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11/06 21:57:09
Name Blazing Souls
Subject [일반] [굉장히 잡설] 당신과 제가 느끼는 병. 월요.

주말의 반짝거리는 해가 저물어 갑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머릿속은 두가지 생각들로 반/반 쪼개집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오늘에 대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
그리고 다가올 내일에 대한 알 수 없는 비방.

저는 어느새 입사 5년차가 된 대리입니다.

뒤돌아 보면 회사생활, 꽤나 달려온 것 같고 이제 이러한 인생 사 익숙할만도 한데
여전히 저는 월요 라는 병을 앓고 있네요. 참, 지겹고 신기합니다.

불과 몇년전 (5년전이겠네요......)
대학생 시절엔 아침 저녁으로 뜨겁게 출/퇴근하고
먼지 모를 열정에 젖어 있어 보였던 수많은 회사원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고 또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던 저의 눈엔 그들에 비해 제 삶이
무료한 제자리 걸음의 반복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먼저 취업한 친구 녀석들의 한턱자리에서
축하 보다는 조금 더 큰 조급함과 배아픔을 느끼며
지금 당장 나를 데려가 돈을 줄 그 누군가를 위해 내 인생을 불태우리라!
새벽밤 술에 취해 침대에 누어 괜시리 주먹 쥐고 불끈하기도 했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긴 호흡을 가진 고민따윈 안중에도 없이
남보다 지금 당장 한발 더 앞서고 싶다는 그런 조급함에 제 눈을 가리고
무엇을 하는가 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나를 부러워할만한 곳인가를 먼저 생각하며
고민없는,, 급하기만 했던,, 그 취업 레이스를 참 열심히도 달렸습니다.

결국, 운이 좋게 그 치열하고 치졸했던 혼자만의 달리기에서
작은 미소정도 지을 수 있을 기업에 들어가
후딱 5년을 보내고 이렇게 소소한 병을 하나 얻게 되었네요.

요즘들어 학부 시절 교수님이 해주셨던 이야기가 많이 생각이 납니다.

대기업에 들어간다는 것은 거대한 기계를 돌리는 작은 부품이 되는 것이다.
많은 혜택이 따르겠지만 그것들 때문에 더욱 자신이 더 견고한 부품이 되어가고 있다는
그 무서운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취업에 성공해 기업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누군지 어떤 고민을 하고 나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잊지 말고 끝없이 고민해야 된다.

머 이런 요지의 내용이었습니다.

배부른 소리 하십니다 교수님.
그때 저의 머릿속에 있던 멍청한 독백입니다.




그리고 전 지금 그 작은 부품 하나가 된 것 같네요.




대학생땐 회사원이 되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살겠지 싶었습니다.
나의 업무에 대한 비전과 계획 그리고 수많은 지식들에 대한 습득?

하지만 그것들 따위를 하기 보단 (써놓고 보니.. 정말 안하네요)

난 오늘 야근을 안할 수 있는가
이번 주말은 안전한 것이가
내 상사는 왜 저모양인 것인가
전세금 대출 갚아야되는데.. 회사가 보너스 터질 준비는 되어있는가
더 편한 부서는 어디이며 그곳에 나는 어떻게 갈 수 있는가

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을 차지한채 살아가고 있는 듯 하네요.
참 부품스러운 생각 같습니다.


얼마전 저는 5년동안 몸담았던 부서가 말그대로 공중 분해되고
전혀 다른 업무를 하는 부서로 전배를 오게 되었습니다.


꽤 유능하다고 평가 받았던 제 업무적 지식은 아무짝이 쓸모 없게 되었고
지금은 신입사원에게 교육 받는 늙은 신입사원같은 존재가 되었죠.


그렇게, 5년 가까운 회사의 경험이 일순간 Reset이 되고
아..내가 작은 부품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어제와는 너무 달랐던 회사로 출근하던 그날부터
잊은 줄 알았던 제 월요병은 매주 저를 반갑게도 잊지 않고 찾아와 줍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났는지 시간이 참 빠르긴 하네요.

열심히 잘 살고 있다 착각했던 순간이 적지 않았음에도
나 잘 살고 있는건가, 그리고 잘 살아왔었던 걸까 라는 물음이
끝없이 맴돌더니 이제는 머릿 속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 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에 대한 고민 없이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로 흘려보냈던
그 아까웠던 날들에 대한 반성을 열심히 그리고 자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될 지 모르겠지만 회사 안에서의 작은 부품만이 되지는 않기위해
회사 밖 세상을 보며 내 미래에 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참 힘들었지만 최근 겪은 회사의 구릿한 경험이
오히려 제 인생에는 득이 된 것 같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려 하다보니
억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여튼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월요병의 농도가 조금은 옅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적지 않게 저와 비슷한 병을 가지고 계실 분들에게는 여러분과 비슷한 처지와 생각을 가진
30대 중반의 기혼남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

그리고 아직 취업을 준비하고 계실 분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 볼만함직한 사람의
굉장히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

늦은밤 끄적여 봤습니다.

오랜만에 PGR에 글을 남겨보네요.
예전에 선수 응원글 남기던게 벌써 8년도 된것 같은데...


그럼 안녕히 주무시고 모두 힘내세요.



저도 힘내서 자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6/11/06 22:07
수정 아이콘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회사밖에서의 시간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거같습니다.

밤에 추워진다니 다들 따뜻하게 잘주무시고 일주일 힘차게 보내셨으면 합니다~
김철(32세,무직)
16/11/06 22:11
수정 아이콘
한번 갔다와보니 다시 들어가기가 더 겁나는 것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일단 받아주는 데가 없다는 거고요.
아린사랑
16/11/06 22:48
수정 아이콘
대학생입니다 많이 생각 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누비이불
16/11/06 23:38
수정 아이콘
회사에 들어온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다니는 내내 본문과 같은 생각을 해왔고 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눈을 뜨는 것이 괴로워 핸드폰을 보다가 동질감이 느껴지는 글을 읽게 되었네요.
잠시나마 괴로움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16/11/07 01:15
수정 아이콘
내일 여섯시 오십분에 기상해야되는데 저도 이러고있네요.
아 내일이 출근6일차입니다....
라니안
16/11/07 02:04
수정 아이콘
일단 힘냅시다!

과연 무슨 일을 하면 월요병을 없앨 수 있을까요...
거의 5년간을 월급만 받고 살다가 이제 독립하였는데...
독립하면 월요병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걸 보니 인생이라는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신 금요일이 있으니 퉁치는 걸로 하자구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8455 [일반] 이미 박근혜 최씨일가 관계를 다 알고 있었던 그분 [65] ZeroOne17663 16/11/07 17663 4
68454 [일반]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발표되었습니다. [83] 어리버리16549 16/11/07 16549 2
68453 [일반] 김무성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의 탈당을 요구했습니다. [89] 서울우유16324 16/11/07 16324 0
68452 [일반] 월요일 아침인데도 정치계는 핫하긴 합니다. [5] 인사이더6787 16/11/07 6787 0
68451 [일반] 세월호 7시간과 굿판 썰 [78] aurelius19736 16/11/07 19736 3
68450 [일반] 미국 대선은 힐러리 클린턴이 여론조사보다 선방할 듯 합니다 [25] 밴가드7636 16/11/07 7636 4
68449 [일반]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자 박승주 "47번 전생체험...전봉준 장군도 만나" [42] 마음을잃다7729 16/11/07 7729 0
68448 [일반] 프로야구 NC, 승부조작 은폐 확인…유창식·이성민 입건 [94] 킹보검9646 16/11/07 9646 3
68447 [일반] 웃으며 검찰 조사받는 우병우.jpg [71] 삭제됨16425 16/11/07 16425 18
68446 [일반] 박근혜와 문재인은 닮은꼴이다? [100] ZeroOne10494 16/11/07 10494 0
68445 [일반] <삼국지> 관우가 양번전쟁을 일으킨 것은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2] 靑龍5401 16/11/07 5401 6
68444 [일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는 누구의 빅픽처이고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153] ArcanumToss12713 16/11/07 12713 7
68443 [일반] 오늘 JTBC 스포트라이트, 멘탈이 나갈 것 같네요... [69] John18669 16/11/06 18669 42
68442 [일반] 전 세계에서 국가 경쟁력이 가장 높은 국가 Top10 [8] 김치찌개4700 16/11/06 4700 1
68441 [일반] 모든 이권을 거부한 김동성 [93] ZeroOne20931 16/11/06 20931 19
68440 [일반] [굉장히 잡설] 당신과 제가 느끼는 병. 월요. [6] Blazing Souls3042 16/11/06 3042 8
68439 [일반] 최순실 게이트의 결정적 증거가 나왔습니다. (내용추가) [48] 토니토니쵸파14089 16/11/06 14089 14
68438 [일반] 나의 LCHF 이야기 [42] 쉬군10168 16/11/06 10168 2
68436 [일반] 우병우 전 민정수석 정말 무섭네요... [133] Neanderthal23524 16/11/06 23524 8
68435 [일반] 박근혜가 어제 집회상황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58] 삭제됨16957 16/11/06 16957 10
68431 [일반] 뒤늦은 <닥터 스트레인지> 후기 (스포?) [34] aDayInTheLife6891 16/11/06 6891 5
68430 [일반] 여론 참여 심사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28] OrBef4513 16/11/06 4513 3
68429 [일반] [짤평] <로스트 인 더스트> - 카우보이는 죽었어. 하지만... [29] 마스터충달4652 16/11/06 4652 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