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3/24 20:24:34
Name 한뫼소
Subject [일반] 분재|독신생활에 끼얹는 가니쉬 한 그루

계기는 연말휴가때 집에도 못 돌아가고 하릴없이 집근처를 산책하다보니 눈에 띈 전시용 분재였습니다.
손바닥에 들어올까 말까한 피라칸타였는데 손톱 크기도 안되는 감처럼 생긴 열매가 한겨울에 다닥다닥 열린 모양을 보고 이쁜데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XsP2rHtl.jpg

 막상 살때는 "그냥 물만 제때 주면 됩니당" 소리만 듣고 일할때 옆에 두면서 계속 실내에만 두고 있었는데 일이주 지나고 나니까 이파리가 윤기를 잃어가더니 픽픽 떨어져 가더라고요. 옆에서 바람만 불어도 떨어져 나가면서 열매만 남은 기이한 형상아 되길래 이게 정상인가 싶어서 제작하는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습니다.

 알고 보니 기본적으로는 통풍이 되고 햇빛이 닿는 바깥에 두는 걸 기본으로 하고, 분재는 환경이 빡셀수록 예쁘게 난다고 해서 죽기전에 제대로 키워보자 하고 손질을 시작했습니다. 

 화분째로 물에 담궈서 흙이랑 뿌리 안쪽까지 물을 머금게 하는 식으로, 겨울에는 삼일에 한 번씩. 대개의 분재는 내한성이 있고 그렇게 키워야 하므로 한겨울에도 베란다 밖에 내놓아 키우기 시작하니 슬슬 새순이 돋는게 보이더군요. 혼자살면서 식물이고 동물이고 옆에 뭔가를 두고 키워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바이오로이드나 말딸은 열심히 키웁니다), 물만 주고 햇빛만 쬐여줘도 뭔가 눈에 보이는 변화가 내 근처에서 일어난다는 실감이 좋아서 좀 더 분재를 키워보기로 했습니다. 
 
OdnkoJYl.jpg
<출처: 세키복카(石木花) 홈페이지>

 처음 피라칸타 분재를 봤을 때도 신기하게 여겼는데, 평소에 막연히 생각하던 소나무 분재만이 분재가 아니고 관엽식물이나 현화식물도 크기를 축소하여 나무처럼 보이는, 소위 분재같은 모양이 나오면 다 분재로 취급한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자연의 경치를 표현하기 위해 아름답게 가꾸어질 것, 그리고 그런 분재를 위한 자리(席)를 갖출 것이라고 하네요. 

 식물에 대해서는 철쭉이랑 아카시아도 구분 못하는 문외한인 탓에, 고르는 기준은 딱 두가지로 했습니다. 꽃이 필 것(변화를 즐길 수 있을 것), 기르는데 세심한 손길이 필요없을 것. 
 1월 경이었는데, 봄이 다가오기도 하고 그 시즌에 맞춰서 꽃이 맺힐 것 같은 식물을 두 개 골랐습니다. 

N65ksmgl.jpg
Qso05Sul.jpg
<출처: 세키복카(石木花) 홈페이지>

하나(사진 위)는 야쿠시마 아세비라고 해서, 찾아보니 영문명으론 Japanese Andromeda, 한국어로는 마취목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나머지 하나(사진 아래)는 아사히야마 사쿠라라는 이름으로, 벚꽃의 일종이라네요. 

둘 다 비수기때는 휑하기도 하고 무뚝뚝한 모습에서 꽃이 핀다는 부분이 맘에 들기도 하고, 세일이라서 구매했습니다. 
무사히 택배로 도착한 이후에는 제때제때 영양제 섞은 물도 주고, 매번 옆에서 보고 싶은거 꾹 참고 찬바람 맞혀가고, 가끔씩 가지도 쳐 주면서 꽃이 피길 기다렸습니다. 

RXlrl4ll.png
<출처: 상동>

가지 치기도 일종의 방법론이 있는 모양이라, 기본적으로는 정방향으로 나는 가지를 남길 것/빗장처럼 나는 가지는 칠 것과 같은 가이드라인이 있었습니다. 사람 보고싶은 모양대로 틀에 맞춰가며 꺾고 깎는게 좋은 일이냐, 하는 건 처음 분재를 살 때부터 들었던 의문중에 하나긴 합니다만 결국 키우는 것 자체도 이기심의 발로인 터라 제가 보고싶은 모양대로 살짝살짝 새순이나 잔가지를 치면서 때를 기다렸습니다. 

 결국 제 분재 이뻐요를 말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 터라, 사진 몇 장을 올려보겠습니다. 
 
qgNAF6Ql.jpg
HNBIGVBl.jpg
8QyNpjDl.jpg

먼저 마취목입니다. 배경탓도 있습니다만 꽃봉오리가 생각보다 붉은기가 돌아서 신비한 분위기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을 보다보니 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9WDBTRll.jpg
LyFilc0l.jpg
ma46lQ6l.jpg

아사히사쿠라입니다. 일본 전국의 개화 시기보다 살짝 늦긴 했지만 무사히 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벚꽃이 내 방에서 피는구나, 하는 소소하지만 남다른 감회가 느껴졌습니다. 

zJ8VTwZl.jpg
EUwy98Zl.jpg

에바 완결을 기념해서, 시원섭섭한 마음을 담아 EOE 배경으로도 남겨봤습니다. 
LCL에서 사람도 살아돌아온다는 세상인데 벚꽃도 돌아오지 않을까 싶네요. 


IRva1wUl.jpg
<출처: Lego 홍보자료>

여담이지만 레고 분재도 판다고 합니다. 8천엔쯤 한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예뻐서 혹하네요. 

총론삼아 정리하면 사람들이 왜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는 점하고 독신생활에서 점점 빠져나오기 힘들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해서 갑자기 분재파는 셀렉트샵이 늘었다고 느꼈는데, 실제로도 요새 분재가 잘 나간다네요. 혼자 살고 재택근무가 길어지면 다들 생각하는건 비슷한가 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toheaven
21/03/24 20:26
수정 아이콘
와~ 그림이 사진이 예뻐요. 감사합니다^^
21/03/24 20:28
수정 아이콘
사진 멋져요 저도 분재에 혹 하네요
한뫼소
21/03/25 20:0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난이도도 높지 않고, 시간 안들이면서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인 것 같습니다.
이러다 화분 엄청 늘어날 것 같은데 잘 참아야겠죠 흐흐
아스라이
21/03/24 20:3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사진 너무 잘봤습니다! 미니어처에 환장하는 성격이라 비스무리한 분재에도 매력을 느껴 구매를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있는데 , 말씀하신 걸 보니 마음을 확실히 접어야 겠네요 . 다육식물처럼 책상에 두고 기르는 방식은 어렵다 하시니... 크크.
한뫼소
21/03/25 15:25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빡센 환경에 안두면 열심히 살 동기부여가 안되서 열매, 꽃을 보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가끔씩 혼술할때 옆에 두고 관상하는 식으로 들이고는 합니다.
아스라이
21/03/25 16:06
수정 아이콘
인간이나 식물이나 마냥 오냐오냐 기르면 안된다는 점에선 매한가지네요. 크크.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닉네임을바꾸다
21/03/25 16:56
수정 아이콘
사실 분재라는거 자체가 어찌보면 식물에겐 혹사같은거지만요...왜 커질 수 있는 나무가 작아졌을가라는걸 생각하면...
아스라이
21/03/25 17:00
수정 아이콘
뻘소립니다만 , 아무리 가혹한 환경이라도 터잡고 살다보면 편안한 내 집이요 , 삶의 터전이 되더라구요. 비근한 예로 지옥불반도라고...
닉네임을바꾸다
21/03/25 17:02
수정 아이콘
뭐 적응의 산물이죠...
제랄드
21/03/24 20:43
수정 아이콘
재작년에 사무실 이전하면서 지인으로부터 화분을 선물 받았는데 두 종류의 나무를 합체! 시킨 종류더군요. 분재는 아닌 것 같고, 이름은... 까먹었...

이런 거 키우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2, 3달 후에 죽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래도 모처럼 최선을 다해 보고 싶어서 영양제도 주고 인터넷 검색해서 물 주는 방법도 보고 나름 연구를 했더니 아직 살아 있... 긴 합니다. 2년 동안 큰 가지 2곳이 말라 비틀어져서 모양은 좀 이상해젔습니다만.

좋은 취미입니다. 정성을 들이고 방법을 하나둘 깨우치니 재밌더군요. 특히 이파리가 선명하고 진한 녹색을 유지할 때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의외로 물을 너무 자주 줘서 죽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 햇빛 만큼이나 통풍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정성글에 추천 하나 남깁니다~
한뫼소
21/03/25 15:28
수정 아이콘
접목이라고 하나요? 잘 자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저도 꽃이 피는 것도 즐겁지만 이끼나 잎이 윤기를 띠고 싱싱한 걸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새삼 몰랐던 즐거움이 많았습니다.

분재는 물주기만 3년이란 말이 있다고 하는데 확실히 중요한 부분이긴 한거 같습니다.
제랄드
21/03/25 15:40
수정 아이콘
접목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이 나무 이름을 알고 싶은데 생각이 안나서 답답합니다? 크크.

* 보너스로 어제 다른 사이트에서 본 분재 하나 투척해 드립니다. 1천7백만원 즈음 하는 분재라던데... 전 싸게 보이네요?

https://www.reddit.com/r/pics/comments/a2f891/this_bonsai_tree_recently_sold_for_1800000/
한뫼소
21/03/25 20:09
수정 아이콘
소나무도 그렇고 분재쪽은 그냥 화사한 것보다 나무 자체와 공간을 얼마나 아름답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많이 뛰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진짜 애호가였으면 혹했을 것 같긴 합니다 흐흐
닉네임을바꾸다
21/03/24 20:4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파리 가지 그리고 뿌리와의 밸런스 망가지면 훅가는지라...가지치기할때 함부로 자르면 안되긴 하죠...
잘 모르면 그냥 딱봐도 이상한거 아니면 안건드는게 나을수도 있는지라..크크
그렇다고 너무 안건들면...그것도 벨런스가 안맞을테니...그래서 가지를 쳐야하긴합니다...모양도 모양이지만요...
한뫼소
21/03/25 16:36
수정 아이콘
가지만 잘못 쳐도 훅가는 경우가 있군요. 일단 모양에 앞서서 생기없는 부분을 먼저 떨구긴 하는데 가지는 정말 이상하게 나지만 않으면 가급적 안 건드리려고는 합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1/03/25 16:4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게 자르다보면...여기도 맘 안들고 저기도 맘 안들고...그러면 훅훅 자르게될걸요 크크
사실 분재같은것보다는 이식할려고 나무 파낼때 뿌리를 상당수 잘라버리니까 이파리나 가지도 안맞춰두면 금방 죽는다하더라고요...
복타르
21/03/24 22:26
수정 아이콘
레고 핑크빛 분재는... 확대해서 보면 안되는 물건입니다.
한뫼소
21/03/25 20:09
수정 아이콘
실제 제품 봤는데 레고레고 하네요 크크
21/03/24 22:28
수정 아이콘
모동숲에서 비슷한거 본 듯
한뫼소
21/03/25 20:10
수정 아이콘
나무를 데폴메해서 표현한다는 점에서 보면 본질적으론 보신 느낌이 진리일 것 같습니다.
-안군-
21/03/24 22:40
수정 아이콘
아니왜 독신자가 이딴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계신겁니까? 미소녀 피규어나 모으세욧!!(응?)
한뫼소
21/03/25 20:11
수정 아이콘
뭔가 키운다는 느낌을 현실과 가상 둘 다에서 중시하다보니, 피규어 대신 전자소녀들은 잔뜩 키우고 있습니다 흐흐...
-안군-
21/03/25 20:12
수정 아이콘
게임도 분재겜을 하시는군요. 크크크..
This-Plus
21/03/25 00:59
수정 아이콘
사진이 너무 예쁘네요.
한뫼소
21/03/25 20:1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큰 모니터를 샀더니 이렇게 배경 연출로도 쓸데가 있어서 좋네요.
최종병기캐리어
21/03/25 12:56
수정 아이콘
아사히야마 사쿠라...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 키워보고 싶어요
한뫼소
21/03/25 16:38
수정 아이콘
https://www.amazon.co.jp/dp/B00HBJP81O/ref=cm_sw_r_u_apa_i_7YZJVTEG8TSDK3B5TFB3

전 본문에 첨부한 세키복카라는 업체에서 구매했는데, 해외배송 되는 일마존에서도 파는 것 같으니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은 검색해도 거의 안 걸리는거 보면 취급하는 것이 많아 보이진 않네요...
아스라이
21/03/25 22:37
수정 아이콘
염치불고하고 본문과 무관한 질문 하나 드리려는데요...

사진 2장 이상, 본문 사이 사이에 삽입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까요? 제가 피쟐 시작한지 얼마 안됐고 IT에 서투른 인간이라 좀 어렵네요 .
한뫼소
21/03/25 23:50
수정 아이콘
전 imgur에 업로드하고 싶은 이미지 올려서 html로 중간중간에 삽입했습니다. 태그도 자동으로 붙고 괜찮은 것 같아요.
아스라이
21/03/25 23:51
수정 아이콘
오호... 한 번 배워봐야 겠네요 .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시길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1074 [일반] [외교] 미국-EU 공동성명과 EU의 대중국정책? [35] aurelius12078 21/03/25 12078 12
91073 [일반] <고질라 Vs. 콩> - 단단한 마무리(스포?) [47] aDayInTheLife10302 21/03/25 10302 3
91072 [일반] "동맹국에 미중 택일 강요 않겠다" [72] 러브어clock16317 21/03/25 16317 18
91071 [일반] MSI: 그래픽카드 가격 인상 [94] SAS Tony Parker 17841 21/03/25 17841 1
91070 [일반] 대법 "기레기, 모욕적 표현이지만 모욕죄 성립 안돼" [69] 맥스훼인14343 21/03/25 14343 4
91069 [일반] 백신 접종하였습니다. -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관련 업데이트 [68] 여왕의심복15836 21/03/25 15836 67
91067 [일반] [저스티스리그]웨던 컷을 안 본 사람의 스나이더컷 감상기 [38] 도뿔이10033 21/03/25 10033 7
91066 [일반] 여기서 멈추면 그들만 좋아지는 겁니다 [128] 실제상황입니다19450 21/03/25 19450 54
91065 [일반] [직장생활] '야근문화'가 문제인 이유 [51] 라울리스타15046 21/03/24 15046 35
91064 [일반] 눈에는 눈, 광기, 대의를 위하여, 솔직함. [109] kien18885 21/03/24 18885 11
91063 [일반] 분재|독신생활에 끼얹는 가니쉬 한 그루 [30] 한뫼소9317 21/03/24 9317 9
91062 [일반] 차량 테러 범인을 찾았습니다. [76] Lovesick Girls19909 21/03/24 19909 108
91061 [일반] 영탁 - 찐이야 [10] 포졸작곡가8507 21/03/24 8507 8
91060 [일반] 래디컬페미가 아무리 싫어도 이딴 짓을... [164] Fim20765 21/03/24 20765 11
91059 [일반] 중국 이슈 앞에서는 쿨하지 못한편 [112] 마늘빵17183 21/03/24 17183 44
91058 [일반] 중국에서 한류에 집착하는 건 한반도 점령 위해서입니다. [40] 니그라토12389 21/03/24 12389 14
91056 [일반] [13] 포항을 뭐하러 가 [6] Albert Camus5851 21/03/24 5851 5
91054 [일반] 게시판 도배 저만 불편한가요. [106] bifrost16573 21/03/24 16573 48
91053 [일반] 예언들과 부록 [54] toheaven13321 21/03/24 13321 2
91052 [일반] 수렵채집사회들의 한 본질적 특성으로서의 평등주의 [14] 아난11006 21/03/24 11006 1
91051 [일반] 대체로 야만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수렵채집인들 3 (번역) [4] 아난11385 21/03/24 11385 2
91050 [일반] 대체로 야만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수렵채집인들 2 (번역) [16] 아난8216 21/03/24 8216 3
91049 [일반] 관심법으로 접근한 중국 지도부의 속내 [61] 아스라이13051 21/03/23 13051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