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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8/08 02:40:41
Name noname11
Subject [일반] 술핝잔 먹고 쓰는 잃을 가치가 없는 만취글
식사를 하며 공공언어과장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실장님 요즘엔 참 한글이 너무 빨리 변해 어디다가 기준을 둬야할지 모르겠어요
전 솔직히 10년전만해도 인터넷통신체가 정말 세기말에나 나올듯한 한글파괴체의 궁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그래도 자음과 모음이라도 있었지 이제는 초성체로만 쓰는 급식체가 어린세대들 사이에 대유행이 되니 정말 자괴감이 듭니다.
그리고 그 급식체의 대부분은 정말 상대방을 향한 비하하는 발언들로만 다 이루어져있으니 어딜 손대야 할지 모르겠어요..

순간 나는 씁쓸한 느낌과 함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의미라도 전달되고 글이라도 읽을줄 알기에 축약한 초성체 급식체가 그래도 퍼지지 않을까?
우리글을 자유롭게 쓰고 읽을줄 알기에 그것을 엄청난 속도로 바뀌는 이 시대에 언어를 자유롭게 바꿀수 있고 쓸수 있는 자유가 그래도 존재한다는것이 예전보다는 좋지않을까?
과거에 아주 과거엔 이런 언어의 자유도 없이 우리말을 쓴다는 것 조차 감옥에 갇히는 중죄였기에 낮에 일본도를 찬 일본인선생앞에 폭력으로
배우는 일본학습시간이 끝나고 집에 갔다가 하나둘 동네천막에 모여서 아름다운 우리말 순수한 우리말을 배우며 언젠간 우리의 나라를 찾겠다는 열정으로 하루에 두학교를 다니던 시절도 있지 않았는가...

"혹시 언어과장님은 저번에 어문연구과에서 번역하고 있는 조선시대 초기 조씨무덤에서 발굴한 그 글모르는 무명종의 기록을 보셨나요?"
"무명종의 기록이요?"
"그거 전에 발굴했는데 그거하나로 엄청난 영화가 나올꺼 같은 이야기의 보고라고 그랬잖아요 하하"
"금시초문인데요 어떤내용인데요?"
"제 생각엔 과장님이 시간을 내어 직접 그 자료를 살펴보는것도 전혀 시간낭비가 아닐꺼 같아요. 하지만 언어과장님이 바쁘시니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하자면 과거를 보러가는 양반을 모시는 종이 중간에 주막에서 허술하게 노잣돈을 잃어버려 분노한 양반이 집에가서 돈을 가져오라고 괜찮다고 하고 돈가져오라는 글을 전해주었는데 사실은 그 편지가 이 종은 주인을 능멸하는 죄를 저질렀으니 집에 도착하는대로 멍석에 말아서 꼭 죽일것을 쓴 내용인데 그 종이 글을 몰라서 어떻게든 주인에게 죄송스런 마음에 잠도 자지 않고 쉬지 않고 집에 가서 죽임을 당했는데 그 종의 아들이 그 편지를 가지고 탈출해 산전수전 겪으며 글을 배워서 그 편지의 내용을 일고나서  밑에다가  글 모르는 아버지의 원통함을 기록한 내용인데 정말...한자인데도 감정이 구구절절히 드러나 우리 원에서 한때 엄청난 이슈였어요 하하 한번 시간내어 꼭 읽어보세요."

"흥미롭군요 실장님 꼭 읽어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언어과장님 한마디 드리고 싶은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저희 할아버지도 사실 한글은 쓰고 읽을줄을 모르셨어요 대화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일제시대말기에 학교를 소학교만 다니고 광복이후에도 나무꾼 생활을 하셔서 학습의 기회가 끊어졌지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열심히 농사를 짓고 나무를 캐서 아버지는 학교를 그때당시에 고등교육까지 받았지요 근데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건강이 많이 안좋아지셔서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도시아버지 집에 모시고 싶어했지만 할아버지는 도시를 싫어하셔서 시골에 그대로 사셨는데 협심증이 걸려서 쓰러지셨다가 다행히 동네이장님에게 발견되어 협심증수술을 했는데 퇴원할때쯤 다시 모시고 싶다는 아버지 말을 고집스레 거절하고 협심증약만 받아서 시골에 가셨는데 마을 뒷산에서 나무를 하시다가 다시 쓰러지셔서 돌아가신뒤 며칠 뒤에 발견되셨어요
할아버지는 나무를 하면서도 협심증약을 가지고 계셨기에 약만 드시면 됐지만 정말 슬프게도 협심증약은 눌러서 돌리라고 쓰여져있었는데 그 몇글자 안되는 글을 할아버지는 읽을줄 몰라서 계속돌리시다가 약을 못드셨습니다. 이건 아버지의 천추의 한이자 우리 집안의 서글픈 하나의 역사입니다. 언어과장님 글이라는게 뭘까요? 말이라는게 뭘까요? 전...말은 일종의 두가지 차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고차원적인 생각과 뜻을 내재한 일종의 언어를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고 또 다른 것은 사람의 무의식적인 대부분의 영역과 아주 일부분의 의식적영역을 일상적으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것 이 두가지로 생각하는데 글이란 것은 그것을 기호로써 나타낼수 있을만큼만 나타내는 일종의 약속체계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슬픈 집안사를 빗대어 이야기해서 삼천포로 조금 빠진거 같은데 제 말의 표현의 핵심은 요즘 젊은 세대와 10대가 쓰는 초성체는 아직까지는 말과 글이 그래도 붙어있는거 같으니 전 좀더 두고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왠지 언어과장의 얼굴에는 또 이양반 고리타분한 이야기 시작했구만 하는 듯한 약간의 불만섞인 표정이 드러났지만
점심식사는 그래도 분위기 좋게 마무리가 되었다.

사무실에 올라가며 나 스스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않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이렇게 갑자기 이야기 했을까? 나는 할아버지의 슬픈 이야기를 하고싶은 그런 욕망이 생긴것일까? 아니면 잊혀지지 않게 한번씩 되뇌이는것일까?
참 내마음을 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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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8 03:28
수정 아이콘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현재 *표준* 한국어는 조어력이 극단적으로 거세된 상태인 것 같아요.
세상이 빨리 변하는 만큼 새로운 말이 더 많이 필요한데 그걸 따라가기가 너무 버거워 보입니다.
답이머얌
21/08/08 11:27
수정 아이콘
이렇게 된데는 한문과 일제 시대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거기에 현대 한국은 언어의 침식이 기존의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미국 영어가 들어왔으니까요.

동네이름도 원래 순한글이름이었다가 한문식으로 바뀐게 영어 침식전 한문이나 일제 시대가 한국어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예죠.

이런 식으로 한글의 작명성이 죄다 사라지고, 한글로 새로운 단어를 만드려면 한문을 사용한 작법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가 들어옵니다.

결국 영어 단어를 한문 단어로 조합은 가능하나 이젠 더이상 한문을 쓰지 않는데 이런 새로운 단어 창출은 어차피 알아듣지 못하기로는 똑같아서 그냥 영어를 쓰는 것과 똑같은 결과를 가져왔죠.

결국 기존 한국어의 작법은 소멸된 상태에서 한문식 작법이 남아있는데, 세대가 바뀌면서 어차피 한문도 모르니 영어를 한문식 단어로 전환할 필요도 없고, 그냥 영어를 쓰자니 뜻도 모르면서 그냥 아무 상관없은 단어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죠.

한 오십년만 더 흐르면 그냥 영어 단어를 쓰는게 자연스런 흐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재미교포들이 쓰는 조사만 한국어인 것으로 점차 변화하지 않을까 싶네요.
21/08/08 17:36
수정 아이콘
타당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이나 전문분야에서 교포 언어처럼 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질 거라고 봅니다(사실 분야에 따라서 이미 상당히 그렇게 된 곳들도 있죠.. 슬의생만 봐도...). 일상에서는 이미지나 영상으로 소통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아예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것 같고요.

국어학계나 당국(국립국어원)에서 좀더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항상 우리 것은 좋으니 지켜나가야 한다 정도의 스탠스라서 아쉽습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뭔가 하려고 하는데 여건상 못하는 상황이겠지만요.
실제상황입니다
21/08/08 03:31
수정 아이콘
그냥 이런 생각은 들어요. 두고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차피 통제는 불가능하고, 통제하는 것이 더 덕스럽다는 망상만이 있을 뿐이죠. 다양한 음모들이 도사리고 있긴 하겠지만요. 순화니 성인지 감수성이니 하는 것들 말입니다. 개중에선 저희 나라는 안돼요! 같은 성공한 프로파간다도 물론 있겠죠. 그러나 개개인의 자유로운 언어생활을 결코 제대로 컨트롤할 순 없을 겁니다.
김솔라
21/08/08 03:49
수정 아이콘
초성체가 만연한 이유는 디지털 시대에 정보를 함축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같은 말을 하는데도 데이터가 적게 듭니다. 그러므로 타자를 사용함에도 의사 전달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이건 시대와 환경의 변화지 어린 세대의 잘못이 아니에요. 세종대왕도 21세기에 태어나 스마트폰을 썼으면 초성체를 썼을 겁니다.

작성자분의 의견에 어느정도 동감합니다.
21/08/08 04:03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삭제, 비아냥, 비속어 사용(벌점 4점)
다시마두장
21/08/08 06:13
수정 아이콘
오타겠지만서도 '잃을 가치가 없는 글'이라는 표현이 어쩐지 시적이네요.
거짓말쟁이
21/08/08 08:29
수정 아이콘
무명종의 기록부터 스크롤을 내려버렸으나 부끄럽지 않음. 작성자분의 의도에 부합하는 훌륭한 행동을 했다고 믿습니다.
21/08/08 12:16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무명종 이야기, 할아버님의 이야기 슬프지만 흥미롭네요.

획일화 시키면 오히려 역효과로 다양성과 개성을 추구하게 되는 과정이 있고, 시간이 흐르다보면 의사소통의 부재로 인해 결국 다시 말과 글의 본연의 소통기능을 위해 자정작용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좀 더 확장하면, 정치, 금융의 권력자 일수록 많은 국민들이 분열될 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언어도 그 하나의 수단이 되니, 적극적인 해결을 하려고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결국 국민들 스스로 자유롭되 어느정도 선은 지키자. 라는 움직임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알라딘
21/08/08 13:16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21/08/08 14:4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세종대왕이 (따지고 보면 한국말 그 자체도 아닌) 훈민정음을 만든 이후 한국인들은 매 세대의 언어적 타락에 몸서치쳤지만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이 말을 하는 법을 잃었는가에 대해서는 곰곰히 생각해보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세계인들이 이런저런 한국어휘를 일상에 접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게 만들어줬는데 그런 논리라면 오히려 뒷세대가 더 한국말에 더 뛰어나다고 해석을 해야겠지요~

어쩌면 글과 말이 두려운 사람일수록, 이것이 틀리고 저것이 맞다고 남에게 깨우쳐주는 것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그 결론은 '당신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니 더 말해봐'가 아니라 '제발 그 입좀 다물어봐'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마치 말씀해주신 이야기에서 글을 못 읽으니 죽어봐라라고 했던 그 가학적인 양반처럼요.

써주신 글을 읽으면서 소설 "1984"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데, 영국에는 그런 말도 없을텐데도, 영국인 두 명이서 밥을 먹으면서 독재국가의 언어개혁안을 논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주인공 윈스턴은 사임이라는 이름의 동료당원이 하는 말을 밥먹으면서 듣지요. "이런 말은 옳지 않다. 저런 말은 비효율적이다, 라고 지적하고 지적하면 결국 오세아니아의 사람들은 부적절한 생각을 하고 싶어도 '나쁜짓, 해서는 안되는 짓' 이외에는 그 발상을 완성시킬 어휘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윈스턴이 하는 생각이 더 웃깁니다. '사임이 결국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해버리는군. 그렇게 똑똑한 티를 내고 다니면 조만간 사라질텐데..." 그리고는 소설 중간에 정말 숙청되어서 기록이 다 지워집니다.

https://youtu.be/iY57ErBkFFE
"(...따라서) 당신이 정보에 접근하려는 것을 막는 그를 조심하라. 그 자는 당신의 주인이 되고 싶은 자이다." -시드 마이어의 알파 센타우리, 불가사의 완성 명언 중.
toheaven
21/08/08 18:2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 중 나름 담고 싶은 내용을 담아볼게요~
'전...말은 일종의 두가지 차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고차원적인 생각과 뜻을 내재한 일종의 언어를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고 또 다른 것은 사람의 무의식적인 대부분의 영역과 아주 일부분의 의식적영역을 일상적으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것 이 두가지로 생각하는데 글이란 것은 그것을 기호로써 나타낼수 있을만큼만 나타내는 일종의 약속체계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댓글들도 감사히 읽어볼게요^^
여러분 모두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수정)
글쎄..초성체에 대해선 저는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찬성인데. 그러나 거의 지나치고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는데 단순 복제를 보는 것 같아서 좋게 보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초성체보다는 한국말을 쓰지 않고 외래어를 쓰는 게 문제라고 보여지네요?
얼마전 뉴스에서 얼마나 더위가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도로에 베이컨을 구웠다고 말하더라구요...이때 좀 이상했어요. 그리고 오래 전 부터 외래어쓰는 것에 대한 말은 많았던 것 같구요..

그런데 세계화되고..이민2세나 외국에서 자란 사람들로 부터 말을 들으면 한국말 중간에 외국단어를 쓰기도 하네요.
이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그럼 앞에 베이컨이란 단어 표현은??
해외 교포 분들이 말 중간중간 외국단어를 쓰는 건 아마도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고, 생각나지 않아서?? 그렇담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한국말 중간중간에 외국단어를 쓴다면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구나? 한국말을 모르는 구나? 비꼴 수 있을 것 같네요.
또 방송에서도 연예인(배우 이민정)이 디벨롭이란 외국단어를 썼었네요. 개발이라 말할 수 있었는데..당연하게 보통 말 중간중간에 외국단어를 요즘 한국인들은 쓰는 것 같고 다른 나라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음 저도 썼었네요. 인지하지 못했는데.
아마 생각해보면 직관적으로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 다양한 견해, 관념을나타내려고 쓴 것도 있는 것 같네요.
신류진
21/08/09 10:13
수정 아이콘
핝잔에서 느껴지는 진한 알콜의 향기
김뮤즈
21/08/09 11:41
수정 아이콘
글에 등장한 분이 본인이시면 개인이 너무 쉽게 특정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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