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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12/12 16:55:57
Name 막군
Subject [공모][단편]라 만차의 앞마당
라 만차의 앞마당

변태는 끝났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명령을 내려달라고 안절부절거리는 가디언들을 드래그 했다.
그리고 A버튼을 누르고 마우스의 왼쪽버튼을 클릭했다.
저기서 소리 없이 조용히 떨어지는 노란 입자는 곧 날 승리로 이끌어 주겠지.
그래, 이 싸움은 내가 이길 수 밖에 없다. 그대여, 지지를 쳐라. 니가 아무리 역전의 명수라도 여기서 날 이길 순 없을꺼다.
“…하동기 선수, 결국 4차전을 잡으면서 게임스코어를 2대2로 만듭니다!”
선수석에서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게임을 나갔다. 이겼다. 마침내 다시 내가 이겼다.




그래, 나는 질 리가 없다. 난 잘못되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몇 년넘게 걸어온 이 길은 절대 잘못 온 길이 아니다. 난 주먹을 꽉 쥐었다. 마지막 한경기만을 남겨두었다. 난 회상했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하던 그날, 엄마라는 인간은 나에게 얼마나 크게 호통쳤는가? 누나라는 계집은 날 어떻게 박대했는가? 그들은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마치 개-돼지 같은 짐승과 인생의 실패자만의, 마치 저 어두운 할렘가 흑인들의 총질과도 같은 하류인생으로 취급했다. 그들은 날 버렸다.
하지만 내게도 희망의 한줄기 빛은 있었다. 감독님, 아 감독님! 내 눈물이 모여 가슴속 깊이에서 웅덩이를 짓던 때, 그렇게 암울한 시기에 희망을 준 그 분. 저기서 날 지켜보고 있다. 난 그분께 웃음을 짓는다. 난 주먹을 꽉 지고 다시 한번 감독님께 내 믿음을 드렸다.
아, 아직 아니다! 내 어두운 과거들을 회상하기엔 너무 이르다. 아직 경기가 남아있다! 아직까지 내가 저 우승 트로피에 키스하기 위해선 한경기를 더 이겨야 한다. 관중들의 함성소리, 전용준 캐스터의 목소리가 선수석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5경기 맵은 다시 1차전의 라 만차(La Mancha)로 되돌아 갑니다. 엄재경 해설위원, 이 맵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면요?”




난 전 경기의 리플레이를 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저 내 마인드를 컨트롤할 뿐이다. 난 믿었다. “지금 내 상태는 최상이다. 지금 내 상태는 최상이다.” 이렇게 말이다. 3,4차전을 연달아 잡아서 흐름은 나에게 있다. 내가 이제 할 일은 내 자신을 믿을 뿐이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저 더러운 녀석을 꺾는거다. 그래, 저 녀석. 임요환! 남들은 그에게 테란의 황제라는 별명을 지어줬지만, 나에겐 그저 치졸하고 비겁한 소인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임요환, 나는 아직까지 네가 진호님께 썼던 벙커링을 기억한다. 임요환, 넌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리에 미친 더러운 짐승일 뿐이다. 넌 또 너의 그 특유의 운빨로 이까지 왔을진 모르겠지만, 내 앞에선 아니다. 난 너를 꺾고 싶어서 이곳까지 왔다.





저 멀리서 이어폰을 낀 AD의 신호가 보인다.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임요환,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 라 만차의 전장터에서 네 드랍쉽과, 마린과, 메딕과, 탱크의 뼈를 묻어주마. 그리고 평생 네가 네 스스로 저주하게끔 만들어주마. 그래, 강간해주마. 마지막 공격은 드론으로 끝내주마. 사람들은 말하겠지. 임요환은 단지 실패자일 뿐이라고. 으하하, 하하하하.



“경기 시작합니다!”
전용준 캐스터의 함성, 그리고 동시에 울러퍼지는 내 팬들의 환호성. 스피커는 서서히 꺼졌다. 경기는 곧 시작된다. 난 기도했다. 신이시여, 난 당신이 존재함을 믿습니다. 부디 내 인생을 저주건 모든 녀석들에게 이 승리를 보여주게끔 만들어 주소서. 내 인생을 파멸로 몰고갈려고 했던 그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꼭 가르쳐주십시오. 꼭, 꼭!
5초 카운트 다운은 언제나 날 긴장하게 만든다.
몇 천번이나 해온 게임이지만 언제나 이 5번의 전자음과 함께 시작되는 경기 시작전의 고요한 울림은 내 심장박동소리를 빨라지게 한다. 와라, 와라!





라 만차의 노란 모래가 느껴진다. 난 드론들을 드래그 무빙했다. 그리고 미니맵을 체크했다. 1시다. 좋은 위치다. 연습할때 많이 이겼던 그 곳이다. 임이 11시면 좋겠다. 가까운 가로방향. 그럼 답은 뻔하겠지. 벙커링. 난 이미 라 만차에서의 11시-1시 벙커링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해놨다. 결승 며칠전부터 우리 테란 팀원들에게 철저하게 부탁했을 정도니까. 난 이미 시간까지 알고 있단 말이다! 테란 11시, 저그 1시일 때 테란의 scv는 2분 55초째에 앞마당 시야에 보이기 시작, 대게 59초째에 벙커링을 짓기 시작한다. 3분 13초에 완성이 된다. 난 이미 일분 일초를 외우고 있었고, 55초째가 되는 그때 드론들이 나오면 scv는 벙커링을 지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 난 이렇게 철두철미 했다. 임요환이라는 비겁자를 이기기 위해서 그렇게 몇 년을 기다렸다.





난 앞마당 해처리를 폈다. 그리고 나는 1초씩 세어가면서 임요환의 scv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온다. 온다… 여기, 그래 여기 왔다! 난 미리 부대지정 해놨던 드론을 앞마당으로 몰고나왔다. 막을수 있다. 아니 막는다. 그냥 막는다. 이건 내가 준비해둔 떡밥이였다. 후속 scv2기도 오고 있지만, 내 드론이 더 강하다. 드론의 초록색 등뼈는 scv의 체력을 깎아내리기에 충분했다. 한기, 한기 더! 그래 마지막 한기도! 펑! 펑! 그렇지! 그렇지! 난 씨익 웃었다. 요환아, 봤냐? 봤냐고! 넌 이런 녀석이다! 넌 이런 실패자란 말이다! 넌 날 절대 이기지 못해! 이기지 못한단 말이다! 푸하하하하하하! 취소된 벙커링을 보면서 나는 미친듯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거다! 이게 니 실력이고, 이게 내 진짜 실력이란 말이다! 으하하하하! 으하하하하!!! 난 내 가슴 속 깊이 퍼져나오는 웃음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네, 김 간호사 입니다.”
“누가 저 자식한테 또 노트북을 준거야?”
“아 선생님, 그게 어제 밤 환자분이 갑자기 발작 증세를 일으키셔서…… 금단 증상 같은 거였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의사 동의 없이 저런걸 주면 어떡하나?”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빨리 병실로 와봐, 이 자식 증세가 심각해 이거. 노트북까지 부숴버렸다고.”
“네, 알겠습니다."

딸깍-



김 간호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무슨일이래요?” 옆에서 TV를 보면서 깔깔되던 동료가 묻는다.
“아 글쎄, 708호 환자, 또 정신이 나갔나봐.”
“아, 그 폐인 아저씨?”
“그러게 말이다. 자기 가족 말로는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서 게시판에 글 올리고 스타만 하고 그랬다던데, 하여간 꼭 저런 놈들이 있어요.”
“나도 그런 사람 알아요, 언니. 글쎄 내 친구의 남자친구중에 서울대학교 다니면서 진짜 훤칠하게 생긴 공대생이 하나 있는데, 글쎄 걔도 인터넷에서 엄청나게 악질이였나봐. 그것때문에 구속됐데.”
“에휴, 뭔 그런 놈들이 다 있다냐. 한심하다 정말... 아무튼 얘, 늦었다. 난 올라가본다.” 김 간호사는 접수처에서 빠져 나와 병실로 걷기 시작했다.


※라 만차(La Mancha) : 스페인 중남부의 고원 지방. 세르반테스의 기사를 풍자화한 소설 '돈키혼테'의 주 배경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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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12 17:07
수정 아이콘
이렇게 올린뒤에 다른 분들 작품도 체크해봤는데, AIR_Carter[15]님께서 올린 글이랑 소재가 많이 비슷하네요. 방금 알았습니다. 절대 표절은 하지도 않았고, 아예 공모전에는 그 어떤분의 소설도 읽지 않았습니다. (첫 한,두작품 정도 빼구요. 목적은 괜히 봤다가 제 창의성이 떨어질까봐 였는데, 난감하네요;;)
아케미
05/12/12 17:09
수정 아이콘
갑자기 나타나셔서 이건 무엇입니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AIR_Carter[15]님과 좀 비슷하다고 쓰려 했는데 먼저 말씀하셨군요^^;)
05/12/12 17:30
수정 아이콘
오...오랜만이군요;;;갑자기 버로우를 푸셔서 당황했습니다^^;;
역시 상금의 위력이....?(퍽!)
미이:3
05/12/12 23:58
수정 아이콘
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지막 반전에서는 소름이 마구마구; 으으 추워요T_T
여튼 쓰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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