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14/05/22 12:55:20
Name 트린
Subject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2)










은실은 그녀가 칼라 렌즈를 꼈다고 여겨서 등장만큼 취향도 독특하다고 생각했다가 곧 얼어붙
었다. 구로동 옥탑방 대소동 후 수성이 작성한 조서를 그대로 믿는다면 눈앞의 미녀는 사람이
아니었다.


“뱀, 뱀……”
“처음 봬요. 칭링이라고 해요. 대만 사람이고 한국엔 유학 왔어요. 말로만 듣던 은실 씨죠?
아잉, 손으로 십자가는 너무 나가신다. 신실한 신자도 아니시라서 효과도 없는데. 그리고 제가
나이가 많으니 말 놓을게요. 괜찮죠?”


경기 일으키기 직전의 은실을 열심히 토닥이며 수성이 물었다.


“여긴 왜 왔어.”
“남자는 진정한 사랑을 하면 변한다더니 그 말이 맞나 봐. 예전에는 티알피지 플레이 하다 말
고 몰래 흘깃거리고 나랑 일부러 오래 말하려고 자꾸 말시키고 그래 놓고선.”
“내가 언제!”
“밤에 내가 사는 아파트의 내가 자는 은밀한 관까지 와서 열어보면서 ‘햐, 아늑하네요.’ 하고
선.”
“그건 단체로 간 집들이 때였고, 내가 관을 보면서 대체 뭐라고 하겠어. 무서운데다 예의상
그런 거라구!”
‘말투가 둘 다 상당히 편하네. 난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겠는데 오빤 이미 말을 놓았나 봐.
왜? 그렇게 친해? 사람이랑 뱀파이어랑 친해진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야. 피라도 빨렸어?’


은실이 공포 반, 의구심 반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자 수성의 말은 더욱 빨라졌다.


“내 포도 주스에 수면제 탄 것 같다고 표트르가 말해서 안 마시고 버티느라 얼마나 긴장했는
지 알아? 트위스트(*네 가지 색 원이 섞인 판을 깔고 색깔과 손발 위치 지정이 가능한 지시판
을 돌려 노는 파티용 보드게임) 게임할 때도 척추가 360도 돌면서 거의 뱀처럼 사지를 엮으려
들길래 그러지 말쟀잖아.”


은실이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트위스트?”
“만원 지하철보다 서로 몸 부비부비 하는 그런 보드게임 있어.”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얽히지는 않았어도 몸이 닿긴 한 거네요.”
“그치.”


은실이 칭링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성은 그녀의 태도가 얼음만큼 차갑고, 드라이아이
스만큼 따가워서 어깨에 두었던 손을 슬며시 거두었다.
수성은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인 것 같은 허탈한 얼굴로 물었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만난 건데 설마 커플 깨러 온 거야?”
“그럴 리 없지. 난 경고를 해 주려고 왔어. 살인자의 정체를 말이야.”


은실이 말했다.


“여자는 아니죠?”
“엥? 아냐.”
“수성 씨를 좋아하는 이상한 여자?”
“아, 아냐. 그런 거 아냐.”




*



칭링은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괜히 처음부터 장난을 걸었나? 오해 마. 수성이 착한 사람이야. 별 일 없었어.”
“이야기 긴가요? 그럼 영화를 못 볼 것 같은데 나중에 보상해 줄 거죠?”
“아, 응. 그래. 그래야지. 근데 이상하긴 하다. 난 도와주려고 왔는데 구박당하는 느낌이야,
나는 그년 또는 그 시키에게 당한 뒤에 정체가 하도 궁금해서 뱀파이어 도서관에 들렀어.”
“뱀파이어 도서관?”
“응. 사서가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 공국 인형 장인 아돌포 3세가 만든 태엽인형이랑 히다
치에서 나온 80년대 용접 로봇인 곳이야. 대당 10억 원인 고속 엘리베이터로도 아래까지 11
분이 걸리는 데인데 1호 자료가 돌판인 곳이지.
뱀파이어 도서관에서 찾은 바, 놈은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처음 만들어진 전 세계
적인 조직 ‘아(a)’ 소속이 확실해.”


잠시 침묵했다가 수성이 물었다.


“조직 이름이 ‘아’라고? 외자?”
“그래. 아는 수메르 어로 팔을 뜻하고 노동, 날개, 뿔, 옆, 힘, 권력이란 다른 뜻을 가지고 있
대. 저 단어가 역사 속에 알려지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나도 알고 깜
짝 놀랐어. 기원전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노선 투쟁을 이유로 로마와 마찰하면서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조직명은 결코 알려지지 않았을 거야.”
“그냥 ‘아!’ 하고 외치는 거랑 별로 다를 것 같지 않은데. 하고 나서 안 했다고 우길 수도 있
겠다. ‘아, 안 했다고!’”


칭링이 인상을 썼다.


“하여간 아는 이네디(enedi)란 조직을 견제하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이네디는 게임, 놀기라는
뜻을 가졌어. 아와 이네디의 기원과 그들의 기나긴 신경전은 성경 속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가장 잘 나와 있다고 공식 연구는 풀이해.
카인은 농부, 아벨은 양치기였는데 신이 아벨의 공물은 좋아서 반기고 카인의 것은 받지 않
았어. 카인은 질투를 참지 못하고 아벨을 죽였는데, 신은 이런 카인을 인간 사회에서 영영
추방해서 혼자서 세상을 떠돌게 만들었어. 단 카인이 살해당하지 않도록 신의 징표를 마련
해 준 다음에.
이게 무슨 뜻이냐.
기원전 2600년경 수메르의 젬테트나스르 시대의 수메르 국은 고대 그리스처럼 우루크, 우
르, 키시, 니푸르 등 십수 개의 도시 연맹으로 이뤄진 국가였어. 도시 국가들은 고대 그리스
가 올림픽을 발전시켜 도시 간 우월을 나타내고 서열을 정했던 것처럼 쌍방 손해인 전쟁을
배제하면서 서열을 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 그게 바로 보드게임, 백개먼(*2인용으로
12개의 원뿔 모양의 칸에 15개의 말을 컵 속의 주사위를 굴려 먼저 모두 회수하는 사람이
이기는 보드게임.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권이 기원으로 추정.)이었어.
처음에는 도시 국가 간 토너먼트로 이뤄지던 백개먼 배틀은 기원전 2686년경 이집트 고왕
국시대 수도인 멤피스까지 닿았고, 국가 간 토너먼트부터 일개 개인이 밤낮으로 즐기는 어
마어마한 붐을 일으키면서 결국에는 고대 로마까지 번지지. 아무래도 당시는 게임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랬나 봐.
아는 이런 풍조에 반대하는 소상공인, 종교지도자, 자본가, 지주, 관리 등이 비밀리에 만나
면서 만들어졌어. 대부분 돈이나 권력, 또는 둘 다 가진 사람들이었지. 이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백개먼 주사위를 어떻게 하면 잘 굴릴까만 생각하고, 백개먼 게임 플레이 때 있
었던 일 떠들고, 백개먼 필승법을 연구하고, 백개먼을 하느라 일도 안 하고 술이나 음식 소
비도 잘 안 하는 사회 풍조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특히 가장 골칫거리는 백개먼에 중독된 상류층 사람들이었어. 하류층, 그러니까 자기 아랫
사람들인 견습생, 교인, 돈 빌린 사람들, 마름, 소작농, 하급 관리 등은 명령 하나만으로 놀
이를 막을 수 있었지만 같은 부류에게는 그게 안 되는 거야.”


두 사람이 전부는 아니지만 무언가 깨달은 얼굴이 되었다.


“설마!”
“그렇지. 견디다 못한 아는 상류층이 모인 부정기 백개먼 토너먼트 때 음료수에 독을 탔고
50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즉사했어. 사건은 엄중한 수사를 거쳤지만 큰 사기대접에 든
음료수는 누구나 접근을 할 수 있는, 살인자에게는 꿈의 살인 장소였던 터라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어.
이후 수메르 국에서는 공포 때문에 공공장소의 공개 백개먼 플레이가 사라졌고, 유행을 선
도하던 상류층이 플레이를 그만두자 붐은 급속도로 사그라지고 말았어. 하류층은 더 이상
편안하게 놀 거리가 없어진 것을 서운해하면서 큰 교훈 하나를 얻었지. 상류층과 하류층이
놀이라는 일종의 가상공간에 들어가 문화를 함께 향유하면 그 순간만큼은 서로 섞이며 계
층이 없어지고 진정한 해방이 도래한다는 사실을!
한편 상류층도 이 사건에서 많은 점을 깨달았어. 공공 치안에 대한 개념 적립과 함께 실제
로 놀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취급할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급속
도로 퍼졌어. 사람들이 게임을 하면서 친해지고, 유순해지고,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폭력
성을 부드러운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어. 당장 백개먼 판을 들여다보
느라 범죄율이 떨어졌거든. 다른 쪽으로는 실제로 노동생산성이 떨어졌어. 당연하지. 일하
다 말고 관리자랑 노동자가 백개먼 플레이 후기담을 말하고, 서로 친하니까 닦달이나 채근
도 안 하고, 잔업이고 뭐고 없고 끝나자마자 백개먼 플레이를 해 버린단 말씀이야.
백개먼이야 뭐 비교적 간단한 게임이었지만 룰만 좀 더 복잡했으면 집중도와 열광도는 더
높았을 거였어. 파고들 만한 부분이 생기고, 숙련도에 따른 적절한 차등이 마련된다면 게
임은 더더욱 불이 붙었겠지. 어두워지면 당장 성문 밖에 불한당과 맹수, 강도단이 횡행하
고 기계가 없어서 노동집약적인 노동거리가 쎄고 쎘던 시대에는 이것은 사회 발전에 엄청
난 위험이었어. 그래서 수사고 증거고 뭐고 잡아다 바로 죽일 수 있는 시대임에도 아는 무
언의 묵인 아래 용인받고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어. 이게 바로 카인으로 성경에 기록된
그들의 정체이지.
그러나 아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어. 하층민들이 주류인
사람들은 평화스럽고 재미나고 민주적이었던 분위기를 결코 잊지 않았어. 그 사람들, 그러
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이른바 백개먼 황금 놀이 시대를 찬양하면서
그런 날이 임시적이고, 한정적이기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항구적으로 놀 수 있는 시
대가 와야 하고, 결국에는 필연적인 역사의 소산으로 온다고 믿었어. 이 사람들이 비밀단
체 이네디를 만들었던 거야.”


은실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황당하지만 일리가 있어.”


당장 눈앞에 뱀파이어가 있는데 이 정도 음모론쯤이야 사실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수사
관으로 훈련된 은실의 마음속에 연거푸 질문이 떠오르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요즘 와서? 그동안은 죽이고 싶었던 것 잘도 참아왔네.’


은실이 약간 망설이다가 의문을 입 밖으로 내자 칭링이 다시 설명했다.


“아는 몰살을 정말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듯해. 아무래도 정체가 쉽게 드러날 수
있으니까 말이지. 그들은 지금까지는 아주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상대방
에게 태업을 강요해서 놀이 문화의 확산을 저지시켜 왔어.
게리 가이각스(*TRPG 던전앤드드래건의 창시자. 2008년에 사망. 2006년을 배경으로 한
본 소설에서는 아직 생존 중이다.)가 그런 게임 창작력을 가지고 활동적인 모습을 보이
지 않는 이유가 뭐겠어. 아가 그가 아끼는 순금 다이스 세트와 세라믹 던전 조립 세트를
훔쳐가서 그래. 아는 게리 가이각스가 멋진 룰을 출간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4면체나 8면
체 주사위가 망치 밑에 있는 잔인한 사진을 보낸대.
오래, 행복하게 사는 게임 기획자나 장난감 기획자들은 다들 알아서 몸조심을 하거나 사
내 보안이 잘된 곳에 살기 때문에 그렇고 대부분의 기획자들이 불행하게 삶을 마치고 일
찍 죽는 이유도 다 아 때문이야.”
“잦은 야근과 자금 부족, 스트레스 때문은 아니고?”
“……아, 뭐 그것도 있겠지.”


































* Tob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4-06-06 18:56)
* 관리사유 : 연재 게시판 이동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공지 [공지] 연재게시판 종료 안내 [9] Toby 14/07/21 36523
766 유랑담 약록 #11 / 120612火 _ 동네 한 바퀴 / 외전3 _ 게임, 계층, 취미, 한류 [11] Tigris45639 14/06/30 45639
765 유랑담 약록 #10 / 120611月 _ 미인의 도시 아키타 / 외전2 _ 삿포로의 신년맞이 [9] 삭제됨40647 14/06/25 40647
763 유랑담 약록 #08 / 120609土 _ 다자이 오사무의 우울 [11] 삭제됨34214 14/06/17 34214
761 유랑담 약록 #06 / 120607木 _ 홋카이도의 마지막 별하늘 [5] 삭제됨32223 14/05/27 32223
760 유랑담 약록 #05 / 120606水 _ 흐린 날의 노면전차, 하코다테 [6] 삭제됨39768 14/05/22 39768
759 유랑담 약록 #04 / 120605火 _ 8인7일 계획 / 외전1 _ 홋카이도의 먹거리 [6] 삭제됨33569 14/05/16 33569
755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5) 트린29218 14/07/10 29218
754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4) [2] 트린29462 14/06/19 29462
753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3) [1] 트린30013 14/06/05 30013
752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2) 트린30720 14/05/22 30720
751 [내왜미!] 4화 고지라 대 메카 고지라 (1) [5] 트린31431 14/05/08 31431
750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8-끝) [4] 트린31050 14/04/23 31050
749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7) 트린31009 14/04/09 31009
748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6) 트린30453 14/04/02 30453
747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5) [1] 트린31573 14/03/26 31573
746 [연재] 장풍 맞은 사과와 뉴튼...100년 장미칼 VS 절세신검 화개검 2부(6) [2] 캡슐유산균30965 14/03/23 30965
745 [연재] 장풍 맞은 사과와 뉴튼...100년 장미칼 VS 절세신검 화개검 2부(5) [1] 캡슐유산균30192 14/03/20 30192
744 [연재] 장풍 맞은 사과와 뉴튼...100년 장미칼 VS 절세신검 화개검 2부(4) [3] 캡슐유산균27415 14/03/15 27415
743 [연재] 장풍 맞은 사과와 뉴튼...100년 장미칼 VS 절세신검 화개검 2부(3) [3] 캡슐유산균28003 14/03/15 28003
742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4) [2] 트린27951 14/03/21 27951
741 [연재] 장풍 맞은 사과와 뉴튼...100년 장미칼 VS 절세신검 화개검 2부(2) [1] 캡슐유산균27870 14/03/08 27870
740 [내왜미!] 3화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3) 트린28821 14/03/12 2882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