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3/23 16:44:13
Name my immortal
Subject [일반] [수필] 엄마의 마중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 아파트는 당시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어린 나의 눈으로 보기에는 꽤나 신기함으로 가득했었다.
계단이 아니라 엘레베이터를 타고 집에 올라가던 기분, 사람 얼굴이 화면에 보이는 인터폰, 등등

우리집은 12층에 있었다.
지금이야 초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지만 당시에는 지방에서 이 정도면 그래도 꽤나 고층에 속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쬐그만 중학생의 걸음으로 그 아파트에서 20분 남짓 되는 거리였다.
몸에 안 맞게 큰 교복에다 제 몸뚱아리 만큼이나 큰 가방을 메고선 늘 같은 길을 걸어가곤 했다.
학교를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다 보면은 늘 내 방 베란다에서 엄마가 손을 흔들며 나를 맞아주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서는 나도 같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아파트 현관으로 뛰어가곤 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늘 내가 집에 오는 시간엔 꼭 12층 내 방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며 마중을 해주던 엄마

그런 엄마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채 1년이 되지도 않았을 때 아파트 계단에서 쓰러졌다.

중환자실에 산소호흡기를 한 채로 누워 있던 낯선 모습의 엄마
그곳은 일반 병실하곤 다르게 면회조차도 자유롭지 못해 그저 멀리서 엄마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샌가 하교길에 내 방 베란다를 올려다 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익숙해져 버렸다.

엄마는 그렇게 병원에 5년이 넘도록 있다가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그 해 봄에 돌아가셨다.

상을 치르면서는 의외로 무덤덤했다. 아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밤새 조문객들의 문상을 받으면서 날을 새우고, 장지에 엄마를 묻고 다시 집으로 왔다.

아무것도 없는 내 방의 베란다를 쳐다보면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그런데 바람인지 뭔지 모를 차가운 무언가가 나의 뺨을 스치듯 어루만지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엄마가 나에게 "엄마가 없어도 씩씩하게 잘 살아야 돼" 라는 말을 하고 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제서야 상을 치르면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이제 엄마는 이 세상에 없구나... 너무나도 슬프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문득 엄마 생각이 나곤 한다.
늘 집에오는 나를 바라보면서 내 방 베란다에서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던 엄마.

가끔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상상도 해본다.

언젠가 나 죽어서 저승에 가게 되면 "우리 아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 라면서
엄마가 반갑게 마중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김호레이
16/03/23 17:52
수정 아이콘
하아..눈물 날뻔 했어요..ㅠㅠ
16/03/23 18:27
수정 아이콘
아 정말 찡해지네요 ㅜㅜ
Colorful
16/03/23 23:16
수정 아이콘
'이제 엄마는 이 세상에 없구나...'
Carrusel
16/03/25 02:20
수정 아이콘
H2의 히까리 엄마가 오버랩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슈퍼잡초맨
16/03/25 16:03
수정 아이콘
같은 아픔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참 와닿네요.
갑자기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것 까지도요...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지만 한 곳의 공허함은 어느 것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것 같아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4252 [일반] 요즘 꽂힌 맥주 [71] 탈리스만8597 16/03/23 8597 0
64251 [일반] 자유게시판 신규 운영위원을 모십니다 [4] OrBef5315 16/03/19 5315 3
64250 [일반] [프로듀스101] 11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들 (데이터 주의) [14] 모비에7298 16/03/24 7298 1
64248 [일반] [3.23]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박병호 1타점 2루타) [2] 김치찌개4073 16/03/24 4073 0
64247 [일반] 출사 :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28 (5. 문득 바람의 방향이 바뀌니) [24] 글곰3913 16/03/24 3913 48
64246 [일반] [프로듀스101] 4차 경연 직캠 현황 [10] Leeka3368 16/03/24 3368 2
64245 [일반] '소년소녀 라이브러리'를 아십니까? [15] 북텔러리스트5552 16/03/23 5552 5
64238 [일반] [감상]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7] 마나통이밴댕이5043 16/03/23 5043 0
64237 [일반] 청해진-정원 새로운 문건이 나왔다는데요 [12] 능숙한문제해결사7512 16/03/23 7512 0
64236 [일반] 브뤼셀 테러의 배경: 분열된 벨기에와 몰렌베크 그리고 안락함 [20] santacroce6782 16/03/23 6782 15
64235 [일반] 역습의 DC!! 배트맨 대 슈퍼맨은 재미있을까? [46] 빵pro점쟁이7388 16/03/23 7388 2
64234 [일반] 박재범/키디비의 MV와 린/엠버/전효성/라붐/비투비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5] 효연덕후세우실6643 16/03/23 6643 0
64233 [일반] [수필] 엄마의 마중 [5] my immortal2981 16/03/23 2981 20
64232 [일반] 응급실 #1 [15] 지하생활자6104 16/03/23 6104 16
64231 [일반] [책추천] 역사 및 시사 관련 추천도서 목록 공유합니다. [21] aurelius9048 16/03/23 9048 23
64230 [일반] [스포] 무스탕: 랄리의 여름 보고 왔습니다. [47] 王天君7733 16/03/23 7733 5
64229 [일반] [스포] 피닉스 보고 왔습니다. 王天君2601 16/03/23 2601 1
64228 [일반] [스포]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보고 왔습니다. 王天君5392 16/03/23 5392 1
64227 [일반] [스포] 산하고인 보고 왔습니다. [2] 王天君3412 16/03/23 3412 1
64226 [일반] [스포] 45년 후 보고 왔습니다. [3] 王天君5029 16/03/23 5029 1
64225 [일반] 지하철에 나타나시는 여러 유형의 승객들 [27] 삭제됨6577 16/03/23 6577 4
64224 [일반] [진상] 식품회사 진상 타입 3 [19] 블루투스6175 16/03/23 6175 3
64223 [일반] 2016 ESPN 선정 NBA 역대 스몰 포워드 TOP 10 [19] 김치찌개10466 16/03/23 10466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