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2/03/22 15:06:49
Name 서인
Subject 정원 가에 앉아 있던 유령회원이 인사드립니다
잡초가 무성하다고 해서 지저분한 황무지라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온갖 풀꽃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은 굳이 틀을 잡으려는 손이 닿지 않았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겠지요. 어떤 풀은 보기 흉하게 생겼다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잡초도 있다고 들판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손타지 않은 아름다움에는 그런 모습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그런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익명의, 때로는 난잡한 글도 난무하는 그래서 마치 전혀 관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시판을 사랑했습니다. 마음이 조금 아려 직접 언급은 못하겠지만 어느 게시판을 이야기하는지 다들 짐작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를 사랑하는 것은 그것과는 달라보이는 것을 싫어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정성스레 가꿔진 아름다움이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들판의 아름다움과 정원의 아름다움은 출발부터가 다른 법이니까요.

손닿지 않은 들판을 거닐고 싶을 때가 있듯이 어떨 때는 잘가꿔진 정원 가에 앉아 그저 바라만 보면서 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꽃향기를 맡고 싶어 한발짝 더 다가갈 때도 있겠죠.
그렇게 저는 PGR21에 놀러옵니다.

인터넷써핑족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곳을 돌아다니면서도 여기만큼 잘 가꿔진 정원을 보지 못했습니다. 장인 정신을 가진 정원사의 손길이 구석구석 느껴지는 곳이죠.

여기는 차분하고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너무 아름다워 보여 가끔은 낯설기도 했지요.
막강^^필진 여러분처럼 재기발랄한 것도 아니요 하다못해 기본적인 글쓰기 재주도 부족한 저로서는 꽃 한송이 심어보려 해도 조심스러웠던 겁니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적지 않은 나이에 시험 공부를 한다고 유난을 떠는 처지인 탓에 힘들게 뒷바라지 해주고 있는 누나 눈치 보느라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도 있구요.(게다가... 같은 이야기도 괜히 어렵게 쓰는 나쁜 버릇도 있답니다. 보시다시피 말이죠 ^^ㆀ)

이제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가고 부지런한 정원사들도 제자리를 찾으신 듯하니 어설프게나마 격려 비슷한 인사 한 마디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가끔 시간이 허락되면 조용히 찾아와서 정성어린 손길들이 구석구석 닿은 흔적을 바라보며 흐뭇한 기분으로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원사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오히려 불씨를 키우는 일이 될까 두려워하여 차마 입대지 못한 사람이 저 하나 뿐은 아니었겠지요.

가장 힘겨워하실 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사람으로서 변명 같기도 하지만 저는 정원사들이 곧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오실 걸 알았습니다. 이 정원을 지금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그 하나 밖에 없는 모습을 소중히 여기는 정원사들이 있는 한 그들의 바램은(그리고 저의 바램은) 지켜질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늘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해주신  PGR21의 모든 가족들과 손님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恕仁 – 같은 마음의 사람
(apatheia 님, 저도 항상 이런 거 써보고 싶었습니다 ^^a)

덧) 정원사 여러분과 여기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께서 컴퓨터 밖의 세상에서도 늘 사랑받는 아름다운 모습이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즐’거운 시간’이’시길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나는날고싶다
02/03/23 12:28
수정 아이콘
^^; 저도 노력할께요..
02/04/27 17:12
수정 아이콘
난 ... 얼마나 속이 더 차야 저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
에휴 ....
02/04/27 17:12
수정 아이콘
정말 ... 맘에 드는 글임니다 ...
02/05/13 22:23
수정 아이콘
글 쓰는 재주가 요즘은 너무도 부럽습니다.
저도 여기 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immortal
04/03/10 18:37
수정 아이콘
댓글을 달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말 주옥같은 글이네요.
서인님! 지금은 뭐하시나요? 혹시 필명을 바꾸셨나요...
다시 pgr 에 오셔서 좋은 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글 쓰는 재주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비오는수요일
04/10/01 16:57
수정 아이콘
아....정말 따스한 햇살이 노을되어 제 몸을 투영하는, 그런 기분입니다.
immortal님의 소개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Apatheia
02/03/22 15:08
수정 아이콘
잘 오셨습니다. ^^
02/03/22 15:58
수정 아이콘
서인님도 글 잘쓰시는데요..^^ pgr을 정원에 비유하시다니.. 정말 딱 맞아떨어지는 거 같아요. 근데 중독성이 조금 심한 정원이죠..^^
02/03/22 16:24
수정 아이콘
자게에서 이동하였습니다. ^^
역시 자연속의 풀밭과 잘 가꾸어진 정원이 둘 다 있어야 좋은데..... 아쉽네요,
헤르만
글재주가 없구 가벼운 글만 주로 읽었던 사람이
여기서는 이런 좋은글을 꼼꼼이 읽는 답니다 @@;;
[game-q]daebal
02/03/23 09:05
수정 아이콘
여기 글쓰시는 분은,,,,,,,,,,,,,,,,,,,이문열이나 공지영의 펜보다 가슴을 적셔준다..^^
항즐이
02/03/23 11:12
수정 아이콘
항상즐거운시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게이머 동생들은 항즐이로 이상한 별명만 지어주던데 ^^ 이렇게 예쁜말을 주시는 분도 있군요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18 [잡담] 게임속의 영웅중심 세계관에 대해. [8] 목마른땅6260 02/08/28 6260
117 [잡담] 저그, 그리고 잭 니콜슨. [31] Apatheia8148 02/08/24 8148
116 <허접꽁트> 락바텀 (5) [28] 공룡7952 02/08/24 7952
115 <허접꽁트> 락바텀 (4) [15] 공룡6263 02/08/24 6263
114 <허접꽁트> 락바텀 (3) [11] 공룡5890 02/08/23 5890
113 <허접꽁트> 락바텀 (2) [4] 공룡6269 02/08/23 6269
112 <허접꽁트> 락바텀 (1) [12] 공룡10388 02/08/23 10388
111 저는요 이런 모습을 볼때 기분이 참 좋습니다^^ [14] minority6959 02/08/21 6959
110 가림토를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36] p.p12217 02/08/10 12217
109 [허접꽁트] 단축키 L -the other half. [24] Apatheia16724 02/04/01 16724
108 [잡담]게임계 vs 바둑계 [22] Dabeeforever9642 02/07/16 9642
107 [일인칭 자전적 실명 소설] 페노미논(phenomenon) [27] hoony-song8577 02/05/07 8577
106 끝말잇기 필승의 비법 -_-+ [27] 한마디21217 02/04/12 21217
105 [긴 잡담] Drone [15] 수시아9620 02/06/09 9620
103 [잡담] 낭만에 대하여... [12] Apatheia9129 02/01/13 9129
102 [잡담] 말난 김에 짜봅시다... 프로게이머로 축구 드림팀을 짠다면? ^^ [27] Apatheia11655 01/12/12 11655
101 [경기감상+게이머열전]그를 위해서 쓰여지는 드라마 [19] 항즐이15287 02/04/28 15287
99 [잡담] 눈물은 흘렀을 지언정 [33] 항즐이12482 02/04/25 12482
98 그가 내게 맵핵이냐고 물었다 [13] 글장19171 02/04/12 19171
97 정원 가에 앉아 있던 유령회원이 인사드립니다 [14] 서인6593 02/03/22 6593
96 [잡담] 惡役이 없는 善惡劇 [17] 無痕6044 02/03/18 6044
95 '양아취' 프로게이머를 위하여 [26] 아휘21128 02/03/04 21128
93 저그 이야기 (3) - 홍진호 [15] nowjojo13876 02/03/15 1387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