운데 가장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사건은 1977년의 테네리페 공항 참사로 이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583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두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에서 충돌한 사건으로 사건과 관련된 항공기는 모두 2대였습니다. 하지만 조건을 단일 항공기 사고로 좁히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항공사고는 바로 일본항공 JAL 123편 추락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520명, 생존자는 겨우 4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참사의 원인은 기체의 근본적인 결함도, 테러리스트들의 테러도, 적성국의 미사일 요격도, 조종사의 조종실수도 아닌 어처구니없는 정비 불량이었습니다.


maxresdefault.jpg
JAL 123


1985년 8월 12일, 일본항공 JAL 123편이 저녁 6시 12분 도쿄 하네다 공항을 이륙합니다. 목적지는 오사카, 비행예정시간은 약 1시간이었습니다. 기장은 타카하마 마사미 당시 49세, 부기장은 사사키 유타카 당시 39세 747 기장승격과정 중, 항공기관사는 후쿠다 히로시 당시 46세 였습니다. 기종은 보잉사의 대표적인 대형 기종인 보잉 747SR-46, 네 개의 터보 엔진을 장착하고 기수 부분이 볼록하게 위로 올라온 여러분들도 어디서 한 번쯤 보셨을 그런 비행기였습니다. 이때는 마침 일본의 오봉절 시기로 이날 항공편은 만석이었습니다.


11fc5054f62ee3a363c387e5d687f3f6.jpg
왼쪽부터 기장, 부기장, 그리고 항공기관사


하네다 공항을 이륙한 JAL 123편은 7,300미터 까지 고도를 상승합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비행기에서 폭발음이 들립니다. 처음에 조종사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합니다. 엔진은 모두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오지만 조종이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 비행기 조종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유압계통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습니다. 항공기관사가 유압이 떨어지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기장은 하네다 공항에 사고의 발생을 알리고 고도를 6,000미터까지 낮춰서 회항하겠다고 통보합니다.  

하지만 비행기의 유압이 모두 나가버립니다. 한 마디로 조종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자동차로 치면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핸들도, 브레이크도, 엑셀도 말을 안 듣는 상황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두 명의 조종사와 한 명의 항공기관사는 처절한 사투를 벌입니다. 좌우 엔진들의 출력을 서로 다르게 조절해 가면서 방향을 바꿔보려고도 시도하고 듣지 않는 조종간을 어떻게든 조작해 보면서 기체를 통제하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정상 운항 시에는 절대 내릴 일이 없는 랜딩기어까지 내려가면서 기체 안정성을 확보하려 했지만 이 역시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비행기는 상하, 좌우로 요동치면서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기장: 기수 들어!]
[기장: 기수 들어!]
[기장: 출력 올려!]

[기장: 이제 끝이다.]


JAL 123편은 이륙한 지 45분 만에 군마현 다카마가하라 산에 추락합니다. 이 지역은 산세가 험해서 구조대가 바로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나서 14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구조대가 도착했습니다. 사망자 520명, 생존자는 단 4명, 모두 여성들이었습니다. 일본 항공 역사상 최악의 인명사고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f7635fd5050084205a2d1756bde648a5.jpg
당시 객실 모습

440px-Japan_Airlines_123_-_Estimated_flight_path_en.png
JAL 123편 사고 당시 비행궤적

n-jalcrash-a-20150812.jpg?resize=1160%2C759&ssl=1
참혹한 추락현장


사고 후 사고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사고의 원인은 뜻밖에 시간을 좀 더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 기체가 JAL 112편이었던 1978년 6월 2일, 해당 항공기는 승객 349명을 태우고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 착륙합니다. 그런데 이 때 착륙하면서 비행기의 꼬리 부분이 활주로 노면에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흔히 tail strike라고 불리는 사고였습니다. 이때 기체의 압력격벽(Aft pressure bulkhead)이 손상됩니다. 비행기의 압력격벽은 기체의 꼬리 부분에 설치되는 격벽으로서 여압을 받는 여압구역(대표적으로 객실)과 그렇지 않은 비 여압구역 사이를 막는 칸막이입니다. 이 여압격벽 안쪽 구조물들은 여압에 견딜 수 있도록 강도가 부여되지만 이 여압격벽 바깥쪽 부분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 기체 경량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220px-Boeing_747_Rear_pressure_bulkhead_en.svg.pngE53mG.jpg
압력격벽의 구조


문제는 일본항공에서 이 사고 후 손상된 압력격벽 수리를 보잉에 의뢰했을 때 발생했습니다. 원래 보잉의 수리규정에 따르면 손상된 격벽을 수리할 때 격벽과 격벽 사이에 이음철판(splice plate)을 대고 리벳을 사용해서 세 줄로 고정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수리는 두 개의 이음철판을 이용해서 아래 그림과 같이 수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이음철판으로 보강되지 못한 부분이 발생하게 되고 이후 계속되는 비행으로 이 부부이 약해지면서 피로균열이 발생했던 것이었습니다. JAL 123 편의 사고가 있던 날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이 압력격벽 균열로 인해 발생한 급격한 감압이 압력격벽 바깥 부분에 위치한 비행기의 수직꼬리날개의 상당부분을 날려버렸고(폭발음의 원인) 이로 인한 유압감소로 인해 조종사들이 조종을 할 수 없었던 것이었죠. 한 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인재였습니다.


JA8119_Bulkhead_Repair_ja.png
원래 수리되었어야 하는 상태(위)와 실제 수리상태(아래)
아래 부분에는 이음철판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로 나뉘어져 있고 중간에 빈틈이 있다.

_85037562_japan_air_lines_ja8119_airliner_624in.png
폭발로 인해 날아가버린 수직꼬리날개 부분


이 사고와 관련해서는 그 후로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 기체의 수리를 담당했던 보잉의 정비 책임자는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 내에서는 사고 원인을 두고도 인신공양설, 미사일 격추설, 핵무기 운반설 등 터무니없는 음모론들이 돌았고 기장 개인에 대한 비난도 컸다고 합니다. 음성녹음에 실린 기장의 고압적인 말투나 추락하기 전부터 빠르게 기체를 포기하는 듯 한 몇몇 표현들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는 오해였습니다. 원래 기장의 말투가 그런 측면이 있었고 음성 녹음 전체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세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기체를 착륙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조종불능의 상태에서 30분 이상 기체를 추락시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어었습니다.


messagesjalguidefamaug11.jpg
어느 한 승객의 마지막 메시지


어느 항공사고인들 희생된 사람들이 안타깝지 않겠습니까만 설마 하는 마음에 이루어진 잘못된 정비로 인해서 5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은 정말 우리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희생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6-14 15:56)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及時雨
20/07/09 12:44
수정 아이콘
항공사 최악의 대참사... 참 안타까워요.
브라이언
20/07/09 12:46
수정 아이콘
추락한다는 사실을 알고, 직원들도.. 승객들도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Rorschach
20/07/09 12:51
수정 아이콘
이 사고는 유투브에 검색하면 저 음성자료를 들을 수 있는데 듣고있다보면 굉장히 슬퍼지죠.
20/07/09 12:51
수정 아이콘
왜 정비를 저렇게 했을까나..
20/07/09 12:54
수정 아이콘
이 사고 당시 조종사들이 보여준 기량은 대단한 것이었고, 이후 같은 여건에서 모의테스트 해 본 결과 그 어떤 조종사도 비행기를 당시 조종사들만큼 오래 띄워놓지 못했다는 후일담이 있죠.

파일럿의 힘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했으나 결국 극복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醉翁之意不在酒
20/07/09 13:00
수정 아이콘
여보, 이렇게 돼서 유감이야, 안녕. 애들을 잘 부탁해. 지금은 6시반, 비행기는 돌면서 추락하는중. 여태까지 행복한 인생을 보냈어, 감사하고 있어.
저 메모를 받아본 가족들은 정말.....
마리아 호아키나
20/07/09 13:15
수정 아이콘
궁금했는데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고에요..
블리츠크랭크
20/07/09 13:54
수정 아이콘
아이고...
20/07/09 13:14
수정 아이콘
이 사고의 경우 구조 과정상의 문제도 심각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주전쟁
20/07/09 13:16
수정 아이콘
네 추락 당시 생존자들이 더 있었는데 구조가 아주 늦어졌다고 합니다. 미군의 구조 지원을 일본 정부가 거절했다는 말도 있고요...
20/07/09 13:22
수정 아이콘
이 사고 유명하죠. 항공사고수사대에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사고 후 구조대 파견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험한 산에 추락했으니 어차피 다 죽었을 거라고 단정하고 뒤늦게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수 십명은 더 살릴 수 있었다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20/07/09 13:26
수정 아이콘
이 사건 배경으로 한 드라마 본 기억이 있네요. 저 사고 전부터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사측과 싸우던 일본항공 노조위원장이 중동 아프리카 차례차례 좌천당하는 내용이었죠. 하얀거탑 쓴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구요. 영화도 있는 걸로 압니다.
醉翁之意不在酒
20/07/09 13:36
수정 아이콘
지지않는 태양
20/07/09 14:00
수정 아이콘
영화는 클라이머즈 하이
20/07/09 14:13
수정 아이콘
사건당시 음성기록 들어보면 오싹해지죠. 한 10여년전쯤 처음 들어봤던걸로 기억하는데 그 날 잠도 못잤습니다..
해당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었어서 소설,드라마,영화 등 많은 작품에 모티브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많이들 보셨을 소년탐정 김전일의 유키야샤 살인사건이 이 사고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에피소드이죠.
20/07/09 16:03
수정 아이콘
이거 녹음됀거 들어보면 너무 가슴아파요..
서린언니
20/07/09 18:15
수정 아이콘
삑삑 pull up 삑삑 pull up
얼척없네진짜
21/06/17 14:27
수정 아이콘
최근 꼬꼬그에서 다룬 삼풍백화점도 그렇고 저런건 살인죄라고 생각합니다
단비아빠
21/06/24 10:18
수정 아이콘
수리해놓은 꼬락서니를 보니까 저 3열의 리벳은 구지 박을 필요도 없어보이는데
겉으로 그럴싸하게 수리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박아놓은 것이겠죠.
즉 외부의 눈을 신경썼다는건데 이건 단순 정비불량이라기보단 원가 절감..
즉 시스템적인 문제로 보입니다.
자살한 사람은 자살을 한게 아니라 자살을 당한걸로 보이구요.
저 사람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훨씬 더 윗선까지 닿아있었을 문제로 보입니다.
살해당하고서 자살로 위장당한건지 아니면 압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살한건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군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194 어느 극작가의 비명 [4] 겟타쯔25059 20/09/14 25059
3193 오늘은 정말 예쁜 날이었어요 [36] 及時雨31211 20/09/13 31211
3192 일본 반도체 왕국 쇠망사 1 [67] cheme35375 20/09/11 35375
3191 영창이야기 [39] khia25033 20/09/10 25033
3190 올해 세번째 태풍을 맞이하는 섬사람의 아무 생각. [33] 11년째도피중26287 20/09/05 26287
3189 기생충, 그 씻을 수 없는 냄새 [25] lightstone30874 20/09/02 30874
3188 10년전 우리부대 대대장 가족 이야기 [38] BK_Zju28935 20/09/01 28935
3187 포스트 애들은 가라 시대에 남겨진 '어른들' [8] Farce27339 20/08/30 27339
3186 [LOL] 말나온 김에 적어보는 lol-Metrics 2 : 롤타고리안 승률 [104] 오클랜드에이스24792 20/08/04 24792
3185 [LOL]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47] ipa31197 20/07/26 31197
3184 위스키 입문의 길 [53] 김익명20098 20/08/29 20098
3183 [번역][이미지 다수]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아마 믿기 조금 힘들 거야. [35] OrBef16462 20/08/08 16462
3182 스피릿호와 오퍼튜니티호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나? [9] 우주전쟁13766 20/08/05 13766
3181 그림 그리는 사람이 본 오퍼튜니티의 매력 [26] macaulay16348 20/08/04 16348
3180 [우주] 2020` 7월, NASA 오늘의 사진 모음 [18] AraTa_Justice12625 20/07/29 12625
3179 키스 실격 [13] 스윗N사워15524 20/07/21 15524
3178 [콘솔] 라오어2는 게임을 예술로 여겼기에 실패했을까. [28] 예니치카12030 20/07/26 12030
3177 그 때 잡았더라면 지금의 난 달라졌을까? [25] 쿠크하하20301 20/07/18 20301
3176 [친칠라사육기] 귀여워서 살아남은 아이들, 친칠라 (설치류 사진 주의하세요) [46] ArthurMorgan18265 20/07/14 18265
3175 이 막대기는 무엇인가? 무엇이냐고 물었어. 뒷처리의 역사. [59] 라쇼20457 20/07/10 20457
3174 잘못된 정비가 불러온 항공 대참사 JAL 123편 추락사고 [19] 우주전쟁15454 20/07/09 15454
3173 최근에 유래를 알고선 충격을 받았던 단어 "흥청망청" [24] 겨울삼각형22642 20/07/08 22642
3172 [콘솔] 라스트 오브 어스 2 후기 [스포일러 다수 포함] [30] 고블린점퍼케이블14048 20/07/06 1404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