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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25 03:50:49
Name 즐겁게삽시다
Subject [일반] 더 이상 음악을 듣지 않는 음악 친구에게
카페에서 작업하려고 앉았는데 테스트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부터 실행이 안됩니다.ㅠㅠ
업무는 8:45 하늘 나라로 날아갔고 피지알도 질게까지 다 둘러보고 나니 아직 따듯한 커피와 시간이 아깝네요.
정말 오랜만에 업무와 상관 없는 ‘글’이란 걸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 가을방학

나에게는 정말 간절히 원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소원이 하나 있다. 어쩌면 전 우주가 도와줘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 소원은 어떤 음악을 듣고 너무 너무 좋아서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레코드샵으로 가서 그 앨범을 사는 거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냥 그 경험 자체가 한없이 그립다. 하지만 다시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는 운명적 예감마저 든다. 음악을 듣고 가슴 밑바닥까지 절절히 감동해 본지가 언제일까? 그냥 이젠 그럴 나이가 지나 버린 게 확실해.



(원스의 저 녹음기사 아저씨처럼 소오름 돋아서 이건 왕건이야! 라고 외치며 바닷가로 미친 듯이 달려가도록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무언가에 흠뻑 빠져버릴 수 있는 나이 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딱 10대 때 보고 들은 것들이 그 사람에게는 최고인 거다. 나 때는 스타와 임요환이 있었으니까 스타가 인생 게임이었고. 지금 애들은 롤이 최고겠지. 말랑 말랑한 감수성과 중2병의 신념으로 무언가에 꽂혔을 때 그게 그 사람의 스탠다드가 되고 그 잣대로 앞으로를 살아가며 판단하고 조금씩 무뎌져 간다고 생각한다.



But I’m a creep. I’m a weirdo. - Radiohead

누구에게나 음악 친구가 있다. 하필 같은 반에 그 녀석이 있었기 때문에, 하필 그 녀석이 내 자리 근처에 앉았기 때문에. 작게는 내 음악 취향이, 크게는 내 정서가, 어쩌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마저 정해져 버리는 엄청난 스노우볼이 굴러버렸을 것이다. 뭐 결국엔 끼리끼리 만난 거겠지만.

그때 다른 가수를 좋아했더라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그때 우린 한없이 우울한 노래들을 들었고 그런 취향의 인생을 살아버렸다. 냅스터와 소리바다가 열어준 새로운 음악 우주에서 미친 듯이 귀에 노래를 쏟아 부었고, 매일 무슨 가수가 좋다느니 이 앨범이 진짜 명반이라느니 침 튀기며 별 다섯 개를 남발했다. 그땐 정말 앨범 표지만 보고 사도 음악이 너무 좋았고, 친구가 찾아낸 보물 같은 음반을 나눠 들으며 내 인생의 명반 리스트를 교체하느라 정신 없었다. 같이 신촌 향뮤직에 예쁜 알바 누나를 보러 가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지.



추억이 깊을수록 생기 없는 날들이 너무나 힘들어 – 언니네 이발관

보통 나이가 들수록 음악 듣는 폭이 좁아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왠걸 나는 20대 초반까지가 앞뒤 꽉 막힌 리스너였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 듣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뭐 하러 내 취향 아닌 것 까지 들어야 하나 싶은 노답 오타쿠였다. 그런데 이제는 Rock is dead. 내가 꼰대가 되서가 아니라 진짜로 락이 망한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락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 기근이 찾아 온지 오래라, 누굴 불러다 세워도 돌려막기 한듯 찝찝하기만 하다. 아마 예전에는 밴드를 했을 멋있는 급식 유망주들이 이제는 다 마이크 들고 힙합하러 가나보다. 나만 혼자 들을 음악이 없어서 10년 전 음악을 듣고, 그것도 다 뽑아 들으면 20년전, 30년전, 이제 막 전기기타 발명할 때까지의 음악을 찾아 듣고 지랄 할 때 즈음, 우연히 김창완 옹의 인터뷰를 읽었다.

창완옹이 음악을 하려면 요즘 음악을 들어야 한다며 정말 핫한 신인 가수들을 언급하시는 걸 보면서 꽤 충격을 받았다. 그래 저 아저씨도 저 나이에 저렇게 열심히 요즘 음악을 듣는데 나는 뭐라고 옛날 음악만 물고 빨고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내가 사는 시간의 음악을 들어야지. 그렇게 하나 둘씩 듣기 시작했다. 들을 음악이 없다고 맨날 투덜 투덜대던 내가 그래도 열심히 찾아 듣다 보니 좋은 음악이 다시 보이더라. 알고 보니 그냥 내 취향이 딱딱하게 굳어져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길 거부한 거지 언제나 좋은 음악은 계속 나온다. 그래 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눈물 콧물 질질 짜게 해주는 음악은 앞으로 못 만날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갑자기 웬 롹 히어로가 튀어나와 듣도 보도 못한 음악으로 세상을 다 뒤집어 엎어 줄 거라고 희망을 가졌지만 이젠 그런 것도 없을 것 같다.



열정을 잃은 아이의 나이는 서른셋(?) – 단군

아마 내 음악친구들도 이런 과정을 거치다가 다들 튕겨나가 버렸을 것이다. 우리가 고딩 때 80년대 음악이 짱이라고 말하는 메탈 아재들 보며 구리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그때 우리가 듣던 음악이 나온지도 20년이 넘어버렸다. 80년대 음악은 30년이 지나버린 무시무시한 시대다. 요즘 음악을 듣는다는 건 스포츠팀을 응원하는 것처럼 뭔가 다른 행위가 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더 이상 친구들과 공감하며 음악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가끔 뭘 추천해줘도 서로 듣지 않은지 너무 오래 되어 버린 거 같다. 그래 나도 야근하느라, 출퇴근 시간엔 짬 내서 밀린 오해영 보느라 바쁜데 언제 힘들게 음악 찾아 듣고 있겠냐. 그래도 가끔은 예전 생각이 나고 같이 음악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몹시 그리워진다. 그때마다 내 음악 친구들에게 마음 속에만 품고 절대 하지 않을 말이 있다.


친구야. 다시 음악 좀 들어다오. 

나라도 항상 엔진을 켜둘게

항상 듣던 스미스를 들으며 저 멀리로

락페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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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나스
16/06/25 04:11
수정 아이콘
술술 읽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대장햄토리
16/06/25 04:17
수정 아이콘
청춘부재는 1.25배속이 제맛이죠..흐흐
즐겁게삽시다
16/06/25 04:20
수정 아이콘
1.25배속이 진리인걸로.. 크크
키이나
16/06/25 08:06
수정 아이콘
청춘부재는 1.25배속이 제맛이죠..(2) 근데 최근 래퍼로서의 자신감에 금이가신 단군님 ㅠㅠ
구밀복검
16/06/25 06:01
수정 아이콘
80년대 음악을 2010년대에도 하시는 분들도 있죠.
http://redtea.kr/?b=3&n=903
즐겁게삽시다
16/06/25 13:27
수정 아이콘
오오 역시 메탈만의 간지가 있죠!
요즘 락페는 이런 형님들이 없어서 진짜 밍숭맹숭 합니다.

예전에 탑밴드를 보는데 정원영이
고등학교 스쿨 밴드 애들을 앞에 앉혀놓고
롹은 70년대를 들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아 저마다 꿈꾸는 르네상스가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 주제 같다고나 할까요?
뭐 그냥 90년대 모던락빠 입장에서 80년를 말했을 뿐 그 음악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콜한방
16/06/25 08:56
수정 아이콘
미술 사조에 생명이 있고 클래식 사조에도 생명이 있듯이 20세기 팝음악을 지배했던 락 장르는 확실히 수명을 다했다고 봐요.
팝 입문을 밴드 음악으로 했던 저 역시 '완벽한 끝물' 시기에 제가 있는 게 아쉽긴 합니다.
락 이외의 장르가 패권을 차지하고 그 속에서 여전히 훌륭한 음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말이죠.
즐겁게삽시다
16/06/25 13:29
수정 아이콘
네 맞아요. 저도 백년 이백년이 지나면 롹이라는 장르에 비틀즈 하나 정도 기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콜한방
16/06/25 15:49
수정 아이콘
맞아요. 거기에 지미 헨드릭스 정도 추가되는 수준일 것 같아요. 물론 넓게 대중음악으로 다룬다면 엘비스나 마잭이 들어가겠고요.
루체시
16/06/25 08:58
수정 아이콘
음악취향이 정서를 결정하는 스노우볼이란 말에 공감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끼치죠 흐흐흐
즐겁게삽시다
16/06/25 13:43
수정 아이콘
나중에 자식 낳으면 음악 조기교육을 잘 해볼 생각입니다.
열역학제2법칙
16/06/25 12:42
수정 아이콘
향뮤직이 없어졌다능 ㅠㅠ
WeakandPowerless
16/06/25 13:06
수정 아이콘
온라인은 있다능... ㅠㅠㅠㅜㅠㅠ
즐겁게삽시다
16/06/25 13:19
수정 아이콘
이제 신촌 갈일이 없어졌다능 ㅠㅠ
WeakandPowerless
16/06/25 13:07
수정 아이콘
구구절절 왤케 공감이 갑니까 이글....... ㅠㅠㅠ
즐겁게삽시다
16/06/25 13:34
수정 아이콘
음악 친구에게 잘 해줍시다!
WeakandPowerless
16/06/25 13:58
수정 아이콘
전 사실 음악 친구들과 성향이 일치가 잘 안 된 편입니다. 스미스를 듣는 사람과 메탈리카를 듣는 성향이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제 때만 해도 '롹음악' 드는 친구 자체가 극소수다보니 다 뭉뚱그려 음악 친구였기 때문이죠. 해서 좀 다른 관점의 글을 쓸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포기하렵니다 흐흐
16/06/25 13:31
수정 아이콘
가끔 미치도록 - 크립 - 언니네이발관 - 델리스파이스 최향저격 제대로 당하고 갑니다.
즐겁게삽시다
16/06/25 13:36
수정 아이콘
사싱 이분들 땜에 요즘 음악이 귀에 안들어와요.
언니네는 왜 앨범 안내는 건지. 이렇게 작업만 하다 이석원 쓰러질 까봐 걱정됩니다.
candymove
16/06/25 14:35
수정 아이콘
다들 비슷한 생각들을 하시는군요.. 저만 그런줄 알았더니..
16/06/25 15:04
수정 아이콘
고등학교땐 국내 대중음악에 관심도 없던 제가 이제는 멍하니 치얼업 직캠을 보고 있습니다. 어느새 멤버 이름도 다 외웠....

바야흐로 대 아이돌시대 아니겠습니까
즐겁게삽시다
16/06/25 16:24
수정 아이콘
저도 미나가 너무 좋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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