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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09 18:30:36
Name 王天君
File #1 born_to_be_blue.jpg (39.9 KB), Download : 57
Subject [일반] [스포] 본 투 비 블루 보고 왔습니다.


사인받을려는 여자들. 클럽을 채운 이들의 박수갈채. 그를 따라다니던 것들이다. 챗 베이커는 잘 나갔다. 그렇지만 늘 두려웠다. 뒤에 달려오는 것들보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 무서웠다. 트럼펫으로 재즈에 산다면 반드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거장이 동시대를 살고 있었다. 웨스트코스트의 쿨 재즈 플레이어는 뉴욕의 버드랜드에서 떨어야 했다. 인기도 명예도 반반한 얼굴도 그 자리에 선 그를 증명할 수 없다. 객석을 채운 이들이 초롱초롱하거나 그윽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무대 위의 그는 이를 꽉 물고 연주를 준비한다. 인상을 찌푸리고, 마일즈 데이비스가 벼르고 있다. 보여주리라. 긴장과 자신감이 섞인 연주는 무사히 끝났다. 잘 했을까? 그럭저럭이었을까? 어쨋든 나쁘지 않았다.

그를 힐끔거리던 여자와 호텔 방을 찾는다. 아내는 없다. 깔깔거리던 둘은 푹신하게 떨어진다. 근심을 날려버리자. 여자는 챗을 달랜다. 인사해봐요. 죽음이여,공포여, 안녕? 주삿바늘이 팔뚝을 찌른다. 들어온다. 타고흐른다. 마일즈 데이비즈의 연주가 귀를 때린다. 감긴 두 눈 위로 찌그러진 팔자 눈썹은 챗 베이커가 이길 수 없는 소리를 또 내뿜고 있을 것이다. 몸은 늘어진다. 이제 괜찮다. 긴장할 것 없잖아. 호텔 방문이 열리고 아내가 들어왔다. 소리 지르는 아내를 뒤로 하고 여자는 주사기를 챙겨 떠난다. 챗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여보. 나 좀 안아줘. 엄마의 품이 필요해. 배신이 들킨 와중에도 배신자는 혼자서 용서받고 떼만 쓴다.

흑백화면 속의 그는 영화 촬영중이다. 즉흥 연기가 즉흥 연주만큼은 되지 않는 모양이다. 화면은 컬러로 돌아온다. 화사한 색 속에서 챗은 아내 역을 한 배우와 데이트를 한다. 둘은 친해진다. 아까부터 야한 소리나 지껄이며 내내 끈적대던 남자가 여자에게 들러붙는다.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 노래는 귀로, 입술은 입술로. 아내역을 맡았던 제인은 그를 밀어내지 않는다. 챗 베이커가 얼마나 시시한 인간인지, 이런 인간과 엉키면 얼마나 피곤해질지 이미 계산은 끝났다. 그런데 그의 입술이 자기 입술을 포개도록 내버려둔다. 둘은 볼링장을 나선다. 몇발자국이나 됐을까, 제인의 팔짱을 낀 챗 베이커의 인생이 단박에 꼬인다. 화가 난 마약상들이 챗 베이커를 두들겨팬다. 약쟁이가 약값을 밀린 거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 분풀이가 끝나고 챗 베이커는 얼굴이 아작이 났다.

문제는 하나밖에 없던 앞니도 박살났다는 것이다. 트럼펫 연주자가 앞니 두개를 다 잃어버렸다. 이제 이 남자는 어떡할까. 걱정하는 제인에게 챗 베이커의 음반 제작자였던 딕이 충고를 건넨다. 지금 이 녀석 옆에 있는 건 우리 둘뿐이오. 그리고 난 이제 갈 거고. 거짓말쟁이 약쟁이에게 모두 학을 떼버렸다. 제인도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챗 베이커는 퇴원한다. 앞니가 달린 틀니를 끼고 그는 낑낑대며 트럼펫을 불어본다. 소리가 샌다. 너무나 아프다. 피가 계속 흐른다. 트럼펫을 불 수가 없다. 욕조 안에서 그는 오랜만의 독주회를 포기한다. 집에 돌아온 제인의 눈에 피투성이로 널부러진 챗 베이커가 들어온다. 영화에서도, 과거 전 부인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약쟁이는 또 자기만을 위로한다. 성실한 이는 타이른다. 자빠져있던 이는 떠들어댄다. 언제부터 마약을 하기 시작한거야? 찰리 파커와 연주했던 건 정말 너무나 짜릿했지. 약쟁이는 다른 약쟁이를 추억하며 재즈의 처음을 말한다. 제인은 약속을 받는다. 당신이 약을 끊지 못하면 난 당신 곁에 있을 수 없어. 약쟁이 챗 베이커는 떠벌린다. 오케이 오케이. 약 끊을게. 할 수 있어 베이비.

약기운에 몽롱해있던 과거는 조금씩 초점을 찾으며 현재가 된다. 가난한 연인은 차 안에서 먹고 자며 사랑을 나눈다. 챗 베이커는 트럼펫을 붙잡고 계속 소리를 낸다. 조금만 연주가 길어져도 입이 아리다. 그래도 계속 분다. 악을 부리고 한을 심는다. 약을 끊기 위해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본다. 석양 속에서 챗 베이커는 트럼펫을 분다. 맨정신의 그가 붙잡고 있을 것은 트럼펫 뿐이다. 그렇게나마 약을 끊고 가난한 연인은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챗 베이커는 동네 피자가게에서 연주를 하고 푼돈을 받는다. 연주는 이어지지 못한다. 소리를 낼 때마다 욱신거린다. 피잣가게 그 누구도 연주하는 그를 보지 않는다. 음악은 대화 소리에 묻힌다. 그마저도 군데군데 비어 연주를 휑하게 만든다. 챗 베이커의 초라한 현재로 과거의 상념이 자꾸 떠오른다. 버드클럽에서 자신을 향해 멈춰있는 시선들, 그가 넘고자 했던 위대한 이. 여긴 없다. 아직은 멀다. 시작은 늘 초라하다.

밴드 누군가가 연주실력을 타박한다. 제인은 소개한다. 저 사람은 챗 베이커에요. 시간이 흐르고 피자가게는 점점 손님들이 많아진다. 연주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피자를 내려놓고 무대를 본다. 챗 베이커에게 사인을 받을려는 이들도 많아졌다. 한물 간 스타는 한물 갔지만 스타쯤으로 다시 돌아왔다. 유혹은 늘 도사린다. 살짝 진한 눈빛을 던지는 팬은 그에게 몰래 약을 건넨다. 그러나 제인은 믿는다. 챗도 힘겹게 약을 버린다. 그렇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런 식의 연주는 그의 갱생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챗 베이커는 직업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감옥에 다시 들어가게 생겼다.

챗은 제작자 딕을 찾는다. 난 연주하고 싶어. 한두번도 아니고, 넌 이제 안된다며 딕은 그를 쫓아낸다. 제인이 딕을 설득하고, 챗은 세션 자리 하나를 받는다. 녹음을 지켜보던 딕은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다. 저건 잘 나가던 챗 베이커가 더 이상 아니오. 챗 베이커는 매일같이 연주한다. 트럼펫을 불고 또 분다. 딕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렇게까지 열심인 챗은 내 처음 보는군. 게으른 천재여서 늘 문제였는데. 약쟁이가 약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트럼펫을 분다. 그는 변해간다. 챗은 제인을 사랑한다. 제인은 챗을 믿는다. 제인은 챗을 온힘을 다해 돕는다. 사랑하는 이여 나 당신을 위해. 챗의 그 모든 소리는 들리지 않는 가사를 싣고 인생을 연주한다.

챗은 제인에게 청혼한다. 제인은 부모님을 챗에게 인사시킨다. 챗과 제인의 아버지는 해변을 나란히 거닌다. 제인의 아버지는 챗이 마음에 들지 않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약쟁이가, 이미 두 번이나 결혼을 때려치우고 자기 성실한 딸을 채간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겠는가. 장인어른으로 모시려 하는 이가 기어이 역린을 찌른다. 자네 음악은 마일즈나 다른 음악가들에 비하면 별거 아냐. 챗의 이마에 주름이 굵어진다. 지나간 과오야 어쩔 수 있다. 다른 소리는 괜찮은데, 나한테 음악 이야기는 집어치우시죠. 웨스트코스트의 쿨 재즈리스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내 음악을 감히 이야기하다니. 그는 반댓방향으로 혼자 걷는다. 파도 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간다. 영화 프레임은 격하게 흔들린다. 제인이 뛰어온다. 둘은 눈부신 태양에 감싸여 키스한다. 나 지지 않았어. 난 가고 있어. 난 이 여자를 사랑하고 이 여자는 나를 믿어줘.

챗은 계속 연주한다. 그의 연주를 듣던 다른 제작가가 경탄한다. 이전보다 정확도가 훨씬 떨어져. 그런데 깊어졌군. 그게 묘한 개성을 만들어. 챗은 다른 관련자들을 모시고 연주 시연을 갖기로 제안받는다. 챗 베이커는 더 이상 약쟁이가 아니다. 비틀거리던 시절을 지나 음악은 다시 그를 인도한다. 그런데 제인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녹음현장에서 다른 영화 감독에게 배역을 받으려 먼저 떠났다. 챗은 미친듯이 질투한다. 감정은 다시 핏치에서 바닥을 찍는다. 날뛰는 그에게 제인은 설명한다. 나도 배우로서 일을 해야지. 왜냐하면, 내 뱃속에 당신의 아기가 있으니까. 챗의 얼굴이 정지한다. 사랑하는 제인이, 내 아이를 가졌어. 행복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그는 아버지에게 받았던 트럼펫 고리를 반지 대신 건넨다. 나와 결혼해줘. 둘은 이제 덜 가난하고 더 많이 웃을 수 있다.

시연회 날이 다가온다. 챗은 긴장해서 첫 박자를 놓친다. 누군가 비웃는다. 챗은 두번째 박자를 사인하고 연주를 타고 들어간다. 시간이 느려진다. 트럼펫이 침묵 사이를 지나간다. 둥둥거리는 소리가 청중을 누른다. 트럼펫이 운다. My Funny Valentine -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퍼진다. 녹음실에는 챗 베이커가 짙게 깔린다. 챗은 제인을 바라본다. 가사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놀리고 있다. Stay little Valentine - 힘이 들어가지도, 쩌렁쩌렁 외치지도 않는다. 그의 아버지가 탐탁치않아하던, 계집애같다던 그 목소리가 챗의 인생을 짜낸다. 몇십년을 휘청이며 살아왔던가. 피 섞인 침을 흘리며 정신을 잃곤 했지. 깨어나면 피를 닦고 기어다녔지. Each day is valentine's day. 이 노래에 닿아오기까지 걸렸던 시간. 이 노래에 닿기까지 지켜주던 당신. 트럼펫이 운다. 노래가 끝났다. 제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챗 베이커는 돌아왔다. 앞니를 잃고, 약을 끊고, 연인을 옆에 두고, 챗 베이커가 다시 트럼펫을 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한숨을 내뱉는 인간. 챗 베이커는 아마 음반을 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모두가 격려하고 환호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챗은 디지를 만난다. 비밥의 제왕이자 버드랜드의 또 다른 주인 앞에서 챗은 과거를 만난다. 웨스트코스트를 대표하려 했던 햇병아리는 재즈의 본가에서 침이 마르고 머리칼이 쭈뼛거렸다. 그랬다. 이제 그를 만나야 한다. 챗은 디지에게 간곡히 말한다. 아직 준비가 된 것 같지 않다던 그에게 챗은 준비가 되었다고 호소한다. 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던 이들이 있는 그 곳으로 가야한다고. 다시 만나야 한다고. 할 수 있다고. 디지는 승락한다. 챗은 제인이 와주었으면 하지만 제인은 오디션을 이유로 거절한다.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챗 베이커는 딕과 함께 뉴욕으로 떠난다.

언젯적 챗 베이커인가. 그런 그가 버드랜드에 온다고. 버드랜드 대기실에서 챗은 긴장을 누르지 못한다. 심지어 토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마약을 끊기 위해 복용하던 메타돈을 챙기지 못했다. 이런 상태로 과연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챗은 어쩔 줄 모른다. 딕은 메타돈 하나 없겠냐며 이를 구하러 나간다. 홀로 남은 챗은 거울을 보며 중얼거린다. 이미 공연 시작 시간은 지나있고 사람들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웨스트코스트의 애송이가 너네를 먹어치워주마. 자신만만한 그 말은 거울 속 불안한 얼굴에 반사된다. 딕은 메타돈을 챙겨 돌아온다. 자 이걸 먹고 추스려서 이제 나가면.... 그는 탁자 위의 헤로인을 본다. 챗은 헤로인을 하려 하고 있다. 또. 결국. 챗은 토해낸다. 이거라도 안하면, 난 저 위에서 연주할 수가 없을 것 같애. 이게 필요해. 딕은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너가 선택해. 원래 너는 그랬으니까. 그걸 하고 무대 위를 오르면, 제인은 떠나겠지. 딕은 대기실을 비워준다. 챗은 혼자 남았다.

무대로 향하는 챗의 통로는 어두워진다. 어둠 속으로 들어간 챗은 객석을 바라본다. 마일즈 데이비즈가 저기 있다. 디지도 있다. 챗 베이커의 재즈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날숨을 뱉으며 챗은 노래하기 시작한다.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 상기된 얼굴로 챗이 노래를 부른다. 오지 못할 줄 알았던 제인이 와있다. 그는 제인을 바라본다. I'm full of foolish song and out my song must pour - 같은 이불 위에서 약을 끊기로 하며 나눴던 약속. 뺨을 이렇게 쓰다듬으면 당신이 약을 끊지 못한 걸로 알거야. So please forgive this helpless haze I'm in - 어리석은 이는 참회를 구한다. 챗은 뺨을 쓰다듬는다. 그랬다. 이렇게 어지롭지 않으면, 챗은 무대 위를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제인은 눈물을 닦으며 목에 걸었던 프로포즈의 징표를 빼 딕에게 건넨다. 딕은 사과한다. 미안합니다. 아뇨, 당신이 사과할 일이 아니죠. 어쩔 수 없는 인간. 그렇게 틀니를 채워넣고, 더러운 피를 뱉고,샛노란 햇빛을 받고, 제인이 옆을 지켰건만. 제인은 떠난다. 사랑해본 적 없다던 고백은 허공을 맴돈다. 트럼펫이 울린다. 노래가 끝났다. 마일즈 데이비즈는 눈에 잔뜩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낸다. 제인의 빈자리를 버드랜드의 재즈가 채운다. 음악을 만나야했기에 사랑을 잃어야했다. 챗 베이커는 약한 인간이기에.

푸르스름한 조명이 챗을 채운다. 다음 곡입니다. Born to be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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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몽
16/06/09 18:48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보면서 참 안타까우면서도 멋있으면서도 참
지나가다...
16/06/09 19:09
수정 아이콘
에단 호크가 약 빨고 약 빤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대문과드래곤
16/06/10 11:01
수정 아이콘
결국 약읏 해버린건가요.. 안타깝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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