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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9/29 22:13:33
Name imemyminmdsad
File #1 청나라.jpg (47.7 KB), Download : 61
Subject [일반] 청나라 황제가 병자호란 이전 조선에 보낸 편지 (수정됨)


http://m.egloos.zum.com/lyuen/v/4906736





우리나라 군사가 지난해 동쪽 우량하를 칠 때,

너희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요격을 한 뒤에 또 명나라와협조하여 우리나라를 해쳤다.

그러나 이웃나라끼리 사이좋게 지내기를 생각하여 끝내 개의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요동을 얻게 되자 너희는 다시 우리 백성을 불러다가

명나라에 바쳤으므로, 짐이 노하여 정묘년에 군사를 일으켜

너희를 정벌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어찌 강함을 믿고 약한 자를 능멸하여
군사를 일으킨 것이라 할 것이냐?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 후로 거듭 너희 변방 신하들을 타이르기를,

‘정묘년에는 부득이 잠시 기미를 허락한것이다.

이제 정의로 결단을 낼 때이니 경들은 각기
여러 고을을 타일러 충성스러운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책략을 본받게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원해서 종군하게 하라.’ 등등의 말을 하느냐?







이제 짐이 친히 너희를 치러 대군을 거느리고 왔다.

너는 어찌하여 지혜로운자가 책략을 본받고 용감한자가

종군하게 하지 않고서 몸소 일전을 담당하려 하느냐?

짐이 강대함을 믿고 추호도 서로 범하지 않았는데,

너희는 약소국으로 도리어 우리의 변경을 소란하게 하며,
산삼을 캐는 자,사냥을 하는 자를 어찌하여 짐의 도망한 백성이라 하여 데려다가

명나라에 바치느냐?



또 명나라의 공․경 두 장수가 투항하여 짐의 군사가 가서
그를 응접하려 하는데, 너희 군사가 대포를 쏘아 방해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이것은 함부로 전쟁을 일으킬 실마리를 또다시 너희가 연 것이다.




짐의 아우와 조카 등 여러 왕이 너희에게 글을 보냈는데
어찌하여 종래에 서로 글을 통한 예가 없다고 하였느냐?
정묘년(1627)에 너희를 정벌하러 오자, 너희는 섬 가운데로 달아나
오직 사신을 보내 강화를 빌었는데, 그때 글이 오고간 상대는 여러 왕이 아니고

누구였는가? 짐의 아우나 조카가 어찌 너만 못하냐? 또 외번의 제왕이 글을 보냈으나 너는 끝내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그들은 곧 원나라 황제의 후손인데 어찌 너만 못하냐?







원나라 때에는 너희 조선이 끊이지 않고 조공을 바쳤는데,

이제 와서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이처럼 도도해졌느냐?

보낸 글을 받지 않는 것은 너의 어리석고 교만함이 이에 이르러 극에 달한 것이다

너희 조선이 요,금,원세 나라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고 대대로 신하를 일컬었지,

옛날부터 언제 남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편안히 지냄을 얻은 일이 있느냐?




짐이 이미 너희 나라를 아우로 대접했는데 너는 더욱 더 배역하여

스스로 원수를 만들어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고,

도성을 포기하고 대궐을 버려 처자와 떨어져서 서로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겨우 한 몸이 산성으로 달아나 비록 천년을 산들 무슨 얻을게 있겠느냐?

정묘년의 치욕을 씻는다고 눈앞의 평화를 깨뜨리고 화를 스스로 불러서 후세에 웃음거리를 남기려 하니,

이 치욕은 또 장차 어떻게 씻으려 하느냐?




이미 정묘년의 치욕을 씻으려 생각했으면,

어찌하여 목을 움츠려 나오지 않고 여인의 처소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달게 여기느냐?






네가 비록 이 성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서도 생각은 욕되게 살기를 바라지만,

짐이 어찌 너를 놓아줄까 보냐?

짐의 여러 내외 왕과 신하들이 짐이 황제로 선포하길 권고하였음을

네가 듣고는, ‘이런 말을 우리나라의 군신이

어찌 차마 들을 수 있느냐’ 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황제를 일컫는 것이 옳고 그름은 너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도우시면 필부라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화를 주시면 천자라도 외로운 필부가 될 것이다.

헌데 산골구석 궁색한 기와 밑에 앉아있는 너 따위가 뭔데 감히 천하의 천자를 점지하느냐?
뿐만 아니라 맹약을 배반하고 성을 쌓았으며,

사신 대접하는 예가 갑자기 못해졌고,

또 사신을 보내서 너희 재상을 만나보게 했더니 계교를 꾸며

쳐서 사로잡으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명나라를 아비로 섬기고 우리를 해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이러한 것들은 특히 큰 죄 몇 가지를 든 것이고,

그 나머지 소소한 혐의는 이루 다 들어 말하기가 어렵다.







이제 짐이 대군을 이끌고 너희 8도를 소탕할 것인데,

너희가 어버이로 섬기는 명나라가

어떻게 너희를 구원하는가 내 두고 보겠다

자식이 위험에 처했는데 어찌 구원해 주지 않는 어버이가 있으랴

그렇지 않으면 이는 스스로 백성을 물불속에 빠트리는 짓이니

수많은 중생이 어찌 너에게 원한을품지 않겠느냐?

할 말이 있거든 분명히 고하라, 막지 않을 것이다



정말 굴욕의 역사네요ㅠㅠ 남한산성 보는데 이 편지가 생각 나더군요...

이후로는 모두가 알듯이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되죠 왕이 적국의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

그런데 적국의 왕이 쓴글이지만 참 잘쓰긴 했네요 제가 인조였으면 엄청 열받았을듯...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 북방민족등에 의해 항상 침량당하고 살아온 우리 조상들이 안타깝기도 하고...되풀이 되지 말아야할 역사일텐데 말이죠

현대 한국의 지도층들은 현명하게 나라를 이끌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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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무도도
18/09/29 22:1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우리나라가 정말 다행인것은 조선시대의 기록유산이 꽤나 잘 보존 되어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반복되지않는 역사를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테네브리움
18/09/29 22:23
수정 아이콘
만력제 못 잃어 성리학 못 잃어 나는 명나라 못 잃어
미어캣
18/09/30 00:25
수정 아이콘
당연하죠. 당시에도 청은 명이랑 비교도 안되게 약한 국가였으니
18/09/29 22:30
수정 아이콘
근데 보통 이런 글은 왕이 직접 쓰진 않고 수하의 글 잘쓰는 신하들이 쓰긴 하고, 조선이 대마도 정벌할 때 쓴 글에 비하면 오히려 조선 쪽이 이런 글은 훨씬 잘쓰기도 했습니다. 문장 좋은 사람들이 워낙에 많아서..
18/09/29 22:38
수정 아이콘
구구절절 맞는말이라 할말이 없네요.. 당시 조선은 미친국가였습니다. 청이 너무한게 아니었어요.. 청은 안그래도 후방불안해서 친하게 지내자고 그렇게 외쳤건만...
18/09/29 22:5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시진핑은 한국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데 한국인들이 왜 중국을 싫어하냐고 묻던 중국인 유학생이 떠오르네요(....)
'친하게 지내자'가 '너, 이제부터 나의 신하가 되고 꼬박꼬박 상납해라' 가 되면 별 수 없는거죠.
최초의인간
18/09/29 23:03
수정 아이콘
어.. 명나라가 넘모 건재해서?
18/09/29 22:56
수정 아이콘
단순히 친하게 지내자는 거였으면 조선 입장에선 걱정도 없었죠. 그냥 청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니 들어줄 수 없었던 것 뿐입니다.
미어캣
18/09/30 00:02
수정 아이콘
명이 건재한데다, 청도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한게 문제죠

거기다 조선이 못 막을 전력도 아니었습니다.
김자점의 북방군만 제대로 싸웠으면 속전속결로 무작정 왕만 잡는다는 청의 공세도 막았겠죠

2차 거란침공때 어떻게 막았는지 보면 답이 보이죠
치토스
18/09/30 19:50
수정 아이콘
단순하게 팩폭으로 말하자면 인조가 정말 등신 입니다.
멍청해서 외교도 못해 그렇다고 밑에 사람을 잘 가려서 쓰는것도 아니고
개망이
18/09/29 22:40
수정 아이콘
구구절절 틀린 말이 없네요.. ㅜㅜ
라디오스타
18/09/29 22:44
수정 아이콘
적국의 왕도 아니고 장수였으니까 정말 그 굴욕은..
18/09/29 22:44
수정 아이콘
(수정됨) 반박할 한마디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게 진짜 아찔하네요...
조선 왕실과 권력 세력들이 오죽 민심과 명분을 잃었으면 외교를 작살내면서까지 망해가는 명나라의 은혜 운운하면서 정권 유지에만 급급했을까요.

지금 시점과 겹쳐서 생각해보면 외교가 얼마나 어렵고도 중차대한 국가 대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8/09/29 22:53
수정 아이콘
(수정됨) 명나라 은혜 운운이라기 보단 저 당시에는 명나라와 어느 수준까지 잘라야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웠죠. 아무리 후금이 떠오른다 해도 명나라가 망한 것도 아니었고 이 시점부터는 후금 역시 조선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합니다

우리야 역사를 다 아니까 한심해 보이는 거지, 당시 조선은 명에 진 빚이 너무 컸고 명이 이렇게 급속도로 망할 지 알 수도 없었죠. 단순히 정권 유지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건 아닙니다. 게다가 정권 유지란 개념도 현대와 너무 다른 게 지금이야 그냥 당권이 넘어갈 뿐이지만 당시에 정권의 포기는 곧 후금의 지배하에 들어간다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넘겨줄 정당 세력이란 게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18/09/29 23:35
수정 아이콘
저 역시 현대 민주정의 정권 교체를 생각한건 아니었는데, 그건 일단 차치하고라도 말씀하신 앞부분은 분명 일리가 있어 보이고 생각해볼 거리가 많아 보이네요. 궁금해서 그런데 혹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사이에 조선이 명과 청의 국력과 양국간 전황에 대해 어느 수준의 첩보를 수집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사료가 있나요? 그리고 그 기간 중 명과 청(혹은 후금) 간의 전황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었나요? 대략적인 흐름은 아는데 구체적인 전황은 잘 몰라서...
18/09/29 23:46
수정 아이콘
야전에서 청이 우세였긴하지만
청이 명을 이긴 것 자체가 기적적이에요
이자성, 오삼계 아니었으면 명이 졌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MC_윤선생
18/09/30 11:12
수정 아이콘
역니 이자성 .. 골드문의 사나이..
미어캣
18/09/30 00:06
수정 아이콘
청은 굶어죽기 직전, 명의 산해관 우주방어는 뚫을수없는 상황

기본적인 체급차는 더 압도적.

명 대신 청을 택하는게 바보일정도입니다
18/09/30 18:24
수정 아이콘
두번째 문장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좀 있는 게,
조선 왕실(+집권관료층)이 재조지은(=명나라의 은혜) 운운한 것은 "민심과 명분을 잃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왕실의 왕권강화용 패시브 스킬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왕권강화의 명분으로 재조지은을 활용하는 건 단순히 인조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광해군/숙종/영조/정조도 그러했다는 주장입니다.
(한명기, 「재조지은과 조선후기 정치사」, 『대동문화연구』59권,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7.)
마스터충달
18/09/29 22:44
수정 아이콘
인조 : 이것이 무엇이냐?
신하 : 팩폭이라 하옵니다.
킹찍탈
18/09/29 22:47
수정 아이콘
만력제 : 야레야레...
18/09/29 22:52
수정 아이콘
하지만 인조 맘도 이해가는 것이 자기 정통성을 지키고 반정공신에게 지지받으려면 친명반청 하는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중간에서 줄타기 하려다간 바로 광해군 꼴 날것 같아서요. 역사를 보면 대부분 지도층은 명분에 목숨 걸다가 상황 판단해서 나가리 되는것이 우리나라뿐인건 아니니까요. 그냥 인간 본성이라 봅니다.
드아아
18/09/29 22:52
수정 아이콘
팩트로 후려패는것도 잘했군요
다크템플러
18/09/29 22:52
수정 아이콘
만문노당 보면 광해군도 영 좋은 취급은 못받더라구요. 조선입장에서 중립이래봤자 청 입장에선 여전히 걸리적거리던.
그래서인지 호란의 경우 외교문제보단 당시 동사이아의 극악한 식량난때문이라는 설이 설득력이 있어보이더라구요
몽키.D.루피
18/09/29 22:54
수정 아이콘
멀리 갈 것도 없이 문재인 아니었으면 한반도에도 구도는 달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뻔 했습니다.
이부키
18/09/29 22:58
수정 아이콘
현대에도 다른나라 사정을 전부 알지는 못하는데 저때야 오죽 했으려구요.
당시 조선이 잘하지 못한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크게 못한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noname238
18/09/29 23:02
수정 아이콘
정묘호란 후 조약을 요약하면 명-청간 전쟁에서 조선은 빠진다는 거고, 이후 청이 '줄타기 그만하고 밑으로 들어와라'는 요구를 하면서 외교가 완전히 파탄 났습니다.
저 편지 보내는 순간에도 청은 다 쓰러져가는 명 상대로 산해관도 못 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명이 이자성에게 멸망당할 때도 못 넘고 있었구요.

인조가 무수히 많은 뻘짓을 한 건 맞는데, 저 편지는 그냥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나'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펠릭스-30세 무직
18/09/29 23:05
수정 아이콘
근데 솔직히 결과론이죠.

오삼계만 없었으면 지금의 청나라도 없었을테니.


마치 지금 대한민국이 미국에 사대하고 중국에게 붙지 않아서 400년 뒤 후손에게 욕먹는 상황이랄까.
이슈타르
18/09/29 23:15
수정 아이콘
실리에 입각을 한 세련된 외교를 해야 하는데 당시 인조정부는 편협하고 이념적 외교에 골몰하여 청황제의 분노를 샀고 그결과가 청의 대대적 침공이죠..그런다고 조선이 군비에 열심으로하지도 않고 내부 단속 내부 검열에다 열심이고 병사들 훈련도 안시키고 답답 자체 엿습니다.. 인조정부가 그같은 내정측면에서 잘못에다 외교실패가 겹치는등 다양한 오판으로 인해 지금 우리 세대가 통탄해마지않은 전쟁이 터지고 했는데 ..도대체 그노무 인조반정이 다뭠니까!!!!,,,,,,,,,,,,,,,백성 입장에서나 양반 사족 입장에서도 사실은 광해군 통치 연속이 월등 나앗을것이죠
전쟁이 터지지 않거나 아니면 청군이 조선침공후 대파 당하든가 그랫을 가능성이 농후하지요
18/09/29 23:19
수정 아이콘
광해군과 인조 때는 외교 상황 자체가 달랐고 군비 증강이나 방어 역시 인조 때가 훨씬 더 충실했습니다. 광해군 때는 상당수의 군비를 돌려서 전부 다 궁궐 공사하는데 썼는데요. 환상이 너무 크십니다.
이슈타르
18/09/29 23:32
수정 아이콘
광해군시절에 대금전쟁에다 잘 정비하고 준비하고 햇죠,,인조대는 사실 훈련조차 안시키고한 시절 입니다 ..인조가 그나마 해놓은게 남한산성축조인데 그것도 군량을 성내 안쌓아서리 산성에 들어간후 40여일만에 군량이 바닥이 나고 그래서 청의 홍타이지에 조선의 조정이 항복을 할수밖에 없었드랬죠
인조대의 전쟁준비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안북성 전투에서 패몰한 남이흥 장군 일화에서 나옴니다..쌍령전투및 그외 소소산 청군과 조선군과전투에서 대패하고한 주된 이유가 훈련부족이란 말이죠
광해군은 거대 궁궐공사로 인해 욕을 먹는데 사실은 군비확충에 부지런한점은 잘 인정 안하드라 말이죠 ..궁궐 공사에 백성들 고혈을 짜며 벌이고한거다!!!도 다 광해군 비판론에서의 과장입니다..일반 백성들은 그렇게 큰 부담은 지지않았거든요
내일은해가뜬다
18/09/29 23:43
수정 아이콘
궁궐공사가 백성에게 큰 부담이 아니라니... 당장 대원군이 정권 빼앗긴 원인도 경복궁 중건하다 그 비용 원납전 등으로 해서 경제 개판 만들었던게 큽니다. 일반 백성이 큰 부담이 아니라는 근거가 뭔가요?
이슈타르
18/09/29 23:53
수정 아이콘
일반백성에다 무신 세금으로 수탈하고 한거란 말인가요 보통의 백성에서 걷고 한건 얼마 안된다 말이죠..광해군시절에는 건영사업은 다른 계층에서 주로 걷고 한검니다
일반백성에 부과한 세금 내역이 무언지 알고나 있습니까??
대원군 시절 경복궁 중건이야기는 이 문제하고 관련이 없어요,,수백년후일인데 대원군 시대 야기가 왜 나옴니까??
내일은해가뜬다
18/09/30 00: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다른 계층에 걷었다는 근거는요?

1.

광해 114권, 9년(1617년 정사 / 명 만력(萬曆) 45년) 4월 18일(임자) 4번째 기사
호조가 궁궐의 건축으로 인한 재정의 부족에 대해 아뢰다
호조가 아뢰기를,
“조정에 이미 궁궐을 짓는 큰 역사가 있으니 백성들이 포목을 내는 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묵은 곡식이 다 떨어져서 백성들은 곤궁하고 재물은 고갈되어 조석조차도 급급합니다. 그러니 만약 달리 조치할 만한 형세가 있다면 전결에 따라 포목을 거두는 것을 정지하여 성상의 뜻을 받들어 따르는 것보다 나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서는 세입(稅入)이 1년의 쓰임새를 다 대지 못하여서 10월등(十月等)의 반록(頒菉)과 다음해 정월등(正月等)의 반록은 매년 계속해서 대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에 부득이 계청해서 경기와 공홍도의 전세(田稅)를 미리 끌어다가 썼습니다.

2.

광해군일기[중초본] 139권, 광해 11년 4월 27일 경진 2번째기사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신들이 비록 보잘것은 없으나 명을 받고 감독을 하는데 어찌 속히 완료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두 궁궐의 역사가 엄청나고 〈미곡과 포백의〉 용도가 끝이 없어서 이미 민결(民結)에서 징수하였고 다시 품포(品布)를 징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공사를 도운다는 명목으로 팔방에 두루 미쳐서 위로는 감사·병사·수사로부터 아래로는 수령·첨사·만호·찰방·권관(權管)에 이르기까지 모두 재차 받아들였는데, 이것도 모두가 백성의 힘에서 나온 것입니다. 수년 전만 해도 흉년에까지 이르지 않아 백성에게 남은 힘이 있었으므로 겨우 지탱해 왔는데 오늘에 이르러 〈불행히도〉 군병을 일으키고 가물의 재앙까지 심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들의 〈구구한〉 뜻은 우선 한 궁궐의 역사를 멈추고 오로지 힘을 합하는 데 뜻을 기울여야만 비용도 줄이고 공사도 쉽게 마칠 수 있다고 여겨지기에 누누이 말씀드린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말한 뜻은 그러하나 다만 두 궁궐의 역사를 도제조 이하가 용도를 절약하도록 엄중히 단속하지 않아 〈오늘날〉 재정이 바닥이 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하루에 완성할 수 있는 역사를 10년이나 지연시키고 있으니 돌을 나르고 목재를 다듬는 〈일도〉 모두 이와 같다면 비록 인경궁(仁慶宮)의 역사를 멈춘다고 해도 경덕궁(慶德宮)의 공사를 끝마칠 리가 만무하다. 그러므로 반드시 본도감의 도제조 이하가 마음을 다하여 감독하되, 성묘(成廟)015) 때 창경궁(昌慶宮)을 수선하던 것과 선조(先朝)016) 때 묘궐(廟闕)017) 을 중건하던 때처럼 해야만 한 궁궐이라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궁궐공사 짓는데 당연히 노동력도 들어가는거는 물론이고, 이게 한 두번 한것도 아닙니다. 광해 3년 부터 집권 후반기 까지 궁궐공사로 재정이 부담되고 있다는 대목이 실록에 계속 나오고, 심지어 후금에서도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궁궐공사가 백성에 부담이 안되었다]라고 주장하시는 거면, 그걸 뒷받침할 근거를 가져오세요.
이슈타르
18/09/30 00:16
수정 아이콘
공식상 전세에다 조금 더 부과해서 세금 걷고한것 뿐이란 말이죠,,당시 대부분이 농민이고 백성 대부분에다 부과한다면 전세인게죠..전세 자체가 조선조는 아주 적게 거두고한 체젬니다
이러한 류 논쟁에서 일반 백성들 수탈하는식으로 얼마나 걷고한것이냐 반문하면 그 증거를 못 내놓습니다..기록상에서는 지방수령이 자진해서 알곡이나 포목을 호조에 바치고한 기록이 많슴니다(즉 강제 일률적 부과가 아니란 거임) 일종의 점수 따기 충성질 였고..글고 궁궐공사 자금으로 대량으로 납속책으로 벼슬을 주고서 물자를 모음니다..돈 가진 부류에서 자금을 충당 햇단 거지요
내일은해가뜬다
18/09/30 00:18
수정 아이콘
궁궐공사는 백성에게 부담이 안된거였다라고 주장하신거는 결국 [근거를 못 내놓겠다]는 거네요. 잘 알겠습니다.

추가로 백성들이 부담하는 세금은 전세만 있는게 아닙니다. 이 부분 알고 가시면 위에 댓글단 보람이 약간이나마 있겠네요.
이슈타르
18/09/30 00:27
수정 아이콘
광해군이 어뜨케 세금 걷고 자금 마련하고 하는 기록이나 잘 읽고 사정 파악부터 하시라 말이죠 그다음에 논쟁 합시다
광해군대 백성들을 힘들게 한건 다른게 아니고 군역 동원에 ,,, 징병하고 군사 훈련 엿다는 거지요..이를 파기시킨거가 인조반정후 군사정책 였구
그 궁성 짓는다고 해서 돈을 수탈 당하는 측이 누구냐 하면 재산 가진 지주층들 부농들 이런 사람이란게죠..글을 배우고 양반들이라 상소는 쓸즐 알고 각가지 기록을 남기며 조선내 여론 주도 하던 세력들이죠
18/09/30 16:20
수정 아이콘
이런 댓글 처음 써보는데, 지난 댓글 한번 보고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8/09/29 23:44
수정 아이콘
이건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를..북방이 불안한데 궁궐공사 때문에 군비 확충이 안 된다고 공사 하나라도 멈춰달라는 게 그대로 기록에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조선시대 유례없는 공사를 연달아서 계속 지었는데 백성들이 큰 부담을 안 지었다뇨. 조선은 정조 이전까지 기본적으로 모든 역사는 다 백성들에게의 일방적 부담이었습니다. 자원 조달부터 노동력까지 모든 걸 다 세금의 일환으로 백성이 무보수로 하는 것이었는데... 이걸 과장이라 말하는 게 무분별한 광해군 옹호론이죠.
이슈타르
18/09/29 23:59
수정 아이콘
나 이거야,,,,북방이 불안해서 군비 강화에도 동시에 노력햇다 이말이고 국방을 경시하고 궁궐만 지은게 아니란 야기라 말이죠..군비증강 이야기는 상소로 일부에서 제기가 된바인데 그건은 상소를 지은 사람 주관적 시각이고...여러 증거에서 기록에서 광해군대에 군대 강화에 노력한 흔적이 오늘날 전해짐니다 그런데 인조는 지는 뭐 햇느냐??? 남한 산성 외 한거 없드라 말이죠
조선인구가 당시 800에서 1000만명이 되니 일부 노동력 동원으로도 지어지는것이고 인력도 궁궐이면 기술자가 짓는것이고 이들은 임금을 주고 쓰고한것이죠
noname238
18/09/29 23:55
수정 아이콘
광해군 시절의 국방 전략은 다분히 수세적입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피폐한 상태에서도 정기적으로 여진족 '정돈'을 했던 아버지 선조와는 많이 차이가 있어요.

수백년을 시달리면서 완성된 농경국가의 유목국가 대응 전략의 기본은 '크기 전에 밟는다' 입니다. 이들 농경국가의 역량이 흔들리면서 밟는 걸 소홀히 하면 뛰어난 전쟁군주 한명이 순식간에 세력을 규합하고 국경을 위협합니다. 송이 요에게, 요가 금에게, 금이 몽골에게 당했던 역사가 명이 청에게 당하는 걸로 반복된 거죠.

광해군이 이런 부분에도 신경을 썼으면... 글쎄요?
young026
18/10/0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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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과 신립이 북방에서 놀던 시절 이후에 선조 시절 '여진족 정돈'이 있었나요?
noname238
18/10/0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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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 노토부락 토벌이 대표적이죠. 결과적으로는 누르하치의 경쟁자를 제거해 준 꼴이 되었지만...
18/09/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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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혹시 고조선의 강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bemanner
18/09/2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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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정보 수집 실패나 전쟁의 패배는 아쉽기는 해도 뭐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지고 나서 한다는 짓이
오랑캐한테 강간당한 여자들은 정조를 잃었으니 이혼하겠다는 상소나 쳐올리고 있으니
이거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그냥 망해야했던 국가인거죠.
이슈타르
18/09/29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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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청의 요구는 조선에서 못 들어줄 이유는 없엇던 거든요..명나라 관계 단절 및 자기네 청에다 군신관계로 복속하는거..청의 홍타이지를 황제로 인정해주기..물자 공납하고 병력 원조에 응하기...수량은 협상하기 나름이고 ...그런데 이의 수용을 양반들은 절대불가를 외치고 한거이죠 명에다만 사대는 해야 하고 오랑캐에다 안된다 하는데,,오랑캐가 감히 어딜??....그런한 사고인데 우세한 강국에다 머리숙여 안전을 도모해온건 고려조 이래 전통적 대외정책 엿거든요..전쟁에서 항복하고서 복속하고 전쟁 없이 복속은 사정이 달라짐니다..전자는 제후국 정도인데 반해 후자는 완전 속국 쩌리 신세로 전락합니다
명에다 보은은 사실은 힘을 길러서 오랑캐 만주족을 처부시는일인데 ..이거야 말로 조일전쟁 당시 명으로부터 입은 은혜 갚는 일로서 더나은 보은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죠
다크템플러
18/09/2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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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선은 청과 전쟁 이후 모든 제후국 중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구범진 교수님 '키메라의 제국'에 잘 나와있던걸로 압니다.
이슈타르
18/09/2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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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홍타이지는 그래도 자기에다 항거를 한 조선에다 엄청 은혜를 베플고한 편 였죠(엣정 때문에 아니면 아비인 누루하치 당부로 인해?) ,,,그런데 무력으로서 대항을 하면 보통 철저히 복수를 합니다..준가르 부족을 정벌하면서 청은 무자비하게 현지민들에 보복에 나서지요..청에게 더 친근하며 중요시한 정복지 및 번국은 조선이 아니고 티베트하고 몽골지역으로 이들 관리가 청왕조에게 중요하고 조선은 청왕조에단 크게 후대 받은것도 하대 당한편도 아니죠
유자농원
18/09/30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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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책이나 사서로 레퍼런스 끌어오는데 계속 썰로 이러셔봐야 신빙성 별로입니다.
noname238
18/09/2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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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요구를 과소평가하시는데, 명과의 교역 중단으로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빠진 청을 사실상 부양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거기에 청을 황제국으로 섬기라는 것도 그런데, 그럼 명과의 적대가 불가피합니다. 파병하라고 하면 파병해야 해요. 사르후 전투도 명에 끌려갔고, 나선정벌 때도 청에 끌려갔습니다. 근데 당시 청나라가 명나라 상대로 딱히 우세를 점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위에 적었지만 산해관도 못 넘고 있었다니까요?

눈 딱 감고 빡세게 전쟁 한번 해서 버티고 나면 오히려 청이 멸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슈타르
18/09/2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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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 당시 약해져서 조선을 공략하고할 능력자체가 안되는 실정이므로,,조선위치에서 누굴 무서워해야 하나요??..후금을 무서워해야 합니다..즉 후금하고 손을 잡아야 하는게 당시 조선 인조가 해야할 외교술 였죠
명군은 후금군을 만나기만하면 지리멸멸 당하는 막장 상태 였지요..그레서 요서벌판이며 자기네 백성들 다 포기하고 바로 산해관이 포함이 된 만리장성으로 후퇴하고 후금침공에 대응에 급급하던 시기 였단 말이죠 ,,,이른바 4명의 황제가 나라 망치게 한 명나라가 부흥할것 같슴니까??..명은 당시에 자면자해가 겹치는데다 행정체제 붕괴로 각지에서 반란 민중봉기가 일어나 관군들이 이를 진압조차 제대로 못하고할 정도로 급속히 무너저가던 시기란말이죠 어디 조선까지 원정랄 여력이 될수가 있는것인가 하는것이죠
청에다 조선이 바치라는 물품은 그래서 협상으로 줄이는 것이고 협상 안되면 전쟁 인데 ..청측도 단순한 이같은 목적의 전쟁은 자기에다 손실이고모험인지라 함부로 벌이고 할 일이 아닌게죠..조선측은 요구치의 일부만 내놓아도 되는것이죠
18/09/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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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관만 안열리면 후금이 망할 상황이었는데요. 후금에 붙었다가 후금 망하면 어떻합니까? 우리야 역사 다 아니까 이런 말 할 수 있는거지, 지금으로 치환해서 말하면 미국 버리고 중국에게 붙으라는 말인데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죠.
이슈타르
18/09/3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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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관에서 지키는 데 급급하던 명나라가 대체 뭐 간데요??? 그런다고 후금이 망하기라도 합니까??..명에서 사다 쓰던 공산품은 조선에서 획득이 가능하여 일부 보충이 되고 그거 없드라도 후금이 안망한다 말이죠
식량 문제 가 자주 이야기 나오는데 후금 같이 막강 전투력 가진 나라는 약탈이 가능하므로 가뭄이든 뭐든간에 그네들 백성 안 굶김니다..실제 이자성에 명나라가 망하기전에 자주 중국내 원정 다니고 했지요
명은 당시에 급속히 몰락 붕괴 시기 였고 후금은 몽골 제부족들도 병합 하는 실정 엿고 욱일숭천 으로 세력이 커지고 한 시대 였지요,,그런데 이들 나라 사정은 광해군이 정확하게 파악 하고 있었던 검니다
18/09/3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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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이러시는거에요? 아니면 진짜 이해못하시는거에요? 저 말고 다른 분들도 비슷한 댓글 달았는데.
태연이
18/09/30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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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애초에 대몽항쟁에서 백성들은 별로 그렇게 안힘들었다고 주구장창 주장하는 양반이라 말 안통할겁니다.
중반 이후로는 간극이 기니깐 백성들은 전혀 불편한거 없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사람인데요 크크
이슈타르
18/09/3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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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삭제(벌점 4점), 표현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연이
18/09/3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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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이 안통하는 지 모르겠네요
간극 좀 난다고 몽고군 쳐들어온거 백성들한테 "아무런" 해도 없다고 주장한게 누군데요?
강화도에 있는 얘들이 수탈한것도 생각해야한다니깐 "아무런" 수탈도 없다고 주장한게 누군데요?
단순 계산도 안되고 고려 실정 파악도 못하는 건 님이었지 제가 아니죠
당장 그거 다른 곳에 가서 얘기해보세요 누가 비웃음 당하나
미어캣
18/09/30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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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로 먹여 살리는건 부족일뗴나 가능하지

만주족+한족+몽골족 다 먹여살려야 하는 청은 약탈로는 나라 유지도 못합니다
이슈타르
18/09/30 00:33
수정 아이콘
만주족도 다 자체 농사 짓고 한데다 포로로 잡혀온 한족들만 먹이는게고 몽골족은 엄연히 북방의 초원에서 사는 부족인데 후금에서 먹일 이유가 없죠
당시 후금군은 몇차례 기동전을 전개해서 만리장성을 돌파해서 북경 근처 까지도 진격하고 했거든요
미어캣
18/09/3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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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농사로 지어도 식량위기였습니다.그리고 보급의 한계로 기동전으로 돌파는 불가능했구요. 오삼계 아니었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청은 명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슈타르
18/09/30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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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내로 처들어사 가축 수십만 마리를 약탈해서 몰고 나와서 자기 백성을 먹이고 했담니다..사실은 당시 명의수도인 북경 근처 까지 침투 기동전을 마음대로하던 실정엿죠
명나라 관군은 그시기 어디 있었느냐 하면 이자성같은 농민 반란을 진압하러 다니고 해야 했지요
미어캣
18/09/3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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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타르 님// 침투기동전이 답이었으면 청은 침투기동전만 했으면 됬지. 머하러 산해관에 꼴아박습니까
침투기동전으로는 북경 돌파도 안되고 거기다 당시 만주는 기상악화로 농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침투기동전으로 공격해오는 청나라 군대는 북경에 배치된 명군으로도 무리없이 대처 가능했습니다.

당시에 청나라에 있던 한인들 하도 쥐어짜내서 내부분열까지 일어나던건 아실려나 모르겠네요
병자호란 이후에도 식량위기로 난리났던 청나라가 무슨..
태연이
18/09/3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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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록에 인구수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식량문제가 대두됬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는데요?
청이 조선 제압하고나서도 산해관 못 뚫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후금이 대체 뭐 간데요?
noname238
18/09/3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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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관은 커녕 화북을 점령했던 요/금나라도 결국 송을 멸망 못 시켰고 고려한테 한번 데이고는 사이좋게 동아시아 삼국지 찍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청나라가 어찌 될 지는 아무도 몰라요. 대개는 청의 앞날을 부정적으로 보고요.


명과 청의 상황을 광해군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근거도 궁금하긴 한데, 광해군이 숭덕-도르곤-강희-옹정의 연속 집권에 반농반목하던 가난뱅이들이 삼번의 난을 효과적으로 진압하고 전 중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할 거라는 것도 예상했는지 궁금하네요.
이슈타르
18/09/3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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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는 후금군이 산해관만 안 돌파 햇지 (실제로 후금군이 공성전은 안걸고 시간을 끔) 만리장성자체는 이전부터 후금군이 넘어 갓었지요..애초 북경주변 장성이 가장 튼튼하고 북경에서 멀어질수록 장성이 약해지는 구조 거든요
요나라만 해도 송을 상대로 연파하던 나라인데 그냥 돈을 받고서 정복지 관리위주로 살아가며 남방으로 북송공략을 일부러 안하고한검니다
요서 요동에서 벌어진 명나라군하고 후금군간 전투기록을 구해서보면 명은 운명이 다한 나라란걸 알수가 있고한검니다..명에서 가장 유능한 장수인 홍승주라고 장수부터가 명에서 후금측으로 귀순합니다..그것도 무신 부귀영화 누리려 귀순이 아닌 자기목숨 살기위한 자구책으로 귀순한거지요 그정도로 명나라가 이자성같은 일개 민중 반란 봉기자에다 망하고할정도로 막장 상태 였던거지요
광해군은 이러한 대륙 정세를 읽고 명나라는 얼마후 끝난다,,라 예언을 하고한 였죠
noname238
18/09/3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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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출처가 궁금하군요.
18/09/30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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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해서 엥간해선 리플을 안 달려고 했는데 진짜 상상으로 역사를 보는 것도 정도것 해야죠.
홍승주가 청군에 잡혔던 건 송산 전투였는데 이 시기는 1642년으로 병자호란 발발 6년후이고 광해군이 반정으로 쫓겨나고 약 20년 후의 일입니다. 그나마도 홍승주는 포로로 잡히고 투항으로 요구 받자 2년간 정세를 더 살피다가 1644년 숭정제가 자살하고 북경이 함락되고 나서야 청에 입관합니다. 실제 당시 명나라가 막장인 건 맞는데 대체 무슨 홍승주 건으로 운명이 다한 나라라는 걸 조선이 알 수 있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은 미래의 일도 미리 알 수 있어야 했나 보군요.
춘호오빠
18/09/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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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타르// 논리 전개 수준이 거의 초등학생 급이네요 추해요 그만하세요
18/09/3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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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잘 터시는데 근거는 어디에 있는건가요?
상상력은 저도 뒤지지 않습니다만
미어캣
18/09/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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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오삼계 아니었으면 산해관도 못 넘는 청을 택해요???

진짜 나라팔아먹으려는 매국노 아닌 이상 어느 누구도 청을 택하지 않습니다
18/09/2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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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4암군크리를 맞고도 청이 산해관에 막혔었는데 그런 나라한테 뜬금없이 복속하는것도 웃기죠

명이 그냥 나라도 아니고 625 미군급으로 도와줬는데...
시메가네
18/09/29 23:43
수정 아이콘
저도 당시에 청의 요구를 받아주는게 실리적으로도 이득인가 싶긴합니다. 우리야 역사를 다알아서 이래야 했다 싶지만
당시로 돌아가면 우리에게 엄청나게 도와준나라를 배반하는것도 안맞는거 같구요.
머 결과론적으로 좋지않은 선택이었죠
18/09/2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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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우리가 결과를 아니까 머리를 조아리지 않은 조선이 잘못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당시 상황을 놓고 보면 오삼계 항복 안했으면 청나라 굶어죽는 상황 아니었나요?
조선의 잘못은 이괄의 난으로 촉발된 북방 방어체계 붕괴 및 인조의 용인술 실패(김자점..) 정도 볼 수 있겠는데요.
국방 잘못한게 큰 죄지, 외교 자체는 문제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배청숭명이야 내부 프로파간다고요.

그리고 재조지은을 떠나서, 파병은 둘째치고 다 굶어가던 조선에 쌀 풀어준 명나라를 배반하기가 쉽겠습니까?
메가트롤
18/09/2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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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양면으로 뚜까맞음
내일은해가뜬다
18/09/29 23:41
수정 아이콘
(수정됨) 명나라-청 구도가 현재 미국-중국에 대기에는 그렇죠. 사르후 전투 등 명나라를 곤경에 처하게 한건 맞긴 하지만,
저 당시 청나라는 예전 신불해님이 올려주셨듯이 굶어죽기 직전의 나라였고,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오삼계의 내응이 있어서야 겨우 산해관 통과가 가능했습니다.


정작 인조때도 광해군 시기와 대청외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상대가 누르하치에서 청태종으로 바뀐게 크고, 요구조건도 조선이 들어주기에 무리수가 맞습니다.

인조와 조정이 잘못해서 털린게 아니라 이괄의 난 때문에 북방전력이 날아가서 털린겁니다.
대군이 밀려온 병자호란은 몰라도 정묘호란은 이괄의 난이 아니었다면 바로 막아냈을 병력이었다고 봅니다.
정묘호란을 막았으면 오히려 청은 만주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굶어죽었을 거고요.
18/09/2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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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느끼는건데 딱히 조선이 외교적으로 크게 뭘 잘못한게 없어요 크크 그냥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갔을뿐 아 시대를 주도하지 못했던게 잘못이려나요? 근데 그건 좀...
미어캣
18/09/30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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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방어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한 죄정도?
18/09/30 01:02
수정 아이콘
우주방어하기 안성 맞춤인 지형인데..
태연이
18/09/30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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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시 강화도가 고려떄 강화도와는 달리 수비가 전만큼 쉬웠던건 아니라서 확신할 순 없는데
적어도 남한산성에 갇히는 것보다야....
미어캣
18/09/3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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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가 런도 빨리 안한데다 김자점의 북방군은 멀뚱멀뚱 구경만 했으니....

애초에 청군은 단기전 아니면 답도 없었고 조선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으나 꼬일대로 꼬여버렸죠

런도 빠르지 못했고, 강화도에서는 방심으로 방어에 실패, 믿고 있던 북방군은 구경만, 올라온 삼남근왕군은 쌍령에서 막히고
모든 시스템이 망해버렸습니다
앙겔루스 노부스
18/09/3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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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말해 군량미만 남한산성 안에 비축해놨어도 이길 수 있는 전쟁이 병자호란이었죠. 남한산성 근처까지 갖다는 놨는데, 하필 성내에 반입하기 직전에 청군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그놈의 군량미...
태연이
18/09/30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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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가 후금의 기동성을 너무 간과하고 빤스런을 너무 늦게 했죠
식량부족을 겪든 아니든 전투력은 분명했던 놈들인데 (선조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너무 태평했....
18/09/30 00:40
수정 아이콘
앗 그걸 간과했네요 빤쓰런... 근데 인조가 책임감빼고 완전체인 선조만큼의 능력이 안됐으니 어쩔 수 없는걸로 ㅠㅠ
18/09/3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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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선조는 도망이라도 잘 갔지 인조는...
홍승식
18/10/01 20:57
수정 아이콘
역시 도망하면 선조가...
Lord Be Goja
18/09/29 23:48
수정 아이콘
(수정됨) 몽고,왜구에게 박살난 고려나 청나라,일제에 박살난 조선이나 외교는 부차적인 문제고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상대방보다 국력이 모자르거나 내부권력투쟁과 항쟁으로 국력을 깎아먹은게 가장 큰 문제였죠.

(후금과의 전쟁의 경우는 이괄의 난으로 정예병력이 반란을 하는 바람에 북방의 정예병력이 증발해버렸고,
그 정예 병력을 다시키우기에도 부담이 너무 큰 상태였습니다)

외교력은 결국 국력과 비례할수 밖에 없습니다.
서희가 거란에게 외교적 이득을 취할수 있던건 고려가 그나마 멀쩡하던 시기라 가능한것이였고
조선-대한제국시절 고종이 아무리 등거리 외교를 하고 열강끼리 견제하는 외교를 펼치려해도 조선의 기량이 너무 뒤쳐져서 별 도움이 되지 못했죠.

명나라에 대한 사대외교가 문제라고 하기에는 당시의 명나라와 여진족은 인구수차이가 20배는 났었고
명나라에 사대외교를 한 덕분에 임진왜란을 극복할수 있었다는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진년에 왜군에 명나라에 가는길을 빌려줬다면 조선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긴 하군요.
noname238
18/09/30 00:06
수정 아이콘
역으로 국력을 깎아먹는 바람에 역사적 전환점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만전상태의 명이나 조선이었다면 항상 그래왔듯이 주기적으로 여진족들을 밟아줬을 거고, 누르하치가 발흥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테죠. 이여송의 아버지가 아주 큰 일을 해냈습니다. 사르후도 애초에 질 싸움이 아니었고...
미어캣
18/09/30 00:22
수정 아이콘
임진왜란으로 누르하치에게 신경을 못 쓰고, 이후 조선의 노토부락 토벌로 야인여진이 몰락해서 견제세력도 없어졌으니...
18/09/29 23:48
수정 아이콘
저땐 외교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인조반정 이후 이괄의 난까지 이어지면서 북방정예군이 소멸된 게 더 큽니다. 즉, 인조반정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죠.

물론 저 시점에서 궁궐짓고 김개시에게 농단을 허용했던 광해군도 노답이었고. 오랜 왜란 거쳐서 국력이 크게 깎였는데 궁궐짓고 앉았으니.
Lord Be Goja
18/09/29 23:51
수정 아이콘
외부의 적이 호시탐탐 노릴때 왕권을 신장하겠다고 궁궐짓다가 그나마 있던 국력을 날려먹는 일은 조선말에도 벌어지죠...
펠릭스-30세 무직
18/09/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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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인조의 가장 바보짓은 친명외교가 아니라 칼타이밍 런을 못했다는 겁니다.

그게 선조와의 가장 큰 차이지요. 물론 일본군과 청군은 기동력이 다르지만 중요한건 결과죠.
홍승식
18/10/0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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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상당히 유능한 군주였습니다.
그 방향이 국가가 아닌 자신이기는 했습니만, 군주정 시절이라 딱히 잘못이라고 하기도 뭐하긴 하죠.
류지나
18/09/30 00:01
수정 아이콘
'실리에 의한 세련된 외교'라고 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제3자가 보기에는 박쥐같은 행동에 불과하거든요...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명, 청 양측에게서 비난받고 고립되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유형의 외교는 필연적으로 실력 행사 (내가 소국이라고 깔봐? 나도 이 정도는 할 줄 안다고!)가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외교인데 당시 조선의 사정을 봐서는 택할 수 없는 외교지요.
미어캣
18/09/30 00:07
수정 아이콘
게다가 명 청 국력만 봐도....무조건 명이었죠
Lord Be Goja
18/09/30 00:2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희 가문의 시조인 모경께서는 본래 북송시절에 황궁의 경비대장을 하시던분이였는데

당시 상황이 급박하여 송나라조정에서는 체면이 깎이는걸 무릅쓰고 작은나라인 고려에 구원을 구하는 실리를 추구했습니다.
심지어 사이도 명-조선같이 좋지도 않았죠.
그래서 저희 시조님에게 전례를 무시하고 대사마 대장군이라는 어마무시한 벼슬을 단번에 내려서
고리타분한 전례는 다버리고 고려에 보내는 사신의 격을 맞추는 실리를 추구했고.
(청와대 경비대대장에게 대번에 국방장관+합참의장 직위를 내린격입니다)
무려 병사 20명을 대동시켜,외적들이 이미 정복하고 있던 요동반도를 돌파해 고려조정에 구원을 요청하셨죠.
고려 역시 송나라가 멸망하면 고려도 위험하다는 실리정도는 쉽게 꿰뚫어봤는데요,
대송국의 대장군이 이끌고 올수 있던 인원도 거러지꼴의 십수명이라는것 정도는 쉽게 파악했습니다.
거기다가 고려의 국력이 전성기 기량이 아니라서... 거란이나 여진의 어그로를 끄는 위험을 감수하고 위기의 송을 돕지 못했습니다.

단지 해줄수 있던건 상황이 더 악화되어 이제는 돌아갈수도 없던 저희 시조에게 전라도의 함평군을 내려주고 그땅을 모평군이라고 부르게 했을뿐이죠...

실리를 추구하려면 항상 힘이 필요한 법입니다.
태연이
18/09/30 00:28
수정 아이콘
멀리 안가고 사실 1~2차대전만 봐도 중립국임을 분명히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경우 아니면 그냥 다 짓밟혔다는 걸 생각하면...
태연이
18/09/30 00:25
수정 아이콘
막말로 지금 중국이 우리에게 미국과 단교하고 우리에게 무릎 꿇으라고 하면 그래 그러자 지금 중국이 뜬다니깐! 하고 선택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그럴 수 있따고 보나요?
지금같이 정보통신이 발달한 상황에서도 그따위 선택지는 있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바로바로 정보를 공유할 수도 없는 그 시대에 명나라 대신 후금을 택한다? 역사를 아는 우리가 쉽게 말하는거랑 당시 (정보수집이야 최대한 하려했다해도) 언제 상황이 변하는 지 알수도 없는 상황에서 명 대신 후금(청)을 택해야했다는 건 결과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현실적인
18/09/30 00:29
수정 아이콘
옛날에는 떠오르는 태양 청에게 안 붙고 쓸데없이 의리 부르짖으며 지는 태양인 명한테만 붙어 망했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조선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임진왜란을
겪었던 세대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명을 배반하기도 어려웠을겁니다.(물론 명군이 조선에 와서 했던 양아치 짓, 뻘짓을 감안하고도 말이죠) 거기다 막장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던 명이어도 산해관에서 잘 버티고 있었고 청나라는 굶어 죽을 걱정하면서 자력으로 산해관을 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심지어 이자성 군대가 북경에서 쓸데없는 짓 안해서 오삼계 심기 안 건드렸으면 역사가 많이 바뀌었겠죠..)
따라서 조선의 입장에서는 어려울 때 도와주고 아직은 힘도 남아있었던 명과 관계를 끊기 어려웠죠.....
이괄의 난으로 북방 군대 날려먹고 적절한 인선을 못하고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우는데 국방 소홀히 한 것은 확실한 조선의 실책이긴 합니다만....
트럼피즘
18/09/30 00:31
수정 아이콘
(수정됨) 대국이 소국이 될 수 있고 소국이 대국이 될 수 있죠 정묘호란에서 털렸으면 정신을 차렸어야했는데.. 김자점에게 조선의 주력을 준 인조는 이괄을 부원수로 임명하면서 평안도 병력을 몽땅.. 인조의 용인술 하나만큼은.. 정말..

전쟁을 하면 백성들만 힘들어요 몽고의 침입 시기 2차 이후부턴 평안도 청천강 이북은 그냥 몽고에 협조해 버렸죠 현실을 모르는 고려 정부 때문에 우리만 피를 흘린다.. 하면서 그냥 협조하다가 쌍성총관부로 편입되었죠
18/09/30 00:48
수정 아이콘
수백년이 지난 지금 이 게시판 댓글에서도 어떻게 했어야했네...하고 싸우고들 있는데, 저 당시에 어떤게 최선의 수였는지 알긴 더욱 어려웠겠죠.
됍늅이
18/09/30 00:58
수정 아이콘
친명배금을 명분만 따진 외교라고만 매도하는 건 전형적인 세계사 공부 안 하고 한국사만 알고 떠드는 결과론이죠. 현대로 따지면 미국에 대공황왔다고 러시아랑 손잡고 한미동맹을 깨야 한다는 거랑 동급의 개소립니다.

당시 청나라는 야전에서만 명나라를 이기고 있었고, 명에 반기를 든 탓에 교역이 막혀 경제가 파탄나는 중이었는데, 만약 조선이 명을 배신했는데 명나라가 청나라를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면

조선이 독립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한4군 시즌2가 됐겠죠.

명청 교체기를 보면 나라가 망하려면 이럴 수도 있구나... 수준의 개짓거리가 반복되는지라, 그냥 명나라 탓을 해야..
로빈팍
18/09/30 04:13
수정 아이콘
공감입니다. 도대체 왜 호란의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한테서 찾고있는지 우습네요. 굳이 호란의 원인을 꼽자면 명나라의 무역금지령이죠
18/09/30 01:01
수정 아이콘
지금이야 그후에 청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아니까 하는말이죠

저시점에서 청.. 아니 후금을 택했으면 바보였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그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결과가 나쁘면 그때 그랬어야지! 하고 탓하는거구요

서북라인의 주력군이 반란으로 다 망가진것도 계산에 넣어야하죠.. 광해군에 대한 환상이 큰사람들이 아직도 보이는데 이런거보면 역사에 대한 환상도

유행이다 싶습니다..
18/09/30 01:15
수정 아이콘
아직도 광해군재평가,중립외교 떡밥이 많이 퍼져있어서 그렇지 인조나 서인정권이 못한건 외교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전쟁 못한게 문제죠.

잘만했으면 고려때 거란 3차 침략 시즌2가 될 수도 있는 거를 완전 말아먹었으니까요.
미어캣
18/09/30 01:18
수정 아이콘
아무리 못해도 거란 2차침공으로 끝날 일이었는데 그냥 말아먹었죠.

못 막을 전력도 아니었고, 단기전이면 몰라도 버티기만 하면 무조건 이기는데 그걸 못했으니
akb는사랑입니다
18/09/30 01:30
수정 아이콘
그냥 외교만능론의 부산물이죠. 외교력이라는 추상적인 객체 자체가 다분히 한 나라의 부의 수준, 군사력, 브랜드 따위에 매우 좌우되는 객체라는 걸 도외시하고 이것저것 말을 하니 친명배금을 해서 화를 불렀다가 된 거죠.
중립외교라는 것도 알고보면 허상에 가까운데, 중립외교로 강대국들 사이에서 줄을 타겠다는 것 자체가 강대국들은 생각할 머리가 없어서 똑똑한 우리가 원하는대로 판을 짜준다 는 의미입니다. 허상이죠. 명을 결단하느냐 청을 결단하느냐가 문제였고 거기서 각 정권별로 갈렸을 뿐, 정말로 그 당시 조선만큼 허울도 작은데 그 허울마저 실력에 비하면 큰 편인 국가에서 그랬다고 결과가 달라졌겠습니까.
교강용
18/09/30 02:05
수정 아이콘
인조 vs 박근혜 최악은 누구일까요?
Lord Be Goja
18/09/30 02:30
수정 아이콘
집권절차의 정당성이야 박근혜가 있겠지만 인조는 최소한 자기가 정치를 했죠.
친구한테 나라 다스릴 기회 주려고 집권하는 사례 정말 드뭅니다.
18/09/30 03:38
수정 아이콘
박근혜죠. 인조는 판단을 부족하기는 했지만 박근혜처럼 막나가지는 않았죠.
무가당
18/09/30 09:14
수정 아이콘
둘을 비교하면 당연히 인조가 최악이라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전쟁이 터졌고, 왕 본인이 남한산성에서 항복해서 삼전도의 굴욕을 행했고, 청나라의 속국이 되어버렸는데요. 박근혜는 전쟁 자체가 없었습니다. 박근혜가 인조와 동급이 되려면 북한(혹은 북한과 중국 연합군)과 전쟁이 터지고 미군은 남한을 돕지 않고, 그 와중에 전쟁에 패하는 결과를 맞아야 밸런스가 맞을 것 같은데요.
wish buRn
18/09/30 10:11
수정 아이콘
인조죠.
박근혜가 전쟁 패배하진 않았잖아요. 그전에 끌려내려간거지
18/09/30 02:25
수정 아이콘
인조가 임란 선조급 칼빤쓰런에 북방군이 질질 끌면서 우주방어에 성공했으면 중국 역사가 바뀌었을까요? 크크
긴 하루의 끝에서
18/09/30 04:05
수정 아이콘
당시를 이해하는 데 좋은 유튜브 영상이 있어 공유합니다.

1. [붕당 특집] 제4부 : 광해군은 과연 명군인가? (김영준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d9-lFEYHTtA
2. [붕당 특집] 제5부 : 광해군의 비선 실세들 (김영준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n5436TWnl0
3. [테마 한국사] 제8부 : 밀당의 달인? 광해군의 중립외교 (김영준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_yxM3GkX_EU
4. [테마 한국사] 제9부 : 조명 연합군과 후금의 격돌 (김영준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dfEQvjEYCvU
5. [테마 한국사] 제10부 : 강홍립 투항의 진실 (김영준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hk-oQLozXh4
6. [테마 한국사] 제11부 : 병자호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김영준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hEYyax9NQ5g
아이지스
18/09/30 07:18
수정 아이콘
저거 하나 못 막을 정도로 북방에 구멍을 뚫어놨으니 당해도 싸죠
걸그룹노래선호자
18/09/30 10:30
수정 아이콘
이괄의 난이 인조 입장에서 운이 없게 터진게 아니고 이괄의 난의 원인을 인조가 크게 제공했습니다.

이괄을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이괄을 기습적으로 체포하는 것도 아니고

이괄의 아들만 잡아온다는 이상한 타협책을 써서 이괄이 "아들이 역적인데 아비가 무사한 경우가 있다더냐!" 라는 반응을 보이며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죠.
Multivitamin
18/09/30 10:49
수정 아이콘
산해관이 항복만 안 했어도 청나라 고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청나라는 조선이 완전 속국이 되지 않는 이상 쳐들어왔을 거고요. 그러니 인조의 외교적 선택 자체는 잘못된건 아니라고 보는데.

문제는 이괄의 난으로 정예군 날려먹은 것 + 도망도 제대로 못 간것 + 강화도 지휘관은 개판이라 그냥 상륙 허용한 것+ 남은 군대중 그나마 정예군인 북방군은 김자점이 지휘하면서 아무것도 안한것... 때문에 망했지요.

인조가 인재 쓰는 능력이 없었던 것 같네요.
앙겔루스 노부스
18/09/30 21:04
수정 아이콘
명 멸망전에 이미 직례성 북방을 통해 진입하는 우회로가 파악이 되었고, 이를 통한 북경일대의 대약탈로 청의 물자난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산해관을 지키는 것만으로 청을 고사시킬수는 없었습니다.
라이언 덕후
18/09/30 11:2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솔직히 북방군대 그리 말아먹고 먹튀들 그렇게 많았는데도

인조가 빤스런만 잘했으면 청이 대 조선전을 패배할 확률이 높았던것에만 헛웃음이...
18/09/30 13:15
수정 아이콘
솔직히 여기서 친명배금 해도 잘만 해서 막을 수 있었다는 그냥 결과론적 평가라 봅니다.
애초에 청나라가 굳이 조선을 치지 않을 이유도 많았어요.
아무리 명나라가 당시 청나라보다 강했다 한들 결국 국토 맞대고 있던건 청나라였고
그 청나라는 지속적으로 조선에게 기회를 많이 준 편이었죠.
애초에 전쟁 자체를 할 준비도 안 되어 있던 조선이 청나라 상대로 강경론만 외친건 외교의 승리도 뭐도 아니었다고 봅니다.
결국 화해를 위한 사신단을 뒤늦게 보냈지만 시간만 무지 끄는 바람에 내려오는 기회만 준 것이죠.
무슨 장기전 승리? 애초에 조선에 장기전 승리가 가능했다면 화해 사신단을 보낼 생각도 안 했을 것입니다.
미어캣
18/09/30 14:56
수정 아이콘
장기전승리는 가능했죠.

그만큼 피폐해지고 상처만 남는 승리가 되니 문제지
태연이
18/09/30 18:24
수정 아이콘
장기전 승리가 불가능한건 아니었습니다
전후 사정이 승리라고 하기엔 왜란급은 아닐지 몰라도 어쩃든 처참할게 분명해서 문제였지..(..);;;;;;;;;;;;;
치킨너겟은사랑
18/09/30 13:33
수정 아이콘
조선의 국방력의 제일 뼈아펐던건 역시 이괄의 난이 제일 문제였죠
마우스질럿
18/09/30 13:34
수정 아이콘
청나라 황제가 조선 국왕에게 보낸 편지 x

만주족 족장이 조선 국왕에게 보낸 편지 o

저 편지를 보낸 시점에서 청나라도 아니었고 휘하에 80만 금군을 지휘한것도 아니었고

고작 병자호란때 15만도 안되는 병력 끌고 온게 전력의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몽골 용병 다 섞여서겠지요

현리 전투에서 처참하게 져서 그렇지 이괄의 난 이후 인조가 바보같이 군사훈련을 금지시키지만 않았어도

근왕군이 남한산성에 와서 보급물자만 넣어줬어도 청나라 라는 존재 자체가 생성될수가 없었어요

고로 저 편지는 자의식 과잉의 정신병자수준의 얼간이가 보낸 무시해도 될 수준의 글 맞습니다
마우스질럿
18/09/30 13:39
수정 아이콘
저 편지를 보내기 딱 50년전에 누르하치는 신립 장군에게 탈탈 털리던 사람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필리핀이 대한민국에게 일본과의 교역을 끊어라 라고 으름장 놓는 수준이 적확한 시대 배경이죠
마우스질럿
18/09/30 13:53
수정 아이콘
1636년 정묘호란 이후 대청이라고 고쳤군요 정묘호란때 박살을 내주지 못한게 버르장머리없는 부족국가를 키운꼴이네요
걸그룹노래선호자
18/09/30 13:55
수정 아이콘
정묘호란 때는 청나라 아니었는데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맞습니다.

차하르 몽골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원나라 옥새를 획득했는데 원나라의 정통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황제를 칭하고 청을 세운 것입니다. 그 이후에 정묘호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몽골 용병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냥 용병 수준이 아니라 완전 복속에 성공해서 데리고 온겁니다.

황제국이 된 청나라한테 조선 사신이 예를 갖추지 않은 것이 병자호란의 명분으로 작용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죠.
마우스질럿
18/09/30 14:00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요 몽골용병들을 데리고 다니려면 먹여살려야 하는데 만주족들 생산력 수준에서 그게 불가능했다는게 여러 사료로 증명되고 있죠

원나라의 옥새를 얻거나 말거나 그 원의 잔당들에게도 황제국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았는데 무슨 이유로 만주족에게 굽혀야 한다는걸까요?

병자호란에서의 실수는 현리전투에서 교전에만 몰두하는게 아니라 보급품 전달에 주 목적을 두고 병력을 운용했으면

남한산성도 뚫지 못했던 15만 병력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장기전으로 갔으면 이후의 전개는 완전히 달라질수도 있었던걸

군사훈련을 전혀 하지 않아서 ( 사사로이 군사훈련을 하면 역적모의를 하는걸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 보급품 수송작전조차 실패한게 크죠
걸그룹노래선호자
18/09/30 14:13
수정 아이콘
청나라를 세우며 칭제할 때의 명분이 그렇다는거죠. 우리가 언제 인정했느냐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언제 황제국으로 인정했는지가 기준이면 답은 하나죠. 병자호란의 패배로 강제로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해야했을 때. 그런데 그런 당연한걸 궁금해하는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자기들이 원나라의 정통을 잇는다는건 당연히 쿠빌라이가 세웠던 원나라의 정통을 잇는다는거지 잔당 따위를 이었다는 말이 아니죠.

이미 청나라가 세워졌고 이미 황제국이 되었고 그 수장 홍타이지가 청나라의 황제인 상태로 병자호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우스질럿
18/09/30 14:18
수정 아이콘
(수정됨) 네 말씀하시는 바는 알겠습니다만 ,

대한제국을 표방하고 고종이 황제로 올라섰지만 일본,중국 기타 그 어느 나라도 황제국이라고 인식하지 않았죠

차하르 몽골이 제대로된 국가체계도 아니고 북방민족 중에 나라 라고 불릴만한 어느국가가 있었던가요?

제 이야기는 우리나라가 졌기때문에 그때부터 황제국이 되어버린거지

우리나라 쳐들어왔을때도 다 끌어 모은 병력이 15만 수준인데 그냥 우리나라가 이기면 헤프닝으로 끝날사건이에요

저 시점에서 편지 저딴식으로 보낸다고 청나라 황제가 보낸.. 운운은 맞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왕왕 이상하게 인식하는게 강희,옹정때의 청나라하고 저때를 같이 보고서 청나라청나라 하니까 이상하다는겁니다.
멍청이
18/09/30 17:18
수정 아이콘
현리 전투가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제가 아는 건 한국 전쟁 때 것밖에인데, 호란 때도 현리 전투가 있었나요? 혹 쌍령 전투 말씀이신지.
마우스질럿
18/09/30 18:21
수정 아이콘
아! 맞아요 한국역사 최악의 패배 생각하다가...
멍청이
18/09/30 17:16
수정 아이콘
이 떡밥이 재미있긴 하죠. 2000년대 들어오며 광해군 평가가 오르다가 또 최근에는 인조 재평가가 일어나고 있고요. 근데 이괄의 난, 김자점 도원수, 도주 실패 세 가지면 일단 인조 정권의 잘못은 차고 넘쳐 까기에 충분한 듯요.
태연이
18/09/30 18:25
수정 아이콘
인조의 재평가는 사실 전후 복구와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근데 가만보면 결국 인조의 인선에서부터 문제가 있었으니깐 발생했던 일들이란 걸 감안하면 공을 재평가한다고 과까지 덮는 건 말이 안되는..
18/09/30 18:38
수정 아이콘
학계에서 한명기-오항녕 교수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죠.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로는 두 분이 같은 학회에 참석하는 일도 없고, 같은 학회에 참석한다고 하더라도 서로 안 마주치려고 한다더군요 크크
먼치킨
18/10/01 18:29
수정 아이콘
인조가 친명배금하기로 한 정책은 옳은 판단이었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요.
명이 망하고 나서도 산해관을 못 넘은 청입니다.
명에 붙는게 맞는 판단이죠.

다만,
전략적으로는 옳은 판단이었을지라도
전술적으로
이괄의 난을 통해 전력을 많이 날려먹은 상황이었다는 점과
오삼계에게 그런 일이 생길거라고 상상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점 때문에
틀린 전략처럼 보이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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