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2/06/22 17:18:26
Name 미네랄은행
Subject 게임사이트에서 출산률을 높이기 위한 글
제가 피지알에 가입한게 아마도 2001년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두번째 아이디인데, 첫 아이디는 굉장히 초기 회원이었습니다. 타사이트에 PGR21님(찐 주인장님)이 홍보를 와서 이곳에 방문을 했었죠.
그만큼 당시의 저는 스타크래프트에 미쳐 살았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 관한 온갖 정보를 찾아다니고, 배틀넷에서의 경쟁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났거든요. 그와 함께 저의 스타크래프트 인생은 끝이 났습니다.

아내는 제가 스타크래프트 하는 걸 정말 싫어했는데, 그게 당연할만큼 저는 이 게임에 삶을 갈아넣었고 저 역시  미련없이 스타를 접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항상 '내 자식이 크면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할거야.'라고 아내에게 반농반진으로 이야기 했었습니다. 아내는 그저 웃음을 지었습니다. 비웃음이었겠죠...

큰애는 딸이었고, 둘째가 아들이었습니다.

아들. 아들과 스타로 대전하는 아버지가 되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타이밍을 보고 있었죠.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칠 타이밍을요.
타이밍을 너무 빨리 잡으면, 아내에게 혼날테고. 타이밍을 늦게 잡으면 아이들의 관심은 더 재미있는 다른 게임들에게 가 있을테죠.
아무리 전략이 좋아도 결국은 타이밍입니다.
저는 아들인 둘째에게 스타를 가르칠 타이밍을 보고 있었습니다.

첫 시도는 2~3년쯤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아들에게 스타크래프트를 권유했죠. 일단 아내는 긍정적이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부정적 감정보다는 부자간에 무언가를 함께 즐긴다는데 더 가중치를 줬거든요.
하지만 폰이나 태블릿으로 마인크래프트를 즐겨하던 아들에게 마우스를 사용하는 게임은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실시간 전략게임이라니요. 개념 잡는 것조차 벅찼고, 굳이 공부시키듯 게임을 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저의 첫 도전은 잘못된 타이밍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코로나로 가족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다시 아들에게 스타크래프트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사이 머리가 굵어진 녀석은 이전보다는 확실히 게임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져 있었습니다.
물론 오랜시간 인생을 갈아넣었던 제 눈에 차기엔 택도 없는 수준이었습니다만, 함께 플레이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지요.
아들도 스마트폰으로만 하던 게임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제법 흥미를 보였습니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것만큼의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었겠지만요. 이게 어딥니까?

어쨌든 아들이 스타크래프트를 몇판 하긴 했지만, 저와 1:1로 붙기는 커녕 컴퓨터와 1:1도 안되는 실력입니다.(십몇년만에 스타크래프트를 깔아서 해보니, 인공지능 실력이 상당히 향상된거 같더군요. 빌드도 개념있어지고...)

그래서 보통 아들과 함께 팀을 해서 컴퓨터와 2:2로 합니다.
저 혼자하면 1:8이라도 하겠는데, 아들을 보호하면서 컴퓨터를 견제해 시간을 버는건 2:3으로 해도 쉽지 않더군요. 어차피 저 혼자 남는건 의미가 없고, 아들에게 함께 승리하는 재미를 줘야하니까요.

그날도 아들과 2:2로 컴까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헌터에서 운좋게 6시와 7시. 제가 도와주러 가기도 편한 위치였죠.
잘됐다 싶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질럿하나 없는 저에게 6저글링이 난입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컴퓨터가 5드론을 했더군요.

안그래도 오래 쉬어서 손도 느리고 당황스러웠지만, 프로브 동원해서 어찌막았습니다. 아버지라면 초반 저글링에 쓸리는 모습을 보일수는 없죠.
어쨌든 자원, 시간 손실이 생겼지만 2게이트 올리면서 병력을 급히 뽑았습니다.
질럿이 5~6기쯤 모이니 약간 안도가 되더군요. 컴퓨터 놈들 아직 팀플은 안되는구나. 후후.
그순간 입구로 난입하는 질럿 한부대.
넓고 넓은 헌터 입구에서 컨트롤이고 자시고 막을 방법이 안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란건, 극복의 대상입니다. 아들에게 아버지란 극복의 대상이 되야 한다는 거죠.
친근하든 엄격하든, 어쨌든 아버지는 아들이 성장해가는 기준점이 되어줘야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게임이든 놀이든, 딸에겐 몰라도 아들에겐 절대 져주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강한 존재여야합니다.

하지만 어쩔수 없죠.
"아들아~ 아빠 밀린다! 병력 좀 보내줘!"

"??"
아들은 저의 이런 고군분투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미니맵을 볼리가 없죠.
그제서야 아버지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깨달은 녀석은 자신의 전병력을 지원보냅니다. 다행히 아들은 캐리어가 아니라 병력을 뽑고 있었고, 상당수의 질럿이 있었습니다.

아들의 지원군과 저의 추가병력으로 상대의 질럿러쉬는 피해가 크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내 병력과 테크를 모두 회복한 저는 겁없이 5드론을 한 컴퓨터 저그와 아버지의 위신을 떨어트린 프로토스 컴퓨터를 무참히 밀어버리려 했지만... 아버지를 구하고 기세등등한 아들이 병력 모을때까지, 놈들의 확장만 견제하고 센터를 장악합니다.
그리고 부자의 무자비한 보복!

게임이지만, 위험에 빠진 아빠를 구했다는 경험이 제법 짜릿했는지 아들의 표정이 신나보입니다.
이게 팀플의 묘미란다. 물론 이 게임이 가진 전체 재미에 비하면 세발의 피이지만 말이다.

아들이 언제까지 스타크래프트에 재미를 느낄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끔이라도 꾸준히 하다보면, 저와 1:1로 승부를 겨뤄볼 날도 오겠죠.

저의 느려지는 손과 노쇠해가는 판단력으로 볼 때, 언젠가는 저를 얍삽하고 치졸한 전략(패배자 기준)으로 이기는 날도 올겁니다.

이건 너무하지 않냐? 아들아?

그럼 웃으며 대답하겠죠.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아내이자 엄마이신 분. 눈물...)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2-13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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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렙고정
22/06/22 17:26
수정 아이콘
저도 중학생때 아버지랑 주말마다 피시방가서 컴까기 했었는데.. 아버지 환갑이 넘었지만 지금도 살면서 제일 잘했다 싶은것중 하나가 초딩때 컴퓨터할시간 아껴서 아버지께 스타 가르쳐드린겁니다. 금요일 밤에는 언제나 tv켜놓고 아버지랑 스타리그 보곤 했었죠. 부자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함께 즐기는건 정말 부모든 자식이든 모두에게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느새 저도 안보는 lck도 챙겨 보시더군요..
미네랄은행
22/06/22 17:54
수정 아이콘
저도 그런 부자지간이 되고 싶은데, 또 한켠으로는 애가 너무 빠질까봐 조바심도 나고 그렇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걱정되는게 부모마음인가봐요.
9렙고정
22/06/22 21:51
수정 아이콘
할수있을때 하는것도 좋은것 같습니다. 저렇게 같이 스타하던 아버지도 제가 RPG게임하면 정말 정색하고 화내셨거든요. 한창 리니지가 말이 많을 때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튼 저도 잘 컸듯이 아드님도 적당히 즐길거 즐기고 할거 하면서 건강하게 자라리라 생각합니다.
비선광
22/06/22 17:29
수정 아이콘
저도 아들과 와우를 하고싶었으나
친구들이 틀x겜 자식한테 가르쳐주는거 아니라고...흑흑
미네랄은행
22/06/22 17:55
수정 아이콘
틀X을 떠나서, 저조차 와우는 인생망가질거 같아서 안했다는....
비선광
22/06/24 10:53
수정 아이콘
실제로 최근에도 몇달 날려먹었네요.. 정말 무서운 게임입니다
요즘 20대한테 와우도 하냐고 물어보니 그런 게임은 친구들 아버지나 한다네요 흑흑
온라인게임은 뭔가 저도 말이 험해지고 상처도 받아서
콘솔 위주로 접하게 해주려고 노력중입니다 저는
보로미어
22/06/22 17:4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미네랄은행
22/06/22 17:5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차단하려고 가입함
22/06/22 17:47
수정 아이콘
제가 90년대생이고 아버지가 60년대생이신데, 저도 초딩때부터 아버지랑 스타 자주 했습니다. 스타2 데모버젼인가 나왔을때 같이 피시방도 갔구요.

저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이제 스타 접은지는 10년정도 됐는데, 요새 아버지는 유튜브로 전직 프로게이머들이 하는 채널 보시더라구요.
미네랄은행
22/06/22 17:56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면, 스타는 제 욕심이고 제가 아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배우는게 맞긴 할거 같습니다.
supernova
22/06/22 17:48
수정 아이콘
읽기만 해도 뽕이 차오르네요. 미취학 아들이라 전 아직 시간이 걸리겠네요..
미네랄은행
22/06/22 17:57
수정 아이콘
금방 옵니다. 근데 금방 지나갈거 같아요...
及時雨
22/06/22 17:49
수정 아이콘
60 먹으실때까지 히히 아직도 나지롱 하면서 피지컬로 찍어누르시길 기원합니다 크크크크
미네랄은행
22/06/22 17:57
수정 아이콘
크크... 제 희망사항입니다!
manymaster
22/06/22 17:52
수정 아이콘
삼형제가 하는 게임이 다 달라서 고민입니다.

인터넷 밈은 그래도 어느정도 공유가 되던데, 게임만큼은 제가 8살, 10살 더 늙었는데, 그 세대차보다 더한 취향과 피지컬 차가 있어요...
미네랄은행
22/06/22 18:05
수정 아이콘
저 어릴때를 생각해보면, 아들 딴에는 효도한다는 마음으로 할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형제간은 부자지간하고는 상황이 또 다르겠죠.
추적왕스토킹
22/06/22 18:06
수정 아이콘
처음 아버지가 사온 게임기에 별 관심이 없었건만....

새벽 3시까지 슈퍼마리오 하시던걸 보고 그리 재밌나 해서 해봤던게 실수였다...
22/06/22 18:49
수정 아이콘
저는 같이 스타하다가 만난 여자랑 결혼한거라 애 생기 전에는 같이 팀플할 정도였어서 게임에 대한 제약이 전혀 없고
애들도 아들이 고딩, 딸이 중딩이라 게임유저로서 나이도 꽉 찼습니다.....다만....
딸아이는 게임 자체에 별 흥미가 없고 아들은 좋아하는 게임류가 아예 너무 달라서...망....

미혼때는 아이 생기면 같이 게임도 즐기는 그런 부모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실상 겪어보니 그것도 취향이 같아야 하는터라 결국 운이 좋아야 가능하더라구요

복 받으신거에요~ 화이팅~ ^^
미네랄은행
22/06/23 13:08
수정 아이콘
제가 오히려 부러운데요.
저는 와이프와 같은 과 동기라서 같은 직종의 일을 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공감대를 나눌정도의 취미를 갖고있지는 못하거든요.
같이 팀플하는 부부... 부럽습니다.
22/06/22 18:51
수정 아이콘
저는 초2 아들과 포트나이트 아니면 브롤스타즈로 듀오를 거의 매일 합니다. 매번 제가 버스를 타는 역할이지요, 피지컬이 아주그냥... 스타를 몇번 가르쳐 봤는데 글쓴님과 마찬가지로 키보드 마우스로 하는 거에 적응을 못 해서인지 흥미를 못 가지더라구요....그래서 스타는 아직 제가 더 잘 합니다 냐하핫
갈팡질팡
22/06/22 19:06
수정 아이콘
미혼이지만 오랜만에 스타한판해야겠습니다...
22/06/22 19:14
수정 아이콘
초3 아들이랑 거의 매일 마인크래프트 하는데 저도 언젠간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칠 겁니다. 얘 태어날 때쯤 롤 접었는데 차마 애랑 롤 듀오는 자신이 없네요ㅠㅠ
미네랄은행
22/06/23 13:13
수정 아이콘
언젠가 집안 대 집안으로 팀전을...
물맛이좋아요
22/06/23 15:13
수정 아이콘
와드 좀 박아! 하고 잔소리 하면 아들놈이 미드 달립니다...

제발 원딜 티모는 하지 말아줘..ㅜㅜ
하우두유두
22/06/22 20:33
수정 아이콘
아 아들과 게임을 하기좋네요. 언능키워야지
플레스트린
22/06/22 20:49
수정 아이콘
초등학생 3학년 친구와 같이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굉장히 서툴더라고요. 파이널 파이트나 킹오파 같은 오락실 게임을 하는데 기술한번 쓰는 걸 너무 어려워했습니다. 슈퍼마리오도 1스테이지를 혼자 못깨네요.

아마 형이나 아빠에게 유스교육이 안된 친구여서겠죠 크크. 집에서 게임 자체를 안하는 분위기면 그런 컨이 손에 익는 나이도 느려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한편으로 어린이들은 게임 컨트롤이 서툴고 구경하는 걸 더 좋아하는 측면도 있는 거 같아요. 침착맨 보면 딸 소영이와는 주니어 네이버에서 플래시게임을 더 많이 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아드님은 스타를 조금 할 정도면 손재주가 또래보다 굉장히 탁월한 거 같습니다. 아마 곧 마크도 같이 하고 투혼도 1대1 뜰 날이 오지 않을까요. 부럽습니다!
임전즉퇴
22/06/22 21:31
수정 아이콘
흐름을 바꾼 것. 평생추억 탑티어죠.
SAS Tony Parker
22/06/22 21:50
수정 아이콘
추게로 보내고 싶은 PGR 그 자체인 글이네요
에이치블루
22/06/22 21:51
수정 아이콘
어우 이 글 읽으면서 찡한게 찐 스타1세대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과거엔 "스타크" 라고 했습니다 스.타.크)
크크크

저는 딸 하나라 이건 못합니다만 대신 둘이 같이 엄마 몰래 아이돌을 파고있읍죠 크크
22/06/22 22:09
수정 아이콘
요새 애들도 스타하나요?
Quantum21
22/06/22 23:28
수정 아이콘
아.. 저는 딸들만 있는데 가능할까요...
미네랄은행
22/06/23 13:11
수정 아이콘
사실 딸인 큰애한테 살살 밑밥 깔고 있긴 합니다. 너도 좀 연습해서 동생이랑 같이 아빠한테 2:1로 덤비라고요.
제가 먼저 시도해보겠습니다!
서린언니
22/06/23 15:57
수정 아이콘
젤다를 좋아하는 친구 딸이 생각나네요
피우피우
22/06/24 12:47
수정 아이콘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아이랑 같이 게임하는 게 제 소소한 소원인데 정말 부럽습니다.
근데 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같이 못 할 것 같아서 콘솔을 시도해보려구요. 본문처럼 스타도 같이 하기 좋은 것 같네요 크크
22/07/08 02:21
수정 아이콘
저는 딸인데...6살때 아버지가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쳐주셨어요. 3살 밑으로 쌍둥이 남동생들도 있어서 초등학교~중학생때 2:2로 하고 그랬답니다
24/02/14 22:59
수정 아이콘
많은걸 생각하게 되는 글이네요 재밌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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