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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2/24 10:22:39
Name 글곰
Subject [일반] 크리스마스 이브, 옛 여자친구 (수정됨)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결혼한 지 벌써 팔 년 차, 이제는 연인이 아니라 자식을 위한 선물을 사야 하는 날. 삼십대를 넘어 사십대가 되는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평상시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평범한 하루.

  오늘 저녁에 나는 옛 여자친구와 만날 예정이다.

  과거, 그녀는 나의 여자친구였다. 하지만 결혼한 후에도 나와 그녀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녀와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 왔다. 상당히 자주. 고백건대 거기에는 육체적인 관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혼 생활이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그렇기에 옛 여자친구의 존재는 내게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가끔씩은 회의를 느낀 적도 있었다. 때로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오히려 일시적인 일이었다. 아무리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더라도 나는 결국 다시 옛 여자친구에게도 돌아갔다. 마치 해가 저물면 둥지로 돌아가는 벌들처럼.

  혹 아이가 태어나면 그녀와의 사이가 멀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딸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나와 옛 여자친구 간의 사이는 멀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더 가까워졌다고 말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만났고 여전히 친밀한 사이를 유지했다.

  간혹 딸아이에게 미안함을 느꼈음은 부정하지 않겠다.  딸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이튿날 다시 옛 여자친구와 입을 맞출 때 나는 배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었고 오히려 그럴 때마다 나는 확신했다. 내게는 이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이미 내게 삶의 일부분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옛 여자친구와 만날 예정이다.

  고백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옛 여자친구에게는 딸이 있다. 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해 그녀가 내게 따로 이야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그녀의 딸을 볼 때마다 나는 유전자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그 얼굴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혈연의 흔적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너무나도 명료하게 웅변한다. 그 사실을 새삼스레 인식할 때마다 나는 숨이 막힐 듯,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것만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 아이는 나를 잘 따른다. 그건 아마도 본능이 아닐까.

  아내는 오늘 늦게 퇴근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의 오늘 일정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늘 업무를 마치고 나면 나는 옛 여자친구의 집으로 향할 것이다. 그녀의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 아이가 잠들면, 차 트렁크에 숨겨 놓은 선물을 꺼내와 아이의 머리맡에 놓아둘 것이다. 마치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그리고 아마도 그때 나의 곁에 있을 옛 여자친구에게 속삭일 것이다. 행여나 아이가 깰까 싶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마눌. 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닌텐도 스위치 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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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비아
18/12/24 10:23
수정 아이콘
내가 아는 글곰님이 맞네....휴ㅠ
18/12/24 11:36
수정 아이콘
당신의 글곰, 문른으로 대체되었다
and I also 낚시조아
최종병기캐리어
18/12/24 10:27
수정 아이콘
에헤이... 가족끼리 그러는거 아닙니다.
18/12/24 11:35
수정 아이콘
아니, 가족끼리 안 그러면 누구랑 그래야 할까요? ('' ) ( '')
22raptor
18/12/24 10:27
수정 아이콘
뻘플이지만 스위치는 3인가족에겐 좀 애매한 게임기입니다.
그러니 빨리 둘째를...
18/12/24 11:35
수정 아이콘
딸이랑 둘이서만 할 겁니다~
Zoya Yaschenko
18/12/24 10:30
수정 아이콘
온 가족의 닌텐도!
18/12/24 11:36
수정 아이콘
나만의 닌텐도!(본심)
18/12/24 10:34
수정 아이콘
옛 여자친구라고 말하고 장모님 딸이라고 읽는다..

스위치 아직도 없으세요?
18/12/24 10:47
수정 아이콘
없어요.
근데 사실 사도 안 할 거 같은 예감이...
18/12/24 10:36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친딸의 생모와 밀회를 즐기시겠다는 말이시군요
18/12/24 10:47
수정 아이콘
그치만...
피 한 방울 안 이어진 사이인걸요!
patagonia
18/12/24 10:37
수정 아이콘
여러분, 아직도 스위치가 없는게 보이시죠?
결혼이 이렇게 위험한 겁니다
18/12/24 10:38
수정 아이콘
후 이렇게 심금을 울리는 댓글을 달아주실 줄이야.....
영혼의공원
18/12/24 10:38
수정 아이콘
글곰 :마누라...
안돼!
18/12/24 10:42
수정 아이콘
Bismillah NO! (Let me buy~)
Bismillah NO! (Let me buy~)
Bismillah NO! (Let me buy~)
No No No No No No No!
어랏노군
18/12/24 10:42
수정 아이콘
세상에 공짜는 없다구.. 그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나 샤워하고 올께
18/12/24 10:45
수정 아이콘
저희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빛
18/12/24 10:43
수정 아이콘
세번째 문단에서 김이팍 빠졌습니다. 동일인이라는 게 너무 티가 나서요. 크크
18/12/24 10:45
수정 아이콘
호엥엥엥~
수정해야겠네요.
카루오스
18/12/24 10:58
수정 아이콘
닌텐도? 닌텐도오오오오? 닌텐도 사면 애는 누가 키울거야!
18/12/24 11:36
수정 아이콘
애는 마리오가 키우면 됩니다.
페스티
18/12/24 11:06
수정 아이콘
세번째 문단까지 읽고 힐끗 글쓴이를 확인 한 후.. 이렐리가? 하면서 슥 내려버렸네요. 너무 노골적이어서야 누가 낚이겠습니꽈아 크크크
18/12/24 11:37
수정 아이콘
(시무룩...)
홍다희
18/12/24 11:11
수정 아이콘
글이 너무 쉬웠네요. 그러므로 스위치는 없습니다.
18/12/24 11:38
수정 아이콘
스위치는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루카쿠
18/12/24 11:13
수정 아이콘
옛 여자친구 = 지금 와이프. 속을 뻔 했어요 흐흐.
18/12/24 11:38
수정 아이콘
낚였다고 고백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위에 댓글 보니 아무도 안 낚인 것 같아서 시무룩하던 차였거든요.
18/12/24 11:18
수정 아이콘
결혼후에도 전 여자친구와 불륜을 저지르며 두집살림을 하고 있다는 고해성사를 슬쩍 동의어를 이용한 유머인척하고 교묘하게 풀어내시는 글솜씨에 감탄했습니다. 이게 프로구나... 프로는 프로고 일단 신고했습니다
18/12/24 11:23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전 여자친구를 부르는 애칭이 '마눌' 인거죠???
18/12/24 11:24
수정 아이콘
그렇죠 충분히 있을법한 얘기입니다
Zoya Yaschenko
18/12/24 11:38
수정 아이콘
...천잰데?
18/12/24 11:46
수정 아이콘
본명입니다. 성은 마(馬) 이름은 눌(訥). 자는 조어(釣魚)
Zoya Yaschenko
18/12/24 11:47
수정 아이콘
설마 친정이 서량입니까?
18/12/24 11:49
수정 아이콘
일본입니다. 아버님 성함이 '징가'였던가...
18/12/24 11:47
수정 아이콘
아하~~
멀고어
18/12/24 11:44
수정 아이콘
신태용감독급 트릭..!
덱스터모건
18/12/24 11:48
수정 아이콘
딸이 내딸과 여친의 딸 두번 등장 하는데 먼저나온 딸이 안나왔으면 좀 더 낚시스러웟을거 같구요..
결론은 이글은 못쓴! 글 이거나 실제로 바람피고 있다! 둘중의 하나입니다!
18/12/24 13:52
수정 아이콘
글알못이 되느니 차라리 후자를 택하겠.... 아 아닙니다.
Philologist
18/12/24 11:53
수정 아이콘
너무 노골적이라 바로 알아챘음.
18/12/24 11:56
수정 아이콘
중간에 글쓴이 보고 읽으니 안 낚였네요..
대체 평상시 어떤 글을 쓰셨길래!
18/12/24 13:53
수정 아이콘
그러게 말입니다. 평상시 어떤 글을 썼길래...
프로그레시브
18/12/24 12:35
수정 아이콘
닌텐도 바이럴?
노이즈캔슬링
18/12/24 12:48
수정 아이콘
스위치 사고 싶어지는 마법이 있네요
18/12/24 13:53
수정 아이콘
이것이 진정한 바이럴입니다. 닌텐도는 어서 입금하라!
캡틴아메리카
18/12/24 13:26
수정 아이콘
너무 티나는 서술트릭입니다. 크크
18/12/24 13:52
수정 아이콘
제가 사실 주말에 아야츠지 유키토 책을 두 권 읽었거든요. 미로관이랑 인형관요.
태엽없는시계
18/12/24 13:42
수정 아이콘
어그로 높은 제목, 작성자가 이끌어내는 압도적인 조회수 크크크크
그래서 스위치는 사셨습니까?
18/12/24 13:50
수정 아이콘
I also 마.눌.조.아
18/12/24 17:58
수정 아이콘
I also 마눌조아.
마눌님 보고 계십니까, 이 댓글을?!
cadenza79
18/12/24 14:54
수정 아이콘
걍 읽었으면 낚였을텐데...
글쓴이 이름이 먼저 보이는 바람에 ㅜ.ㅜ
붉은빛의폭풍
18/12/24 17:49
수정 아이콘
글쓴이를 먼저 봤으면 안 낚였을텐데 아쉽게도 제일 중요한 정보를 맨 나중에 봤어요 ㅠㅠ

읽으면서도 가슴을 졸이며 '이건 픽션이어야만 해~~' ×100 을 수없이 외쳤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보고 나서 글쓴이를 보는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 영화에서 결말 스포 안 당한 느낌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봅니다)
18/12/24 17:58
수정 아이콘
낚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로요.
다들 처음부터 뻔히 짐작했다는 이야기만 하고들 가시니 꽤 시무룩하더라고요. 쳇...
주파수
18/12/24 18:26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상당히 자주 육체적 관계를 가졌다는게 핵심이군요?
스카이다이빙
18/12/24 18:36
수정 아이콘
스위치 바이럴 아닌가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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