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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7/05/12 17:21:00
Name 파란무테
Subject 하늘이 그대를 선택했노라.
전운이 감도는 KTF와 Estro의 에이스 결정전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들, 강민과 신희승, 신희승과 강민이었다.

전장은 팔진도. 옛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사용했다던 팔진법, 전장또한 그들이 한판 거하게 붙기에도 적합한 최고의 장소였다. 팔진도 안에서의 두 전략가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된다. 어느누구도 팔진도의 진법아래 있으면 한명이 죽지 않고서야, 그 진법을 빠져나올수 없음을 알기에 강민과 신희승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종족을 걸고, 그리고 자신의 어깨에 드리워진 팀의 사활을 걸고 경기에 들어간다.

가로방향. 이 세상이 천지(하늘과 땅)로 이루어져 있다면 하늘의 뜻은 신이 부여하는 것일테며, 땅의 뜻은 자신의 노력과 땀이 이루어내는 것일게다. 이들의 위치는 땅의 양 끝, 5시와 7시였다. 이 시대의 최고의 전략가로 뽑히는 강민과, 임요환의 뒤를 잇는 특별한 형태의 싸움을 즐기는 신희승의 초반은 예상대로 테란과 프로토스의 일반패턴과는 다르게 진행되어져 간다.

초반 입구를 정찰하러 들어온 프로브, 배럭의 움직임을 보며 재빠른 반응으로 상대의 본진을 관찰하려하지만, 신희승 선수의 대응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안개에 걷힌 상대의 진영, 그건 서로 마찬가지다. 상대는 가위바위보 싸움을 예측하며, 심리전으로 상대보다 우위에 있기 위한 빌드를 선택한다.

엔지니어링 베이, 아카데미. 동시에 올라가는 두 건물은 '나는 신희승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듯, 해설자들과 그 경기를 지켜보는 수많은 팬을 숨죽이게 만든다. 강민은 아직은 모른다. 단지 아는 것은 상대가 신희승이라는 것. 황제라 불리는 자신의 라이벌과 참 닮아있는 그라는 것. 문득, 자신을 밀어내고 혁명을 일으킨 젊은 장군 혁명가가 생각이 난다. 괜히 웃음을 한번 지어보이며 숨을 고른다.

드래군 푸쉬. 벙커의 사정거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의 공격이었지만, 어느순간 그 벙커속 마린은 자신에게 공격을 하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그럴리가 없는데.. 다시 한번 드래군을 옮겨보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때, 강민의 예지몽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비록 미니맵의 전장은 안개로 가득하지만, 꿈속에서의 강민은 이미 상대의 진영을 보고 있다. 바카닉이구나. 차분히 리버를 준비한다.

바이오닉 러쉬. 기계의 힘을 빌리진 않겠다. 살아있는 마린, 나는 이들을 믿는다. 신희승은 자신의 첫번째 전투를 1개소대정도의 병력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선봉대. 그들의 역할은 상대방을 단숨에 몰아붙이는 것이다. 기세좋게 전진하는 춤추는 마린들은 곧바로 진격하며 단숨에 강민의 입구에까지 이른다. 팔진도 속. 강민의 길은 막혀버린다.

리버. 승기를 잡았다는 것일까. 과감한 공격으로 상대의 입구를 돌파한 선봉대는 악귀와 만난다. 리버,, 수많은 자신의 동료들을,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악귀 리버, 사신이 소환될 줄 알았는데, 상대는 리버다. 아, 역시 강민이구나. 느림의 미학과 파괴의 본성을 드러낸 리버에 움찔 당황하지만, 그래도 선봉대는 죽어서까지 최선을 다한다.

살 길은 뚤렸다. 팔진도. 삼국지의 팔진도는 생의 문이 있고, 사의 문이 있다. 죽고 사는 문이 있다는 것이다. 죽음의 문 앞에서 위기를 모면하는 순간 강민에게는 생의 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역반격. 추풍지세. 바람처럼 단숨에 도착한 강민의 드래군들과 셔틀의 리버는 상대의 달갑지 않은 병력에 웃음을 흘기고 사의 문을 걸어잠근다. 승리를 예감하는 강민의 미간, 꿈틀거리는 그의 미간은 여지껏 그의 전장에서 이겼다고 생각되었을때 나오는 그의 습관일게다.

무리했다. 리버를 태운 셔틀의 폭파. 두마리의 리버는 하나는 하늘에서 하나는 땅에서 죽는다. 이젠 신희승은 신의 뜻도 이어받는 것인가. 물고물리는 공방전은 지루함이 아닌 극적 긴장감의 연속으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김창선 해설의 말처럼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는 두 선수의 모습은 동시에 나를 흥분시킨다. 멋지다 너네들.

공방업된 마린과 탱크는 이제 다시 진영을 갖추고 전진한다. 늠름하다. 사령관 신희승의 명령대로 움직여주는 마린들과 탱크운전사는 재빠르게 상대를 죽음의 문으로 재차 몰아넣는다. 동시에 하늘에 뜻을 품기 원했던 신희승의 11시 멀티또한 강민에게 저지당한다. 입구위의 공방전. 탱크의 화력과 이상약물과다복용한 집단환각증세에 빠진 마린들은 상대를 압도하지만, 그들을 저지하는 건 바로 죽음의 기사, 사신이다.

다크템플러의 끊임없는 시간차공격으로 또다시 입구에서의 공방전은 무위로 돌아간다. 누가 우위라 할 것도 없다. 이미 그들은 최고다. 바카닉을 이렇게까지 보여주는 신희승이나, 그걸 또 이렇게 막아내며 하늘과 땅의 중간지점(3시)에 멀티를 완성시킨 강민이나, 이미 승리자다. 그러나 팔진도는 두명의 승리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최고의 견제. 땅에서의 드랍쉽과 셔틀은 한치 양보도 없이 서로의 진영을 숨가쁘게 휘젓는다. 1개 분대의 마린메딕은 팔진도의 뒷마당을 공략하며 공수부대로서의 최고의 역할을 감당한다. 이로 인해 강민의 병력은 중앙에 있지못하고 휘둘린다. 그러나 악귀 리버를 태운 셔틀또한 상대 뒷마당을 공략하며 수많은 SCV사상자를 낸다. 끊임없는 견제. 어제 몽환에서의 박정석의 꿈은 강민에게서 나온것일까.

신희승은 신에게 자신을 맡긴다. 당신이 함께 한다면, 아니 나를 선택해 주신다면 그것이 숙명이지 않겠습니까. 그의 바램을 하늘이 저버리지 않았던가. 12시의 섬멀티는 이제 돌아가고 있었다. 강민,, 그의 예지를 막은 하늘은 그에게 경기의 끝까지 그 멀티의 존재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늘의 뜻을 이어받은 신희승은 드디어 날개를 단다. 자신의 땀과 노력이 합쳐진 공격은 또 한번 불을 뿜는다.

노장. 강민. 그를 노장이라 부른다. 그러면서도 현 시대의 군주라고도 불린다. 그의 예측과 판단, 순발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하늘의 기, 그 자체다.  '신'이라 적힌 깃발을 휘날리며 끊임없이 몰아치는 신희승의 병력은 또 다시 죽음의 문을 걸어잠근다. 이제는 막을 수 없는 것인가. 그 때, 강민의 눈은 반짝인다. 이것이 강민인 것이다. '강'의 깃발이 갑자기 신희승의 본진에 펄럭인다. 소규모의 공습. 엘리전이다.

팔진도(八陣圖). 제갈공명도, 서서도 사마의도 당대 최고 지략가로 불리는 곽가도 몰랐다. 팔진도에서의 죽음을 담보로 둔 싸움속에 수많은 생과 사의 문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열쇠는 하늘이 선택한 신희승이 쥐고 있다는 것을. '신'의 깃발을 가진 병력은 1시의 멀티를 저지하고, 곧바로 3시로 진격한다. 강하면서도 유연했던 '강'의 깃대가 조금씩 꺾이려 한다.

서로의 깃발은 이미 헤질대로 헤져있다. 전투를 하고 있는 그들조차도 그들의 전투목적을 알지 못한다. 무아지경. 그들은 달리고, 부수고, 벤다. 하늘을 뒤덮는 사이오닉스톰. 하늘의 낙뢰까지도 조종한다던 날라, 강민의 반격은 거세다. 그러나 신희승 또한 하늘이 점지한 디펜시브로 강민과의 마지막 전투의 대미를 장식한다.


바람한점 없다. 언제 그렇게 피터지게 싸웠냐는 듯, 바람도 한점없는 팔진도의 전장은 고요하기까지 하다. 적막. 남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신'이라는 깃발을 들고 있는 하늘이 선택한 이들이다. 미소. 사령관 신희승의 미소가 묘한 여운을 준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참 맑다. 승리의 상쾌함인가. 하늘은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하늘이 그대를 선택했노라.'


* anistar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5-1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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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BirD
07/05/12 17:26
수정 아이콘
명문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팔진도의 의미를 좀 알아봐야겠네요.
하얀그림자
07/05/12 18:01
수정 아이콘
팔진도 명경기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없죠.
07/05/12 18:25
수정 아이콘
좋은 게임에 좋은 글이네요.

에게로~
동네아는형아
07/05/12 21:16
수정 아이콘
한 10줄읽으니깐 괜히 챙피하네요
게임 한판에 하늘은 무슨 허허..
참 좋은 '글'이네요
에게로~
볼텍스
07/05/16 13:57
수정 아이콘
강민선수가 리버만 아꼈어도 밀봉 관광이었는데... -_-a 뭐 신희승 선수가 잘해서 이긴것이기도 합니다만..
김훈민
07/05/18 00:33
수정 아이콘
...티비틀고 보다가..
요 근래 몇년동안 느끼지 못했던..
초창기 임요환 선수의 경기를 볼 때의 전율을 이 경기에서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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