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5/03/12 15:27:03
Name kama
Subject [연재소설]Romance - 6. 예선 7일전
  네, 가면 갈수록 PGR의 최저 조회수 기록을 갱신 중인 글, 겁도 없이 또 올렸습니다^^; 어째 뒤로 가면 갈 수록 기간이 더 길어지는 군요.(더불어 솜씨도 점점 쇠퇴......) 뭐, 공부하고 리포트 쓰느라 늦었다면 할 말이라도 있겠습니다만ㅡㅡ;;;  
  그나마 다행(?)이라면 연재 속도를 붙잡는 요인 중 하나였던 '라제폰'을 극장판 다원변주곡까지 전부 봤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슈로대MX에 중요 스토리 라인으로 나오길래 그림도 예쁘고 해서 무심코 봤는데 무지하게 재밌더군요. 에바와 (상당히) 비슷하긴 하지만  내용도 훨씬 더 이해가 되고(어디까지나 에바와 비교해서지만)......무엇보다 19화 blue friend는 최고!!!
  ......잡담은 넘어가고, 하여튼 재밌게 봐주시길~


6. 예선 7일전

  으갸갸갸갸.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다. 오랜 기간 동안 앉아만 있어서 그런지 목이고 허리고 팔이고 간에 로봇의 그것처럼 움직일 때마다 괴상한 소리를 내지른다. 정말이지 세상 사중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느냐 만은 정말이지 각오 없이는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온건한 인생계획을 위해서도 좋을 듯싶긴 하다. 관절마디만 난리를 치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모니터에만 집중을 했던 탓인지 눈도 아프고 눈물이 저절로 솟아나온다. 나는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풀어준 다음에 눈을 잠시 감았다. 감겨진 눈꺼플 속이 조금씩 따끔따끔하다.
  뭐, 처음에는 게임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전부터 학교 끝나면 죽어라 했으니까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오산이었다. 그저 즐기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한 판과 자신의 세세한 플레이와 상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며 그 패턴과 타이밍을 몸과 머리에 익혀야 하는 한 판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게임 하나하나의 부담감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뿐이랴, 게임이 끝나면 리플레이를 보면서 다시 올바른 사냥경로와 타이밍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심심할 때 마다 맵 에디터를 보면서 예선 대회 맵의 내부를 빈틈없이 살펴본다. 유명 게이머들의 VOD를 보면서 작전을 구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휴식시간으로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어쩌랴. 후발주자인걸. 실력 자체를 놓고 봐도 조금 쳐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데 내가 결심을 내리기 전부터 그들은 예선에 대비하여서 연습을 하였을 것이니, 그들에게서 승리를 따내기 위해선 배로 연습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노력을 다한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노력을 했다, 라는 말장난과 같은 격언을 계속 되새기면서 나는 눈을 떴다. 언제나, 매일 보아오는 화면이 나를 반긴다.

  “슬슬 한계가 온 것 같아?”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나와 같이 이번 예선을 목표로 두고 있는 인물이며 어쩌면 여성 최초로 워3리그에 진출할지도 모르는 여자다. 단순히 워3란 게임에 무지하게 좋아해서라는,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이유로 이런 고생을 하고 있기도. 하긴, 내 경우를 생각하면 그다지 무모하다고 판단되지는 않는군.

  “그러는 그쪽이야 말로.”

  정말로 나의 경우는 차라리 괜찮은 편이다. 어차피 게임하면서 밤 샌 적도 많이 있고, 이런 식의 반 폐인 생활에 익숙한 경우였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 전까지는 모범생이었고 이렇게 작정하고 게임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전체적인 체력도 부족한 편이고(지구력은 여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무엇보다 꽃다운 나이의 여고생이 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외모도 가꾸지 못한 상태로 계속 생활한다는 것은 정말 고생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피곤으로 얼룩지고 잘 씻지도 못한 얼굴임에도 그녀는 힘차게 기지개를 피면서 환하게 씩 웃는다. 정말이지, 좋은 여자다.
  
  “어쩔 수 없잖아.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일주일. 클라임 리그 예선까지 남은 시간은. 많다면 많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너무 부족해 보인다. 거의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학교에 가서 휴식을 취하는 식으로 최대한 시간을 확보하려 하곤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시간. 그러니까 지금처럼 날씨 좋은 일요일 날 아침부터 PC방 한 구석에 박혀서 게임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물론 그러면 평소 때 일요일 아침에는 뭐하냐고 물어보면......웃지요.) 그나마 길드 원정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꽤 많은 수가 연습상대를 해주고 있어서 연습하는데 아쉬움이나 부족함은 없었다는 것이 위안 일까나.
  
  “힘내야지.”

  그녀는 다시 한 번 씩 웃으면서 게임에 들어간다. 나도 살며시 미소를 지으면서-제대로 지어졌는지는 의문이 가지만-화답을 한 다음에 마우스를 다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은 지금처럼 언제나 같이 연습을 하는 그녀겠지. 아,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그래, 알았다.”

  내가 프로게이머를 노려보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잠시 침묵을 지키던 어머니가 한 말이다. 어차피 성적도 시원치 않았고, 모범생이나 우등생이란 단어와도 친분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예상보다 훨씬 간단하게 나온 허락이라서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뒤에 이어 나오는 말은 나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범죄만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 상관치 않겠다. 네가 정말로 혼신을 다한 노력을 한다면.”

  발은 내밀었고, 그 뒤를 부모님이 지켜보고 있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런 부모님에 대한 보답이겠지. 나는 효자는 아니더라도 괜히 부모에게 반항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철부지의 시기는 벗어났기 때문에 그 정도의 각오는 할 수 있다.

  “아자.”

  나는 짧게 기합을 넣으면서 마우스를 잡았다.  


  
  “여, 불타는 청춘들.”

  ......그런 말로 포장하기에는 우리 둘 다 몰골은 영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독창성에서 큰 점수를 줄 수 없는 표현은 쓰지 마세요. 어쨌든 의식 형이 우리들이 맹연습 중인 PC방으로 찾아온 것은 오후가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얼굴 본지도 꽤나 오래 지났군. 한 달 전쯤 WEGL 대회장에서 만났던 이후로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WEGL의 경기는 VOD로 매일 꼬박꼬박 챙겨보고 연구하여서인지 바로 어제까지 만났던 것 같은 느낌이든다.
  
  “아, 오빠.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응?”

  “이렇게 찾아온 것은 WEGL이 개막하고서는 처음인 것 같은데. 아, 하긴 어제로 16강이 모두 마무리 됐으니까 시간이 생겼겠네. 8강 진출 축하해!”

  환하게 웃는 가연과 달리 의식 형은 뭔가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고 있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근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참......너희들 정말 그동안 죽어라 게임만 해댔구나.”

  “그야, 시간이 없었으니까 어쩔 수가 없죠.”

  “컨디션 조절은 해가면서 해. 너무 무리하다가는 몸 상한다.”

  “아직 팔팔할 나이네요. 아.저.씨.”

  “야야, 프로게이머 중에도 너희 나이 때인 선수가 있어. 젊고 어리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렇게 무리하다 정작 시합 날에는 몸이 엉망이 되서 제 실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한 체 gg를 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봐왔다고.”

  “걱정할 것 없어요. 이래 봐도 시험공부 하면서 그런 식의 요령은 몸에 익혀왔어요. 예선 날이 가까워지면 조금씩 휴식을 취하면서 컨디션 조절을 할 거라고요.”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피곤해 보이는걸.”

  “하지만......후회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최선을 다한 다음에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야 하늘의 뜻이라면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긴......용케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했더니만. 그래도 지나친 것은 좋을 리가 없으니까 알아서 적절한 선을 그어둬.”
  
  “네~이.”

  으음, 뭔가 내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는 것 같은 대화내용이다. 실제로 의식 형은 평소에 잘 짓던 그 생글생글한 미소도 잠시 거두고선 정말로 여동생을 걱정하는 오빠의 얼굴을 하였고. 하지만 내가 미처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전에 의식 형이 먼저 선수를 쳤다. 갑자기 앉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것이다.  
  
  “참, 내가 여기 온 목적이 이게 아니지. 너희들 정말 모르고 있던 거야?”

  “무엇을요?”

  “......정말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군. 내가 안 왔으면 큰일 날 뻔 했어.”

  그러더니 한 숨을 크게 내쉰 다음에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러니까 내가 경쟁자를 위해서 이런 것까지 챙겨줘야 하냐고.”

  이런다. 그러니까 도대체,

  “뭘 말하는 거예요?”

  “잠자코 이거나 봐.”

  의식 형은 나를 살짝 밀어내고선 내가 있던 컴퓨터의 마우스와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인터넷 창을 열더니 메일함으로 들어간다. 이게 보여줄 것 인가?

  “......이런 건 가연이가 없을 때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장난치지 말고 맨 위에 있는 메일이나 봐. 그건 스팸으로 날라 온 것이니까 신경 끄고.”

  어쩔 수가 없다고요. 혈기 넘치는 십대에 그런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쨌든 난 더 장난치기에는 분위기가 맞지 않았고 가연이가 어느새 다가와 내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놓았기 때문에 의식 형이 알려준 그 메일을 얌전히 쳐다보았다. 예선 공지 사항......대진표?

  “대진표!”

  아아, 확인시켜줘서 고마워, 가연아......정말로 대진표로구만. 예선 대진표......윽, 예선 대진표. 이제야 의식 형이 왜 그리 어이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는지 깨달았다. 대진표가 결정이 되면 예선 신청할 때 같이 써냈던 이메일로 통보해준다고 했었지. 흠, 아마 의식 형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누구를, 어떤 종족을 상대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상태로 예선장에 갔을지도 모른다. 예선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놓은 주제에 이런 중요한 사항도 알지 못하다니, 정말이지 나나 가연이나 몸이 제 컨디션은 아닌 것 같다.

  “이제 무작정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종족에 맞춰서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것 아냐. 정말이지 가연이야 당연히 챙겨주지만 내가 너까지 이렇게 도와줘야 하는 거냐고.”

  그야 한 때 스카웃 제의를 했던 유망주였으니까 이 정도는 챙겨줘야죠. 평소에는 안 그러더니만 갑자기 왜 그렇게 투덜거리는 건지.

  “앗, 나 여깄다. paran_hanle[K.D] C조네.”

  “어디보자......첫 상대는 누군지 모르겠네. 준결승 상대는 아는 아이디고. 이번에 레벨 50을 채운 사람이야. C조 시드는......헐, 한때 클라임리그 4강까지 올라갔던 선수잖아!”

  “그래도 최근 페이스는 좋지 않은 모양인 것 같더군. 나쁘지는 않은 대진이야.”

  “아, 나는 여기 있다. (SP)_Black Lion. H조네. 첫 상대는 아는 사람이야. 옛날에 한 번 붙었는데. 그 때는 졌는데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나.”

  “으음, D조에 있는 이 Red_Earth[K.D]는 로이 씨죠? 잘못 했으면 만날 뻔 했네요.”

  Red_Earth[K.D], 로이 앤더슨 선수. ESWCS에서 4강에 올랐던 강자며 의식 형과 비교해봐도 뒤지지 않는 실력자다. 그 실력은 옛날 의식 형과 처음 만난 날 2:2 팀플 형태로 만나서 톡톡히 느꼈었지. D조라니 정말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이 라이센 신과 예선에서 만난 불쌍한 인간은 누구일려나. 나는 그의 아이디 Blue_Sky[K.D]를 찾아보았다. 아, 여기 있다. 역시 예선 시드를 받았군. 어디 보자, 응? 어디서 많이 본 알파벳이다. A, B, C, D, E, F.......H! 나는 온몸으로 전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거의 튕기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도 있지.”

  라는 말을 웃으면서 태연스럽게 한다. 아아, 옛 선인들은 참으로 위대했나 보다. 이토록 상황에 적합한 격언이라니. 가연도 잠시 모니터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나와 의식 형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망할, 정말이지 이런 우연이 있다니. 아니, 누군가의 고의적인 장난일지도. 나는 목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돌아간 목을 살며시 움직여 가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멍하게 나를 바라보다니 살짝 웃는다.

  “힘 내.”

  하, 그 웃음에까지 애처로움이 섞여 들어가 있다. 그래, 그래. 힘내야지, 기운차게 힘을 내야지.

  ......힘이 안 난다.
  의식 형, 라이센 신의 플레이 스타일이라면 잘 알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가연이와 동일. 정확히 말하자면 가연이 쪽이 그 스타일을 따라한 것이겠지만. 그리고 문제는 난 사실상 그의 마이너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가연과의 시합에서도 승률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예선 결승은 3판 2선승제. 1패를 하더라도 2승을 따내야 하는 것이다. 과연, 내가 그를 상대로, 전 ESWCS 준 우승자이자 현재 WEGL에서도 3전 전승으로 8강에 안착한 이 선수를 상대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놀랐나 보군.”

  “당연히 놀라죠.”

  “난 잘 됐다고 보는데.”

  “네?”

  “예전에 내가 한 말 기억해? K.D길드에 입단하라는 말.”

  잊을 수가 없죠. 그런 이야기는.

  “그때는 별 생각 없다고 했었지만 지금은 너도 진짜 프로의 세계로 들어가겠다고 맘을 먹은 상태. 그렇다면 이건 입단 테스트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군.”

  “네~에?”

  “물론 무조건 날 이겨라, 이런 조건은 아니야. 다만 실제 시합, 본선에 나갈 수 있는가 아닌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에서 너의 발전과 가능성 정도를 직접 알아보겠다는 것이지.”

  “......지금 더 부담 주려고 작전 짜는 것이죠.”

  “하하, 그런 속셈도 있고.”

  “거참, 예선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요. 형이야 예선 시드로 결승전으로 직행 한다고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 가려면 나와 같이, 아니 나보다 먼저 프로를 노리고 연습해온 녀석들을 2명이나 이겨야 한다고요.”

  “내기 할까?”

  “......무슨 내기요.”

  “가연이가 누굴 응원할지.”

  “형!”

  나는 반사적으로 외친 다음에 가연이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다행히도 원래 자기가 연습하던 자리로 가서 누군가와 시합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종족을 봐선 예선 첫 상대에 대한 예측 연습을 하는 모양. 어쨌든 지금 우리의 대화를 듣기에는 거리가 꽤 되었고, 그녀 역시 게임에 집중하고 있어 그럴 염려는 없는 듯 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는 의자를 한 번 빙글 돌리더니 싱긋 웃는다.

  “아무래도 좀 그렇지?”

  “그럼요. 누굴 응원하던 가연이 맘이고 굳이 그걸 따질 필요가, 아니 가연이가 둘 중 누구의 패배를 바란다는 것 자체도 말이 안되......”

  “그래.”

  아, 거참 사람 놀라게 하는 구려.

  “잠깐 오기가 생겼던 모양이다. 질 확률이 높은 내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잠깐 그건 또 무슨 의미에요. 나는 해명을 요구하는 강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의식 형은 실실 웃으면서 능구렁이처럼 내 시선을 피해가며 몸을 일으켰다.

  “아, 이제 나도 슬슬 가봐야겠다. 가연아! 나, 간다!”

  “어, 벌써 가게요?”

  가연이 눈은 모니터에서 떼지 않고 마우스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도 말을 꺼냈다.

  “응, 어차피 여기 온 이유는 예선 대진표가 나왔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으니까. 나도 예선 준비를 해야 하고, 또 내가 있으면 녀석이 연습하기도 힘들잖아.”  

  그건 그렇지만 왠지 제게는 도망치는 것으로 밖에 안 보입니다.

  “그럼 연습 열심히들 하거라, 몸조심하고!”

  내 입장에서는 연습 열심히 하라는 말은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하, 나는 가연이 옆으로 가서 그녀의 연습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스타일을 분석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대진표를 보고선 당장 연습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감하게 됐네.”

  여전히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시킨 자세로 말문을 연다. 그러니까 그렇게 주어 생략하는 말버릇은 고치라고. 자신이 난감하다는 거야, 내가 난감하다는 거야. 아니면 둘 다인가?

  “오빠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난감할거야. 너한테 관심이 많았거든. 전화가 와서 네 연습 성과가 어떤지 물어보기도 하고. 정말 K.D길드로 스카웃할 생각이던데, 네가 클라임리그에 올라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길드 관계자들이나 후원기업에 할 말이 있잖아. 아무리 오빠가 팀의 리더라고 해도 아무런 실적이 없는 사람을 데려가기는 힘드니까.”

  “......그러면 일부러 져주기나 하라고 해.”

  “하하, 아무래도 그런 일은 없지. 비슷한 의미에서 K.D길드도 아직 발전 중이라고. 오빠도 사실 눈에 띄는 경력은 ESWCS 준우승 밖에 없으니까 더욱 캐리어를 쌓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흐음, 길드원은 길드원이라 걱정하는 거야 ?”

  “뭐, 그런 것도 있지. 말 그대로 임시, 이지만.”

  “그러면 의식 형에 대한 정보나 플레이상 약점 같은 것 좀 조사해 달라고.”

  농담 반, 진심 반섞인 대사.

  “어차피 리플레이나 VOD가 있잖아. 직접 게임 해본 적도 있으면서. 그것보다 확실한 정보가 어디 있어. 오히려 오빠가 너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없었지. 자자,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 연습, 연습. 끝없는 연습만이 이기는 왕도라고.”

  “쳇.”

  어쨌든 대진표가 나오고서 우리가 실제 연습 게임을 하는 횟수는 조금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연습시간은 오히려 늘어났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고, 리플레이 등을 구해서 분석하는 시간이 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말 가연의 말대로 의식 형처럼 널리 알려진 선수는 리플도 구하기 쉽고 연구하기에는 더 쉬었다.(물론 결론은 더 안나왔지만) 다음날부터는 학교에 가서도 쌓은 피로를 회복하는 것보다는 여러 자료를 통해 알아낸 패턴들을 세밀하게 측정하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터를 돌리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와 가연, 모두 모든 관심과 집중은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는 클라임 리그 예선과 그 상대로 압축되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도중에 나는 또 다시 한번 옛사람들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었다.

  말이 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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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12 15:35
수정 아이콘
와우~! 기다렸습니다. 이번편은 염장이 없어서 좋군요. 과연 주인공 "나"는 파란을 일으킬 수 있을것인지...
아케미
05/03/12 15:49
수정 아이콘
정말 멋진 부모님이시군요(…) 잘 읽었습니다. 여전히 기대합니다!
05/03/12 19:39
수정 아이콘
무슨 말이 씨가 될까요?.
05/03/13 02:57
수정 아이콘
...조회수가 젤 낮다니요-_-; 언능언능 올라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요새 큰 사건떄문에 좀 그랬을 뿐이죠^^
~Checky입니다욧~
05/03/13 03:18
수정 아이콘
조회수가 낮다뇨!.....낮긴하네..-_-뻘줌 (농담인거 아시죠?)
그나저나 개인적으로 전 라제폰이 괜히 심각한 에바보다 낫다는..-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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